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12월 6자회담에서 확인된 중간선거 이후 美 대북정책

‘양자접촉 OK’가 전부, 부시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 김동현 전 미국 국무부 한국어 수석통역, 고려대 연구교수 tong.kim@prodigy.net

    입력2007-02-12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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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년간 미 국무부 통역으로 북미협상에 참여했던 김동현(미국명 Tong Kim)씨가,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그 결정 과정을 정리한 글을 보내왔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정책에 일정부분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형식상의 변화일 뿐 내용상의 변화로 보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오히려 미국이 내비친 이러한 태도변화에 대해 북한이 상응하는 ‘건설적 행동’을 끝내 취하지 않을 경우 워싱턴은 다시 강경일변도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 6자회담에서 확인된 중간선거 이후 美 대북정책

    2006년 11월8일 중간선거 결과 발표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경질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5차 2단계 6자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전례 없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임에 따라 큰 기대를 모았으나 허사였다. 1월초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나서부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1월말 또는 2월초에 다시 열릴 수 있다는 보도들이 쏟아졌지만, 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북핵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12월 회담을 통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일정부분 전환되고 있음은 분명하게 확인됐다고 말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의 의회 장악 이후 북핵 문제를 임기 안에 해결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핵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부시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어느 정도 확고한 것인지 현재로선 단언하기 어렵다. 그의 접근책은 북한의 ‘긍정적인 행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 변화의 핵심은 양자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직접 양자회담을 오랫동안 요구해 왔다. 북한은 “회담의 형식에 구애하지 않는다”며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에 참석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목표로 해왔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두 차례에 걸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 간의 직접 대화로 보인다.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이전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접촉을 여러 번 시도했다. 지난해 1월 도쿄에서 비정부기관 주최로 동북아안보회의가 열리고 6자회담 협상대표들이 모두 참석했을 때, 김 부상은 은근히 힐 차관보와 만나기를 바랐다. 이 기대가 무너진 후 평양은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무렵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9·19 공동성명 채택 무렵에 가해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을 비롯한 금융제재 해제를 미국측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평양에 가지 않았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할 얘기가 있으면 6자회담에 나오면 된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지난해 7월 아세안포럼이 열렸을 당시 백남순 북한 외상은 라이스 국무장관과 양자회담하기를 기대했으나, 이것도 물론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다. 외교의 목표는 내용에 있고 형식은 내용을 뒷받침한다. 외교상의 형식은 국가 간 상호존중의 기준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이 직접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데 모욕감을 가졌다. 부시 대통령은 일찍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한 양자회담 형식을 거부한 바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해봤지만 결국 북한에 속았기 때문에 양자회담은 효력이 없으며, 북핵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안보문제와 직결된 것이므로 다자적 접근이 옳다는 논리였다.

    부시 행정부는 4차 6자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북미 간의 직접접촉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그러던 것이 비로소 변화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현재 북미 접촉의 형식상 수준이 ‘차관보 대 부상’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미 행정부 수뇌부가 6자 틀 안에서나마 미 협상대표로 하여금 북한측 상대방과 직접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분명 정책의 변화다.

    특히 이번 6자회담 개최 직전부터 ‘미국이 북한에 크게 주고 크게 받으려 한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중간선거 직후인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6·25전쟁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알리는 첫 신호로 해석됐다. 무엇보다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의) 정권교체나 무력침공을 시도할 수 없게 됐기에 협상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간선거가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사고방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민주·공화당의 차이는 ‘형식’의 차이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태도는 내용상 변한 것이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도 북한이 핵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먼저 완전히 포기할 경우’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의 선(先) 핵 포기’ 원칙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의 변화는 적대적 수사에서 긍정적 수사로 전환하면서 협상의 의지를 보인 것일 뿐, 이제까지 발표된 미국 정책의 기본 틀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공식적인 정책목표로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미국의 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대해서는 상자기사 참조).

    그렇다면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앞서 살펴본 징후를 종합하면 워싱턴은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는, 즉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혼용하는 접근책을 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간에도 미국은 외교적 해결원칙을 밝혀온 바 있지만, 그 진의를 의심할 만한 여러 징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부시 대통령 자신을 지목할 수 있다. 북한 체제와 김정일을 싫어하는 미국인이 많지만 부시 대통령처럼 공개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낸 사람은 많지 않다.

    구체적인 변화의 압력은 중간선거로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으로부터 오고 있다. 민주당은 그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왔다. 클린턴 임기 중에는 북한이 플루토늄을 더 생산하지도 않았고 핵 실험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미국을 속인 것이 아니며, 제네바 협정을 파기한 것은 부시 행정부”라고 공격하기까지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간선거 무렵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하면 1년 내에 핵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하지 못한 부시에게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지난 6년 동안 북한과 진지하게 양자회담을 했더라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거나 최소한 악화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양자회담은 리처드 루거, 조지프 바이든 같은 여야 상원의원들과 제임스 베이커, 제임스 켈리와 같은 전직 국무성 관리들도 지지한 바 있다. 구체적인 결론은 없었지만, 2004년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는 양자론과 다자론을 놓고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양자회담을 지지하는 민주당은 우선 의회의 정부 감시기능(Oversight Role) 강화를 통해 부시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가령 청문회, 입법조치 및 예산 심의과정에서 대정부 정책질의를 활발히 진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국의 정책에 변화가 생긴다 해도, 이는 내용보다는 형식의 변화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 순서에서 미국이 신축성을 보일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뿐, 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 폐기를 강력히 추구하는 워싱턴의 기본 노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공화 양당의 시각이 똑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부시 행정부가 거부해오던 양자회담이 6자 구도 내에서 이미 시작됐으므로, 양자회담은 향후 협상의 심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6자회담과 별도로 현재보다 높은 급의 북미 접촉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다자구도를 선호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차관보보다 높은 급의 미국 관리가 북한과 때때로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요지의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바 있다.

    정권교체와 강경파

    궁극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식 가치관으로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은 폭군이고 나쁜 행동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용서하기 어려운 상대다. 그러나 그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정권교체를 위해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정책을 추구한 흔적은 없다. 북한인권법, 금융제재, 정보감시 체계강화 등과 함께, 최근의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도 북한에 타격을 줄 수는 있지만 정권교체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들은 아니다.

    물론 북한을 공격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에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방부에서는 공격작전 계획을 수립해놓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에서 북침을 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남침을 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하지만, 북핵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제한공격은 비상대비책으로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 미군 전략사령부와 특전사령부에서 개념계획 8022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항상 가상적인,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응 준비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강경파들은 아직도 북한 정권교체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중간선거 패배 이후 이제는 그나마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12월 6자회담에서 확인된 중간선거 이후 美 대북정책

    회담 재개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2006년 11월28일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다른 측면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번 내린 결정을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이번 중간선거 패배로 럼스펠드 장관을 내보낸 데 이어 낸시 펠로시 차기 하원의장을 만나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협력해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의 헌법이 규정한 행정부의 외교권을 간단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헌법상 외교의 주도권은 행정부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미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는 그는 앞으로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내용상 근본적으로 변화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의 정책 집념은 강하고, 백악관은 곧 시작될 대선 예비선거전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의회의 압력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진행하는 제스처를 취하겠지만, 북한이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약화된 부시 행정부의 협상팀을 상대로 긍정적인 자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고집을 부릴 경우,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의 양해와 지원하에 강경책을 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5MW 원자로 동결 수용할 듯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노선이 6자회담의 구체적인 의제 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한 것이다. 12월 6자회담에서 등장한 ‘초기 이행조치(first stage of implementation measures)’라는 용어로 함축되는 미국측의 제안은 북한이 ▲5MW 원자로 동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의 재입국 허용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의 실태에 대한 공개선언 ▲핵실험용 지하시설의 폐기 등을 먼저 이행할 경우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경제지원, 전쟁 종식 및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북한이 먼저 받아들일 만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현재 가동 중인 영변 원자로의 동결은 북한 스스로 2차, 3차 6자회담 때 먼저 제안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연료 지원을 요구했다. 이때 미국은 “우리는 핵 폐기를 원하지 그전처럼 동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동결만으로는 이에 대한 보상지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나머지 4개국은, 심지어 일본도 지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초기 이행조치로 5MW 동결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국제사찰을 허용할 경우에는 북한이 극히 싫어하는 IAEA 대신 다른 국제사찰기구조직을 요구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핵무기 및 핵 계획의 실태를 공개하는 문제는 북한의 협상전략상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제네바 협상 당시에도 “우리가 가진 걸 다 보여주면 뭘 가지고 협상을 하느냐?”는 태도를 견지했다. 당시 강석주 대표는 “어느 머저리가 발가벗고 길바닥에 나가 앉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북한은 알려지지 않은 핵 무기고나 시설을 밝힐 경우 군사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반면 핵실험장 폐기 문제는 오히려 간단히 풀릴 수도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의사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지난번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 해제 문제의 선결을 주장하고 핵 문제는 논의하는 것조차 거절했다. 힐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이 본국 정부로부터 금융제재 문제를 떠나 6자회담의 본질적인 문제인 핵 폐기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이다. 북미 협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대표들도 상부로부터 받는 지침(훈령)의 제약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김계관과 힐의 차이

    그러나 북한의 협상대표와 미국의 협상대표 사이에는 자국의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의 기여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김계관 부상은 북한 내에서 대미협상 경험이 가장 많다. 바로 위에 강석주 제1부상이 있어 그를 통해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최고결정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그는 1994년 1차 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제네바 협상 기간에도 당시 북한의 수석협상대표이던 강석주 제1부상의 자문에 수시로 응했다.

    필자가 10여 년간 현장에서 겪어본 바에 의하면, 김계관은 상황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며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습득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미국과의 접촉에서 배운 것을 신속하게 역이용하는 능력을 종종 과시해왔다. “말 대 말,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같은 북한측의 용어들도 김계관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순히 북한의 수뇌부가 결정한 내용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를 창출하는 작업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반면 미국측 협상대표인 힐 차관보의 처지는 다소 다르다. 그는 주한미국대사로 와 있는 동안 한국을 배우겠다는 열의를 보였고, 미국대사관과 웹사이트를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2년 전 부시 행정부 2기 출범과 함께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겸 대북 협상대표를 맡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의욕은 대단해 보였다. 그가 라이스 장관으로부터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가 누려보지 못한 신축적인 협상 재량권을 부여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부여받은 권한의 실체는,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 정책의 내용상 신축성이 아니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대표와 접촉할 수 있는 외교 형식상의 신축성뿐이었다. 북한 대표와 대화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으면서 설득을 통해서라도 북핵 포기를 관철해보라는 것이었다.

    주한미대사직을 떠나 워싱턴으로 돌아간 그가 체니 부통령이나 럼스펠드 장관 등 막강한 강경파에 둘러싸인 백악관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자신의 언행을 조정하기 시작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눈여겨볼 것은 그의 후임으로 서울에 부임한 버시바우 현 주한미대사가 오자마자 “북한은 범죄정권”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이 발언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당시 위싱턴의 분위기를 정확히 읽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명전권대사’란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대변하는 것이므로 대통령의 기분을 전달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이렇듯 협상장에서 마주한 미국과 북한의 두 대표의 위상 차이만을 살펴봐도, 부시 행정부가 최근 보여주는 ‘변화의 흐름’의 실체는 분명해진다. 외견상 임기 중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지금까지 주장해오던 모든 것을 양보하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거나 ‘초기 이행조치’ ‘조기수확(early harvest)’ ‘건설적 반응(constructive response)’과 같은 미국측의 함축적인 표현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 핵 계획은 누가 봐도 심각한 위협이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위협의 해소를 목표로 하는 6자회담의 현 협상단계에서는 해결절차의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 북핵 폐기와 연결된 문제들-금융제재, 유엔제재,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한 해당 분과들을 각각 별도로 조직해 동시에 협상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제네바 4자회담을 포함한 북한의 다자회담 참여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 대표단이 이런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금융 문제를 별도의 워킹그룹에서 다루는 것은 북미 간의 유해발굴 협상과 함께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제를 순차적으로 다뤄 나가면서 궁극적인 핵 폐기와 연결하는 것 외에 미국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지연전술의 함정

    따라서 이제부터는 ‘말 대 말’보다는 ‘약속 대 약속’을 이행하는 단계가 돼야 한다. 약속의 이행을 통해 특히 북미 간에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 것이다. 차관보급 이상의 고위급 접촉은 신뢰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협상은 6자 틀에서 하면서 신뢰조성을 위해 북미 간 외교적 접촉을 갖는다면 협상진도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반면 북한이 미국의 다음 행정부가 등장할 때까지 협상을 미루거나 의도적으로 지연전술을 쓴다면 북한에 이로울 것이 없다.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북한은 어쩔 수 없는 나라’라는 판단이 재확인되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미국 내에서 확산되면 북미관계와 북핵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12월 6자회담에서 확인된 중간선거 이후 美 대북정책
    김동현

    1936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대학원 석사, 동 박사과정 이수

    서울 UN방송국 편집장, 중앙일보·한국일보 워싱턴 현지 편집장, ‘The Washington Observer’ 편집장

    1978년부터 2005년 6월까지 미 국무부에서 한국어 통역으로 한미·북미협상 참가

    現 고려대 연구교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이 바라는 종착역은 여전히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복귀 불가능한 철폐)에 머물러 있다. 2004년 3차 6자회담 때 북한이 이 용어 자체에 완강히 반대한 이후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 용어를 요구하지 않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변화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처음부터 주장해온 ‘한반도의 비핵화’를 6자회담의 목표로 설정했다. 북한의 핵무기와 핵 계획의 폐기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참가국 사이에 일치된 목표다.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이 그 공의 무게를 지나치게 가볍게 평가한다면 해결의 기미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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