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독일 경제는 답이 될 수 없다!

‘라인강 기적’ 갉아먹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치명적 자만

  •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 kkmin@kangwon.ac.kr

    입력2007-02-06 18: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학계, 정치권, 시민단체 일각에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자고 한다. 경쟁을 통해 얻은 결실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것. 그러나 사회적 시장경제는 ‘라인강의 기적’을 갉아먹고 독일 경제를 침체시킨 주범이다. 독일의 번영을 가져다준 것은 자유시장경제였다.
    독일 경제는 답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세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장률이 문제다. 잠재성장률도 해마다 추락 중이다. 잠재성장률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는 6.1%였으나 2001∼2004년엔 4.8%로 낮아졌다. 더구나 한국 경제 성장률은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세계 평균보다 낮았다.

    실업률은 어떤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3%, 3.6%, 3.7%로 실업률이 계속 증가했다. 이후에도 낮아지지 않았다. 더구나 전체 실업자의 44%는 청년이다. 분배구조 악화와 빈곤층 증대도 걱정거리다. 지니계수로 본 분배구조는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소득 5분위 분배율(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을 하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것)이 2002년 이후 계속 높아지고 있다(2002년 5.18, 2005년 5.43).

    2007년 새해 경제 전망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기업인은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 경제의 활로는 없는가.

    통일 후유증이 문제?

    학계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단체 일각에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유경제를 중시하면서도 경쟁을 통해 얻은 결실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이념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중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좌파이념과 같다. 자유주의에 중도는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좌파 지식인이나 정치인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폐허에서 독일 경제를 구출하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제적 성과를 올린 이유가 사회적 시장경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독일이 유럽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도 사회적 시장경제 덕분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한국 경제의 발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허구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라인강의 기적’을 갉아먹고 독일 경제를 침체시킨 주범이다. 독일의 번영을 가져다준 것은 자유시장경제였다. 독일의 발전사는 지속가능한 경제질서가 자유시장경제임을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경제가 성공한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독일 경제가 한때 유럽 경제의 성장을 이끈 견인차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 경제는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저성장 고실업이 그것이다. 최근 5년만 봐도 성장률은 1% 안팎, 실업률은 10%를 넘는다. 독일은 지금 병석에 누워 있는 환자다.

    한국의 좌파는 독일 경제의 저성장 고실업의 원인을 1990년 독일 통일의 후유증에서 찾으며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념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독일 경제사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도표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독일 경제는 1970년대 이후부터 눈에 띄게 침체된다. 1970년대 이전에는 완전고용이었지만 이후엔 일관되게 실업이 증가했다.

    ‘노동자의 천국’

    이런 현상은 독일 통일 훨씬 이전에 벌어졌다. 물론 통일이 독일 경제에 부담을 준 것은 사실이다. 생산성이 훨씬 낮은 동독의 노임을 생산성이 아주 높은 서독 수준으로 올린 것이나 동독의 재건을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린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독일 통일이 독일 경제 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통일의 후유증을 겪지 않은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제도 매우 어렵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스웨덴의 실업률이 15%를 상회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실업률도 높다. 유럽 국가의 성장률은 연 평균 2∼3% 안팎이다. 통일 문제가 없는 유럽에서 저성장 고실업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독일 경제의 침체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1970년을 전후로 독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1970년 이전에는 높은 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을 보이던 독일 경제가 왜, 이후엔 저성장과 고실업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규명해야 한다.

    1970년대 전후 독일의 정치 상황을 보자. 1970년대 이전, 특히 1960년대 중반까지는 사실상 자유시장경제의 시대였다. 조세율은 낮고 정부 지출은 적었다. 균형예산 원칙이 지켜졌다. 노동시장도 유연했다. 한마디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었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지 않았고 기업보다 노동자를 중시하지 않았다. 최선의 복지정책은 성장이고 이는 경제자유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봤다. 빈곤의 원인을 자유경쟁의 부족에서 찾았다. 따라서 빈곤을 퇴치하는 최선의 정책은 자유경제라고 보았다. 국가의 과제는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 결손가정, 무의탁 노인에 대한 보호라고 여겼다. 이 같은 제도적 개혁의 지적 기반은 독일의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질서자유주의’였다.

    그러나 1970년 이후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독일 사회에 좌경화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로 1968년 시작된 문화혁명이다. 처음에는 반미운동, 반제국주의운동의 성격을 띠었으나 나중에는 기존 사회와 기성세대의 모든 가치, 권위, 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사회주의운동으로 발전했다. 좌파 세력은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가 불의와 기회주의가 판을 친 역사의 산물이라며 그 속에서 성장한 기성세대는 불의의 인간이자 기회주의적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기존의 지배세력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꿔 바꿔’가 슬로건이었다.

    독일의 성장률과 실업률
    기간 평균성장률 (%) 평균실업률 (%)
    1950 - 1955 9.56 8.30
    1956 - 1960 6.96 3.14
    1960 - 1965 4.84 0.76
    1966 - 1970 4.04 1.18
    1970 - 1975 2.30 2.08
    1976 - 1980 3.30 4.20
    1980 - 1985 1.18 8.10
    1986 - 1990 3.44 8.34
    1990 - 1995 2.22 9.32(7.74)*
    1996 - 2000 2.00 11.78(9.8)*
    2000 - 2005 0.62 11.5(9.24)*
    출처 : 독일 통계청 통계연감 *괄호안의 수치는 서독의 실업률


    당시 정치적 화두는 분배와 복지 그리고 결과적 평등, 경제 민주화였다. 정부는 삶의 함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난폭한 자유경쟁의 결과를 수정하기 위해 분배정책과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이념적 기초는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이는 정부 지출의 증가, 정부 부채와 조세 부담의 급증 그리고 광범위한 경제규제의 형태로 구현됐다.

    독일적 복지국가가 적극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8년 좌파가 벌인 문화혁명 여파 때문이다. 노동과 복지 그리고 교육부문에서 좌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업의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일었다. 정부는 주택, 건강, 노후, 노동, 교육, 기업 등 공공성을 띤다고 여겨지는 모든 부문을 통제하고 규제했다.

    독일 경제는 답이 될 수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은 사회적 설계주의에 기반을 두었다. 이는 정부가 사회를 이상적인 곳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경제성장에서 자신감을 얻은 독일 정부는 국가가 시장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능력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국가가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의 증대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성장과 분배가 결합된 경제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여겼다.

    여기에다 언론과 국민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분배의 불평등, 경기변동에 의한 소득의 불안정, 실업의 위험성이 자유시장경제의 문제라고 보았다. 경쟁에 대한 반감도 폭넓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노벨경제학 수상자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자로 칭송받는 하이에크는 사회적 설계주의를 일러 ‘치명적 자만’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하이에크가 지적한 대로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은 어떻게 독일 경제의 역동성을 약화하고 저성장과 고실업을 야기했을까. 우선 노동분야부터 살펴보자.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창한 좌파는 독일을 노동자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이는 노동을 특별한 서비스로 취급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나왔다. 친(親)노동성향을 구현하기 위해 산별노조, 해고억제를 통한 고용보호,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 등을 도입했다.

    산별노조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달성하겠다는 명분에서 도입했다. 임금과 노동조건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와 단체협상을 통해 정해졌다. 따라서 기업별, 지역별, 부문별 차이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됐다. 개별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단체협약은 중간 또는 하위 업체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줬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기로 종업원과 합의해도 이는 불법으로 무효화됐다.

    발목 잡기 좋은 제도

    해고억제를 통한 고용보호 때문에 독일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기도 어렵다.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기업은 이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다. 부양가족이 많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 근무기간이 오래된 사람을 해고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해고수당 지급도 기업에 큰 부담이었다. 해고와 퇴직수당 지급 문제를 두고 법정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법원의 판결은 대부분 노동자에게 유리했는데, 이런 판결은 결과적으로 기업의 노동 수요를 억제하고 실업자에게는 노동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친노동정책의 절정은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도입된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다. 기업의 인수합병, 입지 선정, 해외투자, 연구개발, 고용과 해고 같은 결정에 노동자 대표들이 참여하다보니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상황변동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기업 적응력을 떨어뜨렸다.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의 발목을 잡기 좋은 제도다. 종종 기업가는 이를 풀기 위해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경제 논리에 따른 경영을 방해한 것이다.

    독일 경영자의 56%는 이런 제도들을 반대한다. 외국 자본의 독일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독일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고, 독일의 주식시장 발달이 지체되는 것도 이런 제도들 탓이다.

    요컨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높이고 노동수요를 억제해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불리하다.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이다. 신규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부녀자와 같은 취약 근로계층이 직접적인 피해자다. 서민의 삶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오히려 서민을 괴롭히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것이 1970년 이후 대폭 확장한 복지제도다. 독일 복지제도는 시혜성이 대단히 크고 관대한 것이 특징이다. 노령 연금, 간병보험, 건강보험, 실업보험 제도로 구성돼 있고, 실업보험은 실업급여, 실업보조금 그리고 사회부조금으로 세분돼 있다. 그러나 이것이 빈곤 탈출을 막고 독일 경제의 침체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노동자를 해고로부터 각별히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보호한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으면 제1단계로 실업보험에서 지급되는 실업급여(종전 노임의 67%)를 받는다. 그 기간은 나이에 따라 다른데 고령노동자의 경우 32개월 동안 받는다.

    실업은 ‘괜찮은 직업’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지나면 제2단계로 실업자 보조수당(종전 노임의 57%)을 받는다. 보조수당을 받지 못하면 이제는 제3단계로 사회부조금을 받는다. 사회부조금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받는다. 기간은 제한이 없으며 최소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를 정부가 지급한다.

    이처럼 일자리가 없어 소득이 없는 실업자는 세 단계로 구성된 사회안전망에 의해 보호받는다(개혁과정에서 제2단계와 3단계를 통합했다). 실업자는 이뿐 아니라 난방보조금, 주택보조금도 받는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는 경우엔 질병수당을 받는다. 첫 6주에는 종전 소득 전액을 받고 이후에는 80%를 받는다. 질병수당 지급은 3년 동안 78주로 제한돼 있다.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꾀병 부리기 좋은 제도다.

    그런데 정부의 복지급여(실업급여, 실업보조금, 사회부조금, 병가수당)는 노동공급과 노동수요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노동자는 복지급여보다 적은 노임을 받으면서 노동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시혜적 복지제도에서 실업은 ‘괜찮은 직업’인 셈이다.

    복지급여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줄인다. 실업을 증가시키고 장기 실업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독일 실업자 중 장기 실업이 과반을 넘는 이유가 이런 복지제도 때문이다.

    실업보험과 연금보험, 의료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은 보험료와 정부예산으로 조달한다. 보험료를 보자. 세 가지 보험료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1970년 노임의 26.5%에서 2006년 41.3%로 급증했다.

    그런데 이 보험료의 반은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노동자가 부담한다. 노동자 한 명을 채용하면 기업은 그 노동자의 노임과 별도로 그의 보험료 반을 부담해야 한다. 노임과 보험료를 합한 노동비용은 시간당 약 3만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것이 기업의 노동수요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기업이 임금 외에 지급하는 노동자의 보험료는 사실상 노동수요에 대한 조세나 마찬가지다.

    보험료는 생산성과 무관하게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수요의 감소와 고실업의 요인으로, 그리고 효율성 상실과 성장의 침체 요인으로 작용했다.

    독일 경제를 침체시킨 요인의 하나로 비효율적인 교육제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비효율성은 1970년대 이래 성장률의 하락과 실업의 증가를 야기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독일에서 교육받는 데 개인부담은 전혀 없다. 전적으로 조세로 공급한다. 독일 교육의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보자.

    학생이나 학부모는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거주지별로 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학교도 학생 선발권이 없다. 지역에 따라 학생을 할당받는다. 대학들도 중앙정부로부터 학생을 할당받는다. 대학의 학생선발권이 제한돼 있어서다. 학생의 대학 선택권도 제한돼 있다. 이런 제도에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국제학력평가에서 꼴찌

    전통적으로 독일 교육은 경쟁의 원리를 적용했다. 학습의욕을 강화하고 교육 공급자의 능력을 개발하려면 무엇보다 경쟁이 필요하다고 봤다. 경쟁 없는 교육, 평준화 교육제도는 지적 수준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경제적으로나 지적으로 가난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8년 독일 좌파가 이끈 문화혁명은 노사관계와 복지시스템은 물론 교육 전통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교육에서 경쟁의 원리를 배제했다.

    경쟁이란 필연적으로 사회그룹을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 독일 좌파들은 이것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학을 서열화하는 것, 학교를 서열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학생을 서열화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거부됐다.

    평등주의 교육의 결과, 학생들은 학습 동기를 잃고 학습기강이 해이해졌다. 교육 수준도 매우 낮아졌다. 대학은 물론 초·중등학교도 사회가 요구하는 적절한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다. 독일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국제학력평가 시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평가에서 독일은 꼴찌였다. 그런 결과에 독일 시민은 물론 정계, 학계와 교육계는 아연실색했다. 20세기 초에 독일이 누린 학문적 명성에 비춰 본다면 이 같은 결과는 수치(羞恥)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노벨상의 45%를 독일인이 차지했다. 자연과학 문헌의 80%가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쓰일 만큼 독일의 학문적 성과는 국제적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학 간의 경쟁, 학자 간의 경쟁, 그리고 학생 간 경쟁의 결과였다. 이를 통해 독일 경제를 이끌어온 4대 산업(전기, 화학, 기계, 자동차)의 기초를 다졌다. 이것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밑거름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독일의 대학은 세계적이었다. 베를린 의과대학생 중 절반은 영미 출신이거나 외국인이었다. 약학과 물리학, 기계공학도 세계적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옛이야기일 뿐 독일의 학문적 명성은 퇴색한 지 오래다.

    대학과 연구소의 경쟁력을 추락시킨 원인은 정부 규제다. 대학과 연구소도 노동시장와 똑같이 정부의 규제를 받았다. 교수와 연구소 연구원의 해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연구하지 않아도 정년이 보장돼 있다. 연구하려는 의욕이 생길 리 없다.

    협조적 연방주의가 문제

    대학과 연구소는 학생이나 행정요원 그리고 교수나 연구원 등 모든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운영된다. 합의제는 대학과 연구소의 혁신적 환경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대학과 연구소의 재정은 정부가 배정한다. 여기엔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집단주의)을 중시한다. 정부 정책을 내놓을 때 사회 내 대규모 그룹들이 합의해야 한다. 원탁협상이나 위원회 제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사회적 연대, 노사정위원회, 노동연대 등이 그것이다. 거대 기업의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도 한통속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이런 집단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합주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사회의 중요한 집단이 동의하지 않으면 개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조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한 법개정에 반대한다. 분배와 형평 우선주의가 지배할 때 조합주의는 개혁을 봉쇄한다. 그 결과 경제의 역동성이 상실된다.

    조합주의의 두 번째 심각한 결함은 시장경제의 분권적 문제해결 방법을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장경제는 변화가 자동적으로 이뤄지고 시장 참여자가 각자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지식을 최대한 이용한다. 그러나 조합주의는 시장보다 현명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세 번째 문제는 경제정책의 단기성과 비일관성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성, 경제정책의 장기적인 영향, 세대 간의 예산제한 등의 문제를 등한시한다.

    독일 경제를 침체시킨 중요한 요인 중엔 정치제도도 한몫했다. 독일의 선거제도는 지역대표제와 비례대표제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항상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제도적 혁신을 단행할 단독정부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이익단체로부터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복지예산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 지출이 증가했고, 정부의 규제는 강화됐다. 이는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독일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에 불리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에 유리하다.

    독일의 연방제도는 모든 지역의 균형발전과 같은 평등주의 요소를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모든 지역에 유사한 삶의 조건을 확립하자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연방주의는 영미 국가의 경쟁적 연방주의와 다른 협조적 연방주의다.

    “쓸 돈이 없다”

    경쟁적 연방주의에서 각 주(州)정부는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을 자기 지방으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를 통해 각 주와 지방이 발전하고 자원이 배분된다.

    반면 협조적 연방주의는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을 주정부끼리 나눠 갖는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연방주의는 분배적이다. 나눠먹기 식이란 얘기다. 각 주의 정책도 주정부끼리 타협과 결탁을 통해 사전에 조율한다. 정책 경쟁이 없다. 주정부의 이런 결탁과 사전 조율은 카르텔이나 다름없어 각 주정부의 혁신을 방해한다. 조세수입은 중앙정부로부터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 경제 침체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존의 생산자와 그들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규제는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으로부터 도출됐다. 전화와 전신 서비스, 우편, 통신에 대한 정부 보호는 이른바 ‘공익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명분으로 정당화됐다. 그러나 통신 분야의 혁신과 새로운 일자리의 등장을 가로막았다.

    노동부문도 마찬가지다. 내부자는 보호하고 외부자의 노동시장 진입은 억제했다. 사회보장부문,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교육제도, 조세정책도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으로부터 도출됐다. 특정 산업부문과 기업에 퍼주는 보조금제도도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의 산물이다. 이런 보조금이 국내 총생산액 대비 7.5%를 차지한다.

    개인은 소득의 60%를 사회보장 기여금과 세금으로 국가에 낸다. 이것을 빼고 나면 쓸 돈이 없다.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 결과 고급두뇌들이 해외로 유출됐다.

    요컨대 사회적 시장경제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역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경제발전의 기반을 약화하고 말았다. 정부만 살찌게 만드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가난의 탈피를 막는 것도 사회적 시장경제다.

    독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극복하고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립하지 않는 한, 교육 사회주의를 해체하지 않는 한, 복지제도를 축소하지 않는 한, 독일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세계사는 과거 동유럽과 같은 중앙집권적 경제 질서는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와 같은 중도적이고 온건한 사회주의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명한 독일인은 시장경제의 르네상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독일 정부는 시장경제를 복원하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 대신에 자유시장경제, 독일 경제의 활력을 가져왔던 시장경제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좌파 지식인은 고용과 성장만으로 한 체제의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성장률이 낮다지만 이를 어떻게 나눠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시장경제가 비록 저성장을 불렀지만 그래도 분배가 고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이혼율 높고, 출산율 낮고

    그러나 성장 없는 경제, 정태적인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성장하는 역동적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명랑하고 낙천적이다. 여유롭고 관대하다. 그러나 성장 없는 정체된 사회는 우울하고 침울하다. 사람들이 여유도 없고 비관적이며 편협해진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은 2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맞다. 저성장과 고실업에 시달리는 독일 사회는 지금 우울함과 불안감, 그리고 재산권 범죄의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장이 우선이다. 성장하는 경제만이 고용을 증가시킨다. 실업은 고통 중의 고통이다. 활동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고용과 성장은 체제의 성과를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고용도 성장도 달성할 수 없고 도덕적 가치도 손상시킨다. 근면과 추진력, 책임감, 신중(愼重)의 미덕, 진취성 등 수백년 동안 축적된 도덕적 자본까지 갉아먹는다. 독일에 라인강의 기적을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런 도덕적 자본이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가정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가족이 해야 할 일을 정부가 빼앗아갔다. 가족의 소중함, 가족에 대한 개인의 책임, 가족의 유대감을 소멸시켰다. 예컨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국가가 도맡다보니 부모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자연히 자녀와 부모의 유대감이 약화됐다. 또 부부관계도 약화시켜 독일 사회의 이혼율(30%)은 스웨덴을 제외하고 제일 높다. 출산율은 1.27로 유럽에서 최하위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 모두 과도한 복지정책 탓이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면교사(正面敎師)는 될 수 없다. 특히 관대한 복지제도, 연금, 의료보험과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 국민소득 대비 정부 몫의 증가, 조세 증가, 그리고 친노동정책을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독일의 평준화교육은 평준화는 고사하고 교육의 비효율성만 야기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도 고실업과 저성장의 주범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이를 개혁의 주요 대상으로 지목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집단주의는 경제와 사회를 경직화하고 사회의 역동성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기업의 혁신과 도약을 가로막은 것은 은행 중심의 금융제도다. 자본시장에서 은행의 역할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업의 비약과 혁신을 가로막는다. 그 결과 IT(정보통신), BT(생명공학기술) 산업과 같은 첨단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배울 게 없다!

    유럽식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운명을 다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지식인은 드물다. 오히려 독일 기업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기업의 수출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시장경제는 살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독일 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동을 자본으로 대폭 대체했거나 일자리를 해외에서 창출하고 있어서다. 독일 기업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탈피했다. 그 결과 독일은 실업률 증가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다.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은 자유경제라는 것, 이것이 독일 경제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의 벽을 뛰어넘어 2만, 3만달러 시대로 가는 길은 자유시장경제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독일 경제는 답이 될 수 없다!
    민경국

    1949년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석사·박사 (경제학)

    한국비교경제학회 이사, 한독경상학회 부회장, 한국하이에크학회 회장 역임

    現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저서 : ‘한국 제3공화국의 경제정책’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국민경제학의 기본원리’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 연구’


    독일 경제는 멕시코나 아르헨티나처럼 결코 허약한 경제가 아니었다. 유럽 경제를 이끌면서 유럽통합을 주도할 만큼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경제였다. 그러나 평등을 내세운 포퓰리즘 정책은 독일처럼 막강한 경제까지 여지없이 망가뜨렸다.

    평등주의 정책으로는 고용과 성장을 얻을 수 없다. 노동자를 위한 최선의 정책, 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은 자유시장경제의 확립이라는 것을 오늘날 독일 경제가 가르쳐주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