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 작심토로

“비리 정치인, 고위직 쉽게 풀어줘 부패척결 안 된다”

  • 김승훈 동아닷컴 기획취재팀 기자 huni@donga.com

    입력2007-02-12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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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청렴위원회가 출범한 지 5년이 됐다. ‘부정부패 추방’이라는 목표는 얼마나 실현됐을까. 도덕성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정성진 청렴위원장으로부터 이른바 ‘클린 웨이브(Clean wave)’의 과제와 비전을 들어봤다.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 작심토로
    1월5일 국가청렴위원회(이하 청렴위)를 찾았다. 청렴위는 서울시 종로구 계동 옛 현대그룹 사옥에 자리잡고 있다. 소한을 하루 앞둔 이날, 뉴스에서는 폭설과 강추위를 예고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 얼어죽었다’는 옛말을 실감케 했다. 청렴위야말로 소한과 같은, 서슬 퍼런 기관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부패의 독균을 동사(凍死)시키는 것, 이것이 청렴위 본연의 임무일 터이다.

    부패척결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국가적인 과제가 됐다. DJ 정부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부패에 있다고 봤다. 2002년 1월 부패방지위원회를 발족했다. 부방위는 2005년 7월 지금의 ‘청렴위’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성진(鄭城鎭·66) 위원장의 방은 소박했다. 창가의 책상과 한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 중앙에 놓인 소파가 집기의 전부였다.

    “정당한 평가 내려달라”

    그의 손은 큼지막했다. 그는 “반부패·청렴 물결을 확산시키기 위해 전 직원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청렴위가 제 구실을 잘 하고 있다고 봅니까.



    “비교적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국민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부정부패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이를 척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부패척결 성과가 좋은 편인데도 합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정 위원장은 청렴위의 성과에 대한 국민의 인색한 반응이 못내 서운한 듯했다. 그는 ‘정당한 평가’와 ‘동참’을 거듭 호소했다.

    ▼ 1월25일은 청렴위 출범 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출범 후 2년 동안은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뒀습니다. 협의회를 만들고, 시민센터를 운영하는 등 기반을 조성했죠. 그 이후에는 질적 투명성을 높이는 데 본격 착수했습니다. 부패를 유발하는 제도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어요. 2004년에는 세무조사·교육 분야, 2005년에는 법조·인사·교육·기업금융지원·민간의 뇌물거래 방지 5대 분야, 지난해에는 지역개발·공기업·국가정책자금지원의 3대 분야를 역점과제로 뒀습니다. 최근에는 정부 내 각종 위원회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책을 내놓았습니다.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청렴위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반부패 움직임에 대응해 관계기관 합동으로 ‘반부패규범 개선계획’을 마련해 추진했다고 한다. 또 국제기구 및 외국을 방문해 한국의 반부패 활동 노력을 세계에 홍보하는 데도 주력했다.

    “우리나라에서 부패의 문제는 온정주의·연고주의 문화와 연관돼 있습니다. 이를 개선해야 청렴정책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타파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각계각층 전문가들과 힘을 모아 꼭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클린웨이브로 부패 소탕”

    ▼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해마다 국민을 대상으로 인식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부패가 없어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은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부패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거예요.”

    ▼ 해결책은 없습니까.

    “판결은 헌법상 독립된 기관인 사법부 소관입니다. 반부패관계관협의회에 법무부, 검찰,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국세청 등 웬만한 사정기관은 다 참석하지만 사법부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위원회의 연구과제에는 양형(量形) 문제와 사면권 논쟁이 다 포함돼 있습니다. 각각 사법부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우리는 제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실추도 중요한 문제이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구조화한 부패 문화, 사회지도층의 그릇된 행태가 사회 전체의 윤리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줍니다. 일부 사회지도층의 비뚤어진 행태 때문에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지난해 우리는 ‘클린웨이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부 각 기관을 평가하는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클린웨이브(Clean wave)’는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반부패·청렴 수준을 높여 그 청렴 물결을 우리나라 전체로 확산하고자 하는 ‘투명성 촉진 서비스’다. 청렴위는 ‘클린웨이브’를 민간부문에까지 확산시켜 사회 전반에 반부패·청렴 운동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 부패사범에 대한 처벌이 어느 정도 강화돼야 한다고 보나요.

    “일반 국민의 인식으로는 생계형 강도나 절도에 대한 양형은 굉장히 높죠. 징역 3년 혹은 5년 정도 떨어지니까. 반면 공무원이나 정치인은 거액의 뇌물을 받아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국민이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겁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니 하는 말도 나오고요. 법원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 지난해에는 집행유예로 내보냈는데, 올해 갑자기 실형을 선고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 최근의 부패 유형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지방정치권이 문제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 때 신세진 사람의 부탁을 거절 못해 유무형의 특혜를 주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공직 분야에서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부패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민간기업과 사립학교의 회계 투명성 같은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 정치권이 바로 서면 사회 전반의 부패가 줄어들까요.

    “당연하죠. 과거 대형 부패는 대부분 정치권력과 기업이 연관된 것이었죠. 그런데 정치관계 3법(法)이 개정되면서 정치인과 기업가의 부적절한 관계가 제도적으로 단절됐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개인 이름으로 후원금을 나눠서 주는 등의 탈법 현상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정치자금은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국민 부담이 굉장히 커진 거죠. 그런 만큼 정치 윤리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아직 국민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요.”

    “대선 비리 또 터질 수 있다”

    올해는 대선이 치러진다. 지금껏 금품 수수 사건으로 얼룩지지 않은 대선은 거의 없었다. 대선은 부패의 단절 측면에선 좋은 환경은 아니다.

    ▼ 대선과 관련한 정책은 있습니까.

    “정치 상황에 따라 권력형 비리 사례가 또다시 나올 수 있고 공직 사회의 의지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부패·청렴 대책을 범국가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정당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입니까.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합니다. 부패를 일으키는 제도적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 국제투명성기구(TI) 한국본부가 지난해 12월7일 발표한 ‘세계 부패 바로미터(GCB)’에 따르면 86%에 달하는 국민이 ‘정부의 반(反)부패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더군요.

    “지금 국민은 현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해 불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교적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해온 부패청산 부분까지도 부정적으로 비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객관적 지표와는 차이가 납니다. 베트남·우즈베키스탄·탄자니아·보츠와나·도미니카·세네갈 같은 나라는 부패가 제법 심한 나라인데도 정부의 부패청산 노력에 대한 국민 만족도가 높게 나옵니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뇌물수수 비율이 이들 국가보다 훨씬 낮은 2%밖에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청렴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 위원장은 “부패 바로미터에 따르면 한국은 2003년 133개국 중 50위였는데 2005년에는 159개국 중 40위였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의 부패 정도는 어떻습니까.

    “2002년 전체 공공기관의 종합청렴도는 6.43점이었는데 2005년에는 8.68점으로 높아졌습니다. 금품이나 향응 제공률도 2002년 4.1%에서 2005년에는 0.9%로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옴부즈만 제도나 시민감사청구제도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 정부 산하기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부패가 잘못된 인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2005년 공기업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을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운영상으로는 많이 개선됐다고 봐요.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입니다. 선발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됐다면 낙하산 인사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코드 인사’니 ‘회전문 인사’니 말이 많습니다.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호흡이 맞는 사람을 등용한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러나 도덕성을 갖춘 전문가도 중용해야죠. 광범위하고 포용력 있는 인사가 이뤄지면 국민에게서 더 큰 신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청렴위가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외압’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다만 제도개선 권고를 할 경우 수용하는 처지에 있는 정부 기관에서 불편해하는 건 있죠.”

    “내부 고발자 보호 세계적 수준”

    ▼ 수사권이 없어 겪는 어려움은 없습니까.

    “우리 위원회에 수사권이 없는 탓에 신고 취지에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종종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 재계는 어떻습니까. 부정적인 측면이 사라졌다고 봐도 되나요.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없죠. 수사권을 가진 사정당국에서 조사를 해봐야죠.”

    ▼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봅니까.

    “종전의 부패방지 정책은 검찰·법원·감사원 등에서 처벌하는 ‘사후’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래서는 비리가 없어지지 않아요. 사전적인 예방제도가 정착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부와 협조해 반부패 교육 기반을 만들려고 합니다.”

    ▼ 취임 이후 가장 큰 성과라면.

    “2005년 부패방지법이 개정되어 부패 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강화됐습니다. 정의실현을 위해 용기를 내서 고발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당연히 보호해야 합니다.”

    ▼ 어떤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의 보호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선 제보자 신분에 대한 비밀이 엄격히 보장됩니다. 법적 보호도 병행합니다. 신고한 사람에게 부당한 인사 처벌이 행해지면 원상회복을 명령할 수 있고, 신고자에게 보복을 하면 형사처벌도 가능해졌습니다. 보상금도 최고 20억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조직의 경우는 더 심하죠. 내부 신고자는 곧바로 배신자로 낙인찍혀버리니까요. 그러나 내부 고발이 없으면 조직 내에서 행해지는 구조적인 부정부패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 2004년 8월, 노 대통령은 정 위원장에게 “부패의 뿌리까지 뽑아달라”고 당부했죠.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부패를 유발하는 제도를 개선했고, 부패 신고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을 강화하는 법을 개정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만족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 때 어떤 의원이 ‘부패라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위원회까지 만들어서 예산을 낭비하느냐’고 하더군요. 나는 ‘부패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도 하지 말란 말이냐. 근본적으로 없어지지 않더라도 줄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결례가 될 정도로 반박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구지검장을 거쳐 김영삼 정부 초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오르는 등 ‘잘나가는 검사’였다. 그러나 1993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찰을 떠나야 했다. 당시 그가 신고한 재산은 부인 서신덕씨가 모친에게서 상속받은 유산 44억원을 포함해 총 62억원으로 검찰 내에서 1위였다. 법복을 벗은 후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형사법을 연구했고, 1995년 9월 국민대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0년 3월 국민대 총장에 올랐으며 2004년 정년퇴임했다.

    “관료, 검찰조직에 환멸 느꼈다”

    ▼ 1999년 이후 특별검사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그때마다 고사한 것으로 아는데요.

    “관료사회, 검찰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 사람입니다. 벼슬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습니다.”

    ▼ 대검 중수부장에서 물러난 경위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시죠.

    “재산등록제도 자체는 좋았는데 행정이 뒷받침되지 않았어요. 내 재산은 출처가 분명합니다. 부동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에요. 그런데 랭킹이 가장 높게 나오니까 잡음이 일더군요.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공직사회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장관이나 총장도 탐낼 자리가 아니더군요. 큰 물결 앞에서는 허수아비나 바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사표를 던진 겁니다. 그 일로 인해 제 자신을 충전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 검찰과 법원의 대립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두 기관의 알력 다툼을 어떻게 봅니까.

    “바람직하지는 않죠. 그러나 큰 방향에서 보자면 그런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과 법원의 지혜로운 법률가들이 갈등을 생산적으로 승화해 나가야죠.”

    정 위원장은 “청렴도가 높아져야 국가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가청렴도 제고는 효율성, 투자 등 경제변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청렴도가 향상돼야 사회지도층과 일반 시민 사이의 불화가 해소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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