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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디바 김추자 1981년 결혼 이후 최초 인터뷰

“난 은퇴하지 않았어요,‘공백기’가 길어졌을 뿐”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전설의 디바 김추자 1981년 결혼 이후 최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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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디바 김추자 1981년 결혼 이후 최초  인터뷰

1978년 김추자 재기 리사이틀 공연 때 찍은 사진. 1980년 1월 앨범으로 출시됐다.

▼ 선생님의 빅 히트곡인 ‘님은 먼 곳에’의 진짜 작사가가 누구인지를 두고 작사가 유호씨와 작곡가 신중현씨가 서로 자신이 작사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2심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1심에선 유씨가 승소). 선생님도 증언을 한 것으로 압니다만.

“신중현 선생님이 (악보에) 4B 미술연필 같은 것으로 뭔가를 썼다는 기억만 나네요. 유호 선생님의 노랫말 글자 수가 많아서 신 선생님이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신 선생님이 그걸 고치는 과정은 못 봤어요. 다 된 것만 봤지. 그러니 잘 모르죠 뭐. 우리는 노래만 잘 부르면 됐으니까요.”

요즘 젊은 층에겐 조관우의 리메이크 곡으로 더 유명한 ‘님은 먼 곳에’는 1970년 동양TV의 드라마 주제가로 만들어졌다. 연속극 작가는 유호씨였고 처음 이 곡을 부르기로 내정된 가수는 패티 김이었다. 그런데 녹음 당일 패티 김이 “이런 곡은 못 부르겠다”고 거절하면서 김추자가 급하게 대타로 선정됐다. 데뷔 앨범(1969년)에 수록된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로 각종 가요상을 휩쓸던 김추자는 이 곡으로 스타의 입지를 완전하게 굳혔다. 그는 당시 신중현이 이끌던 덩키스의 멤버로, 김추자의 히트곡 대부분은 신중현 작곡이다.

‘님은 먼 곳에’는 그 후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됐지만, 가장 호응을 받고 있는 조관우조차 “김추자 선생님의 원곡을 따라갈 리메이크 곡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만큼 김추자의 음색은 흉내내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독특하다. 워낙 히트를 하자 “리듬이 내게 맞지 않다”고 거절했던 패티 김도 후일 이 노래를 불러 자신의 앨범에 끼워 넣었다

가사 중 특히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대목에서 ‘꿈도 주고’ 부분은 당시 최고의 섹시 스타였던 김추자의 터질 듯한 몸매와 겹쳐지며 ‘몸도 주고’로 야릇하게 개사돼 불렸다.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 ‘달려라 허동구’ 후속 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도 ‘님은 먼 곳에’다. 김추자의 데뷔 앨범에 들어 있는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1971년) 된 바 있다.



▼ 3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는 ‘님은 먼 곳에’가 거의 연습 없이 녹음됐다면서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있었는데, 스튜디오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와서 1~2시간 연습하곤 그냥 녹음했지요. 일일연속극 첫 방영이 다음날이었는데 그 전날 노래를 녹음한 거예요. 오전 8시에 콜을 받고 운현궁 스튜디오에 가서 악보를 받은 뒤 11시에 연습과 녹음이 다 끝났으니까요.”

▼ 몇 시간 만에 어떻게 그런 노래가 나올 수 있습니까.

“‘빗속의 여인’ 앨범도 아침 10시에 모여서 11시쯤 점심 먹고 오후 2시에 다시 연습 들어가서 4~5시에 녹음을 다 마쳤는데요 뭘. 그 앨범에 20곡가량이 들어갔는데 그걸 2시간 만에 다 녹음했으니까요. 연습은 거의 못 했죠.”

▼ ‘님은 먼 곳에’를 리메이크한 가수가 많은데 누가 제일 마음에 듭니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각자 스타일이 다 다르니 어떻게 평을 하겠어요. 어떤 가수든지 곡을 받고 나면 자기 목소리가 허락하는 대로, 드는 느낌대로 부르니까 말입니다.”

판소리+솔+사이키델릭

김추자는 2000년대 들어 7080세대 음악의 르네상스 바람이 거세게 부는 와중에도 지금껏 TV 브라운관이나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다. 대형 가수로는 거의 유일하다. 김추자 음반을 누구보다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는 “이제 딱 두 사람 남았다. ‘그리운 사람끼리’ ‘목마와 숙녀’를 부른 박인희와 김추자다. 대중음악사적 관점에서 보면 김추자의 족적은 박인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은 관중을 압도하는 김추자의 현란한 춤사위와 섹시한 의상을 먼저 논하겠지만, 사실 그의 음악세계는 창법부터 30년을 앞서가고 있었다. 애절하고 구성지면서도 시원스레 탁 트였고, 어두운 듯하면서도 눈부시게 밝은 야누스 같은 창법은 당시 전위 음악의 장르였던 사이키델릭 음악에 흑인의 한(恨)이 배어나는 솔을 합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규성씨는 한을 내뱉는 듯 구성지면서 한편으론 탁 트인 김추자 노래법의 근원을 창이나 판소리, 민요와 같은 국악적인 면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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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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