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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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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김득중 선생이 그의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손의 위치는 남좌여우(男左女右)가 원칙이다. 남자는 왼손이, 여자는 오른손이 위쪽에 가게 포개어 잡으라는 것이다. 남좌여우는 우연히 정해진 게 아니라 음양오행에서 나온 자세다. 왜 남자는 왼쪽이고 여자는 오른쪽인지 그걸 납득할 만하게 설명해달라고 다가앉는 내게 김득중 원장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6·25전쟁을 피하느라고 내가 군대에 늦게 갔거든요. 갔더니 별도 달도 없이 캄캄한 밤 깊은 산에 병사들을 헤쳐놓고 지도만 하나 달랑 들고 부대까지 찾아오라는 훈련을 시켰어요. 이때 방향을 아는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만져보는 거예요. 만져서 나뭇잎이 무성한 쪽이 남쪽이라는 거예요. 태양이 생명 에너지의 원천이라 나무는 남쪽을 향해 자라는 겁니다.

사람도 생명이니 마찬가지예요. 남향을 하고 서면 왼쪽이 동, 오른쪽이 서가 되지 않겠어요? 동은 해가 뜨는 방향이니 당연히 양(陽)이고 서는 음(陰)이 되겠지요? ‘남동여서’라고도 하지만 그러면 헷갈리니까 남좌여우라고 하는 겁니다. 강의할 때 젊은 사람들에게 음양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다 도망가요. ‘플러스 마이너스’라고 해야 알아듣지. 하하.”

남좌여우는 공수할 때 손모양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혼인날 신랑신부가 주례 앞에 설 때도, 첫날밤 잠자리에 들 때도, 평소 거리를 걸을 때도 부부간 침실에서도 방향을 유념하면 우주의 음양과 더욱 깊이 감응하는 자세가 된다. 그러니 이왕 남녀가 같이 행동하고 살 바에야 음양의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어 해로울 게 전혀 없겠다.

제수를 진설하는 방식도 평소에 늘 궁금하던 일이었다. 조율이시(棗栗梨枾)니 홍동백서(紅東白西)에 무슨 까닭이 있을까.



“조율이시라는 말은 암만 찾아봐도 전통 예서엔 안 나와요. 그냥 과실은 남쪽에 차리라는 말만 나오지…. 신위(神位)가 북쪽에 있으니까 앞쪽이 남인 거지요. 과실은 지방과 계절에 따라 올리는 내용이 달라진다고만 나와 있어요. 조율이시는 나중에 한글 예절책을 지은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편리하게 만들어낸 말 같아요. 왜냐하면 한문에는 대구가 있어야 하는데 조율이시에는 마땅한 대구도 없거든.

다만 전통혼례에는 ‘대추는 씨가 하나니 임금이고, 밤은 세 톨이니 삼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이니 육판서고, 배는 씨가 그보다 더 많으니 다른 벼슬아치다’ 하는 말이 나오긴 해요. 내 생각엔 동조서율, 홍동백서가 아귀가 맞는 거 같아요. 동쪽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니 붉은 대추를 놓고 밤은 서쪽나무니(栗자의 구성을 보라) 천상 서쪽으로 가는 거지. 동조서율이 과일의 위치를 말한다면 홍동백서는 차리는 순서를 말한 것 같지 않아요? 원래 한문을 쓸 때는 우측부터 썼으니까 동쪽부터 차리라는 거지….”

김득중 선생은 1931년생. 광산김씨 40대손, 조선 예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13대 손으로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서 태어났다. 우리 나이로 마흔일곱이 되던 1977년, 그는 아내를 불러 이렇게 선언한다.

“부인, 지금까지 내 삶은 처자식에 얽매인 것이었소.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살아야겠으니 양해해주시오.”

아내는 “언제는 영감 인생이 아니었단 말이오?” 하고 깜짝 놀라지만, 그에게는 사람이 세상에 났으면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하나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가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이 선언은 지금 듣기에 돈키호테식으로 들리지만 그는 진지했다. 그 신념은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한국의 예’ 다시 찾다

“내가 여섯 살쯤 됐을 거예요. 그때 할머니들은 손자를 자랑스럽게 앞세우고 나들이를 다녔거든요. 앞에 쭐렁쭐렁 걸어가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지팡이로 내 옆구리를 쿡 찔러요. ‘왜?’ 하고 돌아볼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말없이 지팡이로 저기 강변에 엎어진 짚신을 가리켜요. 그걸 바로 놓고 오라는 거예요. 요즘 애들 같으면 싫다고 하겠지만 그때는 할머니 말씀을 거역 못하지요. 내려가서 짚신을 젖혔더니 모래가 잔뜩 들었어요. 손으로 모래밭을 파서 즉석 웅덩이를 만들고는 거기다 짚신을 설레설레 흔들었어요. 그랬더니 모래가 말끔히 털어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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