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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16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It’이던 그들, ‘He’가 되고‘She’가 되다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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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역사에서 흑인에게 가장 추앙받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노예해방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흑인 참정권을 얻어낸 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프레더릭 더글러스, 그리고 ‘I have a dream’이란 명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다. 노예해방을 넘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를 외칠 때까지, 그 지난했던 시간들.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1963년 워싱턴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명연설을 하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

2003년 7월 말, 워싱턴은 여름의 열기로 후끈했다. 그리스 신전 모양의 링컨 기념관도, 맞은편에 흡사 우주선처럼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탑도, 그 너머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 돔도 눈부신 햇살에 하얀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인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포토맥 강변의 제퍼슨 기념관은 일렁이는 강물 덕분인지, 그래도 이들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제퍼슨 기념관 내벽에 새겨진 글귀를 읽으면서 나는 이 비현실적인 느낌이 작열하는 햇살 탓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신의 제단에 맹서컨대, 나는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는 어떠한 폭정에도 영원히 적대적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념의 표상, 곧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표상하는 바, 즉 자유 평등 혹은 민주주의는 미국의 국민적 이념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지난 300여 년 동안 근세사의 흐름을 선도해온 푯대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이념이 그렇듯 미국 사회를 떠받쳐온 이들 또한 역사적 현실에서 볼 때 자기모순이요, 영원한 미완의 추상태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초의 성공적인 식민지 혁명의 지도자요 서구 민주주의 정치 실험의 주역이던 조지 워싱턴이나 미국 계몽주의 정신의 권화(權化)요 이성적 공화주의자인 토머스 제퍼슨이 노예 소유주였다는 사실이 새삼 그것을 말해준다.

이런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실상 수도 워싱턴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국부(國父) 워싱턴이 터를 잡고 프랑스인 건축가 피에르 랑팡(Pierre L’Enfant)이 설계한 합중국의 수도가 오늘날 그 노예들의 후손인 흑인의 도시로 탈바꿈돼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그 이념에 합치되는 민주적 평등 사회의 실현을 외쳐온 수없는 함성이 체화된 존재로서 오늘도 그것을 촉구하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따라 산재한 이 상징적 기념물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기념물의 거대함과 순백의 외양이 어쩐지 이념과 거리가 먼 현실의 실상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베일인 양 낯설어 보인다.

실상 근래에 주로 흑인문학을 눈여겨보고 있는 나에게 워싱턴은 조지 워싱턴의 도시보다는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에게 오늘날 그들의 정신적 대부로서 추앙받고 있는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도시라는 의미가 더 컸다.

링컨 기념관을 돌아 나와 전면의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면서, 1963년 8월28일 바로 이 계단에서 여기 그들 사회의 심장부를 가득 메운 25만의 군중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습이 환각처럼 떠오르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노예제 폐지 운동가요, 언론인이며, 작가였던 불세출의 흑인 지도자 더글러스가 활동 주무대였던 뉴욕 북쪽 로체스터에서 이곳 워싱턴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1872년, 그의 나이 55세 때였다. 그는 1877년 지금은 사적지로 지정돼 있는 아나코스티아 언덕에 집을 사서 세다 힐(Cedar Hill)이라 명명하고, 1895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이런 이유말고도 워싱턴은 더글러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도시다. 만년에 그가 맡은 몇 가지 공직에 워싱턴 지역 연방 보안관과 워싱턴 지역 연방 기록관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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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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