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불확실성 시대’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할까

태양, 물길, 향기, 풍경의 원칙에 충실하라

  • 봉준호 부동산 컨설턴트 drbong@daksclub.co.kr

    입력2007-02-06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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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몇 블루칩 아파트는 5년새 400%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과시한다. 월급, 적금으로는 도무지 만들어볼 수 없는 수식(數式). 그래서인지 아무리 ‘막차’라지만 지금이라도 내 집 마련을 해야겠다는 사람부터 이제는 ‘던질 때’라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부동산시장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불확실성 시대’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할까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수입 오디오가게를 운영하는 K씨는 오디오를 설치해주느라 지난 10년 동안 서울의 내로라하는 집들은 다 구경했다. 고가의 수입 오디오를 구매하는 이들이 대부분 상류층이고 좋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삼성동 아이파크요? 제가 본 집 중에 최곱니다. 밤 조망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작업보다는 창밖을 내다보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애프터서비스나 업그레이드 때문에 몇 번 더 들렀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더군요.”

    삼성동 아이파크는 2001년 9월 평당 1300만∼1700만원에 분양됐다. 청약 경쟁률은 10대 1 미만이었고 당첨 즉시 전매가 가능했다. 로열층 기준으로 전매 프리미엄은 55평형 5000만원, 73평형은 1억원 정도였다. 얼마 전, 분양가 10억원 남짓하던 73평형 아파트가 무려 50억원에 팔려 나갔다. 집 주인은 5년 만에 시세차익 40억원을 챙긴 셈이다. 한 집안의 CEO(가장)로서 그가 이렇듯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것은 정부 대책을 건건이 거스르는 데 필요한 ‘혜안’과 ‘인내심’뿐이었으리라.

    삼성동 아이파크뿐만 아니라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도곡렉슬, 타워팰리스, 반포주공 등 강남권 블루칩 아파트들의 시세차익 상승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지난 5년여간 부동산시장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 5년에 300~400%라면 상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상승률이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중심도시 부동산도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200% 이상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초강세의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매우 복합적이다. 근원적인 이유라면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달리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여서 가용면적이 좁고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끊임없는 수요’가 예정돼 있는 것. ‘부동산 신화’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 또한 시장가격을 유지해주는 강력한 버팀목이며, 한국에서 처음 겪은 ‘저금리’라는 금융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이미 국가정책으로 현실화됐고, ‘반값 아파트’에 관한 당국의 검토도 진행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종합부동산세, 대선, 집값 거품 같은 굵직굵직한 키워드가 부동산시장에서 화력을 더해가고 있다. 상실의 시대일 뿐 아니라 불확실과 불안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실수요자는 냉정해야 한다. 미시적인 투자수익을 위해 ‘올인’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부동산시장을 좌우하는 큰 판을 읽고, 시장의 역사를 떠올려보고, 집을 사는 데 필요한 원칙과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곰곰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자

    아파트 가격은 무자비하게 오르고, 그 오른 가격이 사회에 주는 파급효과는 너무나 크다. 전두환 정권이나 노태우 정권 때처럼 물량으로 밀어붙일 능력도 없고 생각도 부족한 듯 보이는 현 정부는 몇 년간 ‘공급부족론’을 부정하며 효과적인 공급대책 타이밍을 놓치더니 온갖 요상한 부동산정책을 다 내놓았고 결국은 마지막까지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는 듯하다. 그나마도 신선한 대증요법이라기보다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것에 불과한 인상이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 때로 돌아가보자. 불과 10년 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란 말이 회자됐지만, 그곳이 돈 빌려주고 비싼 이자 받는 데라는 것은 미처 몰랐을 때다. 1998년이 되고서야 국민은 비로소 IMF의 위력을 실감했다. 구조조정, 부동산 가격 폭락, 임금 삭감 등 그전 수십년간 겪어보지 못한 온갖 회오리바람이 그 한 해 동안 몰아쳤다. 가장 타격이 큰 업종 중 하나가 건설업이었다. 누구도 자신있게 부동산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한 데다, 대출금리는 20%에서 내려오는 데 한참 걸렸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지금이 바로 시장경제를 실현해야 할 때’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불확실성 시대’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할까

    단지 내 ‘물길’이 있는 아파트가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각광받고 있다.

    “분양가를 자율화합시다. 외국처럼 건설사가 받고 싶은 가격만큼 받고 주택도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할 때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당장 시작합시다.”

    정부는 1999년 분양가 자율화를 실시했다. 금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이 대책은 빛을 발했다. 서울 서초가든 스위트, 롯데캐슬 84를 시작으로 값비싼 프리미엄 아파트가 줄줄이 나오고, 나오는 즉시 계약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건설사는 그전에는 생각에만 머물렀던 공격적인 시공과 분양을 할 수 있었다. 원목마루도 깔고 시스템 창호도 달고 커튼월 방식의 외관도 채택했다. 수입 대리석과 욕조, 각종 빌트인 제품으로 무장한 인테리어도 가능했다. 오직 건설사와 고객이 합의만 하면 종전 가격의 2배가 넘는 아파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중간에 끼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던 정부가 빠지니 부동산시장은 살아났다. 파는 측은 원하는 것을 만들어냈고, 사는 측은 살맛나는 집에서 살게 됐다.

    광고, 홍보비도 대폭 늘려잡을 수 있었다. 건설사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적정 분양가의 1.5배를 불러봤다. 순조롭게 팔려 나갔다. 국가기관인 토지공사도 질세라 끼어들었다. 신도시를 만들면서 땅값 조성원가의 2배를 불렀다. 정부는 분양권 전매 가능, 소형평수 의무비율 삭제, 일시적 양도세 면제라는 보너스 카드까지 내놨다.

    시장은 금세 복마전이 됐다. 구청은 분양권 전매 신청서에 도장 찍어주기에 바빴고, 당첨된 분양권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수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서 팔려 나갔다. 아수라장이었다. 분양가 규제시대에 지어진 기존의 아파트도 새 아파트 분양가격만큼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평당 700만원짜리는 금세 1000만원이 됐고, 300만원 오르는 데 걸린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다시 1500만, 2000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3억원짜리 아파트를 자기돈 1억원과 융자금 2억원으로 사서 6억원에 파니 3억원이 남았다”는 게 이맘때 유행하던 전형적인 아파트 투자기법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이 대세’라는 시그널이 도처에서 울리자 사람들은 융자를 통한 투자에 들어갔다. 집값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월세나 전세를 낀 집을 자기돈 한푼 없이 사들였다. 이른바 ‘하드 레버리지(hard leverage)’라 불리는 대출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1등 공신이었다.

    청색 전화, 백색 전화, 반값 아파트

    그러던 당국이 수년 만에 1차로 6억원 이상 아파트 담보대출을 옥죄었다. 비싼 아파트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랬더니 6억원 미만 아파트들이 난리가 났다. 오히려 멀쩡하던 2억, 3억대 아파트들까지 마치 전봇대에 조르르 앉은 참새들처럼, 약속이나 한 듯이 5억9500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정부는 다시 모든 아파트 대출 규제 방안을 내놨다. ‘DTI(Debt to income)’라는 낯선 용어를 꺼내들었다. 상환능력을 근거로 해야 한다며, 대출 희망자 연봉의 4배만 융자해준다는 방안이다. 이는 결국 상대적으로 금융감독 당국의 제어가 덜한 외국계 은행과 대부업체의 배만 불리고 있다. 이들의 연 대출이자는 7%를 넘어가고, 조기상환수수료도 상당히 비싸지만 수요자의 발길이 잦아들지 않는다.

    대출 규제는 돈줄을 막아 투자수요를 억제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수요자가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나아가 시장원리를 위배했다는 근본적인 자책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바야흐로 지금의 우리나라, 특히 수도권은 온갖 아파트 규제의 실험장이다. 나올 수 있는 모든 부동산 대책이 다 등장했고, 위헌요소가 있는 불합리한 정책들도 등장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먹히면 다행이고 안 먹혀도 그만’이라는 식의 각종 대책양산은 결국 ‘반값 아파트’라는, 많은 학자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한 방안마저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1960∼70년대에는 청색 전화, 백색 전화라는 용어가 있었다. 전화기가 귀해 재산권 1순위로 인정받던 시대였다. 전화는 프리미엄이 붙어 전매되기 일쑤였고, 월세를 받고 임대되기도 했다. 이런 전화가 백색 전화였다.

    ‘불확실성 시대’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할까

    최신 고급 아파트들은 ‘높은 천장’을 선호한다(위). 아래는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옥상에서 내려다 본 한강. ‘조망권이 곧 돈’인 시대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청색 전화를 내놨다. 전매가 불가능한 전화였다. 청색 전화가 나오면 백색 전화 가격은 금방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희소성이 높아진 백색 전화 가격은 급격히 올라갔다. 청색 전화가 수년간 꾸준히 공급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백색 전화 가격이 떨어졌다. 지금은 전화기를 재산으로 보지 않는다. 널린 것이 전화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주요 토론대상으로 삼는 반값 아파트 도입은 반값 아파트 공급 여력이 꾸준히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판단이다. 한두 군데 땅을 조달해 환매조건부나 토지임대형 반값 아파트를 내놓는다고 해서 전체적인 아파트 가격이 잡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파트 가격상승의 주요인이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이라고 할 때, 공급의 원천인 택지 부족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반값 아파트를 현실화하기는 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왜 멈추지 않고 오르나

    오르는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다면 먼저 ‘왜 오르는가’라는 원초적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많은 한국인에게 거주의 수단이면서 노후대책이며, 최초·최종·최선의 재테크 수단이다. 사놓으면 오르니 손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40여 년 전 서울에 종암, 마포아파트가 생긴 이래 총 6번가량의 아파트가격 파동이 일어났다. 이 중 단 한 번 외환위기 시절에 떨어졌을 뿐, 5번의 파동 때는 두 자릿수 비율로 크게 올랐다.

    다음은 특히 수도권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교와 취업, 생계를 이유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인구는 수요를 형성하고 결국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 수도권 부동산이 투자상품으로 확실하다는 생각에 지방의 투자자금도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이제는 수도권 괜찮은 곳에 나올 만한 택지가 없어 집은 부족하고 새 집은 짓자마자 금세 팔린다. 재건축마저 규제하니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평형의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셋째는 과잉 유동성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풀린 돈과 외국에서 유입된 각종 투자자금은 결국 국내 실물경제의 대표상품인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통화가 많이 풀려도 경제활동이 활발해 돈이 굴러갈 수 있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활동이 통화 공급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자금은 한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2000년 초 벤처기업들의 잇따른 도산과, 바로 이어진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시중에는 500조원이 넘는 과잉 유동자금이 단기성 예금에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자금은 아직도 ‘가장 안정된 투자처’인 부동산을 주목하고 있다. 차고 넘치는 돈에 부동산 가격은 매일 올라간다.

    넷째는 저금리다. 돈은 늘어나고 경기위축 상태가 몇 년간 지속되면서 정부는 계속 저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세계적인 현상이고 바람직한 일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더 많이 풀었다. 연 10%대의 공식화된 콜금리가 8, 6, 4%로 떨어지면서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하자 시중의 자금은 부동산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는 정부의 정책적 실수다. 예측력과 시장감각이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정책 당국자들은 ‘세금폭탄’과 ‘재건축 불가’ 같은 규제를 가하면 시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05년 8월 31일 양도세 강화 및 종합부동산세 신설, 대출제한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세제를 강화하면 시장을 잠정적으로 잡을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세금은 그대로 아파트 가격과 전세금에 더해져서 매매가와 전세가격을 올려놨고, 무리한 규제는 거래를 위축시켜 다시 가격을 올렸다.

    여섯째 이유는 신규 아파트의 고분양가다. 얼마를 부르든지 팔리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인근의 아파트 가격을 올리고 땅값을 올려놓으며 순환곡선을 그린다. 시행사와 시공사는 팔릴 수 있는 아파트 가격의 극대치를 분양가격으로 잡고, 아파트를 사는 사람은 분양 시점 가격의 2배를 입주시점 가격으로 예상하니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래도 ‘살 집’을 사라

    얼마 전 부동산 강의를 마치고 한 40대 주부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처음으로 집을 샀습니다. 1000가구가 넘고 공원이 있고 지하철 역이 가까운 곳입니다. 양쪽 집안에 손 벌리기 싫어서 남편이 주식을 팔고 적금과 예금을 깨고 퇴직금 청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내 돈보다는 은행돈이 많습니다. 잘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동산이 폭락할 수도 있다던데 조금은 두렵습니다. 그리고 돈이 부족해 새 집은 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이 너무 낡았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답장에 이렇게 적었다.

    “잘 사셨습니다. 아파트 가격은 향후 5년간은 ‘가로’로 간다고만 생각하시고 라이프 플랜을 짜보기 바랍니다. 융자금 상환 스케줄과 집을 손보는 작업을 통해 오래 살 만한 집으로 만드는 과정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당장은 벽지, 장판 정도만 교체하고 들어가 살다가 이것저것 체크리스트를 만든 후 조금씩 고쳐가기 바랍니다. 집이 다 고쳐질 때쯤이면 집을 살 때 소망한 것들이 이뤄져 있을 겁니다. 다만 차후에 집값이 오르는 것은 보너스라 생각하고 거기에 연연하지 말기 바랍니다. 근처에 인테리어 잘하는 집 연락처도 첨부했으니 참고하세요.”

    요즘처럼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면 수요자들은 아파트를 주거가치보다는 투자가치로 선택하기 쉽다. 아파트는 집이라는 고유의 범위를 넘어 금이나 보석, 아니면 카지노의 플라스틱 칩 같은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주거가치 100점에 투자가치 100점인 집은 없다. 투자가치가 높으면 일정부분 주거가치를 단념해야 하고, 주거가치가 높은 집을 찾으려면 투자가치를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타워형 고층 아파트 최상층을 예로 들어보자. 집값도 잘 오르고, 잘 팔린다. 조망이 좋다는 점이 수요자의 요즘 니즈(needs)를 120% 충족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살기에는 불편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일단 높은 곳에 있으니 시간이 갈수록 몸이 찌뿌드드해지고 약간의 불안감과 혈압상승이 나타난다. 산소는 당연히 저층보다 희박하고 식물은 꽃을 잘 피우지 못하며 보이는 사물의 위치에 따라 자신이 붕 떠 있는 느낌도 갖게 된다. 외관은 멋지더라도 창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기 힘들어 맘놓고 심호흡하기도 버거울 만큼 쾌적성이 떨어진다.

    좋은 집은 영원한 자산이 된다. 좋은 아파트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원칙적인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는 오래 살 만한 집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좋은 아파트, 값어치 있는 아파트는 꾸준히 가격이 오른다. 몇 년을 살 계획이든 오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노년에도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자녀를 위한 집이어야 한다. 자신보다 자녀의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 사회의 풍조를 감안하자면 자녀를 위한 좋은 교육시설, 좋은 환경을 갖춘 안정된 집이 좋겠다. 신도시 시범단지처럼 단지 내에 초·중·고교가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셋째는 나를 성공시킬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담은 집을 사면 좋겠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이 확보돼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둔 가장은 주방이 넓은 아파트를 구입해야 한다. 집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점이 되는 공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직장에서 성공하려 한다면 직장과 주거지와의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는 대중이 원하는 요소를 갖춘 집이어야 한다. 지하철이 인접해 교통이 편리한 곳에, 시대를 대변하는 트렌드나 평형을 갖춘 아파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고 충분한 대수의 주차시설이 마련돼 있으며 보안시설이 수준급이고 피트니스센터 등 부대 복리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다. 가구수가 많고 시공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높고, 주변에 상권, 생활편의 및 문화 시설이 풍부한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다섯째는 유동성이 확보된 집이다. 금세 현금처럼 쓰일 수 있는, 환금성이 강할수록 좋다. 새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될 때나 급히 집을 처분해야 할 일이 생길 때 원하는 기간 내에 집이 팔려야 한다. 가구수가 많은 아파트일수록 좀더 규격화한 상품이 된다. 한 집의 가격이 정해지면 밀집해 있는 같은 동 위아래 가구들과도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급매’로 파는 일은 줄어든다.

    원칙론을 숙지했다면, 이제 응용파트로 들어가자. 주거가치에 많은 포인트를 두지만, 투자가치도 그에 못지 않은 집을 고르는 방법이다. ‘때’와 ‘위치’와 ‘공간’을 잘 사면 주거가치도 누리면서 성공적인 재테크를 할 수 있다.

    때, 위치, 공간을 사라

    첫째, 3면 조망권을 찾아라. 종래의 아파트는 2면 조망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앞뒤 베란다가 트인 집이다. 그러나 요즘 아파트들은 3면이 트인 것을 선호한다. 3면에 창문이 달렸다는 뜻이다. 소통 공간이 커지니, 개방감도 자연히 커진다. 요즘 인기가 높은 몇몇 주상복합 아파트도 많은 평형에서 3면 조망구조로 설계돼 있다. 심지어 고급 아파트 최상층 펜트하우스에는 4면 조망권이 나오기도 한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트인 집은 이른바 ‘명품주택’이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둘째, 태양이 있는 집을 사라. 앞서 언급한 삼성동 아이파크 73평형은 3면 조망권을 갖고 있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워커힐 쪽 한강이 그림같이 보인다. 북쪽에는 쭉 뻗은 영동대교와 성동, 광진구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서쪽에는 압구정동, 청담동의 크고 작은 빌딩들이 내려다보인다. 도시의 사계절도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도 ‘2%’ 부족한 점이 있다. 정남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거머쥔 듯한 거주자들이 몹시 아쉬워하는 점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간다. 남향의 창에는 늘상 햇볕이 가득하다. 동쪽의 창만 있다면 햇볕이 머무는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까지다. 집은 낮에는 햇볕이 밝게 들어올수록, 밤에는 어두울수록 좋다. 그래서 남향의 창을 가진, 겨울에 따뜻한 집을 적극 추천한다.

    셋째, 향기가 있는 집을 사라. 꽃밭과 벌, 푸른 하늘, 붓꽃에 매달린 이슬방울들, 울창한 수풀 속을 파고드는 작은 새들. 그곳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나무의 질과 꽃밭 디자인, 화원의 크기와 정원 조경의 수준이 아파트의 가격을 가르는 시대다.

    아파트를 지을 때 조경에 투자된 금액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입주자의 자산가치로 승화된다.

    넷째, 물길이 닿는 집을 사라. 요즘 트렌드는 ‘개천’이다. 양재천 청계천 성내천 반포천 등 오물 가득하고 검은 물이 흐르던 예전 서울의 개천은 생태천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복개와 물길 내기 등으로 폭 1~3m에 달하는 작은 수로들이 곳곳에 만들어지면서 바야흐로 웰빙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메말랐던 하천에 다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방류함으로써 수량이 충분해졌고, 청둥오리, 갈대, 갯버들이 어울려 살도록 꾸며놓았다.

    도심의 천들이 이렇듯 계속되는 복원공사로 시골의 맑은 개울 못지않은 모습으로 바뀌면서 천(川)의 혜택을 받는 아파트들이 뜨기 시작했다. 한강 인접 아파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권할 만하다. 한강둔치의 생활, 휴식, 운동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간 경관 등의 개선으로 조망권도 더욱 좋아졌기 때문이다.

    다섯째, 풍경이 있는 집을 사라. 시야가 뻥 뚫린 집, 볼 것이 있는 집, 창밖에 풍경이 있는 집이 좋다. 풍경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잔잔하고 편안하게 세상의 자연과 물상이 눈에 들어오면 된다. 보이는 것들이 아름다울수록 친근할수록 아기자기할수록 집의 가치는 높다.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도, 멀리서 봄을 기다리는 얼어붙은 강나루의 풍경도 아름답다. 고즈넉한 재개발구역의 낡은 지붕들이 보여도 괜찮다. 보이는 공간이 넓은 집이 좋은 집이고,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그 가치는 점차 높게 인정받고 있다. 이 기준만 놓고 보면 건너편 아파트만 풍경으로 보이는 집은 점수가 낮다.

    여섯째, 천장이 높고 네모반듯한 집을 사라. 세계적으로 최고가를 구가하는 최고급 주택들의 스타일은 어떨까? 내부평면으로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가로 세로 3대 2 비율의 직사각형 평면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모든 건축가가 인정하는 ‘주거지로 가장 바람직한’ 평면이다. 물론 천장 높이는 3m 정도로 한국의 일반 아파트보다는 40~70cm 높아서 개방감이 뛰어나다. 천장이 높고 네모반듯한 집은 통풍과 환기가 잘돼 더 쾌적하다. 심리적으로도 가장 안정감 있는 평면이고 풍수학적으로도 최고로 친다. 네모반듯하고 천장 높은 집을 찾으려면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도면을 들여다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기회는 계속 온다

    일곱째, 평탄지(平坦地)에 있는 아파트를 사라. 도심이 좋은 것은 평탄하기 때문이다. 평탄한 곳으로 사람들은 몰려든다. 그곳이 개발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산 5000평과 평지 5000평의 쓰임새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높다. 경사지는 평지로 만들 수 없고 만든다 해도 비용이 많이 들며, 그 사이에 사용면적도 줄어든다. 대신 평지는 가격이 비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동선이 수월하게 나오고, 접근성이 좋은 곳을 선호한다.

    이왕 아파트를 사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평탄지에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은 선택이다. 택시기사들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경사진 언덕에 있는 아파트, 그곳의 중개사들은 “언덕이 있어 산보하기도 좋다”고 판촉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집에 들락날락하는 일상을 매일 ‘등산하는 기분’으로 하기는 부담스럽다.

    마지막으로, ‘때’를 사라.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기 바로 직전에 아파트를 사고 싶어한다. 좋은 위치와 공간은 눈에 보이지만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람직한 매수 타이밍. 아무도 정확히 100%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상식선에서 노력하고 판단하면 70% 이상은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학수고대하던 주변 인프라가 마무리되기 1년 전이라면 ‘그때’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 몇몇 지역을 예로 들면 분당선 연장선 개통, 서울숲 개장, 지하철 9호선 개통,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단지 내 물길 조성 및 통수(通水) 등의 1년 전 시점을 떠올릴 수 있다.

    ‘불확실성 시대’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할까
    봉준호

    1962년 출생

    홍익대 건축학과 및 동 대학 건축도시대학원 졸업(건축사), 동 대학 국제경영대학원 졸업

    현대건설 근무, 네이버·조인스랜드·머니투데이 재테크 칼럼니스트

    現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 부동산컨설팅사 닥스플랜 대표

    저서 : ‘월세 단칸방에서 삼성동 아이파크로’ ‘닥터봉의 부동산 쇼’ 등


    20년 전 바로 이맘때를 돌이켜보면 경기활황에 서울올림픽을 앞둔 기대심리까지 겹쳐 집값 폭등이 지금보다 더했던 것 같다. 이렇다 할 규제도 없고, 그야말로 투기꾼이 활보하던 시절이었다.

    집값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도 이어졌지만, 나름대로 연구와 리서치를 계속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3, 4년 뒤부터는 집값이 쭉 소강, 하향 안정상태를 이어가며 그동안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볼 기회가 생겨났다.

    집을 사는 것은 꿈을 사는 것이다.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평상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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