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01-16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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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4월부터 17개월 동안 ‘신동아’에 ‘몸 공부, 마음 이야기’를 연재한 농부 김광화씨가 다시 펜을 들었다. 독특한 삶의 철학을 지니고 소리 없이 우리 사회를 바꿔가는 이웃을 만나 그들에게서 ‘한 수’ 배워보자는 게 이 연재의 목적이다. 자신을 탐구하는 것에서 이제 이웃의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 김광화씨. 그가 보내 온 첫 글은 ‘마운틴고릴라 가족’ 이야기다.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b>1</b> 뱃속 동생과 입맞춤. <b>2</b>민성이가 아빠랑 함께 아기 빨래를 너는 모습. <b>3</b>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모습. 이런 그림들이 그림책으로 나와, 세계인이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2005년 4월부터 ‘신동아’에 ‘몸 공부, 마음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 모두 17회를 썼다. 내 몸과 마음이 달라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길게도 풀어놓았다. 그러다보니 내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웬만큼 풀어낼 수 있었다. 이는 나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힘이 닿는 한 이웃 이야기를 담고 싶다. 그동안은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에 바빠, 이웃을 제대로 돌아볼 틈이 없었다. 이제 귀농해 삶도 자리가 잡혔는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필요하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울려 살아간다고들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쩍 실감이 난다. 그동안 독불장군처럼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 잘난 맛에 살아온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부모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자주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를 넘어 이웃과 이 세상에서 많은 자양분을 얻으려고 한다.

    마운틴고릴라의 봄

    숲이 아름다운 건 나무마다 자기 빛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도 아름다운 사회로 가자면 사람마다 자기 고유한 빛깔이 드러나야 할 것 같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칫 좁은 울타리에서 사람 관계에 치이고 상처를 받다보면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지혜를 놓치기 쉽다. 이는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에너지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에너지를 살리자면 ‘사람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살려보고 싶은 뜻에서 ‘자기 빛깔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를 민성이네로 시작한다.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민성이 그림 앞에서 자세를 취한 민성이네 식구들. 공영석, 서원정, 태현, 민성(왼쪽부터).

    이웃 아이 민성(10)이가 그림전을 연단다. 그 소식에 우리 아이가 전시회를 여는 것처럼 설렌다. 나는 민성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곁에서 이따금 보기는 했지만 그동안 모은 그림으로 전시회를 연다니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집 가까이 어딘가에서 전시회를 조그맣게 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저 멀리 밀양에 있는 갤러리 ‘리사’에서 연다 한다. 밀양이 조금 멀기는 하지만 우리 식구를 끌고 그림을 보러갔다.

    전시장에서 민성이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빠 공영석(47), 엄마 서원정(37), 민성, 그리고 동생 태현(2)이가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 그림을 둘러본다. 3년 여 동안 그린 100여 점의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들꽃그림에서 줄거리가 있는 그림까지. 아이가 그린 그림이니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역시 그림을 즐겁게 본다.

    연작 그림 가운데 ‘마운틴고릴라의 봄’이라는 그림이 있다. 민성이 엄마는 둘째 태현이를 집에서 낳았다. 산파도 부르지 않고 남편과 민성이의 도움을 받으며. 민성이네는 태어날 아이 맞을 준비를 차근차근 했고, 민성이는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태현이가 지금 두 살이니 민성이가 여덟 살부터 아홉 살 때까지 그린 그림이다. 그림마다 제목을 달지 않았지만 아래 글로서 그림 전체를 안내하고 있다.

    〈 마운틴고릴라의 봄 〉

    엄마가 동생 태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함께 경험하고 이야기 나눈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동생을 기다리며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동안

    그림은 한두 장씩 늘어났고,

    어느새 방안의 벽면은 태현이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하여 삼월의 마지막 날,

    태현이와 우리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태현이가 태어난 다음날 아침,

    집 앞에 심어둔 산수유 꽃이

    활짝 핀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따스한 봄볕이

    노오란 산수유 꽃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운틴고릴라의 연작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마운틴고릴라는 자연의 야성을 되찾으려는 인간을 표현한 것이다. 산의 정기를 받아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엄마가 동생을 가진 걸 가족뿐만이 아니라 둘레에 새와 나무와 개와 토끼 그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고, 숲 속을 고요히 산책하는 엄마 그림이 있다. 엄마가 밥을 맛나게 먹는 모습은 밥상 전체가 엄마 배가 된 광경으로 그리고 있다. 아기옷 빨래를 아빠와 민성이 둘이서 다정하게 빨랫줄에 너는 모습도 있다.

    여러 그림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민성이가 뱃속 아기랑 입맞춤하는 장면. 아기는 어두운 곳에 웅크린 게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라는 모습이다. 뱃속에서도 세상 밖에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민성이가 입맞춤하자니까 동생도 기꺼이 입을 맞춘다.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에 동생과 즐겁게 소통하는 민성이가 부럽기도 하다.

    사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좋지만 집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 얘기도 궁금하다. 두려움은 없었을까. 어떤 준비를 했을까. 출산 자체는 아무래도 엄마가 중심이지만 아버지는 어떤 일을 했을까. 임신에서 출산까지 이들이 겪은 소중한 체험을 듣고 싶다. 영석씨가 먼저 말문을 연다.

    “저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현대인은 이를 전문가에게 맡겨버림으로써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민성이는 어른들 옆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뜨개질하다가도 자신이 필요한 이야기라면 함께 한다. 사진은 뜨개질에 몰두한 민성이.

    곧이어 원정씨가 말을 받는다.

    “저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긴장도 안 했고. 통증만 있었지, 안 죽을 줄 알았고(웃음), 자신이 있었어요.”

    “두 사람 이야기 들어보니 영석씨가 두려움이 더 컸네요.”

    “그렇지요. 원정씨는 자기 몸을 자기가 알잖아요. 나는 모르고. 실제 상황이 왔을 때는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데. 보통 오기 전에 온갖 걸 다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경험한 거지요.”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영석씨와 원정씨는 서로 생각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 두 사람 이야기에 차이가 있다면 뼈대를 잡아주는 건 주로 영석씨고,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건 원정씨다. 이야기를 하다 서로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스스럼없이 끼어들어 내용을 채운다. 그러니까 이번 인터뷰는 사실 부부 가운데 누가 한 말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아기 낳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역시 영석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희망이 있는 고통

    “나는 학습된 거라 생각해요. 자연 속에서 살던 원주민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고 생각해요. 늘 죽음에 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웃음).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우리는 문명 자체가 그런 위기에서 다 보호해주잖아요. 겹겹이 안전장치를 마련해주었잖아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봐요.”

    원정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분명한 것은 긴장하면 통증은 몇 배로 커진다는 거예요. 민성이 낳을 때는 20대였는데 그때는 몸이 정말 좋았어요. 임신한 몸으로도 산에 가서 도토리를 엄청 주어오고. 얼마든지 애를 쉽게 놓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태현이 낳을 때는 그 사이 8년이 지났으니 몸이 그때와 달랐어요. 그런데 통증은 그때보다 훨씬 덜했어요. 민성이 때는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했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었어요. 긴장이 많이 되었어요. 이번에는 집에서 낳으니까 내 몸을 잘 관찰할 수 있었고, 통증이 오고 나가고를 계속 관찰했어요. 그런데 그게 통증만은 아닌 거라는 걸 알았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원정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출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일반적인 고통과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아픔, 얼마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아픔이지요. 견딜 수 있는 힘도 거기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통증 뒤에는 아이가 나온다는 기쁨이 있잖아요. 설렘, 기다림, 희망 그런 것들이 섞여 있기에 아픔만 있는 고통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고 순간순간 아픔이 밀려오는구나, 사라지는구나 느끼게 돼요. 바스락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할 정도로 온몸의 신경이 예민해지는 거지요.”

    그러자 영석씨가 이렇게 얘기했다.

    “아, 맞아요! 아기를 받을 때 내 모든 감각도 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엄청난 집중력이 생기고 예민해지는 거지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주는. 모든 감각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시간, 공간이 다 없어지는 거지요. 달리 말하면 저절로 명상 상태가 된다고 할까. 아기 낳기는 비파사나(Vipassan·직관명상법)도 되고 뭐든 다 된다고 생각해요. 아바타(avatar)도 되고. 신념이 경험을 만든다고 할까. 처음부터 자연분만을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마음이 건강한 쪽으로 나아가고 몸도 저절로 건강해지리라 봐요. 우리 경험을 세상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특히 남자들이 이런 걸 알면 좋겠다 싶어요.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이런 걸 알고 어른이 되면 아이 낳는 마음가짐이 다르겠지요.”

    “그런 점에서 민성이네 경험은 소중하다고 보는데, 말이 나온 김에 그 경험을 좀더 들려주신다면?”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기타를 치는 민성이. 민성이는 아빠가 치는 모습을 보고 기타를 익혔다. 작곡에도 관심을 가져 조금씩 해보고 있고, 점차 음악 이론에도 관심을 가진단다.

    “그건 뿅 가는 거야!”

    “남자는 아기 낳는 게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기에 간접 경험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지만 아기 낳기 전부터 공부하고 또 임신기간이 10개월이나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기 낳기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관찰하고 부부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면 간접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저는 부부가 이처럼 한몸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더 나아가서 온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때 원정씨가 토를 단다.

    “당신 이야기, 너무 거창하다(웃음). ‘하나’ 어쩌고 하는 말이.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말로 하려니까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웃음).”

    “원정씨가 남자들을 잘 모르는 거라 봐요. 나는 영석씨한테 별로 부러운 게 없는데 이 부분은 두 번 세 번 들어도 부러워요(웃음). 나는 그런 경험이 없기에. 이 집뿐만 아니라 이웃들이 집에서 아기 낳고 또 남편이 아기를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설레기도 하거든요. 탯줄을 남자가 끊었다는 건 한마디로 ‘뿅’ 가는 거야(웃음). 집집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씩 다르잖아요. 원정씨는 지구 중력을 빌려, 보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았다 했는데 이런 경험이 잘 드러나고 또 모아져서 그 지평이 넓어지면 좋겠어요.”

    “출산이라는 게 사실 성스러운 일이라는 거를 사람들한테 이야기해보고 싶데요. 이번 전시회에서 보니까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먼저 관심을 보여요. 오는 엄마마다 아이들에게 신나게 그림 이야기를 하데요.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첫 단추가 애 낳는 거잖아요. 여기서 잘하면 그 다음 단계의 교육도 자연스럽게 되리라고 봐요.”

    전시회가 끝나고 다시 날을 잡아, 경남 산청에 사는 민성이네를 찾았다. 민성이네 집은 영석씨가 3년 걸려 손수 지었다. 따끈따끈한 구들방 아랫목에 둘러앉아 전시회 뒷이야기, 농사 이야기, 겨울 준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모아졌다.

    민성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열흘 정도 다닌 게 전부다. 민성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물론 부모 영향이 크다. 공영석, 서원정씨는 미술을 전공한 부부다. 이들이 부산을 떠나온 지는 10여 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에요. 그림 자체를 교육의 방법으로 여기는 거지요. 그림을 통해서 아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자연을 알게 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지요.”

    이들 부부는 민성이 그림에서 자신들이 갖지 못한 생명력을 느꼈다 한다. 그렇다면 생명력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 달 전기료 1200원

    “자기가 가진 고유한 자연 에너지라고 봐요. ‘잘 그려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없는 상태로 그리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묻어나는 거 아닐까 싶네요. ‘생명력’이라고 하면 말로 하기 이전에 느끼는 게 있잖아요. 우리는 생명력을 표현하려고 하는 데도 잘 안 되는데 아이는 그걸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가진 고유한 생명력이 드러날 때 그 힘은 둘레에 다른 사람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생명력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어느새 날이 저문다. 영석씨는 군불도 지펴야 하고, 원정씨는 밥상을 차리려고 일어선다. 잠자리를 따뜻이 하고, 밥을 먹는 것이야말로 생명력의 가장 기본일 테다.

    민성이네는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아침 겸 점심은 10시쯤. 저녁은 오후 다섯 시쯤인데 저녁으로 민성이네가 손수 농사지은 쌀밥에다가 시금치무침, 배추쌈, 콩장, 감자전이 나왔다. 안주인의 정갈한 솜씨로 작은 상에 안온하게 차려진 밥상, 잘 먹었다.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그림을 감상하는 아이들. 아이가 그린 그림이어서인지 그림을 보는 아이들 표정이 무척 밝다. 전시회를 찾은 엄마들은 자신이 아기를 낳은 경험을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작은아이 태현이는 내게 관심이 많다. 나 또한 이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 그래서인지 태현이는 자기가 가지고 놀던 놀잇감을 하나 둘 내게 가져다준다. 장난감 자동차, 필통, 연필….

    아이가 내게 건네준 것 가운데 전기요금 고지서도 있다. 언뜻 보니 눈에 확 띄는 게 있다. 지난달 전기요금이 2200원이다. 그 전달은 1200원.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없는데도 전기요금이 1만원가량이다. 이쯤이면 민성이네 생활 씀씀이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삶은 여유롭고 생동감이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이들 교육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민성이는 그림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적극적이다. 보통 아이들은 글을 숙제로 마지못해 쓰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민성이가 글을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니, 쓰고 싶은 이유라고 해야겠다. 민성이가 곁에서 듣고 있다가 나선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글을 썼는데 나중에는 옆 마을에 사는 누나도 같이 하데요. 어른들이 그 누나 보고 잘 썼다 하니까, (저는) 화가 날 정도예요(웃음).”

    이곳에선 이웃 몇 가정이 모여 한 달에 두어 번 문예모임을 한다. 재미있는 건 어른 아이 모두 함께한다는 점이다. 누구든 글을 쓰고, 또 이를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한다고 한다.

    “민성이가 샘이 많아요. 그 누나는 민성이보다 나이도 많고 글도 잘 쓰니까 마을 문예 모임에서 관심이 집중되잖아요. 저절로 아이한테 자극이 되나봐요. 처음에는 어른들한테 자극을 받아 아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이들 글을 보면서 어른들이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금방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아빠 없으면 글이 안 되겠네”

    다음 글은 민성이가 문예 모임에서 발표한 ‘아빠 이야기’라는 글이다.

    〈 아빠 이야기 〉

    나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늦게 양치를 하는 아이였다. 그날 밤, 태현이를 재우기 위해 엄마 아빠가 먼저 양치를 하고 방에 들어갔다. 아빠가 들어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불 다 끄고 들어오인나(들어오너라).” 나는 양치를 다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뛰어 들어갔다. 그때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뛰면 구들 꺼진다! 한번만 더 그래봐라!” 갑작스럽게 아빠가 화를 내서 평상시 습관대로 아빠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울었다. 다시 돌아누워 아빠의 얼굴을 보며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말했다. “아빠, 고마워. 글 쓸 소재를 제공해줘서.” 이렇게 해서 아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며칠 전 아침에 갓과 배추를 막장에 찍어 먹었다. 내가 말했다. “이거 갓이야, 배추야?” 아빠가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니 산골에 살면서 어떻게 갓과 배추를 구별 못하노! 니 지인짜 문제네. 배추는 두껍고 갓은 얇다 아이가.”

    근데 며칠 전 엄마가 갓을 씻으려고 차곡차곡 포개어 물에 담궈놨는데 저녁밥을 하려고 하니 갓이 안 보여 아빠에게 “혹시 당신 수돗가에 있는 갓 못 봤어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빠가 화를 벌컥 냈다.

    “그기(그게) 갓이었나? 나는 배추껍데긴 줄 알고 버렸다. 담가놨으면 말을 해야지, 와 말을 안 했노? 당신 잘못이다.”

    오늘 아침 나는 아빠에게 이 글을 보여 주었다. 아빠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없으면 글이 안 되겠네.”



    짧은 글 한 편이 많은 걸 보여준다. 내가 평소에 알던 영석씨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사실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시콜콜 알기는 어렵다. 게다가 개인의 치부(恥部)를 드러내는 거라면 숨기고 싶을 게다. 그런데도 영석씨는 아이가 쓴 글을 모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보여준 것이다. 나 자신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지만 아이가 이 정도 글을 쓴다는 건 놀랍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데 표현과 기교를 떠나 솔직하면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적절하게 대화를 끌어와 현장감도 있다. 아이가 글을 쓰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전시회 뒤풀이 자리에서 기타를 치는 공영석씨. 영석씨는 음악과 글쓰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전인이 되는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

    성장의 출발

    “사실 처음에는 글쓰기 자체가 어려웠어요. 민성이는 글쓰기를 자주 안 했으니 말하기와 글쓰기에 차이가 커요. 사고의 속도와 글 쓰는 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는 사고가 잘 이어지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일단 민성이가 이야기를 먼저 하고 내가 이를 받아 적는 식으로 했지요.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그게 오히려 좋은 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다가 문예모임을 통해 글이 활자화되니까 아이들이 많이 달라지데요. 이제는 서로 먼저 발표하려 해요(웃음).”

    원정씨도 이야기를 보탠다.

    “전에는 이런 표현을 하면 아빠가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민성이에게 있었어요. 지금은 당당해져서 그런 게 없어요. 글쓰기가 그런 효과를 낼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린아이가 지적하니까 어른이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내가 남편 잘못을 지적하면 ‘내만 그러나? 당신은 안 그러나?’(웃음) 결국 묵은 이야기까지 나와서 부부 싸움이 되기 쉬운데(웃음). 이렇게 아이가 명료하게 지적하니까 반성을 안할 수 없지요.”

    영석씨 또한 원정씨 이야기에 공감하며 한술 더 뜬다.

    “아이가 내 잘못을 지적했지만 사실 뿌듯하지요(웃음). 이 이야기는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웃음). 그런 걸 계기로 아이도 잘되고 나도 잘되는 점이 있구나. 아이는 글을 써서 좋고 나는 나쁜 점을 고쳐서 좋고. 그 과정에서 아이도 나도 성장하니까. 원정씨가 내게 지적을 해서 고쳤다면 억울한 생각도 들고(웃음). 나중에 복수를 벼르잖아요, 괜히 반찬 투정을 한다든가(웃음).”

    보통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경쟁, 시험, 성적, 학벌 이런 걸로 재단하기 쉽다. 그러다보면 성장이라는 본래 뜻을 놓치곤 한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점점 더 표정을 잃는다든가 부모와 소통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거대 흐름에서 한발 물러나, 교육에 있어 아이의 성장에 무게를 둔다면 큰 뜻이 있지 않을까.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면서도 충만함과 기쁨으로 나갈 수도 있으리라. 그 과정에서 어른도 성장할 수 있다면 자식 키우는 맛을 단단히 누리는 셈이다. 무엇이 성장을 가로막을까. 또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자급자족하는 예술

    “성장의 출발은 자기 단점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나 싶네요. 얘가 그런 글을 쓰니까.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그 글을 발표하니까. 효과가 당장 나타나는 거지요. 보통 조언을 한다면, 자기와 처지가 비슷하거나 아니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하잖아요? 아이들이 조언해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민성이 역시 내게 조언한다고 한 거는 아니라고 봐요. 내가 그렇게 해석한다는 거지요.

    사실 사람마다 고쳐야 할 점이 많이 있잖아요. 저는 화를 잘 내요. 큰일에는 화를 잘 안 내는데 오히려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내요. 잔소리도 많이 하는데, 이 두 가지가 나중에 나한테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가족 사이 에너지 소비이지요. 에너지가 자꾸 그런 쪽으로 새니까. 문제지요. 그보다는 창조 쪽으로 나아가야하는데….

    내 잘못을 아이가 지적해주니까, 전체 가족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거지요. 가족 전체가 성장하지 않으면 개인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봐요. 반대로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가족의 성장은 있을 수 없고요.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거지요.”

    이는 사회 전체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사회가 성장해야 개인도 성장할 수 있고, 개인이 성장할 때 사회도 조금씩이나마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사회적 정쟁은 사회적 에너지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민성이는 혼자서 여러 가지를 한다. 그림도 그리고 뜨개질도 한다. 그러다가 자기 이야기가 나오면 슬며시 끼어들기도 한다. 또 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은 태현이랑 놀기도 한다. 태현이도 저대로 놀다가 엄마에게 달려가 젖을 빤다. 나를 포함해 다섯 사람이 남남이 아닌 식구처럼 한방에 둘러앉아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젖을 먹고 난 태현이는 또 저대로 논다. 가끔 민성이가 그림 그리는 데 참견도 하고,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평화롭다고 해야 할까. 고요하면서 그 어떤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분위기다.

    밤이 늦으니 아이들 눈꺼풀이 조금씩 처진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어른들도 이야기를 접고 함께 잠을 잔다. 이튿날은 만남을 정리하는 뜻에서 음악 교육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 가족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의 자급자족이란다.

    “자기 먹을 거를 자기가 농사를 짓듯이 예술 작품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 작품을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 달리 말하면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특정 분야의 예술가가 되라는 건 아닙니다. 모든 분야를 두루 표현할 줄 아는 전인적인 사람이 되는 게 우리 바람이지요. 이는 예술 이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삶에서 느끼는 감동이랄까, 그런 게 있다면 하나만 얘기해주세요. 되도록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다면 더 좋은데.”

    신성함… 충만함…

    “해가 떠오를 때 우리 뒷산 소나무에 먼저 햇살이 닿아요. 천천히 햇살이 아래로 내려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생각해요. ‘조금 후에는 내 몸에 햇살이 받겠지.’ 내 몸에 햇살이 조명처럼 천천히 내려오면서 따뜻한 게 몸으로 느껴진단 말이에요. 내 몸이 그렇듯 저 나무나 새들도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을까. 해가 뜰 때 햇볕을 비춤으로써 사물 하나하나를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해라는 존재가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느끼게 해준다는 거지요. 그때 우주의 신성함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 같거든요.”

    열 살 민성이의 그림은 생명이 되고, 우주가 되고…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정농회 회원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우주의 신성함’이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또 다른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민성이네 집에 이틀을 머물며 나눈 이야기만 해도 매우 많았다. 교육, 성장, 예술, 자급자족, 전인. 사실 그마다 바다가 펼쳐지듯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어떤 충만함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몸을 비추는 햇살조차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요즘 세상은 아이 키우기가 점점 어렵다 한다. 그러다보니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는가. 출산이 설렘이 되고 축복이 될 수 있으며, 아이 키우는 과정 자체가 그 부모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한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런 힘을 서로 주고받는 날은 정녕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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