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체르노빌 사고 과장보도가 몰고온 세계적 인공유산 붐은 ‘맹신의 과학 구축(驅逐)’ 사례

방사선의 효과적 이용 막는 ‘심리 장벽’이 문제

  • 김종순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연구원장 kcsoon@khnp.co.kr

    입력2006-12-15 1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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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선량 방사선을 쐬면 위험할 수 있지만 저선량 방사선을 쬐어주면 오히려 생명활동이 활발해진다는 호메시스 이론도 제시되고 있다. 방사선은 위험하다는 맹목적인 선입관이 방사선의 효과적인 활용을 막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과장보도가 몰고온 세계적 인공유산 붐은 ‘맹신의 과학 구축(驅逐)’ 사례

    1989년 과기처 의학조사단이 무뇌아를 유산한 산모의 남편이 작업했던 영광원전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서울대 조사 결과 무뇌아 유산은 방사선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몸은 수많은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 수많은 분자로 이루어진 세포,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조직과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안정된 상태의 원자가 분자를 이루고 그것이 결국 안정된 개체를 만든다.

    그러나 원자핵 내부의 양자와 중성자의 부조화는 이런 안정 상태를 깨뜨릴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내부의 에너지 균형을 이루는 상태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알파 입자·베타 입자·엑스선 및 감마선 같은 방사선이 나온다. 이런 방사선들은 대상물질의 이온 결합을 끊을 수 있어 이온화 방사선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물질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불안정 상태의 원소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안정 상태를 지향하므로, 시간이 갈수록 불안정 상태보다는 안정 상태의 비율이 높아진다. 탄소를 이용해서 연대측정을 하는 것도 불안정 상태와 안정 상태의 탄소 비율을 측정해 시간의 흐름을 추정할 수 있는 데 착안했다.

    음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음식을 통해 누구나 일정량의 불안정 탄소를 섭취하고, 음용수 등을 통해 일정량의 불안정 나트륨을 섭취하는데, 그로 인해 우리 몸은 방사선에 노출된다. 여기에 공기 중에 소량으로 존재하는 라돈과 우주로부터 오는 방사선 등이 더해져 우리나라에서 살면 연간 2.4mSv(밀리시버트)의 자연 방사선을 쐬게 된다. 이는 우리가 방사선과 더불어 살아왔음을 의미하는데, 혹자는 자연방사선에 때문에 인류가 진화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방사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요즘도 필자는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건강진단시 방사선 촬영을 한 여성들로부터 자주 문의를 받는다. 기형아 출산에 대한 우려가 대부분으로, “임신중절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가 꽤 진행되어 있다. 방사선 조사량(照射量)이 50mGy(밀리그레이) 이하라면 어떤 경우에도 기형 사례가 보고된 바도 없고 예상되지도 않는다.

    진단 목적의 흉부 방사선 촬영시 쐬는 방사선은 많아야 0.1 mGy 정도이므로 방사선에 의해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형은 일반적으로 출생아 100명당 3명 정도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므로, 염려가 된다면-특히 35세 이상의 임산부라면-기형아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가 모범답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사선 하면 암과 기형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한 선입관이 원자력과 방사선의 평화적 이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방사선에 대한 우려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맞은 피해자와 방사선 치료를 받은 고선량 방사선 노출자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된 경향이 강하다. 고선량의 방사선이 암을 유발하고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저선량 방사선에 관한 부분이다. 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에서부터 “모든 면에서 문제다”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방사선과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 특히 암과 기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아울러 올해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주년인 만큼 체르노빌 사고가 건강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역치 이하선 질병 일으키지 않아

    방사선과 관련한 질병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방사선에 의한 ‘결정적 효과’와 ‘확률적 효과’부터 이해해야 한다. 결정적 효과란 일정 수준(역치·생물의 감각에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최소한의 자극 강도) 이상의 방사선을 쐬어야만 특정한 이상이나 질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몸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백혈구는 방사선에 적어도 0.5Gy(그레이·방사선을 흡수한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 정도 노출돼야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피부는 5Gy 이상의 선량을 받아야 탈모나 홍반(발갛게 변함) 증세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결정적 효과를 설명하는 사례다. 결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져 있어, 방사선 사고시 피폭선량 수준을 파악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확률적 효과란 염색체 관련 이상으로 비롯되는 ‘암’과 ‘유전적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미미한 선량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뜻한다.

    확률적 효과란 한마디로 0.2Gy 이하의 낮은 방사선량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 영향에 대한 방사선 방호 목적상의 가설이다. 낮은 방사선량이 얼마만큼 생물학적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하는 것이므로 실제 위험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낮은 방사선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는 ‘낮은 방사선은 오히려 신체에 유익할 수 있다’는 ‘호메시스(Hormesis·‘자극하다’는 뜻의 그리스어인 Hormaein에서 유래한 말) 이론’부터 일정 수준 이하에서는 영향이 없다는 ‘역치(탋値) 이론’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 방사선이 암과 유전적 효과에 끼치는 영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방사선과 관련한 여타 이상이나 질병은 대부분 역치를 갖고 있음이 분명해 더는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낮은 선량의 방사선이 암이나 유전적 효과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역학적 연구와 생물학적 기전을 밝혀보려는 연구가 펼쳐지고 있다.

    방사선과 기형 연관성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 기형에 관한 일반적인 사실부터 살펴보자. 기형은 신체구조의 이상뿐만 아니라 기능 이상까지를 포함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신생아 100명당 15명 정도(3명은 주요 기형, 12명은 사소한 기형)에서 발생한다. 기형이 일어나는 원인은 유전자 이상(20%), 태아 감염(3%), 산모의 질환(4%), 약물(1%), 다인자성 즉 원인불명(72%) 등이다.

    낮은 방사선과 기형 문제

    우리나라는 선천성 기형이나 장애에 대한 국가 모니터링 체계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다. 선천성 이상 발생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긴 하나, 의료보험자료를 이용한 보건사회연구원과 다기관 공동연구 결과 2~3%의 기형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일부 대학기관에서는 5~6%까지 보고하는데, 이 차이는 선천성 기형의 다양함과 진단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선천성 기형에 대한 감시체계가 작동되고 있는데, 이 국가들의 선천성 기형 발생률은 2~3%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기형 발생률은 미국, 유럽 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방사선이 태아에게 끼치는 가장 큰 영향은 태아의 사망이다. 그 다음으로 기형과 발육 이상, 정신발달 지체 같은 ‘결정적 영향’을 나열할 수 있겠다. 사망은 수정란이 착상하기 전이나 착상한 직후, 다시 말해 세포 수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방사선에 의해 일부 세포가 사멸해 결과적으로 생존하지 못하고 유산되는 효과를 말한다. 동물 실험 결과 수정란에 0.1Gy 정도의 선량을 쬐어주면 유산이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태아는 수정 2~8주 사이에 기관이 형성되는데, 이때 기형을 유발하는 방사선의 역치 선량은 0.1Gy 정도로 판단되고 있다. 0.1Gy는 자연 방사선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방사선량이 워낙 적어, 과연 이 방사선 때문에 기형이 되는 것인지 특성화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어쨌든 방사선에 의한 기형은 자연적인 기형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임신 후기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영향은 기형보다는 발육이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태아 때 원폭 피해를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집단을 비교한 조사에선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임신 후기의 방사선 피폭으로 중대한 발육이상이 초래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선과 관련해서 기형이 문제가 된 첫 경우는 전남 영광에서 발생했다. 1989년 8월 영광원전 인근 주민이 발전소에서 일시 근무하다 방사선을 과다하게 쐬어 무뇌아와 기형아를 출산했다는 주장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이다. 당시 인도주의실천협의회 광주전남지회 등 지역 보건의료단체 등이 조사에 나섰는데 그 결과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기형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후 조사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이를 철회하였다.

    1990년 피폭 주장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서울대 병원이 정밀검진을 실시했다. 그결과 무뇌아를 유산한 것은 방사선과 무관하고, 출산한 기형아는 경증의 뇌성마비로 판명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후 인공유산 급증

    이 사건을 계기로 동력자원부와 한전은 서울대 의대 주관으로 원전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과학기술부는 중장기 연구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기구와 협력해 암을 중심으로 한 다국가간 공동 연구를 펼치게 되었다.

    1986년 4월26일 구소련의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원자력 안전과 관련한 실험을 하는 도중 원자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후 노출된 방사선으로 인해 암과 기형 발생의 증가 등 많은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유엔은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한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100명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된 ‘체르노빌 포럼’을 운영해 수차례에 걸친 논의를 정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최근 세계보건기구에서 출판한 이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체르노빌 사고에 의한 방사선 노출로 증가세를 보이는 질환은 소아의 갑상선암, 고선량에 노출된 정화작업자의 백혈병, 그리고 여성 정화작업자에서 나타나는 폐경 전 유방암 정도이다. 기형 등 그 외의 질환은 아직 발생 증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들이 겪는 사회 심리적 갈등이다. 정화작업자와 오염지역 주민들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건강관리 등 사회 보장적 접근이 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한 사망자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체르노빌 보고서는 비교적 잘 정리된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다.

    ‘15mSv 이상의 비교적 고선량에 노출된 60만명 가운데 자연적으로 사망하는 비율을 뺀 초과 사망 추정자는 약 4000명이었다. 그 이하인 저선량 노출 주민 680만명 가운데 초과 사망 추정자는 5000명 정도다.’

    그런데 저선량 노출 주민이 쐰 평균 방사선량은 약 7mSv로, 매년 우리가 자연적으로 쐬는 방사선량인 2.4mSv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러한 노출은 의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양의 방사선을 쐬었다고 하여 실제로 초과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보는 것은 부정확한 해석일 수 있다.

    그린피스는 최근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9만명 이상에게서 암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벨로루시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쬐는 저선량 방사선을 적용해서 추산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는 앞에서 설명한 ‘확률적 효과’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선량 방사선의 영향이 강할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상존하고 있다. 저선량 방사선이 인체에 유익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고 있는 시점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의한 암 사망에 대해서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추적검사를 지켜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유엔 보고서도 이에 대해서는 똑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자연 방사선량 수준에 노출된 유럽지역에서는 인공유산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니까 그 피해를 당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인공유산을 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가 언론에 의해 크게 보도되자 인공유산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은 과장보도가 낳은 비극이다. 사실을 근거로 한 정확한 보도와 과학적 마인드의 구축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인류는 의료와 연구 외에도 여러 산업에서 방사선을 유용하게 이용해왔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높은 추정 결과를 두고 방사선에 대한 염려를 키우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방사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은데, 이를 부인하며 선입관을 토대로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저선량 방사선 연구의 필요성

    막연한 불안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정교한 연구를 통해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에 대한 과학적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 일본 등은 1990년대 말부터 저선량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을 규명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네이처’와 ‘사이언스’ 같은 유명 잡지에 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과장보도가 몰고온 세계적 인공유산 붐은 ‘맹신의 과학 구축(驅逐)’ 사례
    김종순

    1953년 경남 함양 출생

    서울대 의대, 동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국립의료원 핵의학 과장 한일병원 핵의학과장, 한전 방사선보건연구센터장

    現 대한방사성생명과학회 부회장, 2006년 세계핵의학회 사무총장


    중요한 것은 위험한 방사선과 위험하지 않은 방사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대중에게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저선량 방사선 조사시설을 구축하고, 저선량 연구 네트워크 구성하는 등 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해왔다. 이 연구는 올해 말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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