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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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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살이에 필요한 것은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이에요. 의사소통에 필요한 것은 말과 짓(행동)이지요? 말이 소리와 의미의 사회적인 약속이라는 것은 이미 아시는 일이고, 행동방식에도 사회적으로 약속된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바로 예예요. 예가 까다롭고 어렵다고요? 자연스럽게 버릇이 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건데 행동양식에 대한 기준을 잃어버려서 버릇으로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 거예요.

예는 실천인데 그걸 이론으로 하고 있자니 어려울 수밖에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데 예는 알수록 힘은커녕 짐만 된다고 하니 큰일나지 않았어요? 짐이 될 걸 누가 배우려고 들겠어요. 예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실천할 때 살기가 편리해지고 쉬워져서 힘이 되는 것이 바로 예예요. 인간이 더불살이를 하는 한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 근본이 예이니 세상이 변한다고 예를 팽개칠 순 없지요. 아니 변할수록 시대에 맞는 예법은 더욱 절실해지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일흔일곱 연세의 전례연구원장은, 공자왈 맹자왈은 아니라도 옛 문헌을 줄줄이 인용하거나 전통 예법을 모르는 ‘요즈음 젊은것’들의 행동을 개탄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할 거라는 편견이 내게 없지 않았다. 어른 앞에서 하는 내 언행이 예에 맞는지 자신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간 쭈뼛거리는 내게 그는 통쾌하게 말했다.

“예는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심심해서 가위 바위 보로 정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합리적인 근거가 없고서는 예라고 할 수가 없어요. 여러 사람이 모여 살기에 더 쉽고 편한 길을 찾다보니 수천년이 지나는 동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예입니다. 나는 흔히 저기 있는 산길을 보라고 말해요.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지만 각자가 산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가장 가깝고 편한 길을 찾아 자꾸 걷다보니 저절로 생긴 게 산길 아니겠어요? 예는 바로 그런 산길 같은 것이라고요.”

우리는 설이면 부모님께 세배한다. 어른에게 절을 하는 것만 세배인 줄 알았더니 김득중 선생댁은 아랫대에게 세배받기 앞서 부부간에 맞절을 한다고 한다. 서로의 생일에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맞절을 한다고 한다. 아무리 세월이 달라졌어도 설에 절하는 풍습이 사라질 수는 없고 사라지게 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부모께 세배하고, 둘이 마주앉아 절을 하고, 돌아앉아 제 아이들한테 세배받고! 생각만 해도 훈훈한 광경인데 어른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집에서는 안타깝게도 이게 어색하다. 평소 안하던 일을 새삼 하려면 부자연스럽지만 늘 해오던 집이라면 부부가 편하게 맞절을 할 수 있다.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거기 산길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올라가듯 훗날 배우자와 맞절을 하면서 살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하는 절이지만 이걸 하는 집과 안하는 집은 가족문화가 판이할 것이 확실하다. 이게 바로 예절이라는 것을 나는 김 원장과 얘기하는 중 절로 깨닫는다.

절에는 물론 법이 있다. 앉는 순서도 있다. 1977년에 전례연구원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균관에서 전통혼례 시범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전통혼례 시연에는 남자 7명 여자 9명이 필요했다. 그는 모인 남자들에게 우선 절을 시켜봤다.

“깜짝 놀랐어요. 일곱 명이 일곱 가지 절을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절 자세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흔히 가가례(家家禮)라고 말한다. 집집마다 예절이 다를 수 있다는 건데 김득중 원장은 이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헌을 찾아보면 400년 전에는 절이 다 같았어요. 예법을 모르니까 가가례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호도하려는 겁니다.”

통일된 예법은 있다

우선 남자 절은 손을 벌리고 엎드리는 게 아니다. 양손을 일자로 벌리는 건 고두배(叩頭拜)라 하여 임금 앞에 절할 때나 하는 자세다. 이마를 바닥에 찧어 절하는 게 고두배인데 손을 벌리는 건 이마를 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우리 절의 기본 손동작은 공수(拱手)다. 공수란 양손을 공손히 모아 잡는 동작이다. 이건 남녀가 마찬가지다(손의 위치만 달라질 뿐이다). 손을 모아 잡고 양 무릎을 꿇어 모은 손등에 이마를 대면 큰절이고 이보다 덜 숙이면 평절이다.

여자도 방법은 마찬가지다. 큰절일 땐 공수한 손을 쳐들었다가 앞으로 내리고, 평절일 땐 손을 양 무릎 옆으로 짚고 앉는 것만이 다르다. 여자가 큰절을 할 때 가부좌하는 것은 전통예법이 아니며 한 무릎을 세우고 앉는 것은 기녀나 하던 절이라 한다(나는 어린 시절 ‘작은 절’이라 하여 한 무릎을 세우고 앉는 절을 배웠다. 김 원장에게 그 얘길 했더니 어린애에게 애교 섞인 절을 허용했을 뿐, 성인여자의 정식 절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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