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동물복제 양 ‘돌리’ vs 인간복제 양 ‘폴리’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1-15 18: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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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과 영화 속에만 존재하던 인간복제는 ‘괴짜 연구자’들의 거짓말과 사기논문 충격에도 점차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인간복제는 그 가능성을 열기도 전에 생명윤리의 덫에 걸렸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번식용 복제의 지뢰밭을 피해 질병 치료용 복제로 향하고 있는데…. 과연 과학은 복제를 통한 ‘인류 개량’에 성공할 것인가.
    동물복제 양 ‘돌리’ vs 인간복제 양 ‘폴리’

    최초의 성체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탄생한 복제양 돌리와 그를 탄생시킨 이언 윌머트 박사. 인간유전자를 가진 복제양 폴리 자매(아래)는 그 과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돌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복제는 과학소설 작가들이 자주 써먹는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인류의 미래상과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복제를 다룬 소설은 역사가 꽤 깊고, 꾸준히 인기를 누려왔다. 게다가 영화로 각색하기에 아주 적당하다. 최근 들어서는 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과학기술 문예 공모전에서 3회에 이르기까지 예선 심사를 해보니,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복제를 다룬 소설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상상에서 현실로

    복제를 소재로 한 소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멋진 신세계’일 것이다. 복제 인간을 인공 배양으로 대량 생산하면서, 성장 조건을 조절해 누가 엘리트가 되고 누가 하층 계급이 될지를 결정하는 전체주의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에 그려진 복제 인간의 미래상은 복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복제는 획일적이고 예속적이며 자유의지가 결핍되고 자각하면 불행에 빠지는 존재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헉슬리는 분자생물학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사람이기에 ‘멋진 신세계’에서 일란성 쌍둥이가 생기는 방법을 이용해 복제 인간을 만든다고 설정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이 분열해 세포 수가 늘어나면 세포별로 분리하고, 그 세포들이 분열하면 다시 분리하는 식으로 수십명, 많으면 만명이 넘는 쌍둥이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 뒤 DNA의 구조가 밝혀지고 분자생물학 연구가 급격히 진전되자 쌍둥이의 수를 늘리는 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복제인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다 자란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를 하나 떼어내어 똑같은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동양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개념이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머리카락 모근 세포를 이용해 끝없이 분신들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1970년대 초 데이비드 로빅은 그 개념을 토대로 ‘복제인간’을 펴냈다. 책의 내용은 허구였지만, 로빅은 그것이 ‘논픽션’이라고 주장했다. 로빅은 비밀리에 자신의 클론을 복제하고 싶어 하는 어느 부유한 인물을 위해 전문가를 섭외하고 해외에 비밀 연구소를 마련하는 한편, 복제 아기를 낳을 대리모를 구하는 일을 했다는 것. 복제 인간이 탄생했다고 말하는 그의 책은 큰 화제가 됐고, 인간복제를 둘러싼 갖가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과학계가 한결같이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내용이 허구임이 드러남에 따라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그 무렵에 과학계는 ‘인간복제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로빅이 말한 방법을 써서 복제하는 데 성공한 동물은 개구리밖에 없었다. 그것도 올챙이의 몸에서 떼어낸 세포로 복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개구리의 몸에서 떼어낸 세포를 썼을 때에는 실패했다.

    그 뒤로 여러 연구자가 복제 실험에 뛰어들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결국 과학자들은 성체 동물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그 무렵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양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복제 양 돌리는 그렇게 의외의 순간에 세상에 등장하면서 복제를 상상에서 현실로 바꿔놓았다.

    동물복제의 기린아 ‘돌리’

    동물복제 양 ‘돌리’ vs 인간복제 양 ‘폴리’

    체세포 복제로 탄생한 개 스너피. 당시 황우석 교수(가운데)의 연구에는 미국의 제럴드 새튼 교수(왼쪽)도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20세기 초에 독일의 한스 슈페만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어린 아들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으로 도롱뇽의 초기 배아를 묶어서 둘로 나눴다. 나뉜 반쪽 배아에는 둘 다 세포핵이 들어 있었고 잘 자라서 정상적인 도롱뇽이 됐다. 인위적으로 쌍둥이를 만든 것이다. 또 슈페만은 세포핵이 한쪽에만 있고 반대쪽에는 세포질만 있도록 배아 중간을 느슨하게 묶은 뒤, 세포핵이 좀 자라도록 기다렸다가 그것을 반대쪽 세포질로 밀어넣었다. 핵이 없는 상태의 세포질은 변화가 없었으므로 사실상 좀더 분화한 핵을 수정란의 세포질로 이식한 것과 같았다. 그 배아는 정상적으로 자라났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슈페만은 당시 실험 기술로는 불가능한 환상적인 실험을 고안했다. 난자의 핵을 빼낸 뒤 완전히 자란 성체의 세포핵을 거기에 넣는다는 것이었다. 그 난자는 정상적으로 발달할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인 1952년 미국의 브릭스와 킹이 그 실험에 도전했다. 그들은 표범개구리의 난자에 있던 핵을 없앤 뒤, 배아에서 빼낸 핵을 거기에 넣었다. 핵 이식 실험은 성공했다. 하지만 배아까지만이었다. 그들은 성체를 복제하지 못했다. 수정란은 배아로 자라고 배아는 새끼로, 새끼는 성체로 자란다. 그러면서 몸의 세포들은 점점 더 분화해 특정한 일만 전담하게 된다. 따라서 배아세포에 비해 성체세포는 발달 잠재력이 훨씬 떨어진다.

    10년 뒤 영국의 존 거든이 그 실험을 이어받았다. 그는 발톱개구리 올챙이의 창자에서 꺼낸 세포핵을 이식했다. 실험은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률이 낮았으며, 다 자란 개구리의 세포핵을 이식했을 때에는 실패를 거듭했다. 즉 그의 성공도 절반에 그친 셈이다.

    그 뒤로 오랫동안 복제 연구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포유류의 복제 실험에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9년 제네바 대학의 카를 일멘제가 생쥐의 배아 세포핵을 이식해서 세 마리를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포유류 복제에 성공했다니, 과학자들은 몹시 흥분했다. 여러 연구자가 그의 연구를 재현하고자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만 거듭했다. 그를 초청해 실험 기법을 전수받으려 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멘제는 실험하는 광경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연구자들은 점점 회의적이 되어갔다. 과학은 재현성이 생명이다. 다른 연구자가 재현하지 못한다면, 그저 우연히 얻어진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멘제의 연구 결과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이윽고 학자들은 포유류 복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덴마크 출신의 스틴 윌러드슨이었다. 순수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생쥐를 연구했지만, 가축을 연구하는 응용과학 분야의 연구자였던 윌러드슨은 양으로 실험을 했다. 그는 초기 배아의 핵을 난자에 이식한 뒤 대리모에 착상시켰다. 두 마리는 사산됐고 한 마리가 살아서 태어났다. 응용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성과였기에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상 핵 이식으로 태어난 최초의 포유동물이었다. 몇 년 뒤 윌러드슨과 미국의 다른 연구진은 각각 소의 배아 복제에도 성공했다.

    인간복제의 허상

    배아세포 핵 이식에 성공했으니 이제 성체세포 핵 이식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그 일은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윌머트와 키스 캠벨이 해냈다. 그들은 초기 배아가 아니라 배양 접시에서 이미 분화를 시작한 9일 된 배아의 핵을 이식해 1995년 메건과 모랙이라는 양 두 마리를 탄생시켰다. 그것은 이미 분화한 세포를 분화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복제 기술의 진정한 발전은 이때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언 윌머트는 더 나아가 성체를 복제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어느 양에게서 떼어내 냉동해둔 젖샘세포를 복제하기로 했다. 그 양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들은 그 세포의 핵을 난자에 이식해 대리모 양에게 착상시켰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복제 양이 그 유명한 ‘돌리’다.

    돌리는 성체세포에서 복제한 최초의 양이었다. 그것은 동물복제의 장벽이 사실상 모두 제거됐음을 의미했다. 그 뒤로 그의 실험 방법을 따라 동물을 복제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생쥐, 소, 고양이, 말, 돼지, 개 등. 이제 어떤 동물도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인간도 복제할 수 있지 않을까?

    1996년 복제 양 돌리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전세계가 들썩거린 것은 바로 그 질문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닥쳤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세계 각국에서 인간복제를 주제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인간복제는 가능한가? 복제 인간은 인간의 존재 의미, 가족 관계, 법적 지위, 사회 관계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우수한 혈통만 골라 복제하는 통제 사회가 출현하지는 않을까? 병들었을 때 장기를 교체할 예비용 복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때, 아예 인간을 복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리처드 시드나 세베리노 안티노리 같은 괴짜 의사들이었다. 게다가 외계인을 믿는 라엘리안이라는 종교단체도 가세했다. 더 나아가 그 단체는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복제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주장까지 했다.

    인간복제가 과연 가능할까? 다른 동물들도 속속 복제되고 있으니 인간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영장류를 복제할 수 있다면 인간복제도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2000년 미국의 제럴드 새튼은 붉은털 원숭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핵 이식 기술이 아니라 초기 배아를 세포별로 분리해 쌍둥이를 만드는 방법을 쓴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핵 이식을 통한 원숭이 복제를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만 거듭했을 뿐이다. 핵 이식으로 배아를 만들어서 대리모에 이식했지만 모두 죽고 말았다. 연구자들은 배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분열 때 염색체 분리를 담당하는 단백질이 없어 분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난자의 핵과 함께 단백질까지 제거한 것이다. 그 결과 새튼은 2003년 원숭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어조의 논문을 썼다. 하지만 그 뒤 황우석 연구진의 도움을 받아 2004년에 성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배아 단계까지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배아를 착상시켰지만 유산되고 말았다.

    따라서 원숭이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배아까지 키우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 배아는? 황우석 교수 연구진이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논문 조작이 드러나면서 철회되고 말았다. 따라서 성인을 복제할 수 있는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생명윤리 규정과 지침이 강화되면서 인간복제 실험이 이뤄질 여지도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복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용이나 치료용으로 배아 단계까지 복제하는 실험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허용되는 추세에 있다. 영국은 두 연구진에게 이미 당뇨병 치료와 연구 목적의 배아 복제를 허용했다.

    복제인간도 존엄하다. 그러나…

    돌리의 탄생은 새로운 과학적 가능성을 열었을 뿐 아니라, 생명윤리 논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돌리 탄생 직후에 인간복제 가능성을 놓고 떠들썩하게 벌어진 논쟁들 중에는 1970년대에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을 때 벌어진 논쟁의 재탕인 것도 많다. 당시에도 인간복제가 임박했다는 주장이 난무했고, 시험관 아기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또 인간의 몸 바깥에서 수정되고 자라는 배아의 지위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그 배아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시의 논쟁은 돌리 이후에 벌어진 논쟁과 상황이 달랐다. 돌리 탄생 직후에 벌어진 논쟁의 대상인 복제 인간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지만, 당시 논쟁의 대상이던 시험관 아기는 논쟁이 벌어지든 말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귀여운 아기가 태어나자 논쟁은 김이 빠지고 말았다. 태어난 아기를 앞에 놓고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된다거나, 가족관계에 혼란을 가져온다거나,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로 향한 출발점이 된다거나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멋쩍어졌다.

    자연적인 성(性)관계로 아기를 갖든, 인공 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같은 보조 생식 수단을 써서 아기를 갖든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아기를 원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아기를 가진 것일 뿐이었다. 시험관 아기는 친자 관계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부정적 측면보다는 불임 부부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 강했다.

    돌리 탄생 직후 벌어진 논쟁에는 충격과 두려움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래서 히틀러를 복제한 병사들로 군대를 만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도 나왔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형태였다. 인간의 형성에 유전자와 환경이 둘 다 관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외의 상황이 닥치면 그런 주장이 고개를 든다. 게다가 시험관 아기든 복제된 아기든 태어난 아기는 고유의 인격을 지닌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곤 한다. ‘멋진 신세계’의 영향 탓인지,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들 탓인지, 복제 인간은 자유의지가 결핍된 로봇 같은 존재라는 등식이 맨 먼저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고 논쟁이 심화되면서 그런 어설픈 주장들은 사라지고,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번식용 복제와 치료용 복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번식용 복제는 말 그대로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킬 목적으로 복제를 시도하는 것이며, 치료용 복제는 유전병 같은 각종 난치병을 연구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복제를 말한다.

    복제로 태어난 아기도 존엄하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번식용 복제는 리처드 시드처럼 공개적으로 인간을 복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 반대한다. 가장 큰 이유는 복제 기술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복제를 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국가가 번식용 복제를 금지하고 있고, 인간을 복제하려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번식용 복제라는 주제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활발하게 논의될 듯하다. 물론 시드 같은 전문가들이 규제가 없는 외딴 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복제 인간을 탄생시킨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번식용 복제와 달리 치료용 복제를 놓고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치료용 복제에서는 핵 이식을 통해 만든 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만 배양한 뒤 파괴해 줄기세포를 얻어, 이를 치료용이나 연구용으로 쓰는 것이다. 치료용 복제는 척추 마비나 유전병처럼 현재 의학 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인간 유전자 가진 복제 양

    하지만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는 점에서 생명윤리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치료용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은 배아는 인간이 아니며, 배아를 파괴해 줄기세포로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반면 치료용 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쪽은 배아도 인간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치료용 복제를 반대하는 쪽은 배아를 파괴하지 않으므로 생명윤리 문제가 아예 없는 성체줄기 세포를 연구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허용하자는 쪽은 배아 줄기세포의 잠재력이 더 크다는 점을 역설한다.

    장기 이식용 복제인간들이 등장하는 최근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번식용 복제는 여전히 영화의 단골 소재이지만, 복제와 생명윤리 논쟁의 초점은 치료용 복제와 줄기세포 쪽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돌리라는 동물복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을 복제할 것이냐 하는 쪽으로 잠시 흘렀다가, 인간 자체를 복제하는 것과 좀 거리가 먼 세포나 조직이나 기관을 만들어서 인간을 치료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다. 어찌 보면 복제동물인 돌리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돌리 자체가 바로 그렇게 곁다리로 흐른 동떨어진 존재였다. 돌리를 탄생시킨 로슬린 연구소는 생쥐를 복제하려고 헛수고를 거듭한 연구자들이 일하던 곳과 달리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었다. 수의사와 가축 연구자들이 일하는 응용과학 연구소였다. 다시 말해 연구소의 주된 목적은 생명 현상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로슬린 연구소가 돌리를 복제한 이유는 체세포 핵 이식 기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체세포를 배양할 때 인간의 유전자를 주입한 뒤 그 변형된 체세포로 동물을 복제하면, 인간의 호르몬이나 단백질을 생산하는 동물을 얻을 수 있다. 즉 돌리는 원래 그런 유용한 동물을 만들기 위한 중간 단계의 성과물이었다. 로슬린 연구소는 그렇게 갈고 닦은 기술로 돌리가 태어난 다음해에 모든 세포에 인간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폴리라는 양을 복제했다. 따라서 치료용 복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돌리가 아니라 폴리라야 했다.

    동물복제 양 ‘돌리’ vs 인간복제 양 ‘폴리’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하지만 세상은 돌리가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양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인간은 실용성이나 유용성보다는 최초라는 쪽에 더 끌리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 뒤에 인간복제 분야에서 ‘최초’라는 영예를 얻기 위해 벌어진 소란스러웠던 일들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쳐 가야 할 징검다리에 불과했던 돌리가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면서 ‘거만한 양’이 되고 로슬린 연구소를 세계에 알렸듯이, 최초라는 영예를 얻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돈과 권력과 명성을 얻는다. 이야기의 흐름대로 폴리가 주인공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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