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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랑스인이 과거사를 대면하는 방식 ‘비시 신드롬’

  • 이용우 서울대 강사·서양사 greve@hanmail.net

프랑스인이 과거사를 대면하는 방식 ‘비시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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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 신드롬’은 독일 강점기이자 비시 정부 시기인 1940∼44년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기억하고 해석하고 대면해온 방식을 가리킨다. 루소는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의 비시 신드롬을 네 시기로 나눴다. 그 첫 시기인 1944∼54년은 ‘미완의 애도’기로,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프랑스군인, 독일군과 비시 정부에 의해 총살된 레지스탕스 대원이나 인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된 유대인,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민간인, 그리고 레지스탕스에 의해 처형된 대독협력자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류의 희생자를 추모해야 할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시기였다.

다음 시기는 1954∼71년의 ‘억제’기로,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기억이 억제된 시기다. 항독운동의 화신을 자임한 드골이 ‘전국민의 일치단결한 레지스탕스’라는 신화를 ‘공식적 기억’으로 뿌리내리게 한 시기였다. 이 신화에 걸맞지 않은 측면들, 이를테면 대독협력의 실제 규모, 비시 정부가 추구한 ‘민족혁명’, 프랑스 자체의 반(反)유대주의 등에 대한 논의는 축소되거나 억제됐다.

이러한 신화와 공식적 기억은 세 번째 국면인 ‘깨진 거울’ 시기(1971∼74)에 무너졌다. 1968년 5월 정신의 영향, 드골의 정계 은퇴와 사망, ‘슬픔과 연민’이라는 비시 시기에 대한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친독민병대 간부 투비에에 대한 퐁피두 대통령의 사면조치 등이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일그러진 거울을 깨고 강점기에 대한 여러 기억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데 일조했다.

‘깨진 거울’은 오늘날에 이르는 ‘강박’의 시대(1974∼ )로 이어졌다. 비시 시기에 대한 기억의 폭발과 강박은 한편으로는 유대인 기억의 급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비시-대독협력 전력(前歷)에 대한 끊임없는 폭로전으로 표출됐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친일’에 대한 인적, 제도적 청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친일파’라는 용어가 무시무시한 낙인이 될 수 있었다면, 프랑스 사회는 해방 직후에 ‘대독협력’에 대한 대규모의 사법적 청산이 이루어졌음에도 수십년 뒤까지 여전히 ‘콜라보(대독협력자)’나 ‘비시’ 전력의 ‘발견’과 폭로가 정적(政敵)들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다.

끝나지 않은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는 이렇듯 4단계에 걸쳐 비시에 대한 기억의 변화과정을 살펴본 뒤에 기억을 전달하는 ‘매체’들과 그러한 기억의 수용 및 확산과정을 분석했다. 기억의 매체들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5월8일)로 대표되는 ‘공식적’ 매체, 2차대전기를 다룬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적’ 매체, 그리고 비시 시기를 다룬 역사서라는 ‘학문적’ 매체가 분석대상이 됐다. 이어서 영화의 흥행 성적, 역사서의 판매부수, 여론조사결과 등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되는지가 분석됐다.

기실, 비시 신드롬은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 1990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나기는커녕 책 출간 뒤에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비시 경찰 총수 부스케의 재판 직전 피살(1993년 6월), 투비에 재판(1994년 3~4월), 미테랑 대통령의 비시 전력 폭로(1994년 9월), 파퐁 재판(1997~98년) 등 비시 신드롬을 더욱 뜨겁게 달굴 계기들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애도에서 망각으로, 억제에서 폭발과 강박, 그리고 과열로 이어지는 이 기억의 역사는 단 4년간에 불과했던 독일강점기-비시 체제 시기(1940∼44)가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 사회에서 얼마나 ‘뜨거운 감자’였는지, 그리고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깊은 트라우마이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과거사와의 대결이 한창 진행 중인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결코 모범 사례가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지, 반대로 역시나 모범적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될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끝으로, 소소한 실수에서 결정적인 오역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도 정확한 일독(一讀)을 방해하는 오류들이 개정판에서는 부디 바로잡아지기를 바란다.

신동아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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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서울대 강사·서양사 grev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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