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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1부

원폭 투하 결심한 트루먼, 원자력 이용 천명한 아이젠하워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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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등장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1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꼬마) 모형.

제2차 세계대전은 핵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무대였다. 인류 역사상 전쟁 규모가 가장 컸던 제2차 세계대전이 원자폭탄 두 발에 의해 끝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인식은 과장된 흐름을 탈 수밖에 없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이 원폭 두 발에 의해 끝났다고 믿는 것 자체가 오해의 시작이었다.

1945년 6월말 니미츠 미 해군 원수가 이끄는 태평양군은 혈투를 벌이며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3개월 간 치러진 이 전투에서 미군은 1만2000여 명이 희생됐는데 일본인은 그보다 10배 많은 12만여 명이 사망했다. 일본인의 희생이 컸던 것은 일본 군인과 지역 주민이 그야말로 결사항전(決死抗戰)했기 때문이다. 군인과 주민이 싸우다 모두 죽자는 옥쇄(玉碎) 전략이었다.

이것이 전쟁을 지휘하는 미군 연합참모본부(지금의 합동참모본부)로서는 충격이었다.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인 오키나와를 점령하는데 이렇게 큰 희생을 치렀으니 일본 본토에 상륙할 때는 얼마나 많은 미군과 일본인이 희생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리면 일본 군인들은 항복하는 대신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며 투신자살을 했다.

저러한 기백이라면 미군은 일본 본토를 장악하더라도 주민 속에 숨어든 반미 게릴라들의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군 연합참모본부는, 맥아더 육군 원수가 이끄는 남서태평양군은 1944년 말이 필리핀에 상륙했지만 야마시타(山下奉文) 일본 육군 중장이 지휘하는 필리핀 주둔 일본군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필리핀에서만 1년 가까이 ‘버벅’거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의 전쟁 의지를 꺾으려면 일본 본토를 장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 본토 상륙에 앞서 규슈(九州) 섬 상륙작전 준비에 들어갔다. 올림픽 작전으로 명명한 규슈 상륙작전에 군과 맥아더군을 중심으로 14개 사단으로 구성된 제6군을 투입하기로 했다(1945년 11월1일 작전 감행예정). 그러나 일본인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해 규슈 전체를 장악하는 데 1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도쿄(東京) 근처로 상륙해 일본 본토를 침공하는 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 상륙작전은 코넷작전으로 명명했는데, 이 작전에는 맥아더 군과 니미츠군을 더하고 독일의 항복으로 여유가 생긴 유럽전선에서 일부 부대를 데펴와 치르기도 했다. 1946년 봄으로 예정한 코넷작전에는 제8군, 제 10군, 제 1군(예비)을 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군을 투입해도 일본의 항복을 받는 데 또 상당한 기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일본군 최고 지휘부인 대본영(大本營)은 ‘1억 옥쇄’를 외치며 바람을 잡았다. 규슈와 일본 본토 장악 후 예상되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일본인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미국은 두 가지 작업을 검토했다.

하나는 일본인의 집단심리 분석인데 이 작업은 심리학자인 베네딕트 여사가 맡아 미국 내 일본인을 상대로 세밀한 심리 조사를 벌였다. 베네딕트는 훗날 일본인의 집단심리를 밝힌 이 연구를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공개했는데,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충격과 공포’를 줘서 악착같은 일본인을 일거에 제압하는 방법의 모색이었다.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은 생존을 건 혈투였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은 총력을 다해 새로운 병기(兵器) 개발에 노력했다. 이 노력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때 핵무기와 미사일, 레이더라고 하는 3대 첨단 병기가 출현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 전쟁에 참여한 각 나라는 3대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중 가장 앞서간 것이 미국이었다. 3대 무기 가운데 가장 관심이 높았던 것은 엄청난 화력을 가진 핵무기였다. 미국은 이를 개발하기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을 가진 사업을 비밀리에 펼쳤다.

맨해튼 프로젝트

1945년 7월16일 미국은 이 프로젝트로 개발한 고농축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을 뉴멕시코 주 앨러머고도에서 실험함으로써 개발 성공을 확인했다. 맥아더군은 필리핀 전투에서, 니미츠군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의 게릴라전을 막 평정했을 때였다. 핵실험 성공을 확인한 미 연합참모본부는 핵무기 사용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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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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