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정영진 부장판사의 직격 토로

“사법불신 초래한 대법원장, 의혹 해소 않고 버티면 탄핵해야”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7-04-09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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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진 부장판사의 직격 토로
    인사상 불이익이 예상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인사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망해버린 상황에서 올라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만일 인사에 불만이 있어 그런 글을 올렸다면 제가 ‘석궁테러’ 당할지도 모르죠.”

    3월5일 오후,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다섯 번째 올린 직후 기자와 만난 정영진(鄭永珍·49) 부장판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항소8부장인 그는 지난 2월20일부터 3월5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법원 내부통신망에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그가 문제 삼은 이 대법원장의 비리 의혹은 대부분 언론 보도에 근거한 것으로 세금 탈루, 과다 수임료, 전별금, 수사 중단 압력이다. 이중 전별금과 수사 중단 압력 의혹은 조관행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관련된 것. 조 전 고법부장은 법조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부장판사와 변호인은 수사과정에 이용훈 대법원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글 올릴 게 있으면 또 올린다”



    정 부장판사는 이에 덧붙여 법관 인사제도의 문제점도 제기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법부장 승진제도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폐지를 요구한 것. 정 부장판사는 2월26일 올린 네 번째 글에서 “위법한 고등부장(고법부장) 승진인사를 이유로 (대법원장에 대해) 탄핵소추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판사실에서 기자와 마주앉은 그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했다. 법원에서 품위손상을 이유로 징계하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표정이나 말투로 보아 전혀 개의치 않는 듯싶었다.

    ▼ 글 올린 것 때문에 많이 시달리셨겠습니다.

    “괜찮습니다.”

    ▼ 경고 받으셨다면서요?

    “법원장(서울중앙지법원장)한테 구두경고 받았습니다.”

    ▼ 인사에 반영되겠네요.

    “그러겠죠.”

    ▼ 글 또 올리실 겁니까.

    “올릴 게 있으면 또 올릴 겁니다.”

    조직의 경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그는 2월28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법원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법원 가족들 간의 화합, 유대라는 또 다른 소중한 가치를 위해 제 글들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며 그간 자신이 4회에 걸쳐 올린 글을 모두 삭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3월5일 ‘최재천 의원의 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또다시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려 논란의 불씨를 살렸다. 최 의원이 2월22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정영진 판사의 사법권력 더 겸손해져라’는 제목의 글에 대한 반론 형식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대법원장 관련 의혹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비판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수장을 이토록 과도하게 두들긴 정 부장판사는 어떤 사람인가. 전북 출신으로 서울 중동고, 고려대 법대를 나온 그는 1982년 사시 24회에 합격했지만 병역을 마치느라 동기보다 한 해 늦게 임관했다. 1986년 광주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해 지방법원과 서울 지역 법원을 두루 거친 다음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부임했다.

    그가 맡았던 재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린다 김 사건 재판. 2000년 6월 백두사업 과정에 실무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 시절엔 사학재단 비리를 고발한 교사의 성추행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해 화제가 됐다. 2005년 9월엔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업체가 해외에서 국내 저작권을 침해했더라도 재판관할권은 대한민국 법원에 있다”는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그와 함께 임관한 사법연수원 15기는 최근 인사에서 8명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이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정 부장판사의 대법원장 공격이 고법부장 승진 탈락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대법원장 면담하고 싶다”

    ▼ 법원 내부통신망에 네 차례 올린 글을 다 삭제한 후 새로 글을 올린 이유는 뭡니까.

    “제가 글을 삭제한 건 코트넷에서 제 글로 법원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 걸 우려했기 때문이지, 저의 시각이 바뀌거나 주장을 철회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올린 글에서는 제 글에 댓글을 달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대법원장으로부터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나요.

    “그러잖아도 만나뵈려고 여러 번 주변 사람을 통해 말씀드렸는데 전혀 응답이 없습니다.”

    ▼ 조직의 룰인가 보지요.

    “취임 이후 실무자들까지 다 만나셨으면서, 왜 저는 안 만나려 하시는지…. 지지난 주 금요일에 법원 모 간부를 통해 대법원장 비서실장에게 면담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남들 눈을 피해 휴일에 만나고 싶다고. 그런데 기회를 안 주시네요. 아무런 연락이 없네요.”

    ▼ 지지하는 판사가 많지 않습니까.

    “모르겠어요. 워낙 판사들이 얌전하고 말을 안 하니. 대법원의 권력이 점점 비대해지고 있어요.”

    ▼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 더 비대해졌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사법권 독립이란 판사의 재판에 대해 누구도 간섭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후 구체적인 사건 재판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결국 인사권인데, 그것이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칠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는 “과거엔 대법원장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일이 없었다”고 비판하면서도 “말씀 내용은 지지한다”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 어떤 점에서 대법원장의 권력이 더 비대해졌다는 겁니까.

    “전임 최종영 원장 시절 민사사건 재판의 신모델이라고 해서 효율적으로 재판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 하루아침에 사라졌어요. 이 대법원장이 말한 구술주의나 공판중심주의만 부각되고요. 그런데 사실 구술주의나 공판중심주의는 이 대법원장이 처음 언급한 게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자주 얘기돼오던 것입니다.”

    정영진 부장판사의 직격 토로

    세금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1월4일 출근길에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제도 면에서 (권력이) 더 강화된 건 아니고요?

    “그건 아닙니다.”

    ▼ 고법부장 승진제도가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이 대법원장의 위법 행위를 지적하셨는데, 그건 전임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죠. 예전에 문흥수 변호사가 부장판사 시절 그 문제를 제기해 헌법소원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계속 시간을 끌며 결정을 내리지 않는 동안 문 판사가 옷을 벗게 됐고 결국 요건이 안 돼 취하했어요. 법에 없는 건 국민이 위임한 게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역대 대법원장이) 위법한 제도를 계속 운용해온 것은 대법원장 개인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판사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법부장은 처음으로 승진의 의미를 갖는 자리입니다. 당연히 판사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어느 대법원장이든 그것을 놓기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제도가 꼭 필요하다면 법을 바꿔야죠.”

    “법관계급제 폐지해야”

    현재 법관의 보수체계는 단일호봉제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 재직 중 마련된 이 법안에 따르면 판사는 보직에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1호봉에서 17호봉까지 단일화된 봉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인사 때는 승진제가 엄연히 적용돼 법관계급화의 족쇄가 풀리지 않고 있다. 법관계급제의 주역으로 비판받는 것이 바로 승진의 첫 관문인 고법부장이다. 해마다 많은 판사가 고법부장에 승진하지 못해 법복을 벗는 게 현실이다. 고법부장 승진율은 평균 57%로 알려져 있다. 즉 동기 중 반수가량만 승진하고 나머지는 탈락하는 것이다.

    ▼ 판사들이 고법부장 승진제에 대해 불만이 큰가요.

    “오랫동안 그런 체제에 길이 들어 있어선지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분위기입니다. 한편으로는 계급제가 매력도 있어요. 승진을 목표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동기부여가 되니까요. 그런데 사법부에서 그렇게 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소신 있는 재판을 하기 힘들다는 거죠. 그러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예전에 긴급조치 재판을 할 때도 인사권으로 판사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했거든요. 바로 그런 문제점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관계급제를 운용하지 않는 거죠.”

    ▼ 판사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있겠군요.

    “의식이 없어 그럴 수도 있고요. 워낙 업무량이 많아 신문도 제대로 못 보니…. 하지만 정식으로 문제가 제기되면 법에 없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대해 찬성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판사들이 정 부장판사의 주장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진지하게 반응을 보인 사람은 부산지법 문형배(사시 28회) 부장판사뿐이다. 정 부장판사가 ‘석궁테러 관련-이용훈 대법원장의 거취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첫 글을 올린 2월20일 오후 당시 창원지법 소속이던 문형배 부장판사는 ‘정 부장님, 누구를 위하여 이런 글을 올렸습니까’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올렸다.

    문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법원을 대표하는 대법원장을 비판할 때는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라며 “정 부장님이 올린 글이 오히려 뚜렷한 근거 없이 법원을 비판하던 사람에게 구실을 하나 더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개탄했다.

    ▼ 문형배 부장판사는 “법관계급제가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냐고 따졌던데요.

    “제 글의 취지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명확히 해명해 국민의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계속 해명을 하지 않아 국민이 불신한다면 퇴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퇴진하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판사는 헌법상 임기가 보장되니 그냥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법적인 장치로 탄핵이 있어요. 그런데 탄핵하려면 사유가 있어야죠. 법을 위반한 사례. 그래서 고등법원 부장 승진인사를 거론한 겁니다. 문 부장은 제 글을 잘못 해석하고….”

    대한변협의 추가해명 요구

    ▼ 문 부장판사는 또 정 부장판사의 글이 고법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데 따른 인사 불만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뜻으로 비판했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글을 썼는데, 문 부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대법원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동기는 석궁테러 사건입니다. 석궁테러 사건에 몹시 충격을 받아 이런저런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록 보고 판결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 들어가 그 사건과 관련해 법원을 비판하는 네티즌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어 고등법원 부장 승진인사가 나기 전에 법원 내부통신망에 석궁테러 사건과 관련해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두 차례 올렸습니다. 석궁테러는 물론 비난받을 행위지만, 김명호 교수나 그를 옹호하는 네티즌이 사법부가 썩었다고 비난하니 법원도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죠.

    제가 만일 인사에 신경 썼다면, (고등법원 부장) 인사 대상자였다면 그런 글을 올리지 않았겠죠. 대법원장이 싫어할 것 아닙니까. 당시 대법원 공보관에게 전화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사법불신이 심각하니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고. 사법개혁엔 당연히 대법원장 문제가 포함되는 거죠.”

    ▼ 사법개혁을 주장하려니 사법부 수장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긴가요.

    “언론이 한창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그게(석궁테러 사건) 터졌거든요. 네티즌의 사법부 비난도 이 대법원장 때문에 더 심해진 면이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장이 해명을 잘해서 풀리면 좋지만, 해명하지 않아 사법부 전체가 불신받는 상황이 지속되면 대법원장이 거취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즉 제 글의 초점은 (대법원장의) 해명이고 사퇴는 그 다음 단계입니다. 대법원장이 사퇴한다고 곧바로 사법불신이 해소되는 것도 아닐 테니.”

    ▼ 대법원장은 그간 해명한 내용, 곧 세금 탈루는 세무사의 업무착오이고, 조관행 전 고법부장과 관련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수임료와 관련해선 꼬박꼬박 세금을 냈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으니 더 이상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세금 탈루의 경우 대법원장이 해명한 직후 대한변협에서 ‘그걸로는 안 된다. 추가해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어요. 대한변협에 몸담은 변호사들은 다들 수임료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을 테니 그런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추가해명을 요구한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뜻 아닙니까. 공식기구인 변호사협회에서 그런 얘기를 했으니 국민은 의심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대법원장은 더는 해명하지 않고 있어요. 저는 과연 더 해명할 게, 더 설득할 게 없냐고 묻는 거죠.

    대법원장은 (진로 법정관리사건 성공보수금) 5000만원에 대한 세금 탈루 문제가 불거지자 ‘변호사 시절 탈세한 적이 전혀 없다’며 ‘필요하다면 수임 명세 전부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하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수임계약서가 있어야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 파기했다고 하니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걸 보관할 의무가 있냐고 되물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에는 보존했냐는 거죠. 대부분의 변호사가 수임계약서를 보존하는 건 의뢰인이 시비 걸 가능성이나 세무조사에 대비하는 등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거든요. 대법원장이 되면서 파기했다는데, 그렇게 떳떳하면 왜 파기했냐는 거죠.”

    묵시에 의한 사기죄

    ▼ 수임 명세서를 파기하면 세금 납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나요.

    “꼭 그렇진 않죠. 사건번호가 남아 있을 테니, 의뢰인 이름을 확인해 찾는 방법도 있고. 법원에 기록이 남아 있겠죠.”

    ▼ 그 전제는 대법원장이 수임한 사건 명세를 밝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 과다 수임료 의혹도 제기했죠?

    “이용훈 대법원장은 5년간 변호사 하면서 60억원을 벌었다고 신고했습니다. 사실 국민은 5000만원에 대한 탈세가 아니라 60억원 때문에 더 분노하는 거죠. 변호사들조차 어떻게 그 기간에 60억원을 벌 수 있느냐고 의아해해요. 심지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정당하게 번 것이라면 누가 시비 걸겠어요. 그런데 전관(前官)예우, 즉 실제로는 소송업무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대법관 출신이라는 명의만 내걸고 번 돈이라면 문제라는 거죠. 진로 법정관리 재판에 관여했던 이대순 변호사가 그런 의혹을 제기했어요. 만일 그렇게 했다면 의뢰인이 그 명의가 필요해서였겠죠. 그것을 달면 뭔가 유리한 게 있으니 그랬을 테죠. (상고심을 맡은) 대법관이 소송서류에 적힌 이용훈 전 대법관의 이름을 보고 유리하게 판결해줄 거라 기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사실이면 대법원에 전관예우가 작용한다는 얘긴데, 이건 말이 안 되죠.”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인 2003~2005년 진로 법정관리 사건과 관련, 법정관리를 신청한 골드만삭스 계열 세나인베스트먼트로부터 4건의 소송을 위임받아 모두 2억5000만원의 수임료를 받았다. 이와 관련,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이대순 변호사는 지난 1월5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이용훈 대법원장의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이용훈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했지만, 골드만삭스에 대한 실질적인 변론은 김앤장이 맡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하면 유죄판결 나올 것”

    ▼ 제가 아는 변호사들 얘기를 들어봐도 대법원 상고사건의 경우 대부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하는데 이름만 거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사실 제가 가장 큰 문제로 보는 게 전관예우입니다.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진짜로 전관예우 혜택을 받았다면 심각한 문제거든요. 물론 전관예우가 없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전관예우가) 없는데도 의뢰인이 잘못 알고 착오상태에서 준 돈을 그대로 받았다면 묵시에 의한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죠. 예를 들어 고객이 전관 변호사한테 1000만원을 주면서 판사한테 잘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쳐요. 그런데 변호사는 판사한테 찾아갈 생각도 없어요. 그 돈을 줘봤자 판결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른 척하고 그 돈을 받았다면 묵시에 의한 사기죄라는 거죠.”

    ▼ 실제로 그런 판례가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가능하다는 게 제 의견이에요. 만일 그런 판결이 나오면 앞으로 전관 변호사들이 그런 짓 못 할 것 아닙니까. 의뢰인이 수임료 반환소송도 낼 수 있고.”

    그는 “대법관 출신이라고 무조건 한 건에 수천만원씩 받는데, 하는 일이 명의만 거는 것이라면 정당한 보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원은 수임료 관련 소송이 제기될 경우 그 금액이 적정선을 넘었다고 인정될 경우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는 “이 대법원장의 비리의혹은 도덕성 시비를 넘어 형사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금 탈루의 경우 곧바로 기소가 가능하고 사기죄가 인정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소시효가 남아 있으니. 전별금도 포괄적 뇌물이므로 문제가 돼요. 재판하면 다 유죄판결이 나올 겁니다. 물론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조관행 전 고법부장에게 전별금을 줬다는 의혹은 지난 1월 검찰 쪽에서 흘러나왔다. 언론은 검찰 간부들의 말을 인용해 법조비리로 구속된 조 전 고법부장과 변호인이 수사과정에 전별금 수수 등 이 대법원장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수사팀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 전 고법부장은 검찰이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과 관련해 계좌추적에 나선 지난해 6월 중순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검찰이 내 계좌를 추적하면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전별금 100만원을 준 사실이 탄로 나니 수사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또한 이 대법원장은 김종훈 비서실장을 통해 이 같은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조관행이 고법부장 승진 때 (변호사) 사무실로 인사를 왔고, 30만원을 현금으로 줬을 것”이라며 “그렇게 30만원씩 돈을 준 판사가 10명쯤 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라인 책임자이던 서울중앙지검 고위간부는 “수사 초기 조 전 판사의 변호인이 수사팀에 ‘조 부장은 대법원장이 상당액의 전별금을 줄 정도로 아끼는 사람이니 선처해달라’고 얘기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대법원측에서 ‘관례대로 비리 의혹 판사의 명단을 넘기면 전보 조치를 취할 텐데 왜 수사하려 하느냐’고 따졌다”며 수사 중단 요청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수사팀 관계자는 “계좌추적 결과 이 대법원장의 전별금은 찾지 못했다”고 밝혀 혼선을 빚었다.

    “인사 불만에 따른 문제 제기 아니다”

    ▼ 조관행 전 고법부장과 관련해 이용훈 대법원장의 전별금 수수 의혹을 제기한 것은 어떤 근거에서인가요.

    “대법원장은 다른 사안과 달리 전별금 의혹에 대해선 직접 해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정황에 비춰 (전별금을) 준 게 사실이지 않나 싶어요. 현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이 예전에 대법원장과 같이 변호사 하던 분이잖아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서실장이 (전별금 의혹이 제기되자 곧바로) 돈 줬다는 얘기를 했어요. (조관행 전 고법부장 승진 때) 현금으로 30만원을 줬는데, 당시 다른 판사 10여 명에게도 줬을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해놓고 그게 문제가 되니 ‘추측이었다’고 둘러대고 있어요. 대법원장 대신 공보관이 나서서 ‘그런 일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대법원장은 기자들이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이제 그만하자’고만 하고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 탈세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던 분이 전별금 의혹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고 피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선 성품이 호탕한 분이라 후배 판사가 찾아왔을 때 그냥 돌려보낼 분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제가 보기엔 양심이 있으니 차마 거짓말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판사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잖아요. 게다가 이 대법원장은 신앙인이잖아요. 줬는데 안 줬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검찰 수사결과 (조관행 전 고법부장의) 계좌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는데, 그렇다면 김종훈 비서실장을 조사해 현금으로 줬다는 얘기가 사실인지 확인해봐야죠.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정황이잖아요. 전별금을 줬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걸로 정리하고 넘어가면 되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하니 앞으로 계속 약점으로 거론될 것 아닙니까.”

    ▼ 대법원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이 다 근거가 있다고 보십니까.

    “적어도 해명을 요구할 정도의 근거는 있다는 거죠.”

    ▼ 판사들 사이에선 법관으로서 명확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 의혹만으로 그런 글을 쓸 수 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인식이 부족해 그럴 겁니다. 나처럼 이것저것 다 조사해보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판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꼼꼼히 조사해볼 시간이 없어요. 최재천 의원도 뭐, 다 알고 그랬겠습니까.”

    그는 2월20일 처음 올린 글에서 법관계급제의 폐해를 설명하면서 ‘소설 같은 시나리오’임을 전제로 조관행 전 고법부장 사건에 관여한 두 판사가 지난 2월의 정기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조 전 고법부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상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대에 못 미치는 보직을 받았고,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황현주 부장판사는 유력한 고법 부장판사 후보였는데 승진 대열에서 탈락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형배 부장판사는 반박글에서 “대법원장의 거취를 거론하면서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증거로 재판하는 데 길든 저에게는 소설 같은 시나리오가 낯설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를 의식이라도 하는 듯 정 부장판사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그런 표현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법관들은 말을 꼬고 돌리지 않아요. 계약서에 써 있는 그대로만 해석합니다. 제가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은 법관계급제의 폐해를 사람들이 실감나게 이해하도록 예를 든 것입니다. 판사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면 바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 예라고 하기엔 지나치지 않나요. 누가 봐도 현실을 빗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사에 대해 제가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

    ▼ 법원 주변에서 두 판사의 인사를 두고 말이 있는 건 사실이죠?

    “예.”

    ▼ 그렇지만 두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그 말씀이죠?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는 것뿐입니다, 인사에 대해 얘기한 게 아니라. 그걸 왜 확대해석하는지….”

    “가장 큰 걸림돌은 전관예우”

    ▼ 조관행 전 고법부장과 이용훈 대법원장의 관계에 대해 더 아시는 게 있나요.

    “없어요. 언론에 보도된 것말고는. 국민의 사법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게 제 글의 초점이에요. 국민의 사법불신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으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거죠. 공보관과 비서실장한테도 전화로 그런 뜻을 전달했습니다.”

    ▼ 묵묵부답입니까.

    “두 사람 다 반응이 없어요. 인사와 관련해 제가 글을 올린 시점을 문제 삼는데, 석궁테러 사건에 자극받아 사법개혁을 주제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우연히 인사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글쓰기를 더 늦출 수 없던 건 임시국회 때문이었어요. 임시국회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임시국회에서 사법개혁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또 다시 법원에 대해 사법개혁하라는 얘기가 나올 것 아니에요. 그럼 법원만 계속 공격당하는 거죠.”

    ▼ 무엇이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라 보십니까.

    “재판 국민참여제, 로스쿨,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다 중요하죠.”

    ▼ 다 찬성하는 편입니까.

    “그렇죠.”

    ▼ 다시 정리하면, 석궁테러 사건으로 국민의 사법불신을 절실히 느꼈고 그걸 해소하려면 사법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 걸림돌이 이용훈 대법원장이라는 거네요.

    “그중 하나라는 거죠. 가장 큰 걸림돌은 전관예우죠. 그런데 판사들은 전관예우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전관 변호사라고 봐주는 게 없거든요. 이 문제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전관예우가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려 합니다. (전관예우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넘어가야지 무조건 전관예우를 하는 걸로 매도당해선 안 된다는 거죠. 문제가 있다면 걸러내야죠. 문제 판사는 징계하고.”

    ▼ 변호사 세계에서 전관예우는 상식인데요.

    “하여튼 무슨 신고센터를 만들든지 해서 이번 기회에 완전히 짚고 넘어가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정말 실상이 뭔지. 법정에서 저는 모든 재판과정을 MP3로 녹음하고 있어요. 속기하는 사람과 별개로 녹음을 해서 법정에서 오간 얘기를 나중에 일일이 확인하는 겁니다.”

    ▼ 사법개혁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하시지만, 네 번째 글에서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까지 언급한 걸 보면 처음부터 대법원장 개인을 겨냥해 글을 올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제 글의 초점은 해명하라는 겁니다. 퇴진하라는 게 아니라.”

    ▼ 결국 물러나라는 뜻 아닌가요.

    “해명을 안 하고 계속 버텨 국민이 불신한다면.”

    ▼ 대법원장 퇴진이 사법불신 해소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제 주장은 퇴진이 아니라 해명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는 사법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법원은 대법원장 관련 의혹을 해소하라는 거죠.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전관예우 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시간이 되는 대로 문제 제기를 할 겁니다.”

    정영진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한 대법원의 반박

    “의혹은 이미 다 해소됐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정영진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모아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변 공보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 중 딱 하나 맞는 건 세금 부분”이라며 “소득 60억원에 대한 세금으로 20억원을 냈는데, 그 중 5000만원의 소득을 누락해 2000여 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변 공보관에 따르면 언론 보도와 달리 5000만원은 성공보수금이 아니라 정당한 수임료였다고 한다. (골드만삭스측과) 수임 계약을 할 때 재판에서 60% 이상 승소할 경우 성공보수금을 받는다는 약정을 맺었는데, 30%만 승소했기 때문에 성공보수금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변 공보관은 또 조관행 전 고법부장과 관련된 의혹은 이미 다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전별금. 이 대법원장이 조 전 고법부장에게 전별금을 줬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는 게 변 공보관의 주장이다. 논란을 일으킨 김종훈 비서실장의 발언은 와전된 것이라고.

    “김 비서실장은 ‘전별금을 줬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조 전 고법부장에게 전별금 200만~300만원을 주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 전 고법부장이 찾아온 건 맞는데 (두 사람이) 같이 식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후배 판사들이 찾아오면 식사를 같이 하곤 하는데 식사를 못할 경우 밥값으로 20만~30만원씩 주는 것 같더라’고 말했을 뿐 ‘전별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변 공보관은 또 “검찰도 나중에 전별금 수수 사실을 확인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고, 대법원 윤리감사관실도 조 전 고법부장으로부터 수사 중단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며 “대법원측의 설명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언론 보도에 유감을 나타냈다.

    변 공보관 얘기를 들어보면 정 부장판사의 대법원장 면담은 성사되지 않을 듯싶다. 변 공보관은 “대법원장 면담은 절차가 필요하다. 할 말이 있으면 (소속기관장인) 서울중앙지법원장한테 하면 된다”며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이미 소속 판사들한테 메일을 보내 ‘정 부장판사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마당에 대법원장이 만날 필요가 있겠나”라고 면담 요청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 마지막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해결하시는 게 좋다고. 면담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그는 “오해받는다”며 사진 촬영을 완강히 거부했다. 징계 소문에 대해 그는 “나는 평생 법관을 하려는 사람”이라며 “징계에 대해선 전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징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징계에 필요한 소속 기관장(서울중앙지법원장)의 ‘징계 요청’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대법원은 정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을 공격하는 글을 올리자 지난해 5월 윤리감사관실에서 그의 업무 행태에 대해 조사를 벌인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조사에서 일부 판사들은 “정 부장판사가 배석판사들에게 판결문을 10번이나 고치도록 했지만, 어떻게 고치라는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가 하면 휴일도 없는 업무에 일부 판사가 병을 얻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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