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개전에서 종전까지, 어디에도 정당성은 없었다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2/5
동양에서 정의의 전쟁은 ‘의전(義戰)’이라 일컬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그리고 구한말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일어선 민병대의 이름도 의병(義兵)이었다. 의병이란 문자 그대로 조국 방어라는 대의를 위해 일어선 병력이다. 정의의 전쟁 기준에서 볼 때 적의 침공을 받아 이를 물리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은 의전이다. 동양에서 의전의 개념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나라의 왕권이 시들해진 뒤 맞은 춘추시대에는 제후들이 서로 세력다툼을 벌여 전쟁이 그칠 새가 없었다. 맹자는 “춘추 기록 가운데는 의전(義戰)이 없다. 다만 저쪽이 이쪽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수는 있다”고 평가했다.

20세기 들어 일어난 여러 전쟁에서도 교전 당사국의 지식인들은 애국심을 발휘해 저마다 “우리는 정의의 전쟁을 벌인다”는 주장을 펴곤 했다. 따라서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들은 정의의 전쟁론을 가리켜 ‘전쟁을 합리화하는 이론’이라는 비판을 가하곤 했다. 기독교 신학자 마크 더글러스의 지적대로 정의의 전쟁론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이론이다.

서구의 전쟁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정의의 전쟁론에 접근해왔다. 첫째 전쟁 선포의 정당성(jus ad bellum), 둘째 전쟁 행위의 정당성(jus in bello), 셋째 전쟁 종식의 정당성(jus post bellum)이다. 앞의 두 가지는 오래 전부터 논의돼온 것으로 이른바 ‘전통적인 정의의 전쟁론’이라 일컬어진다. 서양의 정의의 전쟁 연구자들은 대개 앞의 두 분야, 특히 전쟁 선포의 정당성(전쟁을 벌이는 올바른 동기)에 집중해왔다. 저질러지는 전쟁범죄나 전쟁 뒤 패전국의 재건 따위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쟁 선포·행위·종식의 정당성

정의의 전쟁이 요구하는 규범들을 살펴보면, 20세기와 21세기에 지구상에서 벌어진 많은 전쟁이 그 기준에 못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첫째 기준인 전쟁 선포의 정당성 요건을 갖췄다 해도 둘째 기준인 전쟁 행위의 정당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정의의 전쟁이라 하기 어렵다. 나아가 한 국가가 정의의 전쟁이라 할 만한 충분한 명분 아래 전쟁을 벌였고, 전쟁 수행과정에서 전쟁범죄 등 잔혹행위를 벌이지 않았다 해도 뒷마무리를 일방적으로 전승국에 유리하게 매듭짓는다면 정의의 전쟁을 벌였다고 할 수 없다. 참다운 정의의 전쟁으로 평가받으려면 세 가지 검증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런 검증을 거쳐 ‘정의의 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전쟁이 역사상 과연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하다.



정의의 전쟁 이론을 이라크에 대입하면 평가는 어떠할까.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많은 비판가의 시각을 정의의 전쟁론 용어들로 바꿔 정리한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정의의 전쟁의 기본적인 준칙인 ‘정당한 이유’ ‘올바른 의도’ ‘적절한 권위’(이라크 침공의 경우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뜻함), ‘마지막 수단’(전쟁은 외교를 비롯한 모든 다른 수단을 동원한 뒤에 벌여야 한다) 등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다른 국가를 침공하겠다는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실제로 그런 침공 계획이 없는 주권국가를 침공하는 것은 분명히 정의의 전쟁 준칙에 어긋난다.

이라크전쟁의 1단계는 2003년 4월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라크 내 반미 저항세력들은 후세인 정권 붕괴 4년을 맞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게릴라 전술을 활발히 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라크가 시아-수니파의 갈등으로 내전에 가까운 혼란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 종식의 정당성(jus post bellum) 기준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엄격히 지킬 필요성이 생겨난다.

전쟁 4년이 지나도록 오늘의 이라크가 혼란상을 거듭하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정책이 졸속으로 이뤄졌음을 뜻한다. 부시 행정부가 2003년 초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최종 결정할 무렵, 미국은 어떻게 전쟁을 정당하게 마무리함으로써 전후 이라크를 재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의 전후 재건계획을 종전 훨씬 전부터 다듬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곧 전쟁 종식의 정당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거나 매우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급조된 이라크 재건 청사진

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전쟁 종식 정당성 기준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이라크 주둔 미군의 규모다. 미국에서는 군부를 중심으로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라크의 혼란이 전쟁 종식의 정당성 기준에 어긋나는 미국의 잘못된 점령정책 탓이 아니라 이라크 주둔 미군 규모가 작은 데서 비롯됐다는 믿음이다. 이 같은 믿음은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비판하는 군부 장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이라크 침공 한 달 전인 2003년 2월 에릭 신세키 미 육군참모총장은 의회 증언에서 “전후 이라크를 안정시키는 데는 수십만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5년 내전을 끝낸 보스니아의 안정을 위해 파병된 나토 병력 규모를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이라크엔 50만명쯤이 주둔해야 한다는 게 신세키 대장의 증언 요점이었다. 이 발언은 “10만쯤이면 충분하다”고 해온 럼스펠드의 주장과 충돌하는 것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신세키 총장은 곧장 해임됐다.

2/5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목록 닫기

‘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