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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촛불쇼, 바나나쇼, ‘인간 다트’… 생리 때는 솜 틀어막고 관계 강요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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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존 스쿨’이라 불리는 재범방지교육을 받고 있는 성구매 사범들. 인천여성의전화 측은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선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술에 취한 손님 옆에 앉아 있으면, 이유 없이 맞는 일도 많다. 이런 일을 마담에게 이야기하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룸 안의 화장실에서 관계를 요구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마담에게 하소연해도 “그냥 한번 찔렀다 빼면 되지” 하면서 “그런 손님들은 아주 큰 물주니까 네가 잘하면 다음에 또 너를 찾을 거야”라며 오히려 관계 맺기를 종용했다.

청천동 ‘쇼타임’

선불금을 빨리 갚기 위해선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다. 그러려면 몸뚱이를 화려하게 치장해야 했고, 그럴수록 빚은 더 늘어갔다. 큰돈이 필요했던 나는 결국 스물여섯 살에 청천동의 ‘방석집’으로 향했다. 청천동에서는 당시 최고 2000만∼3000만원까지 선불금을 줬다. 내 몸뚱이가 담보였다. 그리고 보증인 한 명이 필요했는데, 알고 지내던 동생과 내가 서로 맞보증을 섰다.

청천동은 무조건 ‘쇼타임’을 해야 했다. 손님이 오면 30∼40분 안에 테이블을 끝내야 하는데, 비키니를 입고 서 있으면 손님들이 ‘초이스’를 해갔다. 인사를 하면서 옷을 홀딱 벗고, 술 먹고 야한 춤을 추면 손님도 함께 벗었다. 그 자체가 변태였던 것 같다. 손님들끼리 서로 관계 맺는 걸 쳐다보며 즐겼고, 삼촌과 조카, 매형과 처남이 함께 오거나 다음날 결혼식을 하는 예비 신랑이 오는 때도 많았다. 어떤 손님은 처제랑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서 나더러 처제 (역할을) 좀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쇼를 보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쇼의 종류는 다양했다. ‘야쿠르트쇼’(여성의 질 안에 젤을 묻힌 다음, 입구가 밖을 향하도록 야쿠르트 병을 질 안에 넣는다. 야쿠르트 병 입구에 빨대를 꽂아 남자 손님이 그것을 빨아먹는다.) ‘바나나쇼’(물티슈로 감은 칼 손잡이를 여성의 질 안에 넣는다. 테이블에 누운 손님의 배 위에 도마를 깔고 바나나를 올려놓은 다음 여성이 그 칼로 바나나를 썬다.) ‘촛불쇼’(맥주로 온몸을 샤워하고 난 다음 불을 끄고 촛불을 휘두르며 촛농을 몸 위에 뿌린다.) ‘병따개쇼’(병따개를 여성의 질 안에 넣고 맥주 병마개를 따는 것) ‘달걀쇼’(여성의 질 안에 달걀 넣었다 빼기)….



그뿐 아니라 하루 수차례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충격적인 건 생리 중에도 솜으로 틀어막고 관계를 맺도록 강요당한 것이다. 너무나도 아팠고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이 싫어졌다. 하지만 선불금에 발이 묶여,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2003년 겨울, 내 나이 스물여덟.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아는 동생과 함께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삼촌’(직업소개소 직원)으로부터 ‘해외 원정’ 얘기를 들었다. 도피 중이라 ‘해외’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출국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함께 있던 동생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누나가 일본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는데 급하게 한국 아가씨가 필요하다면서. 성매매 행위가 전혀 없고,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게 학교도 보내준다고 했다. 우린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우린 기대 반 근심 반으로 마중 나온 ‘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고베란 도시로 향했다. 도시가 아기자기하고 깨끗했다. 제2의 삶을 꿈꾸며 가슴이 벅찼다.

일본 ‘해외원정’의 함정

첫 출근한 곳은 작고 아담한 가게였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알고 보니 가라오케 형식의 술집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가게를 ‘스나크’라 부른다고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쳤다.

하루, 이틀, 1주일, 2주일, 3주가 지나도록 학교 얘기는 차일피일 미루고, 날로 억압과 횡포가 심해졌다. 처음엔 언니도 그랬다. 부담 없이 손님 옆에 앉아 편하게 접대하면 된다고. 하지만 ‘도항’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손님과 낮에 약속을 잡아 데이트하라고 하고, 저녁에 가게에 함께 출근할 것을 종용했다. 이 먼 곳까지 도망쳐 와서 다시 그런 일을 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하고 치욕스러웠다. 결국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짐을 쌌다. 언니는 숙식비에 브로커 수수료, 항공료, 여권 발급 비, 병원비 등을 세세히 따지며 500만원을 내놓고 가라고 했다. 돈이 없어 차용증을 써주고 어렵게 비행기를 탔다.

일본에 돈을 부치기 위해 다시 ‘선불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안산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됐고, 경찰의 단속이 시작되자 2차를 갈 땐 손님과 따로 나가 모처에서 만났다. 일본 원정에 소요된 경비를 다 갚고 난 다음 성매매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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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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