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

한수원 본사 유치놓고 지역내 갈등 불붙다

  • 은윤수 경주타임즈 발행인 gjtimes@hanmail.net

    입력2006-12-15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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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는 홍역을 앓고 있다. 정부 지원금 3000억원을 어떻게 사용할지와 경주로 이전하기로 한 한수원 본사를 경주 내 어느 지역에 둘 것인지를 놓고 지역별·직능별로 나눠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

    2006년 8월30일 경주시 양북면·양남면·감포읍 주민들이 한수원 본사를 양북면 쪽으로 이전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8만 경주시민은 문화재보호법으로 사유재산권 행사를 40년 넘게 제약당하는 고통을 받아왔다. 그로 인해 지역 내수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2005년 정부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건설을 공고했다. 그때부터 경주시내에는 ‘방폐장 유치만이 경주가 살길’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가 넘쳐났다.

    경주 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방폐장 유치를 결의하고 경주시는 유치신청서를 최초로 접수하였다. 이에 시민과 사회단체가 동참해 국책사업 경주유치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구성되었다. 추진단이 읍·면·동별로 조직을 만들어 홍보에 들어간 결과 경주 시민은 주민투표에서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하지만 방폐장만 유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순진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첫째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주민들은 좋은 것 아니냐 하겠지만, 부동산 투기꾼들의 장난으로 가격만 높아졌지 실제 매물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방폐장 특수에 대한 기대로 부동산 가격과 경기가 잠시 꿈틀거렸지만 방폐장 건설 주변지역 주민들의 양극화에 따른 허탈감은 심각하다.

    방폐장 유치 확정 후 경주의 가장 큰 이슈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어디로 올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방폐장 건설 주변지역의 3개 읍·면이 지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대표 김승환·유영태·김수락·임동철)를 구성해 ‘양북면으로 한수원 본사를 옮겨올 것’을 주장하면서 불거져 나왔다.

    “한수원 본사는 방폐장 지역으로 오라”



    2006년 8월30일 대책위는 주민 3000여 명과 함께 월성원자력본부 앞 도로를 점거하고 한수원 본사의 양북면 이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9월1일부터 8일까지는 릴레이 집회를 개최했다. 9월11일에는 경주시청 앞에서 한수원 본사 이전을 방폐장과 분리하려는 민관공동협의회(이하 협의회) 구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대책위는 이중재 한수원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사 이전 후보지로 양북면 이외의 지역은 검토하지 말라. 이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방폐장 유치를 백지화하고 신월성원전 건설과 월성원자력본부의 사용후연료 건식저장고 증설 불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대책위 소속 200여 명은 10월19일 협의회가 주관해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연 ‘시민의견 수렴 및 토론회’에 참여해, “토론회는 한수원 본사가 양북면에 오는 것을 전제로 열어야 한다”며 토론회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대책위측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에 반대하는 경주시내 중심권 시민들이 들고일어섰다. 10월26일 경주도심권 27개 단체와 회원으로 구성된 도심 위기대책 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임창구)는 경주시청 대회의실에서 “한수원 본사 부지는 경주시 미래 100년 대계와 경주 5개 지역권(북경주·남경주·동경주·서경주·도심권)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방폐장 유치에 따르는 특별지원금 3000억원의 사용처도 문제이다. 이 3000억원 중 일부가 경주문화예술회관 등 지역 숙원사업에 집행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방폐장 주변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주변지역 주민들은 이 돈의 집행은 투명해야 하고 방폐장 주변지역의 장기발전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폐장을 유치할 때 단결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이제는 경주 안에서 지역주의가 작동해 서로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경주의 미래가 진정 밝아지겠는가.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

    2006년 10월19일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벌어진 몸싸움. 경주는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이 지역신문이 주최한 시민 대토론회에 참석한 백상승 경주시장은 “한수원을 유치하려는 동경주 지역(양북면 쪽을 지칭) 주민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경주 시가지는 오랫동안 문화재 보호 등에 의한 피해로 경기 침체 등 재산권 침해가 심각한 상태이다. 양북면 주민들은 최선이 아닌 차선책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수원 노조의 반발

    이에 대해 한수원측은 전적으로 경주시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수원은 ‘한수원의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한수원 본사 이전은 특정지역만의 이익이 아닌 경주시 전체의 발전과 관계있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주시민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비효율적이고 지역경제를 마비시키는 집단시위나 집회를 최대한 자제하고 민주적인 논의의 장인 ‘민관공동협의회’에 참여해 주장을 표명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터뷰· 백상승 경주시장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로 고준위 폐기물은 밖으로 나가게 됐다”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

    백상승 경주시장.

    “20∼30년 전에 와서 본 경주나 지금의 경주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수립한 경주 종합개발계획이 그분 돌아가시면서 모두 멈춰버렸습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단식과 삭발까지 감행했던 백상승 경주시장은 방폐장을 유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민투표에서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일대 60여만평에 방폐장을 유치함으로써 경주시는 정부의 특별지원금 3000억원과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의 이전, 양성자가속기 건설 등 부대적인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를 놓고 경주 지역간 갈등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그를 만나 경주의 고민을 들어보았다.

    ▼ 지난해 유치한 방폐장이 역사문화 도시인 경주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역사와 첨단과학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소재인지 궁금합니다.

    “경주는 월성원전 4기가 가동 중이고 신월성 1, 2호기도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가동 중인 월성원전 4기는 중수로라 찌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 4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양이 전국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 양의 절반이 넘는 53%입니다. 경주가 유치한 것은 중저준위 방폐장이니, 방폐장이 건설되면 거꾸로 월성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은 경주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원전 주변은 공원이 되어 있습니다. 방폐장 일대도 공원으로 조성됩니다. 여기에 한수원 본사가 2010년까지 경주로 이전해, 수력·원자력의 본거지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주변에 있는 천년고찰 기림사와 감은사지, 문무왕 수중릉 등 역사문화와 연계할 수 있어, 경주의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 봅니다.”

    ▼ 정부 특별지원금 3000억원은 어떻게 활용할 것입니까.

    “경주는 전국의 시(市) 가운데 경지 면적이 가장 넓은 시입니다. 따라서 농업쪽에 경쟁력을 갖추도록 근대화 시설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경주는 동해안을 따라 33km의 수려한 해안이 있으므로 어업에도 지원해야 합니다.

    다만 3000억원을 한 번에 다 쓸 것인지, 아니면 기금화해서 그 수익금을 연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민과 시의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해 결정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지원해달라면 한꺼번에 다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금화하면 원금은 그대로 남겨놓고 수익사업을 해서 얻은 이자를 오랫동안 쓸 수 있습니다.”

    ▼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로 지역간 갈등이 심한데요, 경주시의 방침은 무엇입니까?

    “한수원을 방폐장 인근지역으로 이전하자는 것이 경주시의 방침입니다. 하지만 최종결정권을 가진 한수원이 노조의 반대에 직면해 아직 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수원은 방폐장 인근지역 3곳과 또 다른 지역 5곳을 한수원 본사 이전부지로 선정해 평가 용역을 맡겼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을 선정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주시도 지역간 갈등 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주지역 반핵단체들의 주장

    “핵 안은 경주, 지역이기주의로 끓어오른다”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

    2005년 11월2일 치러진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행사.

    방폐장 선정은 20여 년 동안 표류해왔다. 방폐장 선정이 표류한 데는 반핵단체가 큰 구실을 했다.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의 반핵단체는 어떤 의견일까.

    경주핵폐기장반대시민대책위원회 이재근 사무국장(현 경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세계문화유산과 활성단층 지진대인 경주에 핵폐기물 영구 처분장을 용납할 수 없다”며 “경주시와 경주시의회는 28만 경주시민을 분열시키고, 시민의 혈세 12억원을 낭비하면서까지 핵폐기장을 유치한 것은 명백한 오판”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대책위 김상왕 상임대표도 “경주시와 경주시의회는 국책사업경주유치추진단에만 12억원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핵반대시민대책위에도 똑같이 12억원을 지원했어야 공정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공고를 하면서 산자부 장관은 옛날과는 달리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민주성과 투명성을 정면으로 뒤집었고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예산을 지원해 방폐장유치 홍보예산으로 편성하고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을 저지른 만행이다”고 말했다.

    김윤근 전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위원장은 “우리가 결정한 일이 우리에게도 덕이 되어야 하지만, 훗날 후손들에게도 덕이 되어야 한다”며 “역사도시인 경주는 역사도시다운 사업, 즉 경주와 궁합이 맞는 국책사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재근 경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방폐장 유치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1000년을 이어온 경주의 평온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지 않으냐”며 “특별지원금 3000억원,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는 모두 이 지역의 민심을 갈라놓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 경주는 무시무시한 핵을 안고 지역간 이기심으로 가득 찬 곳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한수원대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수원 노조측이 ‘직원들의 처지에서 본사 이전 후보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수원 직원들은 자녀 교육이 좀더 용이한 곳에 본사가 들어갈 것을 바라고 있다. 방폐장이 들어설 양북면보다는 경주 시내로 본사가 옮겨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대책위는 한수원과 경주시가 제안한 민관공동협의회 참가를 거부해 지역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은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법정시한인 2010년 10월31일보다 1년7개월가량 늦어진, 2012년 5월31일이 되어야 한수원 본사가 경주 지역 이전을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혀,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한수원은 2004년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2005년 제정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 특별법’ 그리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내년 1월1일까지 이전 후보지 선정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이전 지역 결정을 경주시에 맡긴 한수원은 최근 경주시에 ▲기업활동이 자유로운 광역교통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토지 매입이 용이하고 추후 개발할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용도 규제가 적은 곳이라야 한다 ▲도시 인프라 활용이 용이해야 한다 ▲경주의 도시 성장축 및 도시기본계획과 부합해야 한다 ▲역사문화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경관이 우수하고 재해 가능성이 적어야 한다는 7가지를 입지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경주 지역 안에서 빚어진 갈등을 보건대 과연 내년 1월 초까지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가 확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주는 다른 곳보다 매장 문화재가 많다. 따라서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를 확정했더라도, 이 후보지에서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면 이전은 용이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측은 본사 부지로 평지일 경우 5만여 평, 구릉지라면 10만여 평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두산중공업 원자력 분야의 본사를 옮겨오려면 5만6000여 평과 한전기공, 코센, 한전KDN, 한국정수의 경주 사무실을 위해 12만여 평이 더 필요한 형편이다. 이렇게 넓은 땅에 매장 문화재가 묻혀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8군데 후보지 용역 평가

    한수원은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로 경주시와 주민들이 제안한 세 지역 외에 추가로 다섯 곳을 더해 평가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평가 결과에 따라 후보지 순위가 결정되면 경주시와 한수원은 공동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협의에 들어간다. 이로써 부지가 확정되면 이곳은 사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이어 공영개발 원칙에 따라 택지를 조성하는데,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 지역은 일정기간 개발행위 허가가 제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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