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품종 개량, 신상품 생산에 멸균까지 하는 ‘팔색조’

  • 한필수 한국원자력연구소 정읍분소 방사선연구원장 pshahn@kaeri.re.kr

    입력2006-12-15 19: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방사선은 식품의 장기 보관, 새로운 종자의 개발, 기능성 식품 개발 등 실생활과 관련된 분야뿐만 아니라 의약품 제조, 타이어 제조 등 산업 분야에도 널리 활용된다. 미래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新성장 동력인 방사선산업을 ‘위험하다’는 막연하고 그릇된 인식 때문에 방치할 것인가.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전해준 최고의 선물, 불! 프로메테우스의 엄청난 희생으로 인류는 불을 선물 받고 문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날로 먹지 않고 익혀 먹는 화식(火食)을 함으로써 인간 생존을 위협했던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들판의 맹수들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불의 이용은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인간을 지구상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게 만든 요소였다.

    금세기 최고의 선물 ‘방사선’

    그 후 인류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는다. 바로 제2의 불이라 일컫는 ‘전기’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Thales of Miletus·기원전 640~546년)에 의해 전기현상이 발견됐다.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1800년대,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 등에 의해 전기가 산업과 실생활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산업사회라는 눈부신 문명사회로 진입했다. 그런데 1900년대 중반 인류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게 된다. 바로 제3의 불 ‘원자력’이다.

    앞의 불과 전기가 인류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왔다면, 제3의 불은 ‘악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1942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이탈리아 물리학자 페르미가 세계 최초로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실험에 성공한 후 원자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다.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유명한 ‘맨해튼 계획’을 추진했다.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개발하자는 것이 맨해튼 계획의 골자였다. 마침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미국은 1945년 일본에 두 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그 결과 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인류는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재앙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 1953년 12월8일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을 제창한 후 원자력은 여러 방면에서 인류 복지 증진을 위하여 활용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핵분열/핵융합 때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인 열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사선’이 신이 인류에게 준 금세기 최고의 선물, 즉 ‘마법의 불’로 불리고 있다. 지난 20세기가 핵분열과 핵융합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시대라 할 것이다.

    “여러분은 ‘방사선’ 하면 맨 먼저 어떤 생각을 떠올리나요? 원자폭탄? 방사능 오염? 두려움? 재앙?”

    필자가 근무하는 방사선연구원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방문객을 상대로 방사선에 대해 설명해주고 연구실험시설을 안내하다보면, 십중팔구 이런 질문을 받는다.

    “방사선은 매우 위험하죠?”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나요?”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방사선을 쬐지 않은 닭고기(맨 왼쪽)와 방사선을 조사한 닭고기(오른쪽 3개)의 한 달 후 상태. 방사선을 쪼인 닭고기만 썩지 않았다.

    이런 질문은 일반인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모 대학교 교수들이 연구원을 방문하여 연구용 방사선 조사(照射)시설을 안내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교수 대부분 조사시설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렸고 들어가서도 금방 나가려고 하는 눈치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방사능에 오염될까 두려워서’ 그랬단다.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교수들도 방사선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니 일반인이야 말해 무엇하랴.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방사선을 쪼여 돌연변이로 만들어낸 분재용 무궁화 ‘꼬마’.

    방사선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야기된 참혹한 광경과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발생한 인명 피해와 환경파괴의 재앙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일부 비전문가 집단에 의해 원자력의 어두운 면만 지나치게 과장돼 확대·재상산됨으로써, 일반인은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게 되었다.

    사람은 생존 본능을 갖고 있으므로,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정보가 뇌리에 입력되면 옳고 그른 것을 따져보기에 앞서 회피하려는 특성이 있다. 원자력과 방사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견고한 벽처럼 좀체 깨지지 않는 결과를 볼 때마다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자괴심이 밀려온다.

    방사선과 방사능은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의미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방사선은 에너지를 갖는 입자의 흐름이나 파동을 가리킨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나 맛도 없다. 방사선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원자(原子)’로부터 나온다.

    방사선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

    원자를 구성하는 양자·중성자·전자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방사능’이라고 한다. 방사능을 가진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일종의 에너지를 방사선이라고 한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방사선은 불안정한 원소가 안정된 원소로 되면서 방출하는 전자파인데, 이 전자파는 물질을 꿰뚫고 지나가는 힘(투과력)을 가진 광선과 같다. 이러한 방사선에는 엑스선,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등이 있는데, 종류에 따라 투과력이 다르다.

    사람들은 방사선 하면 먼저 두려움부터 갖는데, 방사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인간에 의해 새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방사선은 지구의 생성과 함께 존재해왔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공기나 물같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필수요건 가운데 하나인 태양과 공기, 땅뿐만 아니라 음식물에서도 방사선이 방출된다.

    방사선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방사선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할 때는 시버트(Sievert·Sv)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시버트는 방사선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 방사선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정한 생물학적 효과만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1밀리시버트(mSv)는 보통 사람들이 1년간 쐴 수 있는 방사선량의 법적 허용치로, 이 정도는 한꺼번에 쐬어도 아무 영향이 없다. 브라질의 가리바리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1년 동안에 10mSv의 자연 방사선을 쐬지만 모두 건강히 생활한다.

    자연 방사선과 달리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방사선을 ‘인공 방사선’이라 한다. 인공 방사선에는 병원의 진단용 X선, TV나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 공항 검색대에서 볼 수 있는 보안검색장치, 암 치료장치,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방사선 등이 있다.

    중금속은 인체에 들어오면 축적되지만, 인체에 접촉한 방사선은 축적되지 않고 통과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량의 방사선(자연 방사선)은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사선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시에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면역체계가 파괴될 수 있다.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전기와 불도 잘못 다루면 인간에게 피해를 주듯이, 방사선도 잘못 다루면 위험해질 수 있다.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폐수찌꺼기와 불가사리를 이용해 만든 천연유기질 비료.

    따라서 방사선 또한 전기나 불처럼 어떠한 안전 요건을 확보해놓고 이용하느냐가 중요하지, 방사선 자체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뢴트겐의 행운, 레나트르의 불운

    20세기를 과학의 시대로 분류할 때, 과학사(科學史) 학자들은 1895년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1895년은 독일의 과학자 뢴트겐이 우연히 X-선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류의 광선을 발견한 해이다. 이 광선은 세계 과학사와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뢴트겐 자신도 X-선 발견으로 제1회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쥐었다.

    하지만 X-선은 뢴트겐이 창조적으로 발견했다고 하기 힘들다. X-선은 뢴트겐 이전에 여러 사람에 의해서 의도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져 실험되었다. 18세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정전기 발생 장치에서 나오는 스파크에서도 이미 X-선이 발생했다.

    레나르트를 비롯한 독일의 과학자들은 전기를 진공 상태에서 방전시켰을 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에 대해서 연구했다. 레나르트는 음극선이 유리벽을 통과하지 못하나 얇은 알루미늄 판은 통과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유리벽 일부에 알루미늄 판을 넣어 ‘크룩스관(管)’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는 음극선이 알루미늄 판을 통과해서 공기 중으로 나가지만 극히 짧은 거리에서만 검출되는 현상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음극선을 빛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 넘어갔기에 X-선 발견 기회를 놓쳤다.

    레나르트의 발견이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레나르트는 나중에 이 중대한 발견을 놓친 것에 대해 땅을 치며 애석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뢴트겐이 새로운 광선을 발견한 이듬해 프랑스의 베크렐이 최초로 우라늄에서 방사선을 발견했다. 그리고 1897년에는 영국의 J. J. 톰슨이 음극선의 전하량과 질량비를 측정하는 데 성공해, 1899년경에는 음극선의 입자성이 강력히 부각되었다.

    음극선의 입자성 발견은 20세기에 들어 상대성 이론이 출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과학계에 X-선의 본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빛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띤다는 새로운 인식이 나타나게 된다.

    방사선의 발견은 핵변환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이어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어 인류는 핵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다가왔지만 방사선은 인류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방사선은 특이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사선은 물체를 투과하거나 이온화하는 능력이 있으며 살균력도 갖고 있다. 물체를 투과하는 과정에서 물질이 본래 갖고 있는 특성을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방사선의 특성에 주목해 1950년대부터 감마선, X-선, 전자선을 이용한 미생물 살균과 돼지고기의 선모충 제거를 목적으로 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 결과 방사선 이용기술은 일상생활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삶의 질을 향상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코발트 -60의 마력

    방사선 이용기술은 공업, 농업, 환경, 식품생명, 우주과학 등 여러 산업에 걸쳐 다양하게 적용된다. 방사선 기술은 첨단 의료기술, 우주기술, 국방기술,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정보기술, 환경기술 등과 연계되어 복합·융합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산업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사선의 종류 가운데 하나가 감마선이다. 감마선은 주로 코발트 60(Co-60)이라는 동위원소를 사용해 발생시킨다. 코발트 60은 사용되지 않을 때 수조(水槽)에 담아놓는다. 이유는 이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물을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동위원소가 발산하는 빛깔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가을하늘 빛처럼 매우 아름답다. 우리말로는 ‘밝은 감색(紺色)’이라고 하는 코발트색을 띤다. 아름다운 코발트색을 뿜어내는 방사선의 ‘팔색조 마법’의 세계를 여행해보기로 하자.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방사선 조사로 내열성을 강화한 피복전선(왼쪽). 방사선 조사로 내마모성을 강화한 인공 고관절(가운데). 방사선 조사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방사선은 어떤 물체나 식품에 조사(照射)하는 형태로 활용된다. 웬 조사냐고? ‘어떤 대상을 살피고 검사한다’는 뜻이 아니고 ‘방사선을 물체에 쬐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자로는 調査가 아니라 照射로 표기한다.

    방사선은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불청객인 식중독을 막는 일을 한다. 냉장고도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끓여 먹을 수도 없을 때 방사선을 이용한다.

    식품의 안전성, 저장성 제공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O-157균 등은 방사선 한방에 완전 멸균된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지만 방사선은 식품 고유의 영양가나 맛, 느낌, 냄새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식품에 대한 방사선 조사에 대해 일반 국민과 일부 소비자단체는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26개 품목에 대해서만 방사선 조사를 허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식품에 대한 방사선 조사가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52개국에서 230여 품목에 대해 방사선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방사선을 쬔 식품을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안전성에 대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농업기구(FAO), 국제식품안전센터(NCFS),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식품의약국(FDA) 등에서 이미 안전성을 입증한 바 있다.

    미국은 2004년부터 학교 단체급식에 공급되는 햄버거용 고기에 대해 방사선 조사를 하도록 허용했다. 아래 사진은 닭고기를 방사선을 조사하지 않았을 때(맨 왼쪽)와 조사하고(오른쪽 3개 사진) 1개월 후 찍은 것이다. 방사선을 조사하지 않은 닭고기는 심하게 부패했지만, 조사한 닭고기는 처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식품에 대한 방사선 조사 기술은 감자나 마늘 양파처럼 뿌리를 먹는 근채류(根菜類) 농산물과 밤 등 과일의 발아(發芽)와 발근(發根·뿌리내림)을 억제하는 데도 사용된다. 그리고 나무에서 따 과일이 익는 숙도(熟度)를 지연해 장기 보존케 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

    인구 증가는 불가피하게 식량부족을 가져온다. 식량자원의 확보는 한 국가의 문제를 넘어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지금은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로 심술을 부리지만, 식량이 무기가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농기법의 과학화와 품종 개량, 농지면적 확대 등 직접적인 수단으로 늘릴 수 있는 생산량은 연평균 2.4%에 불과하다. 문제는 수확 후에 일어나는데 식량을 수송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썩거나 부패하여 손실되는 비율이 종류에 따라 10%에서 많게는 50%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방사선을 조사하면 장기간 부패하지 않고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어 30% 정도의 식량 증산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분재용 무궁화 만든 방사선 산업

    방사선은 종자 개량, 고부가가치의 신품종 개발 등 새로운 유전자원 확보에도 이용된다. 재래품종에 방사선을 조사해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하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고 추위에도 잘 적응하는 우수한 종자를 만들 수 있다.

    분재를 키우는 사람 가운데는 드물지만 무궁화를 키우는 이가 있다. 나라꽃인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이 끼고 수고(樹高·나무의 키)가 커서 가정에서 키우기 힘들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은 분재로 키울 수 있는 무궁화를 개발해 일반에 보급할 예정으로 있다.

    요즘 ‘녹원찰벼’라는 이름으로 푸른색을 띠는 쌀이 나오고 있다. 이 쌀은 비타민 B1, B2, B6와 칼슘, 마그네슘 등 무기성분과 단백질 함량이 풍부해 영양적 가치가 높다. 항산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안토시아닌 색소도 함유돼 있는데, 이 쌀도 방사선 조사에 의한 돌연변이로 생산한 것이다.

    방사선은 환경을 보존하고 정화하는 데도 이용된다. 방사선은 살균력뿐만 아니라 산화/환원력도 갖고 있어, 독성물질을 무독화(無毒化)할 수 있다. 오폐수를 정화하거나 토양과 지하수의 정화, 대기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하고 재활용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국내의 대표적인 폐수배출산업체인 대구 염색공단에서는 전자선을 이용한 폐수처리시설을 가동해 하루 1만t의 폐수를 정화하고 있다. 폐수 처리를 하고 나면 냄새가 고약한 ‘슬러지’라고 하는 찌꺼기가 나온다. 이 폐수찌꺼기와 바다 어장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불가사리 그리고 방사선을 이용해 천연 유기질 비료를 만들 수 있다.

    폐수찌꺼기에 전자선을 조사하면 각종 세균이 멸균된다. 멸균된 폐수찌꺼기에 불가사리 분말을 혼합하면 천연 유기질 비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연유기질 비료의 사용으로 농가의 소득은 증대하고 무분별한 화학비료 사용과 축산폐수 탓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우리의 토양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방사선 조사기술은 기능성 화장품과 기능성 식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요즘 웰빙(참살이) 붐을 타고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능성 식품인 녹차 케이크, 녹차비누, 녹차화장품 등은 사실 기능성 재료의 함량이 매우 미미하다. 녹차 재료를 다른 성분과 혼합하는 것이 까다로워 제품생산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녹차 추출물의 색깔은 검은 색을 띤다. 녹차가 아무리 좋아도 시커먼 케이크, 시커먼 화장품은 보기에 좋지 않아 소비자는 그런 제품에 손도 대지 않을 것이다.

    천연 기능성 신소재 개발에도 일조

    그런데 방사선을 쪼이면 마법처럼 하얀 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여기에 나노기술을 접목하면, 재료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기술을 건강식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각종 천연재료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해 암 환자를 위한 면역·조혈(造血) 증진 식품, 항암 및 노화방지를 위한 기술 및 제품도 개발할 수 있다.

    방사선은 자동차와 반도체, 항공우주산업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신소재에도 사용된다. 비행기나 우주선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 대기와 마찰해 고열이 발생한다. 항공기와 우주선의 동체가 특수 처리돼 있지 않다면 높은 마찰열에 녹아버릴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방사선을 조사해 내열성(耐熱性)이 강화된 특수재료를 사용한다.

    몇 년 전 TV방송의 CF에 나온 모 자동차타이어 회사 제품 이름이 ‘래디얼 타이어’였다. ‘래디얼(radial)’은 방사선을 조사했다는 의미이다. 방사선을 조사하면 타이어의 내(耐)마모성이 강화돼 수명이 오래간다. 내마모성을 이용해 만든 것 가운데는 인공 고관절(股關節)도 있다.

    방사선은 골퍼들에게도 희소식을 전해준다. 골프공에 방사선을 조사하면 분자구조에 변화가 일어나 탄성이 좋아지는데 방사선을 조사한 골프공은 일반 골프공에 비해 비거리가 10% 정도 향상된다.

    방사선은 각종 의료기기와 장비의 소독에도 이용된다. 병원은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몰려드는 곳이다. 따라서 각종 병원균이 병원 내 공기와 수술장비, 기구 등에 존재할 수 있다. 병원에 치료하러 갔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 오는 것은 이 때문인데, 병원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방사선 조사로 각종 의료기기, 장비를 소독한다.

    방사선은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도구를 소독하는 데도 쓰인다. 각종 식품 포장지와 식품 용기의 멸균 소독에도 사용될 수 있다. 세슘이나 이리듐과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치료하고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방사선은 건물의 노후화 정도를 측정하고, 화학공장의 생산·공급라인의 누수지점 확인, 하수관의 누수지점 파악을 위한 비파괴검사에도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멸균처리, 보석이나 유리 착색에도 활용된다.

    첨단산업도 방사선 없인 발전 불가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소화기능과 면역기능이 약하므로 특수하게 조리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방사선은 환자들을 위한 고영양 멸균 유동식품을 만드는 데도 이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방사선은 군인들이 섭취하는 전투식량 제조에도 사용된다. 전투식량은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야 하고 조리 과정이 간단해야 하는데 이 식품도 방사선 조사로 만들 수 있다.

    공상영화나 만화를 보면 우주인이 알약으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우주인은 특수하게 제조되고 포장된 음식을 먹는다. 지구에서와 달리 우주에서는, 극미량의 세균 오염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에서 섭취하는 식품은 완전 멸균 상태여야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우주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은 200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을 우주선에 탑승시킬 계획인데 이때 우리가 개발한 우주김치를 함께 보내, 우리 식품의 안전성을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방사선은 우리 생활과 산업 전반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방사선산업의 세계 시장규모는 1995년 1500억달러에서 2010년 1만1000억달러로 약 7.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 EU 등 선진국과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방사선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1970~80년대 선진국에서는 정부 주도의 투자가 많았으나 지금은 민간 주도로 연구개발과 산업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국민총생산(GDP)의 1.4%인 약 1430억달러, 일본은 1.2%인 약 624억달러를 방사선산업에서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방사선산업의 기반 조성단계에 있다. 2002년 방사선을 이용한 총 매출액은 약 5억달러로 GDP 대비 0.1%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속히 성장하고 있어 2020년에는 약 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원조로 1959년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Ⅱ를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도입하면서 방사선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방사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전인 1973년, 정부 산하기관인 방사선농학연구소와 방사선의학연구소를 한국원자력연구소에 통합하면서 소강상태를 맞게 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용 감마선 조사시설을 건설하고 1990년대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만들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렇지만 방사선 이용연구에 대한 개발과 투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범정부적인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정부는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 진흥법’을 제정하고 방사선 전문연구기관을 설립해 방사선 연구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선진국과의 기술수준 격차를 좁히고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는 방사선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방사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방사선 이용기술로 삶의 질 높인다

    마법의 빛 ‘방사선’의 효용
    한필수

    1953년 서울 출생

    연세대 화학공학과, 미국 노스 웨스턴대 대학원 졸업. 공학박사(화학공학)

    노스웨스턴대 계약교수, 한국원자력연구소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장 역임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관련 논문 다수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 요구는 이제 금전적·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어떻게 하면 더욱 깨끗한 환경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방사선 이용기술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방사선 기술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과 지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