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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여름 세계 최대·최강의 ‘슈퍼 이지스’ 전투함 띄운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한국, 올여름 세계 최대·최강의 ‘슈퍼 이지스’ 전투함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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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우산도 감세관’ 안용복

안용복은 생몰연대도 확인되지 않는 평민이다. 지금은 부산 지역인 동래부 출신의 안용복은 동래수군에 들어가 전선(戰船)의 노를 젓는 ‘능노군(能櫓軍)’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동래에 있는 왜관(倭館·왜인들 관사)에 드나들며 일본말을 익힌 것이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의 전부다.

조선은 태종 때인 1417년부터 섬에 사는 사람을 불러들여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취했다. 고려 말부터 심각한 피해를 주는 왜구 때문이었다. 왜구는 섬을 기지 삼아 조선의 해안을 침략했다. 조선 조정은 왜구의 근거지를 없앨 생각으로 공도 정책을 택한 것.

대신 조선 조정은 무장 병력이 일정기간마다 섬을 둘러보는 ‘순시·수토(巡視搜討)’ 제도를 채택했다. 이로써 비워 놓긴 했지만 조선의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섬에 살고 있는 주민이 있으면 잡아들였다.이러한 정책이 유지되던 1693년, 안용복은 박어둔(朴於屯)과 함께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갔다가,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해 싸우다 붙잡혔다. 일본으로 끌려간 안용복은 굴하지 않고 유창한 일본어로 “울릉도에 왜 왜인들이 들어와 있느냐”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에도에 알려져 막부에서 관심을 가졌다.

당시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0여 년이 지난 때라 에도 막부는 조선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려 했다. 그래서인지 에도 막부를 이끄는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울릉도는 조선 땅’이라고 쓴 서계를 안용복에게 주었다.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오던 안용복은 이 서계를 쓰시마 도주(島主)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1696년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다 일본 어선이 침입하자 물리치고, 스스로 ‘울릉도와 우산도(독도)의 세금을 지키는 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을 자처하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켰다.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선의 조업을 제한하자 일본이 조선 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조선 조정은 안용복을 잡아들여 ‘사사로이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려 했다. 이때 영의정인 남구만이 그의 뜻을 높게 보고 구명에 나선 덕에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그리고 1697년 대마도주가 ‘울릉도는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서계를 보내옴으로써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 영유권 분쟁을 끝냈다.

이러한 내용을 파악한 기자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끄러우니 새로 짓는 함정에 안용복이란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히 우리나라 함정에 붙은 인명은 전부 귀족이나 왕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평민 출신은 장보고 한 명인데, 장보고도 청해진 대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신라 왕실과 사돈을 맺으려고 할 정도의 귀족으로 활동했다.

평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왜 이들은 합당한 영예를 얻지 못하는가. 시마네현 의회의 결의로 독도 영유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니, 안용복이란 평민을 부각시켜야한다, 의병은 육전(陸戰)에서는 나올 수 있어도 해전(海戰)에서는 나오기 어려우니, 안용복을 반드시 함정 이름으로 붙여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시기 한진중공업은 CH-60 중형 헬기 13대를 싣는 대형 수송함(LPH) 건조를 끝내가고 있었다. 기자는 이 배를 안용복함으로 명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윤광웅 국방장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기자는 윤 장관이 이끄는 국방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썼는데, 윤 장관은 그것이 마음에 걸려 전화를 걸어온 듯했다.

인사를 끝낸 다음 기자는 그의 말문을 막을 겸 다짜고짜 “장관님 다음에 건조하는 함정엔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끄러우니 독도와 울릉도를 지켜낸 평민 안용복의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의했다. 윤 장관은 엉뚱한 제의에 당황해하면서도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국방부에서 “곧 건조하는 대형 수송함을 안용복함으로 명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해군에서 바로 반대의견을 표시했다. 해군은 수송함에는 산봉우리 이름을 붙여왔는데, 안용복은 산봉우리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으므로 ‘독도도 산봉우리다’는 의견이 대두돼, 이 배는 ‘독도함’이란 이름을 얻었다.

독도함 명명에 반발한 일본

대형 함정 건조 같은 큰 행사에는 우방국 무관이 참관해 축하도 하고 정보도 수집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일본측은 독도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 불만을 표시하며 독도함 진수식에 무관단을 보내지 않았다. 일본의 정부 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공개석상에서 한국 해군이 독도함이란 이름을 사용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독도에 밀리긴 했지만 ‘평민 안용복’은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이름이기에 사라지지 않았다. 독도함 진수식이 있기 두 달 전인 2005년 5월4일 현대중공업에서 제2차 한국형 구축함(KDX-Ⅱ) 제4번함인 왕건함 진수식이 열렸다. 이 행사가 있기 전 여러 언론은 ‘국방부가 KDX-Ⅱ 제4번함을 안용복함으로 명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서도 해군측은 ‘안용복은 명장도 명군도 아니다’라는 논리로 반대했다.

국방부는 또 한 번 후퇴했다. 그리고 바로 “새로 만드는 KDX-Ⅲ에는 명장이나 명군이 아닌 애국 서민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그 후보로 안용복과 1967년 베트남전에서 적과 교전하다 전사한 의무부사관 지덕칠 하사, 그리고 2002년 서해교전 때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을 받아 분전하다 전사한 357 고속정 정장 윤영하 대위를 제시했다.

KDX-Ⅲ에는 새로운 룰로 만든 이름을 적용할 수 있으므로 해군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안용복은 군사 마니아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는데 “가장 값비싼 함정이자 최초의 이지스함에 독도와 울릉도를 지켜낸 평민 이름을 붙인 것은 잘한 것이다”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안용복이 이지스함의 이름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나 현재로서는 뒤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35년간 식민지의 설움을 당한 한국이 일본에 똑같은 보복을 할 기회는 여간해선 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국력이 현저히 약했기 때문이므로 한국은 일본과의 국력 차이를 줄이는 데 매진하여야 한다. 한국이 일본에 먹히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강한 해군력을 갖는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전력의 70~80%에 이르는 해군력을 갖는다면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중국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인정은 독도 영유권을 굳히는 것으로 작용한다. 독도 영유권을 굳히고 해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힘없던 시절 안용복처럼 독도를 지켜낸 의병을 발굴해야 한다.

마지막 의병 홍순칠을 함정 이름으로

안용복을 함정 이름으로 제시한 기자는 또 한 명의 의병을 함정 이름으로 내놓고자 한다. 6·25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 일본은 여러 차례 독도에 상륙해 다케시마가 그들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1954년 4월이 되자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울릉도 청년 홍순칠(洪淳七·1929~86)이 참전했다 돌아온 울릉도 청년 30여 명을 모아 독도의용수비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종원 당시 경북 경찰국장 등의 도움으로 무장을 갖추고 독도에 들어가, 일본인들의 독도 상륙을 막는 수비대로 활동했다.

독도에 무장 병력이 주둔한다는 사실을 안 일본은 쉽게 독도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다 1954년 10월23일, 제8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3척을 동원해 접근해 왔다. 이를 발견한 독도의용수비대는 박격포와 기관총 세례를 퍼부어 16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사상케 했다(당시 NHK 라디오 방송 근거). 이 사건 이후 일본은 독도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외교적으로만 아우성을 쳤다.당시 한국은 일본에서 청구권 자금을 받아 경제개발을 할 생각이었는데 일본은 차일피일 한일협상을 미루며 독도의용수비대를 없애라고 요구한 것. 이에 이승만 정부는 1955년 말 독도의용수비대를 철수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경찰을 파견해 독도를 지키게 함으로써 독도 영유권을 보다 확실시했다. 홍순칠씨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없던 시절 독도 영유권을 확고하게 지켜낸 마지막 의병이다.

그의 이름을 함정 이름으로 쓴다면 일본은 또다시 불편해할 것이다. 그러나 독도함 사례에서 보듯 반발은 일과성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해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면 일본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는 ‘국수적’이라고 할 정도로 애국자 이름을 함정에 붙이고 있다.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때 단군과 해모수, 주몽, 온조, 박혁거세, 주몽의 두 번째 부인이자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 등을 함정 이름에 붙인다고 발표할 수는 없을까? 함정은 국민의 애국심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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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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