2006년 12월호

한나라당 ‘정권 창출·유지 전략’문건

집권 후, 우파-기업 연대한 ‘부국강병’ 대중운동 전개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12-13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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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민주당 벤치마킹한 ‘보수 싱크탱크’ 구성”
    • “우파 이념은 ‘부국강병’…100대 정책 준비”
    • “기업 참여해야 우파 시민운동이 산다”
    • “이대로 가면 대선은 동전 던지기…승률 50%뿐”
    • “이념戰 벌이면 대선에서 7대 3으로 낙승”
    • “이번에 또 지면 시장경제체제 파탄”
    한나라당 ‘정권 창출·유지 전략’문건

    2006년 9월28일 박세일 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이 주도하여 창설된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창립기념 심포지엄. 왼쪽은 한나라당 ‘정권 창출·유지 전략’ 문건.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임태희 소장(국회의원)측은 최근 ‘보수우파 운동을 주도해야’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한나라당의 정권 창출 및 유지를 위한 전략을 메모 형식으로 담은 A4지 20여 장 분량이다. 문건은 미국 민주당, 공화당의 대선 전략을 다각도로 심층 분석했으며 이중 핵심적인 부분을 한나라당으로 가져올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 문건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실증적 사례를 들어 당의 진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건은 집권 이후 전략까지 담고 있다. 문건 내용 중 내년 대선을 이념전(戰)으로 몰고가야 한다는 주장,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에 대한 연구, 집권 후 ‘기업참여형 우파 운동’ 전개를 제안한 부분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2007년 대선 ‘7대 3’ 구도 만들기

    문건은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할 때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는 질적 변환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현 국가체제를 지탱하는 양대 축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한다고 천명한 바 있지만, 문건은 여권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표출했다.

    문건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현 집권 세력에게 나라를 한 번 더 맡기면 국가체제가 파탄난다’는 논리를 유용하게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논리는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위기감 조성에 따른 결속력 강화 효과를 가져오고 외부적으로는 한나라당 집권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주요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문건은 내년 대선과 관련해 한나라당으로선 우려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여론조사로 결과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열린우리당 지지율의 두 배 이상인데도 문건은 “현 상태로는 한나라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질 확률은 50%, 또 아무리 잘해도 이길 확률은 50%”라고 내다봤다. 문건은 “2007년 대선은 ‘동전 던지기 게임’으로 예상”하면서 대선에서 여권과 한나라당은 예측불허의 접전을 펼칠 것으로 점쳤다. 새 여권 대선주자의 차별화 시도, 지역감정, 여권의 집권 프리미엄 등이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어 문건은 “최근의 우파운동 활성화는 지금의 위기가 ‘보수세력’의 위기가 아니라 ‘보수정당’의 위기임을 입증한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우파운동이란 뉴라이트 운동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지금의 한나라당은 보수세력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2류 보수’라는 것이다.

    여권은 한나라당에 대해서 “수구, 냉전, 기득권 수호, 부정부패 등 부정적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건은 그보다 “근본지형에 대한 확실한 자기신념이 없다”는 점을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근본지형’이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남북한 평화와 상호주의 같은 ‘이념’과 ‘가치’를 의미한다. 문건은 “남북 문제도 이슈가 아니라 가치를 갖고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대선을 유권자 이념대결로

    문건은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내년 대선을 70대 30의 게임으로 만들려면 대선은 ‘이념과 가치’로 무장된 유권자의 싸움이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은 정부의 실정(失政) 탓에 구체적인 정치, 외교, 경제, 사회 현안에서는 우위에 서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 이슈의 ‘상위’ 개념인 이념과 가치의 영역에서 무기력하기 때문에 내년 대선이 위험하다는 진단이다. 거꾸로 보자면 상당수 유권자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정 운영에 실망한 상태이므로 한나라당이 구체적 국정 운영 실패 사례들을 ‘이념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실망한 유권자를 ‘반(反)진보좌파 성향’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7대 3의 대선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이 기준이고 무엇이 가치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미국식 보수성향 싱크탱크 활용론

    문건은 이어 한나라당이 대선 이후에도 이념 전파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으로 ‘미국식 싱크탱크’와 ‘우파운동 전개’를 제시했다.

    미국 민주당의 싱크탱크를 벤치마킹한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는데, 우파 싱크탱크는 현재의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보다 기능적으로 훨씬 더 확장된 규모여야 하며, 한나라당과는 별도의 기관이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재단법인 형식의 여의도연구소, 당내 정책위원회 등이 전략수립, 정책개발 기능을 맡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탄탄하고 체계적인 이념체계를 만들고 있지 못하다는 게 문건의 시각이다. 또한 대안세력으로서 정책개발 능력도 탁월하지 못하다는 것. 원인으로는 인력, 재원, 국내외 네트워크의 부족이 꼽혔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노당 등 대다수 정당도 비슷한 실정이라고 했다.

    문건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맞게 보수우파의 논리를 그때 그때 개발하는 싱크탱크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보수우파 이념이 사회의 주류 가치로 유통되고 한나라당이 이를 정책으로 현실화하는 안정적 수권(受權) 기반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또한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은 ‘보수우파=수구 냉전 기득권’ 등식을 깨고, ‘개혁’의 이미지를 얻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한간에 평화가 깨지고 전쟁위험이 높아진다”는 여권의 주장이 유권자에게 꽤 호소력을 갖고 있는데, 우파 싱크탱크는 포용(햇볕)정책의 기원이 한나라당의 전신인 노태우 정권이며 노태우 정권 때 평화-교류-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가 꽃을 피웠고 이를 토대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는 점을 현재의 북한 핵실험 사태와 대비시켜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파가 집권해도 남북관계는 더 평화적이고 건설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권자에게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싱크탱크에 주목

    한나라당이 벤치마킹할 싱크탱크로는 미국 민주당의 민주지도자협의회(Democratic Leadership Council)를 지목했다. 이는 1984년 의회 보좌관 출신 얼 프롬이 창립한 조직으로 이론가, 전문가들을 결집해 대통령 선거공약 등 정책 사안을 집중 개발해왔다. 이 기구는 새로운 정치인을 배출하는 요람 기능을 하면서 1990년대부터 민주당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 기구 덕분에 민주당은 ‘참신하고 믿음직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것. 다음은 이 기구에 대한 분석이다.

    “민주지도자협의회 회원은 의원, 주지사, 지방 선출직, 사회지도층, 경제 사회 문제의 창조적 사상가들, 혁신적 태도의 사업가 등 수백명의 당 내외 인사다. 기회균등, 특권 배제, 관용과 포용, 국민에게 ‘국가에 뭔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던 케네디의 상호책임 윤리, 계층 상승의 장려, 정보화시대의 대비 등 5가지 기조를 철저하게 따른다. 그래서 이 기구는 차츰 구시대의 좌우이념논쟁을 넘어 정치개혁의 아이디어센터이자 대변자로 알려지게 됐다.

    1990년 이 기구는 ‘뉴올리언스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클린턴 주지사가 이 기구의 회장이었다. 이 선언은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자 행정부의 철학적 지침서가 됐다. 대통령 선거공약이자 8년 집권기간의 정책기조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의 모태가 됐다.

    이 기구가 내놓은 정책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최장기간 경제성장, 최저 실업률, 220만개 일자리 창출, 7년 연속 범죄율 감소, 재정균형, 가장 작은 정부 실현 등 수많은 업적을 이끌어냈다. 이 기구는 현재도 ‘21세기 미국의 국가발전전략’ 등 민주당의 거시적 정책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데, 존 케리 후보의 대선 실패 이후에도 민주당 재집권 전략 수립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좌파 때문에 기업이 위기’ 논리

    문건은 한나라당 집권 후 우파 싱크탱크의 출현이 용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선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도 싱크탱크를 활발하게 운영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기업의 참여 여부에 주목했다. 기업의 참여란, 우파 싱크탱크에 대한 기업의 우호적 관심 및 재정적 후원을 의미한다. 기업이 우파 싱크탱크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우파 싱크탱크는 좌파에 의해 기업이 흔들리는 위기를 막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건은 현 한국 우파의 처지가 1960년대 말~1980년대 미국 우파의 처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봤다. 당시 미국 우파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대법원 판사를 지낸 리치먼드 파웰은 1971년 리치먼드 지방검사 시절 미국 주요 기업인 모임인 미국상공회의소(AMCHAM) 유진 시드노어 교육위원장에게 편지(Powell Memorandum)를 전달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좌익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 및 학생운동권이 반전운동, 히피운동을 전개하면서 미국 사회 전체가 좌편향하던 상황이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랠프 네이더는 좌파에게 든든한 이론적 토대까지 마련해줘 좌파는 미국 사회에서 더욱 힘을 얻게 됐다. 그러나 당시 미국 기업은 좌파의 확산에 무관심,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파웰은 편지에서 기업의 무관심을 비판하면서 기업이 좌파와의 대립 전선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기업은 우파 지식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웰은 우선 ‘균형회복 운동’ 지원을 제안했는데, 대학 강연, TV 신문 등 언론매체, 책, 학술지, 유료광고 등에서 적어도 우파가 좌파와 평등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편지는 미국상공회의소 임원들에게 배포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10년여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되어 기업들의 지원으로 미국 사회에 헤리티지재단, 케이토연구소 등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설립됐다. 우파 싱크탱크들은 좌파운동에 대응하는 논리, 이념, 정책을 적극 개발해 마침내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기업참여형 부국강병운동 전개

    문건은 “대중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면서 우파적 대중운동인 부국강병운동의 전개를 제안했다. 또한 우파 싱크탱크가 부국강병운동본부 격이 되어 대중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집권 후에는 이런 사회운동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운동의 전개방식과 관련해서는 “전위투쟁과 대중운동을 병행한다. 원칙과 가치에 찬성하는 인사들만 참여한다. 3대 원칙, 10대 가치, 100대 정책을 준비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부국강병운동은 대중선전(Propaganda)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30만명을 목표로 보수가치 전파운동을 펴며 종교인, 기업인, 법조인, 총학생회, 시민단체 등이 주로 활동하게 된다. ‘재단’을 설립해 출판, 교육, 홍보를 맡는다. 세계 보수정당 단체, 국제민주연합(IDU)과 교류, 협력한다. 이념적 지향은 우파 또는 중도통합”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도 기업의 참여를 필수조건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 우파운동의 성공여부는 기업의 참여와 지원에 달려 있다”는 것.

    문건에서 제시된 보수우파운동은 이념적으로는 현재의 뉴라이트 운동과 유사하다. 그러나 규모가 더 크고 체계화한 것이다. 현재는 전체 사회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미한 우파운동이 한나라당 집권시 주류적 대중운동의 하나로 부각될 가능성도 점쳐지는 대목이다.

    기업과 대중운동의 연대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기존 시민운동 성격과 차별화된다. 현재 주요 시민운동단체들은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주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문건에 따르면 미국에서 특정 다국적기업이 공화당이나 민주당계 학술, 사회단체를 후원하는 일은 일반적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이런 미국적 풍토의 이식을 통해 수권 역량에서 타 정치세력을 지속적으로 압도해 안정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공약과 관련해서는 공립학교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의식주(衣食住)’ 대신 ‘교식주(敎食住)’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건은 미국 민주당이 2000년 ‘21세기의 원칙’ 선언(하이드파크 선언) 때 채택한 ‘세계 수준의 공립학교 제공’ 안(案)에 주목했다. 문건은 미국 민주당 안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세계적 수준의 공립학교 제공

    “미국 민주당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립학교 창설과 지원안은 ‘기회의 균등’이 핵심이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취약 공립학교의 개선, 모든 지역에 차터스쿨(한국의 자립형 고교와 비슷한 개념) 설립, 우수교사 충원, 깨끗한 학습 환경 제공 등이다.”

    한국의 경우 초·중·고교의 학력격차가 심해 거주지에 따른 교육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고 명문고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학군이 부동산 가격상승의 핵심 요인이 됐다. 정부는 고교간 학력격차를 더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자립형 사(공)립고, 특수목적고의 설립을 크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문건은 “모든 지역에 명문 학교가 자유롭게 들어서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저소득층 자녀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는 데 유리하다”고 본 미국 민주당 안을 해법의 하나로 검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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