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모스크바는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 희망”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이 바뀌고 있다!

  • 윤성학 CIS컨설팅 대표 yoonskh@chol.com

    입력2007-01-08 11: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시베리아 개발 파트너로 한국이 가장 적합”
    • 김정일 체제보단 ‘통일한국’이 더 낫다?
    • 연해주-북한 간 에너지 연결이 최대 관심사
    • 북한도 친러 행보 본격화…“北, ‘중국 의존’에서 벗어날 기회”
    • 북한 핵실험 후 연해주에서 사재기 현상
    “모스크바는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 희망”
    북한 핵실험 이후 러시아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2006년 10월10일 북한 핵실험이 보도된 직후 러시아는 배후 조종 의혹 속에 중국을 대체할 강력한 후견인으로 떠올랐다. 북한은 핵실험 20분 전 중국에 구두로 통고한 반면, 러시아에는 두 시간 전에 외교문서로 핵실험 사실을 고지했다. 북한의 지하 핵실험에 러시아 기술이 사용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물론 러시아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으며,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공감했다.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10월14일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추가 핵실험을 우려한다”는 뜻을 전했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러시아 극동지역 주민들은 핵실험 발표 이후 방사능 측정기를 사재기했으며 연해주 대학생들은 방사능 누출 가능성을 우려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북한 핵실험이 일본 등 다른 동북아 국가 사이의 군비경쟁을 촉발하거나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한다. 세계 2위 핵 보유국인 러시아는 핵 비확산체제가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북한, 이란 등이 핵 보유국으로 등장하면 러시아에 대한 핵 폐기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1월11일 독일과 노르웨이의 외무장관들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핵 비확산체제가 와해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하며 “미국과 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들은 전략핵무기 폐기를 위한 추가협상을 선언해야 한다”고 러시아와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무력제재에 동북아 어느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푸틴 대통령은 10월25일 러시아 전역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북 압박정책이 북한을 자극해 오히려 사태 해결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을 용납할 수는 없지만 협상자들은 상황이 막다른 길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과 ‘피해의식’ 공유

    핵실험 직후 북한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던 중국조차 등을 돌린 상황에서 러시아는 대북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10월13일 러시아는 남포항에서 대북 식량 전달식을 개최했으며 철도 연결사업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10월10일 이바노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북한이 사실상 아홉 번째 핵 보유국이 됐다고 인정했다.

    러시아가 이처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배경에는 북한과 유사한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1950년대 소련은 미국의 핵 압박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스크바가 땅 밑을 100m나 파서 지하철을 만든 것은 미국의 핵 공격에 대한 공포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북한은 과거 조·소 방위조약에 따른 소련의 핵우산 아래에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1990년 이후 미국의 단일 패권 지배가 시작되자 북한은 극도의 불안감을 갖게 됐고 이것이 핵 개발로 이어졌다’고 이해한다. 부시 미 행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고 결국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이탈해 핵실험에 이르도록 몰아 갔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의 보론초프 한국학 과장은 “오랫동안 곪아 있던 북핵 문제를 새롭고 효과적인 약이 아니라 강도만 높인 오래된 약으로 치료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이 같은 태도에는 그간 중국에 비해 위축됐던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되찾기 위한 목적도 숨어 있다.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북한을 대신해 6자회담 재개 의지를 중국과 한국에 전달했다. 또한 이바노프 부총리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데 동의하면 안보리 제재 결의안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6자회담에 나오기로 결정했다. 긴장 국면을 통해서는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제재에 맞서 또 한번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미·일이 주도하는 제재를 피하고자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핵실험 이후 국제 핵질서를 위반한 ‘피의자’의 지위가 아니라 동등한 핵 보유국 자격으로 6자회담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제 핵 폐기 대신 핵 군축을 회담 의제로 삼으려 한다.

    중국이 북한 경제의 뇌관을 쥐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 석유 소요량의 90%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는 중국은 북한에 추가 핵실험을 하지 말도록 엄중 경고했다. 중국은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북 석유지원을 감축 중이며, 핵실험 직후 중국은행 등 네 개 시중은행에 대해 대북 금융업무 중단 조치를 취했다.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나오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을 해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금융제재 부문의 양보를 통해 6자회담 재개의 길을 열어놓았다. 미국 언론들은 “결국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동결시킨 반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7~8개 핵탄두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게 했고 핵실험까지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미국 여론도 온건파인 라이스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북한에 줄 것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과정에서 러시아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정치적 도박을 감행하면서 중국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조커’처럼 사용한 듯 보인다. 북한은 핵실험 직후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북한을 제재할 경우 이 사태를 저지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감정적으로 골이 패어 있는 중국보다는 러시아에 기대 소나기를 피하자는 속셈으로 접근한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아직 중국을 완전 대체할 카드는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북한에 제공할 자원이 적다. 러시아 경제가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연 6.5%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지만 북한을 지원할 만큼의 여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경제교류도 미미한 수준이다.

    러시아는 6자회담 재개를 북핵 문제의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으로 여기고 외무차관을 급파했다. 그러나 북한은 러시아 카드를 받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준다고 해서 북한이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 상황에서 러시아는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러시아는 군사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반대하고 다자간 대화로 해결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군사 차원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미국 주도의 무력 제재를 억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동북아 안정에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1993~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러시아는 북한의 핵 개발을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당시엔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진 상황이었다. 1994년 3월24일 러시아는 ‘8자회담’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사정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국력이 10년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계속된 경제성장으로 2006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9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규모에서도 곧 한국, 브라질, 인도를 제치고 세계 10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푸틴 대통령의 활발한 외교정책으로 러시아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 중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크게 개선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자 러시아는 로슈코프 외무차관을 평양에 보내 3개항의 일괄타결 방안을 제안했다. 그 핵심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합의를 준수하는 대가로 다자 차원의 안전보장과 인도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주변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문명의 충돌지역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만 시작하면 1년 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북핵 문제가 근본적으로 북한의 안전을 담보하는 문제이기에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북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면 된다고 봤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문제’를 클린턴 자신도 재임 8년 동안 풀지 못했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그 자체로 동북아에서 ‘미국 군사 패권의 종말’을 의미하며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이 바뀌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통적 지정학 전략에 따르면 한반도와 유라시아는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심장지대(heartland)이다. 미국은 이 지역을 장악한 세력이 세계 패권을 차지한다고 본다. 정치학자 스파이크먼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여러 문명, 문화가 한곳에서 만나는 ‘언저리 지대(rimland)’야말로 핵심적인 요충지대이며, 이곳을 장악하는 국가가 전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언저리 지대’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수륙양서의 이중적 성격을 띠는데, 유럽 해안, 아라비아와 중동의 사막, 아시아의 몬순 기후 지역, 한반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푸틴의 구애

    브레진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외교 전략가들은 21세기 세계 정치에서 유라시아 대륙이 ‘경합의 주무대’가 될 것으로 봤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 간 핵 협상은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 질서 구축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 위협 문제를 장기화함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미사일 방어망 체제 구축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극체제 구축이라는 세계 전략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미북 간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외교노선은 대서양주의, 슬라브주의, 유라시아주의라는 세 가지 이론적 흐름을 갖고 있다. 대서양주의는 서구중심주의다. 러시아는 유럽국가로서 유럽적 규범을 따르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한다. 옐친 정부의 초기 외교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슬라브주의는 반서구주의로서 제국주의적 성향을 띤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패권적 강대국 지위’의 확보로 본다. 넓은 의미에서 슬라브주의는 지리노프스키가 대표하는 극우 민족주의와 민족 볼셰비즘을 지지하는 공산주의를 포함한다.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를 하나의 ‘국가’가 아닌 ‘민족적, 문화적 대륙’으로 간주한다. 유럽 못지않게 아시아와의 협력을 강조한다. 유라시아주의적 관점에서 러시아의 국익은 ‘지정학적 세력균형’의 유지다.

    1991년 소비에트 체제 해체 이후 러시아연방은 체제전환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 및 서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대서양주의를 채택했다. 옐친 정부는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와 극동은 방치하다시피 했다. 옐친 집권 시절 북한과 소원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핵우산과 경제 지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했다.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옐친 재임 시기에 최악이었다. 그 결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제외됐다. 그러나 푸틴은 이러한 일련의 외교적 실패를 깨닫고 유라시아주의에 따라 북한을 다시 중시하게 된 것이다.

    옐친은 한국 일변도의 정책을 폈으나 푸틴은 북한과 한국에 대한 균형 있는 접근을 시도했다. 유일한 ‘유라시아 국가’로서 러시아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적인 지역질서 주도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했다. 상하이협력기구(SOC)에도 적극 참여했다. 또한 CIS(독립국가연합) 내 CSTO(집단안보조약기구) 주도의 PKO(평화유지군)를 창설해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푸틴이 특히 대북 접촉을 강화하는 것은 북한을 매개로 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찾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동북아 지역은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에 해당한다. 바이칼호 서쪽 앙가라 강에서 캄차카 반도에 이르는 이 지역은 세계 육지 면적의 10%를 차지한다.

    동북아 지형 바꿀 에너지 프로젝트

    푸틴에 앞서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도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경제적 가치에 눈떠 러시아를 아시아 국가의 일원이라고 선언했다. 1988년 9월 고르바초프는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극동이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적극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경제 상황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2006년 10월에 열린 제2회 극동국제경제포럼에서 이샤예프 하바로프스크 주지사는 “지금의 동북아는 ‘빅3 국가(일본 중국 한국)’와 주변국(몽골 북한 러시아 동부)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빅3’가 자본, 기술, 생산설비, 서비스를 독점한 반면, 러시아 동부는 이들을 위한 자원 공급처 노릇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최근 극동·시베리아 지역에 에너지 가공산업을 유치했다. 이 지역은 러시아 전체 원유 매장량의 16%, 가스매장량의 21.7%를 확보하고 있다. 동시베리아~태평양 연안 송유관 건설, 통합가스공급시스템(UGSS) 구축 사업 등이 완료되는 2020년에 러시아 극동지역의 원유 생산량은 연간 1억t, 가스는 1050억㎥로 늘어날 전망이다.

    러시아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사업(120억달러 규모)에 착수했는데, 완공되면 연간 7000만~8000만t의 원유가 중국과 태평양 연안으로 공급된다. 러시아 정부는 단순한 원유 수출을 지양하고, 송유관 종착지인 연해주 남부지역에 대규모 원유터미널과 정유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가공, 생산된 석유류 제품은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2020년에는 사할린 유전과 더불어 러시아 극동산 원유·석유제품 수출량이 9000만t에 달할 전망이다.

    가스전 개발과 전력 사업도 동북아 지형을 바꿔놓을 메가톤급 프로젝트다. 최근 사할린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연결되는 502km 길이의 이스턴 라인(Eastern Line) 가스 파이프가 4년 만에 완성됐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이 지역의 만성적인 가스 및 전력 부족 현상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 전 지역에도 가스를 공급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 한국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까지 가스와 전력을 팔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 이 사업의 주관사인 가스프롬은 극동 지역에서 2020년까지 6개의 가스전, 17개의 압축시설, 1개의 가스정련 공장, 2개의 헬륨 저장시설을 개발할 예정이다.

    북한을 시베리아 전기 소비처로

    러시아는 사할린의 풍부한 가스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역에 전기를 팔겠다는 계획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가스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국경을 접한 북한과 중국에 수출하겠다는 것. 실제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북한 청진 송전망(500kW), 크라스키노~북한 나진 송전망(110kW)을 건설하고 있다. 나진에 20MW 용량의 연료 에너지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청진 송전망은 총 연장이 380km에 이른다. 러시아의 전기는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 북한의 철도, 청진시, 향후 부설될 석유 파이프라인에 공급될 예정이다.

    극동·시베리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핵심적 이해관계는 한반도에서 유럽을 잇는 대륙횡단철로에 있다. 푸틴 정부는 소강상태에 빠진 북한~러시아 철도 현대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은 2006년 7월 “나진~핫산 40km 구간 철도 현대화 작업을 연내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미샤린 교통부 차관은 “러시아 정부는 향후 2년 동안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재건사업에 1140억루블(43억달러)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유럽~아시아 연간 교역량은 6000억달러 규모에 육박한다. 그런데 대륙간 무역 화물의 98%는 해상운송이 담당한다. 러시아 내륙운송 시스템의 분담률은 1%선에 그치고 있다.

    한반도~유럽 횡단철도의 최고 고객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한국 자본이 철도를 통해 시베리아로 들어오게 되는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시베리아의 풍부한 지하자원도 철도를 통해 한국에 손쉽게 팔 수 있게 된다.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 한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지원에 나설 경우 러시아 극동의 원유, 전기를 북한에 안정적으로 대주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에는 더없이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구상대로 한국이 북한에 전기를 대주는 것보다는 가까운 러시아의 에너지를 사들여 북한에 공급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소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투자 재원 확보가 관건이다.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나서려면 동북아 지역의 정치적 안정이 담보돼야 한다. 북한으로 인해 역내에서 전쟁 가능성이 제기될 경우 대규모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러시아가 한반도의 안정을 강하게 희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 4강국 중 남북한 통일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 봐도 무방하다.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코사초프 위원장은 “러시아는 ‘남북한 통일 프로세스’에 적극 참여해 영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시베리아 철도와 남북한 종단철도를 연결하고 북한의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을 결합해 극동 러시아와 동시베리아 개발로 연결하는 계획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중국, 일본에 대해선 경계심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협력관계이면서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북3성의 엄청난 인구 때문에 늘 경계의 대상이다. 일본과는 근대사에서 큰 전쟁을 치러 참패한 기억이 있으며 아직도 북방 영토 문제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런 러시아는 극동개발에 있어 실질적 협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한국은 남한이 아닌 ‘통일한국’이다. 통일한국을 극동 시베리아 개발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의 대안이 될 매우 현실적인 ‘밸런스’로 파악하고 있는 것.

    러 연구소의 ‘남북통일 프로세스’

    따라서 러시아에 있어 한반도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핵화만이 항구적 안정을 담보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천연가스, 석유 파이프라인, 전력 공급망, 철도노선을 깔아줄 태세다. 이 투자 프로젝트는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프로젝트 착수 뒤 북한이 정치적 불안을 촉발하면 러시아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러시아 정부는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진심으로 희망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엔 종잡을 수 없는 김정일 체제보다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도 정치,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통일한국이 훨씬 매력적이다. ‘남북한 통일 프로세스’와 관련해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의 제빈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로서는 한국의 통일 결과에 대한 예측이 매우 중요하다. 통일한국의 외교 정책이 러시아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러시아의 이익은 동북아 지역의 긴장완화와 지역적 안정을 의미한다. 미국 군대가 주둔하는 통일한국은 러시아의 국익과 상충한다. 이런 한국의 출현은 러시아 동쪽 국경에 새로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미군의 독일 주둔을 용인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군의 한국 주둔 또한 러시아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제빈은 “미군 없는 통일한국이 최선이지만, 현실적인 차선으로 미국의 지정학적인 전략을 완화하는 우호적 완충지역으로서 북한이 계속 존립하는 것도 러시아에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철도를 매개로 갈수록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러시아와 어떻게 관계설정을 해나갈지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러시아는 북한과 한국에 동시에 우호적인 유일한 국가다. 동북공정, 독도 도발 등으로 한국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중국, 일본과는 다르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핵 억제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러시아는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지상 배치 ‘토폴-M’ 미사일과 해상 배치 ‘블라바-M’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또한 태평양 함대와 전략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어 유사시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핵무기 타격이 가능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견제력을 갖춘 셈이다.

    ‘동북공정’대항카드

    러시아가 한국의 우주로켓 발사사업에 핵심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주로켓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전용될 수 있어 미국, 중국, 일본은 이 기술을 절대로 수출하지 않는다. 그만큼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야심이 없다는 방증이다.

    “모스크바는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 희망”
    윤성학

    1963년 부산 출생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졸업, 연세대 박사(정치학)

    대우경제연구소 근무, 러시아 IMEMO연구소 코리아 연구센터 연구위원

    現 CIS(독립국가연합)컨설팅 대표

    논문 : ‘러시아 석유산업의 구조조정 연구’ 외 다수


    한국에 있어 러시아 카드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제어하는 구실을 한다. 중국은 석유와 무역을 통해 북한에 대해 커다란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북한 체제 변동시 북한에 친중(親中)적 정치 지형 형성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 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출현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은 북한 지역 합병에 필요한 논리도 개발해놓고 있다.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이 북한에 공급되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급락할 것이다. 이는 중국의 대한반도 야욕 견제가 지상과제인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러시아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