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교수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교수

2/6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교수

내년이 정년이지만 평소 구상중인 생각들을 작품화 하려면 앞으로 10년은 꼬박 더 걸릴것 같다고 김양동 교수는 말한다.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중원의 동해안에 분포되어 군락을 이루던 고동이족은 태양숭배족이었다. 동해에 아침마다 둥그렇게 떠오르는 해는 언제나 정확하게 반복되는 불변의 진리였다. 또한 태양은 그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알이었다(우리말 ‘하늘’은 한(큰)+알(卵)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고, 고대인은 하늘(天)과 태양(日)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추운 날 한데서 밤을 지새본 사람은 안다. 해가 돋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인간이 얼마나 태양빛을 그리워하는지를! 이뿐 아니라 태양이 곧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층건물도 전기도 도로도 탈것도 상상할 수 없던 기원전 3000년, 야생짐승과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야 했던 신석기시대 인간에게 태양의 의미는 현대의 태양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신비이고 신앙이고 그 자체가 신(神)의 현현이었을 것이다.

빛을 그린 이유

산과 강과 흙뿐인 땅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의 크기와 기운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게다가 농경의 첫 번째 조건은 일조량이다. 초기 농경생활에 필요한 토기를 만든 고대인이 그 표면에 무엇을 그려넣고 싶었을지는 뻔하고 선명해졌다.

거기다 ‘빗’을 그렸겠는가, ‘빛’을 그렸겠는가. 토기의 빗금은 당연히 빛이었다. 빛은 그렇게 빛살의 형태가 되어 우리에게 닿았다. 그걸 고대인은 신에게서 온다고 여겼으리라.



빗살무늬는 빛살무늬가 되는 것이 백번 온당하다고 나는 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원룡 선생은 지금까지 잘 써오던 것을 혼동스럽게 굳이 새 이름을 만들 필요없다고 하셨다지만, 김양동 선생이 찾아낸 의미는 희한하게도 발음이 같다. ‘빗살’을 ‘빛살’로 바꾼다 해도 혼란스러울 게 전혀 없다는 것은 우리말의 너그러움이자 지금까지 제 이름 찾기를 기다려온 고대인의 모종의 주술인 것만 같다.

그까짓 토기 위의 무늬쯤 빗살이든 빛살이든 뭐가 대수냐고? 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토기 위의 무늬는 인간이 남긴 최초의 언어다. 최초의 언어가 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심원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상징한다. 그 빗살무늬는 지금도 우리 생활 곳곳에, 현대예술의 여기저기에서 원형질이 그대로 발견된다는 게 김양동 선생의 발견이고 주장이다.

“토기의 빛살은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신(빛살, 햇살)을 간절한 주술적 염원으로 새겨놓은 것이었어요. 최고 존재에 대한 경배심, 그리움,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면서 태양을 상징하는 의상(意象)을 긋고 새겼던 고대인의 마음이 토기를 보고 있으면 그대로 전달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이렇게 달라진다. 김양동 선생의 이야기에서 나는 여러 번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삽상함을 체험했다. 그는 또한 빛살무늬의 본질이 원시예술의 원형질을 이루어 한국미의 특색인 ‘선의 예술’을 만들어냈다고 유추한다.

‘아름다움’의 유전자

“이런 본질적인 미감은 배우고 가르쳐서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절로 민족정서에 배어들어 피와 살처럼 우리 것이 된 겁니다. 저 빛살무늬의 원초적 미감이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아름다움의 최초이자 최후의 것이 아닐까요? 그런 미적 정서가 현대미술 용어로 신(新)원시예술(New Primitive Art)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원시성은 언제나 순진 소박 단순 무기교 등의 특성을 지니며 동일 문양의 반복으로 나타나는 속성을 지닙니다. 김환기 정상화 곽인식의 작품과 박서보의 ‘묘법’시리즈, 서세옥의 군무,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시리즈, 하종현, 권영우, 송수남, 최영명, 오수환씨의 작업들이 내 눈에는 동이족 신석기 시대 빛살 무늬에 시원을 둔, ‘뉴 프리미티브 아트’화(化)된 모던 작업으로 보입니다.”

우연히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의 이응로전과 현대화랑의 정상화전을 그와 같이 보게 되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먹으로 찍은 동일 형태들, 방사상으로 퍼져가는 문양들, 200호 화면을 가득 채운 똑같은 선과 색의 반복은 아닌게아니라 토기 위의 빛살무늬와 연이어 있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그 작업이 이뤄진 시점이 기원전 2000년이든 서기 2000년이든 상관없이, 작업한 장소가 파리의 아틀리에든 한강변의 몽촌토성이든 상관없이 같은 이미지와 미감이 전해진다는 것은 전율할 일이었다.

2/6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교수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