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호

인류 구하는 돌연변이는 선조들의 선물?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6-04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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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에 대든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사료를 먹인 결과는 부메랑처럼 인류의 뇌를 겨누고 있다. 광우병에 대한 진실 중 재미있는 사실은 문화와 인류의 진화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과거 식인(食人) 풍습이 있던 나라의 후손들은 광우병에 대항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가장 많이 광우병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류 구하는 돌연변이는 선조들의 선물?

    광우병에 걸린 소를 도살하기 전 소 주인이 슬픔에 잠겨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에는 선현의 지혜가 담겨 있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엔 옛 지혜가 들어맞지 않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예전 송충이는 솔잎이 제 분수에 맞는 먹이였다. 소에겐 꼴이 제 분수에 맞는 먹이였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송충이는 ‘솔잎’을 고집하다 오히려 인간의 집중적인 방제 활동을 초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대신 솔잎혹파리가 송충이 자리를 차지해 소나무를 괴롭힌다. 소는 꼴 대신 인간이 주는 뼛가루 같은 육류가 섞인 사료를 먹다보니 이제 초식동물보다 잡식동물에 가깝게 됐다.

    송충이 속담은 인간에게 제 분수를 알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인간은 분수를 모르고 송충이를 없애는 쪽으로 대응했다. 결과가 좋았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오히려 인류는 자연에 대든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갖가지 새로운 전염병에 시달리게 됐으니 말이다.

    인간이 치르는 대가 중 광우병은 대표적이다. 동심을 자극하는 친근한 소를 해악의 근원으로 보게 만든 것이 사람이었으니. 게다가 광우병은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벌어지는 내내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광우병은 ‘전염성 해면상뇌증’이라는 퇴행성 신경질환의 일종이다.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광우병의 원인과 발병 양상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인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질병은 인류의 미래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해면상뇌증은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면서 근육 경련, 발작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이 병은 사실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여러 동물에게서 발견됐다. 사람에게서는 1920년대에 처음 발견돼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어서 양과 염소에게도 비슷한 병(진전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밍크, 사슴, 고양이, 소에서도 유사한 질병이 발견됐다. 또 사망자의 뇌를 먹는 풍습이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에게 흔히 발생하는 쿠루병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도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그런 퇴행성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십년이 흘러도 별 소득이 없었다. 전염성을 띠고 있으니 그 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과학자들은 포자충, 바이러스, 단백질, 다당류, 핵산, 단백질과 핵산의 복합체, 다당류로 둘러싸인 핵산 등이 매개체일 것이라고 저마다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매개체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다양한 화학물질들에 잘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만 밝혀냈을 뿐이다.

    이단적 주장이 노벨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신경학 교수 스탠리 프루시너도 그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1982년 자신의 연구 결과와 가설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진전병에 걸린 양과 염소의 조직을 햄스터나 생쥐 같은 쥐과 동물에게 주입했을 때 병이 전염된다는 데 착안했다. 조직 추출물을 얼마나 주입했을 때 발병률이 어느 정도가 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햄스터의 조직에서 그 물질의 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런 다음 쥐과 동물의 지라 등에서 조직을 채취해 진전병 매개체를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다양한 실험약품과 기구를 써서 다각도로 그 매개체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마침내 그는 그 매개체가 핵산을 분해하는 약품에는 견디지만 단백질을 분해하는 일부 물질에는 분해되거나 활성을 잃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진전병의 매개체가 핵산이 아니라 단백질의 특성을 띠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는 단백질성 감염 입자라는 어구를 줄여서, 그 매개체에 ‘프리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전염병 매개체인 프리온이 단백질이라면, 그것은 이단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1954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혀낸 뒤 이른바 정보는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흐른다는 중심 원리가 확립돼 있었다. 어떤 매개체가 전염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번식이나 증식을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 지저분한 무좀균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다 그렇다.

    번식이나 증식을 하려면 주형 노릇을 할 유전물질, 즉 DNA나 RNA가 있어야 했다. 단백질은 정보의 원천이 아니기에, 다른 생물의 몸에 들어가서 활동을 할지언정 자체 증식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따라서 단백질이 전염병 매개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프루시너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연구진의 자료와 다른 사람들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두 가지 모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단백질이 핵산을 꽁꽁 감싸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산이 없이 단백질 자체가 감염 매개체라는 것이었다. 그는 전자가 설득력은 더 있지만 단백질 안에 핵산이 들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연구진이 찾은 후자가 사실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후자가 옳다면 단백질인 프리온이 어떻게 새 숙주에 들어가서 복제를 할 수 있는가라는 골치 아픈 문제가 남는다. 핵산이 없으면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니까. 프루시너는 프리온이 미지의 핵산을 포함하고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상정해 가능한 복제 메커니즘을 논의했다. 핵산이 있다면 그 핵산이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거나 숙주의 유전체에 있는 프리온 유전자를 활성화할 수 있으므로 별문제가 없다. 핵산이 없다면 프리온 자체가 숙주 유전체의 프리온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단백질에서 핵산을 만든 다음 복제를 하거나, 프리온 자체가 다른 프리온을 합성하는 부호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어느 쪽도 만만한 가설이 아니었다.

    여러 동물과 인간의 뇌에 퇴행성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 단백질임을 시사한 그의 논문은 과학계의 광범위한 반대에 직면했다. 하지만 프루시너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프리온이 전염병을 일으킬 뿐 아니라 유전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더 강력한 주장을 내놓았다. 이어서 프리온이 무해한 단백질 분자의 형태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정상 단백질을 유해한 단백질로 전환시키는 식으로 증식을 한다는 기발한 이론까지 내놓았다. 이런 주장은 끊임없이 과학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양에서 소로, 다시 사람으로

    그러나 후속 실험 결과들은 프루시너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험 증거가 하나 둘 쌓여갈수록 프리온이 정말로 기이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 드러났고, 단백질을 변형시킴으로써 유전병과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프리온이 전염병도 유전병도 아닌 산발적인 질병도 일으킨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프리온이 여러 가지이며 종류별로 일으키는 퇴행성 질환들이 다를 가능성도 제기됐다. 처음에 이단적이라고 여겨졌던 업적이 인정을 받으면서 1997년 프루시너는 노벨상을 받았다.

    프리온이 유명세를 탄 것은 광우병 때문이다. 1984년 영국의 한 농장에 있는 암소 한 마리가 머리를 떨어대고 걸음을 이상하게 걷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 농장의 다른 소들도 같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목장 주인과 수의사는 검사를 의뢰하기로 했고, 검사를 담당한 병리학자는 진전병에 걸린 양의 뇌처럼 그 소의 뇌도 구멍이 송송 뚫려 있음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농장에서도 같은 증상을 보이는 소가 발견됐고, 그 소도 마찬가지로 뇌가 비정상이었다. 그 소들이 걸린 질병의 정식 명칭은 소해면상뇌증이었고, 일반적으로 광우병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첫 발병 사례가 나타난 뒤 해마다 그 병에 걸린 개체수가 늘어났고, 1992년에는 영국에서 무려 3만5000마리의 소가 그 병에 걸렸다.

    문제가 소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아마 가축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처럼 소를 도살처분하고 끝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1989년 한 30대 여성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걸렸다. 이 병은 대개 노인에게 나타나며 젊은층에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제는 그 여성이 광우병이 발생한 농장에서 살았다는 점이었다. CJD는 광우병과 증상이 비슷했으므로 사람들은 혹시 그 여성이 소에게서 전염된 것이 아닐까 우려했다. 당국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CJD 환자가 계속 나타나자 말문이 막혔다. 환자들은 주로 광우병 발생 농장과 관련이 있거나 쇠고기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었다.

    1996년 로버트 윌 연구진은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에 광우병과 CJD의 관련성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영국에서 최근 급증한 CJD가 기존 노인층에게 나타나는 CJD와 다른 새로운 변종 CJD이며,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것이 광우병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보건당국도 결국 가능성을 인정했다.

    영국 당국이 수많은 소를 도살하는 동안 과학자들은 소들이 처음에 어떻게 그 병에 걸리게 됐는지 찾아 나섰다. 그들은 진전병에 걸린 양이 원인이 아닐까 의심했다. 혹시 양의 진전병 매개체가 소에게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진전병은 수세기 전부터 있었고 양과 소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 함께 방목됐는데, 그 병이 최근 들어서야 들불처럼 퍼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연구자들은 기계화한 대규모 사육 방식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했다. 풀만 베어다 먹여서는 가축을 대규모로 사육하기가 어렵다. 인공 사료를 줘야 한다. 문제는 사료에 있었다. 사료업자들은 내장, 뼈 등 도축할 때 버려지는 부위를 모아 가축의 사료로 썼다. 즉 소 같은 초식동물에게 육류를 먹인 것이다. 풀 같은 저단백 먹이를 먹던 소에게 고기와 뼛가루가 들어간 고단백 사료를 먹이자 발육 속도가 빨라졌다. 거기에다 사육되는 양의 수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양의 사체들이 소의 사료로 쓰였고, 거기에 진전병에 걸린 양이 얼마나 섞였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1988년 영국 정부는 재활용 동물 단백질을 가축에게 먹이는 것을 금지했고,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 결과 광우병 발생률은 크게 줄어든 듯하다. 하지만 동물 단백질을 먹이는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식물성 사료보다 동물성 사료가 더 영양분이 많으므로 동물성 사료를 먹이려는 시도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식동물을 잡식동물로 개량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질 성싶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종간(種間) 전염이 가속화한다는 사실이다. 광우병과 변종 CJD는 한 종이 지니고 있던 병이 다른 종에게로 전염된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물론 자연에는 종간 전염 사례가 가득하다. 아예 종을 옮겨다니는 생활 방식을 채택한 존재도 많다. 모기와 사람을 오가며 살아가는 말라리아 원충이 대표적이다. 기생하는 생물의 처지에서는 환경이 열악할 때 더 안정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다른 숙주를 이용할 수 있으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유례없이 의외의 방식으로 종간 전염을 가속화했다. 광우병뿐 아니라 침팬지에게서 전파된 듯한 에이즈 바이러스, 새에게서 전파되는 조류 인플루엔자 등은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자연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면서 빚어진 결과다.

    식인풍습과 저항력

    인간이 아직 면역력이나 저항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새로운 전염병과 접촉하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중세의 흑사병이나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그렇게 대규모 전염병이 휩쓸면 주로 운이 좋거나 건강 상태가 좋거나 저항성을 지닌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과정이기도 하다.

    2003년 영국의 사이먼 미드 연구진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은 쿠루병으로 유명한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을 찾아가서, 당국이 그 풍습을 금지하기 이전에 식인 의식에 참여했던 나이든 여성 30명의 DNA를 채취해 분석했다. 여러 차례 사망자의 뇌를 먹었음에도 쿠루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쿠루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에 저항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했다.

    연구자들은 그 여성들의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에서 독특한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인간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는 정상적인 형태가 두 개 있을 때(동형 접합)보다 정상인 것 하나와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 하나씩 조합돼 있을 때(이형 접합) 프리온 질병에 더 저항성을 보인다. 그런데 그 나이든 여성들은 대부분 그 유전자가 이형 접합이었고, 식인 풍습이 금지된 뒤에 태어난 여성들은 그보다 이형 접합 비율이 낮았다. 즉 나이든 여성들은 쿠루병에 저항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내친김에 영국의 인간 광우병 희생자들의 DNA를 분석했다. 환자들은 모두 동형 접합이었다. 신이 난 연구자들은 전세계 여러 민족 집단의 유전자를 조사했다. 그러자 전세계 민족에서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 일본인은 예외였다. 일본인은 나름대로 저항성을 주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

    미드 연구진은 다양한 인류 집단과 침팬지의 DNA 연구 자료를 종합한 끝에 그 돌연변이 이형 접합이 적어도 5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추정했다. 그것은 프리온 질병이 초기 인류에게 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그 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인류가 즐겨 사냥했던 어떤 동물에게 그 병이 흔했던 것일까. 그 병에 걸려 비틀거리는 동물이라면 사냥 기술이 뒤떨어지는 사람도 쉽게 잡았을 테니까 말이다.

    광우병에 취약한 한국인

    하지만 연구진은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포레족이 죽은 자의 뇌를 먹는 풍습 때문에 쿠루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초기 인류에게 식인 풍습이 흔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프리온 질병에 저항성을 부여하는 돌연변이가 그저 우연히 그렇게 전세계 인류의 유전체에 보존됐을 가능성은 작다. 그보다는 자연선택을 거쳐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인류가 아프리카로부터 나와 분산되기 전에 그 돌연변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과학 저술가인 니콜라스 웨이드는 일본인이 다른 돌연변이를 지닌 이유는 원래의 돌연변이를 잃었다가 나중에 프리온 저항성이 너무나 필요해지는 바람에 다른 돌연변이로 대신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식인 풍습이 흔했다는 것은 초기 인류 집단 사이에 전쟁이 흔했다는 의미라고 본다. 그렇다면 먼 과거에 있었던 식인 풍습이 현재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이 논리를 역으로 적용하면 재미있는 추정이 나온다. 한림대 김용선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한 동형 접합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95%에 달한다. 영국인이 40%인 데 비해 대단히 높은 편이다. 우리 조상은 영국인의 조상보다 식인 풍습에 덜 몰두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식인 풍습을 훨씬 더 오래전에 금지시켰다는 뜻일까.

    한국인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됐다는 것이 상식인데, 우리 역사와 식인 풍습은 무관했던 것일까. 아니면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돌 때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거나 면역력을 획득함으로써 살아남은 여성들을 이상하게 여겨 마녀로 몰아 화형한 것처럼, 동방의 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우리 선조가 식인 풍습의 생존자를 처벌한 것일까. 그렇다면 미풍양속을 해치는 자들을 없앤 행위가 후손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그렇게 보면 한 나라의 소들을 아예 몰살시키거나 초식동물을 잡식동물로 바꾸거나 종간 전염을 가속화함으로써 새로운 질병을 인류에게 도입하는 행위뿐 아니라, 마녀를 화형시키는 것도 식인 풍습을 금지하거나 그 행위자에게 처벌을 가하는 행위도 좋든 나쁘든 간에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끼친 셈이 된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런 행위들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프리온 질병이나 에이즈나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새 전염병도 사실상 인간 문화 활동의 산물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따라서 스탠리 프루시너는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전염 매개체라는 이단적인 학설을 제시함으로써 생물학계에 충격을 안겨주는 한편, 인류의 문화와 진화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마냥 둑을 쌓다가는…

    인류 구하는 돌연변이는 선조들의 선물?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프리온 질병은 그냥 전염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활동의 산물이 인류에게 낯선 새로운 진화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인류는 그런 식의 진화를 억제할 수단도 갖고 있다. 새 전염병이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역 체계와 의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광우병에 대해서는 아예 양에게서 소로, 소에게서 인간으로 전염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를 강력하게 취하고 있고, 천형(天刑) 취급을 받던 에이즈는 그저 만성 질환의 하나로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자신의 급격한 진화를 일으킬 요인들을 한껏 찰랑거리게 해놓고 그것을 막겠다고 둑을 더 높이 쌓고 있는 셈이다. 독감이 그렇고 지진이 그렇듯이 평온한 시기가 길어질수록 막상 일이 닥쳤을 때 피해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인류는 과연 언제까지 둑을 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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