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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칼이 아닌 척하는 칼, ‘은희경 장르’의 미학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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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감독인 동시에 배우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 은희경
저녁을 먹으려고, 가끔 다니던 제주도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여기를 다녀간 것도 한참 전의 일이구나 싶었다. 세월은 빨랐다. 결국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갔다. 냄비 위로 낙지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다 뜨거운 국물에 빠져버린다. 식당 아주머니가 가위를 들고 와서는 마법을 부리듯이 산 것을 죽은 것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았다.

은희경에게는 스파게티나 와인이 어울리는데 내가 대접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음식 취향을 물었다. 그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데, 맛있는 건 다 좋고 맛없는 건 싫다”고 했다. 누군가 ‘어떤 소설을 좋아해요?’ 하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변해도 되겠다. ‘좋은 소설이 좋아요. 맛있는 음식처럼.’

“저도 이제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전에는 단 둘이서 밥 잘 못 먹었어요. 여럿이 어울려서 먹었지.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도 잘 먹네요.”

그래, 그는 변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런데 그는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을 부여잡고 있었다. 소설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하고 있는 것인가. 더 깊고 넓어지는 것인가.



은희경은 자신에게 비루하게 다가오는 삶을 세련되게 재단해서 독자의 마음에 쏙 드는 사이즈로 만들어낸다. 위선이나 위악, 냉소가 그의 작품 결에 배어 있지만, 그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그만의 태도다. 가끔 나는 그가 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영화로 비유하자면 감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이기도 하다. 일인다역의 배우. 작품 속 분신은 결코 다른 사람이 연기해낼 수 없는 작가 고유의 것이다.

그의 소설이 다루는 삶은 우리가 실용서나 자기개발서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뭔가 배우려고 소설을 읽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좋은 소설은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준다.

어쩌다가 요즘 유행하는 처세술과 자기경영 우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독자의 손을 많이 타는 일본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소설은 소설일 뿐, 이제 나는 일본 소설이니 미국 소설이니 프랑스 소설이니 베트남 소설이니 하는 구분을 두지 않으련다. 이것도 어쩌면 어설픈 민족주의고 인종차별일 것이다.

“그건 직접정보인데, 그것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해서, 이 복잡하고 미묘한 삶을 살아내려면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소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좋은 소설은 어쩌면 직접정보가 제공할 수 없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기도 하니까요.”

차를 타고 가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 그를 두어 번 보았고, 아는 술집을 지나가다 동료 작가들과 어울려 즐겁게 웃고 있는 그를 보기도 했다. 한번은 가족과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일산으로 이사를 온 것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1995년이다.

세상을 향한 다이어트 북

그의 신간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받아들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오디오 북으로 제작된 ‘날씨와 생활’도 들어보았다. 표제작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서 이건 완전히 다이어트 교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소설은 다이어트에 대한 산문이 아니다. 하지만 비만으로 고생하는 이 세상을 향한 다이어트 북이긴 하다.

우리는 아름답게 보여지길 원한다. 이 소설은 아름답게 보이고 싶으나 결코 그럴 수 없었던 한 뚱뚱하고 고독한 남자의 내면 고백이다. 그리고 독자는 은희경이라는 소설가 자신의 다이어트 체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미리 일러주고, 잠시 그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보티첼리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은 축복받지 못한 출생을 한 소설 속의 주인공 ‘나’의 비만과 대비된다. 비만증 환자인 나는 어쩌면 현대인의 결핍을 상징하는 거대한 비곗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왜 인간을 고독하게 하는가? 그리고 아름다움이 왜 나를 멸시하는가?

소설 제목은 릴케의 시 ‘두이노의 비가’의 한 구절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는 이 구절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숭배하는 한 그것 때문에 멸시당하게 돼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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