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중국의 달라진 때깔을 확인하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6-12-13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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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달라진 때깔을 확인하다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책들. ‘베이징 네 멋대로 가라’ ‘20세기 포토 다큐세계사·중국의 세기’ ‘거대 중국을 경영하라’

    지난 여름 11박12일 일정으로 바이칼과 내몽골을 답사하는 팀에 합류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버스와 배로 바이칼 알혼섬까지 갔다가 그 뒤로 이어지는 울란우데, 치타, 자바이칼스크, 만저우리, 하이라얼, 알선동, 치치하얼, 울란호트, 린둥, 츠펑, 선양까지는 침대칸이 있는 기차를 주로 이용했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열차는 울란우데를 출발해 자바이칼스크에서 잠시, 아니 한참 동안 머문다. 러시아 국경을 통과해 중국으로 가기 전 바퀴를 갈아 끼우기 위해서다. 러시아와 중국의 궤도 폭이 맞지 않기 때문에 차량 전체를 들어내 바퀴를 바꾼다. 얼른 보기에 1시간이면 충분할 일이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편의시설 하나 없는 황량한 러시아 역사(驛舍)에 팽개쳐진 여행자들은 모두 한심해하는 표정이다. 이래저래 러시아 여행은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드디어 열차가 중국 국경으로 접어들어 만저우리에서 하이라얼로 가는 중에 사건이 터졌다. 기차는 여전히 러시아 승무원들이 운행하는 러시아제다. 새벽녘에 졸린 눈을 비비며 하차 준비를 하고 있는데, 술 냄새를 폴폴 풍기는 승무원이 침대 시트와 베갯잇 수가 모자란다며 기차표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기차표는 탑승 때 거둬갔다.

    초조했다. 승무원은 돈을 요구했는데, 자그마치 100달러! 일행은 화가 나서 새벽 3시에 하이라얼 역에 그냥 내려버렸다. 관광지가 아닌 하이라얼에서 하차한 승객은 달랑 우리 13명뿐이었다. ‘이러다 무임승차했다고 끌려가는 것 아닐까?’ 하지만 중국 경찰은 우리가 예약한 여행사를 통해 확인하겠다며 더 문제 삼지 않았다. 도착 순간부터 중국에 대한 인상이 확 좋아졌다.

    점점 벌어지는 중-러 격차



    알선동에서 다시 치치하얼로 가는 기차를 타자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러시아 기차와는 차원이 다르네”라고 말했다. 침대 시트와 베갯잇이 무료인데도 정갈했고, 세면대와 화장실은 러시아 열차에 비하면 호텔급이다. 러시아 열차를 타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 화장실 이용이었다. 승무원들이 이유 불문, 수시로 화장실 문을 잠가버려 다급할 때 민망한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한번은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일행 중 누군가 차장에게 10달러를 주고 난 다음에야 줄을 서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우리가 ‘볼일’을 마치자 차장은 다시 화장실 문을 잠갔다.

    중국 기차로 갈아타면서부터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승무원의 표 검사도 매우 정확했다. 일단 승무원이 차표를 거둬가면서 보관증 같은 번호표를 준다. 내릴 때쯤 번호표와 차표를 교환하므로 러시아 기차에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중국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은 “10년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 3~4년 전과 비교해도 많이 달라졌다”며 감탄한다. 러시아·중국 국경을 넘나들다 보니 본의 아니게 두 나라를 비교하게 됐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도 러시아와 중국의 발전 속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내몽골 지역의 오지로만 돌고 돈 우리는, 예상외로 구석구석까지 뻗은 고속도로를 보며 중국의 저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실한 이정표 때문에 고생을 했어도 허허벌판 위로 쭉 뻗은 고속도로 덕분에 16시간의 장거리 버스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중국의 변화 속도를 다시 한 번 실감한 것은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여행 책 ‘베이징 네 멋대로 가라’를 편집하면서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어제의 소식을 담은 여행 책을 들고 가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저자 조창완씨는 베이징에 사는 자신도 베이징을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잠시 거쳐간 경험으로 베이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라고 했다.

    생물처럼 진화하는 베이징

    누가 자신 있게 베이징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재개발에 들어가 도심 외곽의 상당수 후퉁(胡桐·ㅁ자형으로 지어진 중국 전통가옥들로 이루어진 옛 골목)이 철거된 상태다. 이제 베이징 지도가 수정될 일만 남았다. 지하철 노선도 하루가 다르게 증설되고 있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베이징 여행 책을 쓰는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베이징뿐만 아니라 중국 여행정보는 정말 생물과 같다. 어제 가본 데를 오늘 또 가면 그 사이 입장료가 올라 있고, 없던 도로가 하루아침에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 누구라도 생물처럼 진화하는 중국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때깔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20세기 포토 다큐세계사-중국의 세기’(북폴리오)를 펼쳐 보라. 수많은 중국 연구서를 펴낸 예일대학 조너선 D. 스펜서 교수 부부가 집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중국 바깥에서 출판된 적이 없는 300장에 가까운 사진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중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은 야만에서 문명으로 이끈다고 믿었던 ‘중화제국’의 자부심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혁명주의자들의 등장, 내전과 일본의 침략, 대장정과 대기근, 홍군의 승리, 문화대혁명의 고통과 혼란, 4인방의 파괴행위와 몰락, 천안문 광장의 비극까지 어제의 중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사진이 1990년대 중반 젊은 부부의 신혼살림인 것 또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설명은 이렇다. “한때 서양의 ‘조약항’이던 아모이, 즉 샤먼의 연안도시에서 젊은 부부가 배에 결혼선물을 실으면서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출원용 초와 전통 제사음식인 잘 익은 과일 등으로 상을 차려놓았으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로 준비한 2인용 매트리스를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풍요로운 중국인의 삶을 대변하는 사진이다.

    중국은 경험하면 할수록 두려운 존재다. 거대 중국의 겉과 속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는 걸까? 중국 주재 외교관으로 근무한 남상욱 대사가 쓴 ‘거대 중국을 경영하라’(일빛)는 놓쳐서는 안 될 대(對)중국 전략 지침서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중국의 역사와 민족 사상), 중국은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소비·성·사회·복고·이념의 5대 혁명과 집단열·과시열·해외진출열·도박열·향학열의 5대 열), 중국사회의 문제점(천안문 사태 이후 사회적 불만), 중국 공산당은 왜 강한가(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는데 왜 공산당은 건재한가에 대한 물음), 황화론의 등장(세계 속에서 중국의 위상), 중국의 두통거리(타이완 홍콩 티베트 신장 문제), 중국의 전방위 외교(미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 유럽 인도 몽골 등과의 관계), 욱일승천하는 중국 경제(질주하는 고속 경제 성장의 비밀), 분야별 중국시장(전자·통신, 자동차, 교통과 물류, 금융과 주식시장), 경쟁만이 살길인 지방 경제(베이징, 상하이, 광둥성, 서부대개발사업, 동북 노공업기지), 중국 경제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한중 관계까지 무려 12개의 장으로 나누어 오늘의 중국을 샅샅이 훑는다.

    거대 중국을 알자

    결론부터 보고 싶다면 12장 ‘새로운 5천년을 향하여’만 탐독해도 좋겠다. 이 책의 장점은 현실과 문제점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저자는 안보, 경제, 과학기술 측면에서 분석한다. 안보면에서 중국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미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경제면에서도 2004년 이후 대중(對中) 수출액이 대미 수출액을 초과했다지만,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 상품과 경쟁하는 부메랑 효과를 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완제품 중심의 대미수출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과학기술면에서 첨단 고급기술을 누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미국이 과학기술을 나누어주지 않을 경우 우리가 중국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저자는 강한 현실론자다. 문화적으로도 중국에 치우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 문화는 모든 문화가 융화된 범세계 문화라면, 중국 문화는 아직 지역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국 문화는 일본 문화와 달리 포용성과 흡인성이 강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우리가 문화 예술을 계속 창의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중국이 한류를 중국화해 한국에 역수출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지난 여름 이후 막연하게 느껴온 중국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더 두려운 것은 말랑말랑하지 않은 이런 책을 독자가 철저히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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