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기면서 맛본 생명체험, ‘사랑밭’을 충만케 하다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02-07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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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을 보살피고 키우려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다. 이 꿈을 현실로 바꾸는 일. 그게 일자리가 되고 밥벌이도 되며, 자신이 소망하는 사회운동도 되는 삶. 그 소망이 도시에 뿌리내릴 때 도시는 생명력이 넘치는 또 다른 문명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기면서 맛본 생명체험, ‘사랑밭’을 충만케 하다

    추수감사제날, 미리 온 회원들이 텃밭을 갈무리하고 있다.

    ‘도시농업’이란 게 있다. 도시와 농업. 사실 이 둘은 선뜻 연결되지 않는다. 농업은 시골에서 이루어지고, 도시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익숙하다. 그런데 도시에서도 ‘농업’을 한다. 그렇다면 이는 주말농장과 어떻게 다르고,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도시농업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안철환(45). 그는 도시농업의 개척자이자 전도사라 해도 좋을 듯싶다. 도시농업을 사회운동 차원에서 널리 퍼뜨리고 있는 도시농업운동가다. 경기도 안산에서 ‘바람들이 농장’을 운영하며, 전국귀농운동본부 산하의 도시농업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몇 년 사이, 그가 도시농업 관련 책을 낸 것만 해도 여러 권이다.

    재미로, 보람으로

    철환씨는 붙임성이 참 좋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몇 해 전, 그가 산골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밭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루에 웬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자기 소개를 하더니 다짜고짜 나보고 ‘형님’이라고 한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참 별나다 싶었다. 나는 누구에게 형님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 오래도록 몸고생 마음고생을 함께 해 서로 허물이 없어져야 ‘형’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형님이라고 하는데야 싫어할 수가 없다. 그러고는 시골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뜬금없이,

    “형님, 시골 내려온 뒤 부부 관계는 어때요?”



    참 당돌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적인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해 어이가 없었다. 시골은 도시와 달라 부부가 늘 붙어 일하는 구조이기에 귀농한 뒤 부부 관계가 어찌 달라지는지 궁금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하자면 친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스스럼없는 행동은 자주 만나야 친해지는 게 아니라 솔직함으로 다가가면 누구나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 후 그를 일년에 한두 번 만났다. 그런데 그의 일과 삶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사람이 새롭게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그는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는 장애인이다. 소아마비 2급 장애인으로 목발을 짚고 다닌다. 놀랍게도 그 몸으로 농사도 400평가량을 손수 짓는다. 그러면서 도시농업운동과 관련하여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도시농업은 아무래도 규모가 클 수 없다. 작게는 5평, 크다고 해야 1000평을 넘기가 어렵다. 대신에 농업과 관련된 모든 일이 가능한 게 도시농업이다.

    우리 식구 또한 기업화한 농사보다는 작은 규모로 자급자족 농사를 짓는다. 되도록 무경운 농법(땅을 갈지 않고 짓는 농사법)을 지향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도시농업은 여러모로 친근하다. 도시농업이 발달하면 시골 농사꾼이 도시에 가서도 자기 전문성을 살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반대로 도시농부들은 도시 전문성을 살리면서 시골에 자리잡기가 한결 쉬울 것 같다. 도시농업이 발전하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일상적인 고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상품은 퇴비 한 포대

    기면서 맛본 생명체험, ‘사랑밭’을 충만케 하다

    바람들이 농장에 있는 원두막, 풍한정(風閑亭). 이곳은 바람이 많은 곳이라 바람을 막아주는 정자란 뜻.(위) 우수회원에게 으뜸상으로 책을 주고 있는 철환씨. 자루에 든 것은 호미다.(아래)

    그동안 철환씨가 우리 집에 자주 왔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를 만나러 바람들이 농장을 찾았다. 그가 관리하는 밭은 1400여 평. 이곳에 회원들을 상대로 도시농부학교를 열었다. 회원은 100여 명. 회사원, 공무원, 교사, 의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들 도시에서 전문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안산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오고, 성남에서도 온단다.

    농장을 찾은 날은 추수감사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추수감사제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벌이는 잔치다. 농장까지 가는 길에 도시와 농촌이 번갈아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찾아간 농장은 겨울이라 그런지 을씨년스러웠다. 거두고 남은 배춧잎이 널려있고, 군데군데 대파만 싱싱하게 서 있다. 농장 입구에 몇 사람이 두부를 만들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느 정도 모이자 간단히 식을 거행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사람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이다. 상품이 인상적이다. 으뜸상은 텃밭 가꾸기에 대한 책 한 권과 퇴비 한 포대. 그밖의 상으로 김을 매는 호미를 줬다.

    식이 끝나고는 음식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잔치 음식은 두부다. 이 곳에서 손수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어쩌면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의식이고 잔치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회원 한 사람이 농사지은 콩이래야 얼마나 되겠나. 기껏 한두 됫박. 그런데 십시일반이라고 한 사람이 콩 한 그릇씩만 내어놓아도 얼마나 푸짐하겠나. 이 날 보니 회원마다 집에서 콩을 갈아왔다. 이를 모아 베보자기에 넣고 짜 찌꺼기를 거른 다음 가마솥에다가 끓인다. 장작불을 지펴가며. 한쪽에서는 콩물을 짜고 남은 비지로 비지찌개를 끓였다. 뜨끈한 찌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순두부가 된다. 순서에 따라 순두부가 되자, 또 순두부를 한 공기 먹었다. 그러고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틀에다 순두부를 붓고 베보자기를 씌운 다음 돌을 얹는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두부가 나온다. 정말 볼품이 없다. 얇고 모양도 들쭉날쭉. 그래도 자신들이 농사지은 콩으로 손수 만든 거라 잘 먹는다. 어떤 분은 두유를 만들었다며 또 한 그릇을 가져왔다.

    이제 다 먹었나? 아니다. 이번에는 두부를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부쳐왔다. 들기름을 썼는데 기름을 짠 들깨 역시 이 곳 농장에서 농사지은 거란다. 두부부침,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이러다가 과식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한꺼번에 골고루 해서 먹는 도시농부들. 추운 날씨인데도 번거롭게 두부 만들기를 하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란다. 톱으로 나무 자르기도 재미요, 장작 패기도 재미다. 군불 지피기도 재미로 한다. 큰 가마솥에 두부가 끓는데 얼추 세 시간이나 걸린다. 그 과정에서 콩물이 눋지 않게 저어주는 고생(?) 역시 두부를 손수 만들어 먹는 보람에 견주면 그리 큰 게 아닌 모양이다. 바람 불고 추워 서글픈 마음이 들 법도 하건만 회원들은 아주 즐겁게 돌아가며 저어준다. 굳이 할 일을 나누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것 같다.

    생태도시 아바나

    아침 11시부터 두부를 만들기 시작해, 만들어 먹고 나니 오후 4시쯤이다. 음식 만들고 먹는 재미에 추위를 잊은 것 같다. 그러고는 풍물도 치고, 떡과 막걸리도 나누어 마시면서 잔치를 즐긴다.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까지 풍물을 치며 흥을 돋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시 철환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가 장애인이라 아무래도 장소를 정하는 게 쉽지가 않다. 먼저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시간이 되어 그가 운전하는 차가 오자, 일단 차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나는 아무데고 좋으니 철환씨 좋은 곳으로.”

    기면서 맛본 생명체험, ‘사랑밭’을 충만케 하다

    안철환씨. 목발을 짚어서인지 웃음이 더 넉넉해 보인다. 그는 넉살도 좋아 어딜 가나,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차를 유턴하더니 ‘만남의 광장’으로 간다. 이곳은 주차하기도 좋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니 좋은가보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만 걸으면 된다. 분위기가 산만하기는 하지만 이야기 나누기에는 무리가 없다.

    ▼ 도시농업이란 발상이 참 신선한데 어디서 그런 영감을 얻게 되었나요.

    “귀농학교 출신 가운데 실제 귀농하는 사람은 20%가 채 안 돼요. 귀농하기 전에 실습할 곳도 마땅치 않고. 그러던 차에 책을 하나 내게 되었지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라고. 그 책이 도시농업의 이론적인 배경이에요. 책을 쓰면서 도시농업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생계형이에요. 미국이 취한 경제봉쇄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런데 쿠바와 우리는 다르잖아요. 그럼 우리는 뭐냐? 아직 이거다 싶은 한국식 도시농업에 대해 합의는 못 봤어요. 나는 생태운동으로 보고 싶어요. 운동으로 보는 거지요. 요번에 일본에도 가보고 또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니 선진국은 레저형이에요. 운동성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도시에 해결할 문제가 참 많잖아요? 먹을거리는 물론 환경, 쓰레기, 실업…. 생태도시로 거듭나는 데 도시농업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리라 믿어요.”

    ▼ 철환씨가 안산도시 텃밭학교를 연 지 5년째인데, 그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거죠?

    “초기에는 귀농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5월이나 6월만 되면 다 떠나버려요. 농사 맛을 조금 보니까 열 평, 스무 평 가지고는 성에 안 차는 거라. 그러다보니 가을쯤에는 농장이 텅 비는 거예요(웃음). 이제는 귀농하려는 사람들보다는 도시에서 텃밭을 가꿔보려는 분들이 중심이 됐어요.

    십시일농(十市一農)

    보통사람들이 느끼기에 귀농이라고 하면, 이건 아주 ‘센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요? 반면에 농사를 잘 모르는 경우 귀농한 사람은 ‘도시의 패배자’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기도 해요. 그렇지만 우리 회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니까 도시농업은 귀농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조금 독자적으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 ‘생태운동으로서의 도시농업’이란 말이 조금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구체적으로 들려준다면?

    “다섯 가지 테마를 제안하고 싶어요. 첫째가 내 밥상 자급하기. 물론 100%는 아니에요. 농사를 지어봄으로써 밥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차츰 밥상 자급도를 높이는 거지요. 우선 가을 김장부터 자급하는 게 목표고. 둘째는 생태적인 시민운동이에요. 내 쓰레기 퇴비화운동. 말하자면 일종의 순환운동이지요. 셋째는 이웃과 더불어 하는 공동체 운동이에요. 보통 주말농장에 가보면 팻말 있고 줄 띄우고, 요건 누구네 밭. 조거는 누구네 밭…. 이런 식으로 금을 긋는데. 나는 이게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는 그런 구분을 안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가끔 어떤 회원은 남의 밭을 자기 밭이라고 우겨요. 특히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이 그래요.

    열심히 나온 사람일수록 이웃을 잘 알게 되죠. 옆 밭 사람이 바빠서 못 오면 대신 일해주기도 해요. 곡식이 자라면 제때 솎아줘야 하는데 바쁜 이웃을 위해 대신 솎아주는 거야. 그럼, 미처 오지 못한 사람은 남이 솎아줘 좋고, 솎은 사람은 자기가 솎은 걸 가져가서 먹어 좋고.

    이렇게 텃밭을 일구다보면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쓰레기가 얼마나 문제인지를 알게 되죠, 서로 배려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운동이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추수감사제도 그렇고 주말에는 원두막에 둘러앉아 술도 한잔씩 나누면서 소통을 하는데, 저는 이를 ‘텃밭 공동체’라고 해요.

    넷째는 도농(都農) 공동체 운동을 해보자, 구체적으로는 십시일농(十市一農)이지요. 도시에 사는 열 가구가 농촌 한 가정이랑 결연하는 겁니다. 도시 농부들이 짓지 못하는 농산물은 농촌에서 사 먹고, 시골 농가는 도시 농부에게 씨앗도 나눠주고 퇴비도 주고 다양한 농사체험도 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시 사람 모두 농부가 되자는 겁니다. 이건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모두 언젠가는 흙에 뿌리내리고 살자는 거죠. 조금 거창한 이야기이지만 도시농업이 발전한다는 건 도시를 생태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 농업을 살릴 길이 되지 않을까요?”

    ‘근본으로 돌아오는구나’

    기면서 맛본 생명체험, ‘사랑밭’을 충만케 하다

    추수감사제날 회원들이 여러 시간에 걸쳐 만든 두부. 두께도 얇고 모양도 들쭉날쭉이지만 정성과 맛은 최고였다.(위) 회원들이 우르르 모여 두부를 만들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웃으며 일을 나누어 한다.(아래)

    ▼ 꿈이 아주 크네요. 도시농업이 확산될수록 도시 생태가 살아나는 부분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농촌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잖아요. 소득도 불안정하지만 수입 농산물 때문에 농사의 근본마저 흔들리는 상황이죠. 그런 마당에 도시 사람들조차 밥상을 자급하겠다면 누가 우리 농산물을 사줄까요.

    “가끔 그런 우려를 듣기는 해요. 하지만 이 문제로 우리 회원들과 얘기를 해보면 오히려 그 반대거든요. 텃밭을 가꾸면서 외식이 줄고, 국산 농산물과 유기농산물 소비가 늘었다고들 해요. 실제 농사 지어 먹어보면 다른 걸 다 떠나 맛이 다르잖아요. 사실 텃밭으로 자급해봤자,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주식은 사 먹어야 할 텐데. 텃밭농사로 농부들의 피와 땀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 농산물을 더 많이 소비하지 않을까요?”

    ▼ 철환씨는 도시농업과 관련해서 강의도 자주 다니고 지방도 다니곤 하는데 도시농업이 전국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큰 그림을 보여줄 수 있나요.

    “제일 주목할 만한 데가 YWCA예요. 어떤 점에서는 우리(전국귀농운동본부)가 하는 도시농업운동보다 YWCA가 더 활발해요. 이곳은 나름대로 시스템이 있고 조직력도 있어요. 소비자 환경운동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데, 이 가운데도 소비자 텃밭운동이 주된 거예요. 음식물 쓰레기 제로 운동과 연결해서, 집에서는 지렁이화분, 밭에서는 텃밭,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를 다 거름으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단체가 생태유아공동체죠. 어린이집 있잖아요? 우리 애들 급식을 유기농산물로 만들어 먹이자고 시작한 건데 지금은 커졌어요. 수도권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고 광주에도 있나 그래요. 이 운동에 참여한 어린이집이 수도권에만 200여 곳이에요. 그러면서 추진력이 붙는 거예요. 급식만 유기농으로 할 게 아니라 스스로 텃밭을 만들어 자급해보자. 어린이집마다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으니까. 도봉동에 있는 어린이집에 가보니까 상추는 완전히 자급해서 먹어요. 그게 모델이 되어 주변으로 번지는 거예요.

    지방에선 부산 귀농학교가 잘해요. 거기는 팜(farm)이야. 가든(garden)이 아니고. 뒷간도 있고, 닭장도 있고, 논도 있어요. 회원들의 자발성이 대단해요. 원두막도 벽만 치면 거의 한옥 수준이에요(웃음).

    그리고 환경단체들도 차츰 관심을 가져요. 환경운동에서 어떤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닌가 싶어요. 좀더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운동을 모색한다고 할까. 전주나 대전에 가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이제 근본으로 돌아오는구나 싶어요. 환경운동의 핵심은 흙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까지는 농업이니 흙이니 하면 저만큼 밀려났지요. 흙을 살리는 게 환경운동의 중심 테마가 되지 않을까. 도시농업이 환경운동으로서도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전국귀농운동본부 산하에도 여러 군데 도시 텃밭이 있지요. 본부 홈페이지(www.refarm.org)에 들어가면 안산농장뿐 아니라 군포, 벽제 등 여러 곳이 있고 지역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활발한 편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직활동 이전에 개인의 자발적인 요구일 거예요. 40대, 50대 사람들이 이 다음에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잖아요? 그런 게 다 도시농업의 요구라고 할까, 잠재력이라고 봐요. 그 힘이 있기에 도시농업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거든요. 근데 문제는 상업적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원예치료’의 가능성

    ▼ 상업적이라도 흙을 살린다면 뜻이 있지 않을까요.

    “넓게 보면 좋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어요. 어떤 곳은 베란다 작물 화분을 세트로 해서 7만원인가 하는 상품으로 내놓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비싸. 그리고 잘 키워야 하는데, 그러자면 공부도 하고 잘 돌봐야 하잖아요. 그런 건 제대로 안 하고, 무턱대고 비료 주고 제초제를 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 마음만 있지 바쁜 도시인에게는 주말마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주말에 다른 일 제쳐두고 먼 길 달려오는 이유가 뭘까요? ‘재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듯한데.

    “한마디로 생명체험이 아닐까요? 작물을 통해 생명 체험하기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지난 가을에 배추에 진딧물이 많이 끼었잖아요. 열심히 가꾼 배추엔 진딧물이 적었거든.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수확이 없는 거야. 이런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니까. 이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지요. 또 원예치료가 될 수도 있죠.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잖아요. 그래서인지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것 같아요.”

    ▼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 사람이 떠오르네요. 언젠가 귀농을 준비하는 중학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은 학교에서 ‘조직폭력배’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애를 썼나봐. 그런데 잘 안 되었대요. 그러다가 고추 몇십 포기를 그 아이들과 키우기 시작했는데 두 달 만에 아이들이 스스로 조직을 해체했다고 하더라고. 그 선생님이 하는 말. ‘내가 10여 년 공들여도 바뀌지 않던 아이들이 고추 몇 포기로 바뀌었다’….

    “원예치료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싶어요. 그런데 원예치료가 좀더 잘되려면 생각을 바꿔야 된다고 봐요. 요즘은 대안학교들도 텃밭 가꾸기를 하잖아요? 지난 여름에 텃밭을 가꾸는 교사들 연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교사들이 거의 노예야(웃음). 텃밭농사를 1000평가량 하는데 방학 때면 완전히 밭에 매이는 거예요. 이때는 풀이 왕성하게 자라는데, 아이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으니…. 밭이 너무 크면 아이들도 고생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고생해요. 욕심 내지 말고 규모를 알맞게 하면 훨씬 다양한 내용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어요.

    ‘경작본능’

    텃밭 만들기에 학교 다음으로 좋은 곳은 병원이 아닌가 싶어요. 병원에는 웬만하면 마당이 다 있잖아요. 원예치료를 곡식치료로 바꾸어나가는 거지요. 곡식에도 예쁜 꽃이 얼마나 많아요. 홍화도 예쁘고, 더덕은 꽃도 예쁘지만 덩굴 올라가는 게 참 예쁘잖아요.”

    정상적인 사람도 힘들어하는 농사를 철환씨는 목발 짚고 어찌 할까. 그가 던지는 답은 간단하다.

    “기면서 하지요.”

    그는 목발을 짚지 않으면 쓰러지기에 아예 땅을 기면서 농사일을 한다. 창피함만 이겨내면 할 일이 많은 게 땅이 아닐까 싶다. 사실 땅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생명이 고물고물 기어 다닌다. 지렁이도 땅강아지도 개미도 다 기어 다닌다. 어쩌면 땅에서는 기어 다니는 게 더 생명활동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가 하는 표현을 빌리면 이게 ‘경작본능’이라 한다.

    “지금도 우리 어머니는 텃밭 농사를 짓고 계세요. 형님들도 주말농사를 하거나 농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고. 가족들이 모여 농사를 짓자고 의기투합한 일이 전혀 없는데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나는 이를 농경민족의 경작본능이라 생각해요. 먹이를 보면 달려드는 맹수의 본능처럼 흙만 보이면 뭔가 심어 키워 먹으려는 생존본능 말이지요.”

    ▼ 농장을 회원제로 운영하다보면 어려운 점도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사람관계지요. 여러 사람과 함께 하다보면 꼭 앞서 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일을 조직하면 앞서 가는 사람이 있고, 뒤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뒤에 가는 사람은 소외되거든요. 우리 밭에서 가장 오래된 회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 스타일이 말도 별로 없고 남과도 잘 사귀지 않고. 겉으로 보면 ‘가족주의’예요. 그런데 혼자만 하던 그분이 광명에다가 텃밭을 마련했대요.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도시농업을 해보겠다고. 그 말 들으니 참 좋더라고요. 사람들 변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어요. 우선 눈빛이 달라져요. 처음 농장에 오는 분들은 도시 특유의 경계의 눈빛이 있어요. 나를 보는 눈부터 ‘저 자식, 몸이 저래가지고 뭘 할 거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눈빛이 달라지는 거야. 도시 텃밭농사는 ‘사람농사’ 부분이 많은 거지요. 그만큼 섣부르게 조직하면 잘못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요즘 농촌은 고령화, 기계화하면서 공동체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텃밭 공동체란 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텃밭을 함께 일구며 어울리는 공동체지요. 그러나 텃밭 공동체는 정거장 공동체가 아닐까 싶어요. 여기서는 집단이 주는 강제 규율 같은 건 없어요. 지향하는 바는 있지만 이념의 도그마 같은 건 없으니까, 자유롭지요. 그저 오는 것도 자유, 나가는 것도 자유예요. 공동으로 일할 때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한테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지만 잠시 쉬면서 막걸리 한잔 할 때는 기를 쓰고 같이 먹자고 해요.”

    ▼ 엄밀히 말하면 막걸리 공동체네.

    “하하하….”

    사랑방 대신 ‘사랑밭’

    그는 구김살이 없다. 남들이 보는 눈과는 달리 본인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별달리 갖지 않는다. 호탕한 웃음과 여유. 사람 좋아하고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목발을 짚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부부 관계도 좋다. 추수감사제날 오후 늦게 잔치에 온 부인 김영채(43)씨는 그와 떨어지지 않는다. 영채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나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둘 있어요, 아내와 우리 어머니신데 어머님은 ‘저 자식은 뭐든 할 거야’ 하는 믿음이 강해요. 아내랑은 10년 동안 연애했어요. 아내 집안에서 반대를 하니 그냥 살까 하는데 한 선배가 충고를 하더라고요. 정면으로 나가라. 그래서 작전을 바꿨지요. 장인어른은 도시빈민운동을 하시는데, 그곳에서 나 같은 장애인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 장애인은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 내 사위는 장애인이면 안 된다는 것은 위선이다 생각하시고 서슴없이 저를 받아들이셨지요. 장모님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장모님과 아주 친해요.”

    ▼ 철환씨도 꽤나 바쁘게 살던데,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둡니까. 권력이나 명예, 돈 같은 거 말고 자아실현이라든가 뭐 그런 쪽으로.

    “나도 사람이니까 돈 좋아하고 권력도 있으면 좋고 명예도 나쁘지 않잖아요?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거든요. ‘우리는 하나다’ 뭐 그런 말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내 꿈이 사랑방을 갖는 거였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그런 쪽으로 나가면 아내가 구심력으로 작용해요.

    자아실현에 관한 거라면…. 산다는 느낌, 보람, 성취감 이런 거잖아요. 책도 몇 권 내보고, 강의도 나가보지만 그런 일들은 소외감이 뒤따라요. 내가 출판사에 있어 보니까, 책을 내는 희열은 잠깐이고 그 다음부터는 걱정이 돼요. 이게 잘 팔릴까 하는 걱정 말이에요. 강의도 그래요. 사람들이 열심히 들어주고 ‘좋다’ 그러면 좋지만 반대도 있잖아요. 뒷소리 들으면 100%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밭에서 만나는 사람 관계에서는 성취감이 있잖아요. 주는 기쁨이라고 할까. 공동체란 다른 말로 하면 ‘주는 기쁨’이 되겠네. 주는 데 무슨 소외가 있겠어요. 권력엔 늘 소외가 뒤따르잖아요. 작은 집단 안에서도 암암리에 암투가 있는데 정치는 어떨까 싶기도 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즐기는 일은 아무래도 ‘남 이야기 들어주기’다 싶어요. ‘나를 따르라’고 하기보다 같이 고민하고 들어주고. 나도 젊을 때는 ‘나를 따르라’고 외치곤 했는데 그런 욕구가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지 싶어요.

    ‘마음의 빈틈’

    그런 점에서 밭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어요. 우리 회원들이 정말 밭을 좋아해요. 그 사람들 이야기가 나는 주인 행세를 안 해서 좋대. 내가 여기서 주인 행세를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밭에서 다양성을 보게 되고, 밭이 주는 즐거움과 정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어디 가서도 밭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참 좋아. 나쁜 놈 생각하면 인상이 굳어지잖아요. 추수감사제 이후에도 또 다 같이 모여보자고 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참 좋잖아요. 어릴 때 사랑방 꿈이 실현되고 있는 거지요. 집으로 사람들을 부르면 아내가 불편해하는데 밭에서는 그게 된단 말이에요. 사랑방이 ‘사랑밭’이 된 셈이네요.”

    철환씨는 척수성 소아마비다. 뇌성과 달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전염성 질병이다. 누구는 전염되고 누구는 전염되지 않는다. 병균 자체보다 사람 자신의 면역력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좌우되나 보다. 사람 좋아하고, 구김살 없는 그에게 어찌하여 소아마비 균이 들어왔을까.

    “이렇게 물어준 사람은 형이 처음이에요”라며 그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는다. 지난날을 떠올리는지 한참 만에 입을 뗀다.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돌 무렵 소아마비 균이 철환씨 몸으로 들어왔다. 치료비가 100만원인데 그때 집 한 채가 300만원쯤 했다. 너무 가난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다. 소아마비가 된 아이는 자라면서 엄청 많이 넘어졌다. 열 살 때쯤인가, 한번은 목발 짚고 층계를 오르다 굴렀다. 다른 때와 달리 그때는 몸부림치지 않고 몸 굴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단다.

    “내 몸에 균이 들어온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몸으로 들어오려는 균을 막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것 같아. 생명이 흔들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음이 흔들리는 느낌. 마음에 빈틈이 생겼을 때에 소아마비 균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내가 계단에서 굴렀을 때 기를 쓰고 일어나고자 했다면 균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질병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 밝히는 건 쉽지 않다.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까지 더듬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지식도 부족하고,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다시 차를 타고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차 안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장애인이다 보니 학교 다니면서 받은 아픔이 컸다.

    “내가 겪은 학교는 공동체 법칙보다 정글의 법칙이 더 지배하는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공부했어요. 학교 선생들이 부잣집 아이들한테 대하는 태도는 충격이었어요. 어릴 때를 돌아보면 세들어 살던 집 주인 아주머니가 참 좋았어요. 자기 아들처럼 나를 돌봐주고 먹을 거 있으면 나누어주고. 지금도 그집 아들에게 ‘야, 철환이 어찌 지내나?’ 하고 묻는대요. 세들어 살았지만 한 가족처럼 지냈어요. 학교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선생과 친구들이 마음에 상처를 주잖아요. 이건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한 거라고 봐요”

    삶의 기적

    우리는 신호등의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바뀌는 게 아쉬울 정도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와 헤어져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시농업에 대해 알수록 그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도시도 외형이나 편리함 못지않게 질적 성장이나 참살이를 고민하고 있다. 도시는 사람이 많은 만큼 그에 걸맞게 다양한 형태의 농업이 가능하리란 생각도 든다. 꼭 생태운동만이 아닐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생계형이나 운동형이 될 수도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는 레저형이 될 수도 있겠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는 치유형이 되고, 아이들 생태 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에게는 교육형도 될 수 있지 않나. 생각을 발전시키면 도시 농부들을 교육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을 지도하는 교육도 가능하다.

    철환씨를 보면 자신은 생태운동으로 한다지만 꼭 그것만이 아니다. 도시농업으로 김치를 담그니 생계형이요, 글 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치유형이라 하겠다. 도시농부들을 교육하고 책을 펴내는 일들은 교육형이 되지 않겠나. 이것말고도 갖다 붙이면 말이 되는 것들이 도시농업이다. 땅은 좁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리라.

    이는 땅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삶의 기적’이 아닐까. 도시 아파트 한 귀퉁이에서 피어난 민들레 꽃 한 송이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시를 쓰는 마음을 되찾기도 한다. 도시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도시를 끌어안고 지탱하는 근본은 땅일 수밖에 없다.

    생명을 보살피고 키우고 싶은 꿈은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다. 이 꿈을 현실로 바꾸는 일. 그게 일자리가 되고 밥벌이도 되며, 자신이 소망하는 사회운동도 되는 삶. 그 소망들이 도시에 뿌리내릴 때 도시는 생명력이 넘치는 또 다른 문명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질,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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