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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대신 ‘비전’ 들고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민주당과 손잡을 수는 있으나 DJ와는 말 안 돼” “위기에 강한 ‘모성 리더십’이 부정부패 막고 실용정치”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수첩’ 대신 ‘비전’ 들고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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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페리는 선박의 갑판에 선로를 갖춰 화물을 실은 열차 5~10량을 동시에 선적한 뒤, 도착지에서 곧바로 현지 철도와 연결하는 화물운반 수단. 중국은 열차 페리를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산둥(山東)성 옌타이 항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을 연결하는 노선에서 시험 운항 중이다.

▼ 박 전 대표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공계 출신이라 말이 잘 통했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중국은 주석을 비롯해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 총리 부총리 등 최고위직을 맡은 상무위원단 9명 전원이 이공계 출신인데요.

“이공계 인사들이 지도층에 많이 진출해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이공계 출신이 상층부에 많으면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부패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공계 출신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훨씬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어려운 이공계 공부를 한 사람이면 정치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출신이 정계, 관계에 많이 진출하지 못한 것은 정치 풍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를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수단이라기보다 권력투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력투쟁에 약한 이공계 출신의 진입이 어렵죠. 정치문화를 바꿔 이공계 출신들이 정관계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어린 학생들도 이공계를 많이 지원할 것 아닙니까.”

박 전 대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 전자공학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을 때였다. 삼성전자가 1969년 11월1일 설립돼 막 한발짝 뗀 시기였다.



▼ 전자공학은 본인의 선택이었습니까. 아니면 아버님의 권유였습니까.

“청와대에서는 식탁에서 나라 얘기를 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 무렵 우리나라가 수출 1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100억달러를 돌파하려면 뭘 해야 하느냐를 놓고 전문가들이 청와대에서 토의를 했죠. 전자산업이야말로 무공해 산업이고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의 손기술이 좋아서 이런 데 적합하다는 말도 있었어요. 고등학생이던 제가 전자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계기였죠. 성심고등학교에서 문과 공부를 하다가 전자공학과에 가기 위해 이과로 바꿨습니다.”

▼ 이번에 중국 공산당 학교에서 새마을운동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지요. 중국 공산당이 왜 그렇게 새마을운동에 관심이 많습니까.

“공산당 학교는 중국의 지도자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바로 직전 교장이 후진타오 주석입니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면서 도농(都農) 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우리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 신(新)농촌운동을 시작했어요. 문화적인 한류뿐만 아니라 정책 한류도 가능하겠더군요. 제가 특강한 내용이 보도되고 나서 여기저기서 요구해 전국에서 교재로 삼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 정작 본고장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활발하지 않은데요.

“새마을운동은 하면 된다는 정신, 누구한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자조, 힘을 합하자는 협동 정신입니다. 초가지붕 개량과 소득증대 사업은 새마을운동의 결과이고 근본은 정신혁명이거든요.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살던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농촌 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보다 올라갔어요. 그 후로 우루과이 라운드도 생기고 농가부채가 늘고 도농 격차가 다시 벌어졌지요.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촌에서도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농촌에 농업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토지 규제를 풀어 농촌에 많은 사람이 가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합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농촌 정책을 다듬고 있습니다. 정리가 되면 발표할 것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농촌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부 수립 다음해인 1949년 83%, 1960년 58.3%, 1980년 25.8%에서 2006년 7.3%로 급격히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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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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