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호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최고의 과학 교사는 주방과 화단에 있다

  • 신동희 단국대 교수·과학교육 dss25@dankook.ac.kr

    입력2007-06-07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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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키우기, 쇠고기 해동하기로 흥미 돋워라
    • 학교 과학시험, 때론 무시하는 게 방법
    • 숲 본 다음 나무 보면 사회과목보다 쉽다
    • 딸·아들 구별 없고, 적성도 필요없다
    • 과학책, 무조건 재밌는 걸로 골라줘야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전국의 모든 대입 준비생이 치르는 국가 주관의 예비고사, 그리고 대학별로 주관하는 본고사가 있던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꽤 괜찮은 대학의 자연계열을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적잖이 신경 쓰던 과목이 과학이었다. 물론 그때도 부동의 트리오 ‘국·영·수’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일류대 자연계열에 합격하려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학 개론 수준의 과학 실력은 갖춰야 했다.

    그래서 상당히 심화된 내용을 가르치는 과학 과외가 성행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거의 ‘전 학생의 사교육화’ 수준은 아니었지만, 1980년대 초 들어선 군사정권이 교육개혁 일성으로 ‘과외금지 조치’를 내릴 정도로 심각했다.

    본고사 폐지 이래 지난 27년 동안 요즘처럼 과학이 대입 수험생의 관심을 끈 적이 없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자연계열 통합논술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후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어 ‘과학 통합논술’을 치면 수십 가지의 책 소개가 나열된다. 학원에도 EBS(교육방송) 강의에도 과학 통합논술 준비 과정이 생긴 지 오래다. 출판업계도 청소년을 위한 과학이나 수학 관련 교양서적을 경쟁적으로 찍어낸다. 심지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용 학습지들도 과학 통합논술을 언급하면서 엄마들을 유혹한다. 과학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반겨야 할 일인지 헷갈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과학 통합논술 준비에 특효약은 없다. 주요 대학들이 발표한 2008학년도 과학 통합논술 예시 문항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수능 문제와는 달리 기출 문제도 빈출 문제도 없다. 수십년 동안 비슷비슷한 내용과 고만고만한 유형의 틀 안에서 출제해온 객관식 수능 시험과는 달리 과학 통합논술 문항으로 낼 만한 소재와 유형은 무궁무진하다.

    과학 통합논술 참고서적마다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한 답안의 조건으로 논리성, 창의성, 비판성을 들고 있다. 넓고도 정확한 과학 지식을 논리적으로 연결한 답안,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적 창의력을 발휘한 독창적 답안, 근거로 무장한 비판적 논리가 전개된 답안은 고3 한 해에 바짝 달라붙는다 해서 써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다.



    달걀을 품고 병아리가 태어나길 기다렸다는 에디슨 일화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건지, 괴팍한데다가 사회성도 없고 ‘완전 비호감’ 외모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영화 속 과학자들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건지 몰라도 과학을 잘하려면 독특하고 기발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 주변에는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과학자, 패션 리더 수준의 멋쟁이 과학자, 술 잘 마시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매력적인 과학자가 수두룩하다. 그들 중 비사회적이라고 느껴지는 과학자, 천재성이 감지되는 과학자는 극히 드물다.

    과학은 타고난 천재, 최소한 수재는 되어야 잘할 수 있다는 가설은 내가 경험한 여러 반증 사례에 의해 기각된다. 과학사(史)에 이름을 남길 천재 과학자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 그러나 극소수의 천재 과학자가 직관적으로 설정한 가설을 정교화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할 수준의 과학자는 천재가 아니어도 된다. 하물며 대학별 과학 통합논술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보기만 해도 ‘실험’

    한 반에 70명도 넘게 앉아 수업을 받던 7080 세대들의 중·고등학교에도 ‘과학실’은 있었다. 과학이 다른 과목과 차별화되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실험이다. 요리책 형식의 무조건 따라 하기식 실험의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실험은 과학의 꽃이다. 실험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과학하는 방법과 절차를 밟게 된다.

    협의의 실험은 문제 인식, 가설 설정, 자료 수집과 해석을 거쳐 결론 도출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거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과학자가 실제로 수행하는 실험에 해당된다. 그러나 초·중·고교생에게 실험은 광의로 해석되고 적용된다. 암석을 관찰하기만 해도, 매일의 기온 변화를 조사하는 것만도, 수목원을 답사하기만 해도 학생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학교 밖 과학활동의 장(場)은 다양하다. 박물관, 과학관, 식물원같이 돈이 좀 들어가는 장도 있고, 산과 강, 해변과 같이 돈 안 드는 장도 있다.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손과 코로 느껴보는 것은 지식의 내면화 효과는 물론이고 감성을 충만하게 해주는 효과도 크다. 동서고금을 통해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저명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체험학습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녀들의 체험활동은 집 밖의 장소에서만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다. 집안 전체가 과학활동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근사한 화분에 난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자녀들이 직접 화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놀라운 과정을 경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더 좋다. 생물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웠지만,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잊곤 하는 잎과 꽃의 구조는 자녀들이 화분 속 식물의 성장을 매일 확인하는 5분을 통해 내면화된다.

    부엌에도 과학은 많다. 꽁꽁 얼어붙은 고깃덩어리를 빠른 시간에 해동시키는 방법, 꿀을 물에 빨리 녹일 수 있도록 젓는 방법도 다 과학이다. 주변에 널려 있는 과학활동의 소재들을 자녀와 공유함으로써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흑백 지식에 천연색을 입히는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부모, 형제, 친구들과 더불어 체험하는 과학 학습은 평면의 지식을 입체적으로 하는 효과 이외에도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흥미를 유도한다.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학습에서도 태도와 흥미 차원의 접근이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다. 자녀들로부터 과학과 과학 학습에 대해 긍정적 태도와 관심을 이끌어내면 과학 교육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자녀들과 함께 경험하는 과학활동이야말로 어찌 보면 자녀들의 평생을 보장하는 ‘과학 보험’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性차이’ 없는 과목

    최근 법조계나 의약계 등 최고의 전문직으로 꼽히는 분야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분야가 이공계다. 초·중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상위권을 싹쓸이한다고 하지만, 과학이나 수학 과목에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수학·과학 영재들이 모여 있는 과학고등학교의 여학생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학생의 수학·과학 성적은 하락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두 과목에서 국제비교연구 결과 성(性)차이가 거의 없는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성차이 국가임이 연거푸 드러나고 있다.

    과학 학업 성취도 결과를 넘어서 과학에 대한 태도와 흥미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여학생들은 과학에 관심도 없고, 흥미는 더더욱 없고, 심지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과학인 경우도 허다하다는 얘기다. 과학관이나 박물관 방문, 신문에서 과학 기사 읽기, 과학 관련 TV 프로그램 시청, 과학잡지 구독 등 학교 밖 과학 관련 활동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현저하게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많은 연구 결과 드러났다. 학교 밖 과학활동을 안내하는 사람은 교사나 또래 집단이기보다는 부모다. 결국 부모가 딸보다는 아들에게 더 풍요로운 과학체험활동을 제공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미래의 훌륭한 과학자가 될 잠재성을 갖는다. 혹시 여성 과학자의 길이 힘들 것 같아서, 여성 엔지니어가 고달플 것 같아서, 딸이 이공계를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울 것 같아서, 아니면 왠지 이공계를 보내는 것이 곱디고운 딸을 험하게 만들 것 같아서 과학관보다는 미술관에 데리고 가고, 과학잡지보다는 패션잡지를 사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오빠가 읽던 너덜너덜해진 과학잡지를 좋아라 읽고, 식목일에 뿌린 봉숭아씨에서 잎이 나고 자라나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자칭 ‘금붕어 엄마’라면서 어항 속 물고기의 지느러미 짓을 놀랄 만큼 상세하게 묘사하는 내 딸은 그런 연구 결과의 산 증거다.

    ‘흥미 유지’가 우선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과학시험을 본다고 하니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가장 잘 나간다는 문제집 한 권을 사줬다. 문제집에는 과학책의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고 많은 문제가 실려 있었다.

    몇 문제 살펴보다가 나는 아들에게 문제집 푸는 것을 관두고, 좋아하는 과학책이나 더 읽으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식물을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식물의 잎 사진 여러 개를 교과서에 제시한 것인데, 문제집에는 ‘어긋나기’ 잎은 어떤 식물인지, ‘마주나기’ 잎은 어떤 식물인지를 묻고 있었다.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과학시험 잘보는 것과 ‘과학자 적성’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

    다음날 아들은 과학시험에서 서너 개를 틀렸다. 틀린 것이 다 그런 식의 문제였다. 자기 딴에는 꽤 많이 틀렸다고 생각해 엄마에게 혼날 것을 예상했던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내 반응에 의외란 듯이 눈이 동그래졌다.

    초등 수준에서의 과학 학습은 앞서 설명했듯이 과학 서적을 많이 읽혀 과학 지식을 넓히는 것과 다양한 과학체험활동을 통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지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를 위한 문제’가 의외로 많이 나오는 학교 과학시험 결과로 자녀의 과학 실력을 판단하는 것은 착각이다.

    물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문제 풀이도 단련시켜야 할 때가 온다. 아무리 과학 지식이 풍부해도 한국식 과학 문제 풀이에 익숙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 풀이 연습은 아주 오랜 시간 투자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초등학교 때까지만이라도 문제 풀이 연습에 앞서 든든한 과학 학습의 초석을 다져놓지 않으면 자녀의 과학 실력은 사상누각 꼴이 돼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수학, 과학을 다 잘하는 학생은 수학도 과학도 능력이 닿는 한 깊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특히 대학의 이공계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수학적 바탕은 큰 재산이 되므로 수학을 많이 해놓을수록 먼 훗날의 과학 학습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수학도 과학도 다 어려워하는 학생의 경우다.

    경험의 학문

    보통 수학을 잘해야 과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론 수학을 잘하면 과학도 잘할 가능성이 크고, 과학을 잘하면 수학도 잘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 초·중등 과정에서 수학과 과학 실력의 상관관계는 완전한 정비례가 아니다. 수학만 잘 할 수도 있고, 과학만 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초·중등학교 과학 학습에 필요한 수학은 중학교 수학만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수학을 잘 못한다고 해서 과학마저 지레 포기하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수학은 순수한 사고(思考)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형식 과학이다. 수학은 자연이나 경험적 사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물과 현상에 관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학에서 다루는 모든 것은 다 실체가 있다. 분자나 원자처럼 너무 작아서, 은하나 블랙홀처럼 너무 멀어서 육안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것도 많지만 그것들도 다 실체다.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보면 과학 중에서도 생물이나 지구과학 영역은 실체와 현상에 더욱 근접한 영역으로, 경험을 근거로 접근할 때 재미있고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과목이다. 상대적으로 물리나 화학 영역은 현상이나 실체의 원리를 알아 나가는 쪽에 가깝기는 하지만, 물리와 화학에서 다루는 내용도 예외 없이 학습자의 경험과 연관돼 있다.

    경험을 근거로 한 지식은 순수 이성만을 통해 이뤄지는 지식보다 쉽게 느껴진다. 물론 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도 위계성이 높은 과목으로 앞의 것을 모르면 뒤의 것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중학교 때부터 과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면 고등학교에 가선 정말 회복할 수 없을 정도가 돼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중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한 테두리 안에 묶어놓고 ‘무조건 어려운 과목’ ‘타고난 애들만이 잘하는 과목’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학생들은 대개 사회 과목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실제 학습 과정을 곰곰이 따져보면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한 시간만 공부하고 중간고사 사회 과목을 잘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과학 과목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 사회도, 과학도 비슷한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목표로 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학습 전략이 다를 뿐이다.

    지리, 정치, 경제 등 사회계열 과목에서 배우는 개념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경우가 많다. 사회 교과서의 한 줄 한 줄은 다 의미가 있고, 다 암기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 영동지방의 강수량만 알아서는 안 되고, 호남 지방의 강수량도 알아야 한다. 대통령제의 장단점만 알아서는 안 되고, 입헌군주제의 장단점도 알아야 한다.

    각 개념이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위계가 뚜렷한 과학 과목의 개념은 수직 관계와 인과 관계적 속성이 짙다. 따라서 개념들 간에 얽히고설킨 정도가 사회 과목보다 더 심하기 때문에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에서 어느 한 매듭만 풀면 순간적으로 실이 술술 풀려 나가듯이, 과학 학습에서도 개념 중 핵심이 되는 것만 잡으면 나머지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핵심 개념과 원리를 큰 틀에서 이해하게 되면 과학 학습의 90% 이상은 완성된 셈이다. 말하자면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학습이 과학에서는 효과적이다. 숲이 어느 정도 보이면 그 숲에 소나무가 어디에 있고, 전나무가 어디에 있으며, 개나리는 또 어디에 있는지 저절로 보인다.

    선행학습이 힘든 과목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과학책을 좋아하면 역사책도 즐겨 읽게 된다. 논리 구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지질학의 획기적 패러다임 전환을 몰고온 판구조론을 학습할 경우 ‘지각 판은 움직인다(사실)→판이 움직인다는 증거는 무엇인가?(현상)→그렇다면 판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가?(과정)→판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원리)’ 하는 큰 틀이 추출된다.

    큰 틀에 해당하는 핵심 개념 몇 개를 충분히 이해하기만 해도 80점은 받을 것이고, 핵심 개념에 더해 보조 개념까지 이해하면 90점을 받을 것이며, 상세한 개념까지 마스터하면 100점도 받을 수 있다. 핵심 개념만 이해해도 80점은 받을 수 있다는데, 과학을 포기할 까닭은 없지 않겠는가. 앞서 말했듯이 과학의 핵심 개념은 타고난 천재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나무부터 암기하려 들지 말고 숲 전체를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과학 학습에서는 효과적이다.

    현실적으로 과학 역시 사교육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미 영유아를 위한 가정방문 과학놀이활동이나 초등학생을 위한 가정방문 과학실험활동 사교육이 나온 지 오래고, 수학 학습지 형태의 과학 학습지도 많다. 심지어 과학 전문 학원을 다니는 유치원생도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학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실험을 수행하기도 한다. 매직쇼 같기도 하고 서프라이즈 체험 같기도 한 과학활동도 많다. 활동을 하는 동안 어린이들은 재미있어 한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 대비 과학 학습 효과는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다.

    국·영·수 사교육만으로도 어린 학생들은 버겁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과학까지 보태지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매직쇼 같은 과학 프로그램을 경험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좋은 과학서적 한 권을 사서 읽거나 가족과 함께 생태체험을 나가는 편이 낫다.

    과학서적으로 충족하지 못할 만큼 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반대로 과학을 너무 어려워하고 자신감이 없는 경우 사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중학교 이후의 일이다. 과학 학원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연히 교사다. 다른 과목도 그렇지만 과학이야말로 경험 없거나 실력 없는 교사가 가르치면 무조건 외우게만 하는 암기 과목으로 전락해버린다.

    아무리 좋은 교재와 기발한 문제를 풀어준다 해도 과학의 기초를 소홀히 하고 문제 풀이 전략이나 가르치는 학원은 피해야 한다. 원장이 명문대 출신이라고 무조건 그 학원을 보내기보다는 우리 애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의 실력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영어나 수학처럼 보편적이지는 않겠지만 과학 선행학습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과학에 뛰어난 재능과 흥미를 보이는 경우는 선행학습을 시켜도 좋다. 그러나 과학 선행학습은 수학 선행학습이 전제가 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컨대 물리에서 포물선 운동을 배울 때 이차방정식을 알아야 한다. 전향력을 배울 때도 삼각함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결국 수학 선행학습이 없는 과학 선행학습은 역부족이다. 따라서 수학과 과학 선행학습을 동시에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극소수의 학생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적성과는 상관없는 과학 성적

    나는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이과를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고, 인문·사회계열보다 ‘밥 먹고 살기가 더 나을 것 같아서’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스스로도 이과에 적성이 맞다고 판단했다.

    학부 전공인 과학교육과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과학 일반의 기본 지식을 주로 배웠다. 석사 전공인 지질학 역시 자연과학이다. 그러나 박사 전공은 과학교육학으로 사회과학에 속한다.

    기본적인 과학 배경 지식을 두루두루 배운 학부를 거쳐 지질학 전공 석사 과정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어설프게나마 과학다운 과학을 맛보았다. 젊고 실력 있는 지도교수님과 언제나 도와줄 준비가 된 분들 같았던 연구실 선배들의 지원으로 2년 반 동안의 풋내기 과학자 생활은 참 즐거웠다.

    그러나 내겐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 난제가 있었다. 지질학에서 현장답사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지질답사에서는 또 공간 지각력이 필수적이다. 지질도만 보고 비슷비슷하게 생긴 곳을 찾아가야 하고 산의 모양을 보고 구조도 알아내야 한다.

    다행히도 지도교수님의 지시(?)와 선배들의 바짓가랑이를 꽉 잡고 늘어지는 나의 간청 덕분에 자기 코가 석 자인 선배들이 답사 일정을 연장하면서까지 내 담당 지역을 돌아줘야 했다. 민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암석을 채취해야 하는데, 암석 채취용으로 특수 제작된 단단한 해머로 아무리 힘껏 내리쳐도 단단한 바위에 작은 흠집만 날 뿐이었다.

    공간감각의 문제는 타고난 내 두뇌의 문제이기도 하고, 암석 하나 제대로 깨지 못하는 문제 역시 타고난 내 체력의 문제이기도 했다. 지질학을 계속 공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암석이나 편광현미경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었다.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보다는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에 내가 더 맞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2년 반 동안의 어설픈 과학자 기간에 얻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공부해 본 개인적 경험상 자신의 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석사 수준의 어설픈 과학자가 되어 자연과학의 탐구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것이 과학을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것을 연구하는 과학교육학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아예 석사 때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 학부 때부터 사회과학을 공부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하는, ‘못 간 길’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자녀의 적성을 적당한 시기에 정확하게 짚어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부모 주도하에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자녀의 적성을 정해버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적성을 진짜 적성으로 믿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될 만한 적성은 물론 있다. 과제 집착력, 문제 해결력, 객관적 판단력, 평균 이상의 IQ 등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과학 통합논술을 잘 작성하는 것, 과학에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은 적성과 무관하게 노력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과학과 역사는 비슷한 과목

    과학 학습에서도 독서는 제일의 필요조건이다. 한글 떼기와 동시에 부모는 자녀에게 책을 읽히기 시작한다. 자녀에게 창작 동화, 위인전, 동시집을 읽히는 것에 더해 가끔씩 과학 책도 끼워 넣을 것을 권한다.

    ‘출판사를 먹여 살린다’는 어린이용 도서시장에는 과학이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깨는 재미있는 과학 서적이 널려 있다. 눈높이를 맞춘 어린이용 과학 서적에서 과학적 오류를 찾아 비판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책에 손이 가게 마련이다. 재미있게 씌어진 과학 서적을 되도록 많이 읽음으로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과학 개념과 과학적 탐구 방법에 익숙해진다.

    과학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역사책도 좋아한다. 과학책도 역사책도 논리적으로 이야기가 진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역사 과목을 그저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찜찜했던 기억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전후좌우 없이 그저 외기만 해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과목들과 역사 과목은 달랐다. 맥락의 위계성 측면에서 보면 과학 과목과 역사 과목은 유사점이 많다. 역사책이나 과학책을 재미없어 하는 아이들은 그런 유형의 글을 어렵게 느낀다. 과학책 읽기에 습관을 들이지 못한 아이는 역사책도 어려워할 것이다. 과학책과 역사책을 기피한다면 그 학생에게는 과학 통합논술이든 그냥 논술이든 물 건너간 셈이다.

    ‘과학 잘하기’를 위한 무한도전
    신동희

    1968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서울대 지질학과 대학원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석·박사 (과학교육)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OECD 학업성취도 연구논문 다수 발표

    現 단국대 과학교육과 교수


    과학책을 통해 아이들은 과학 지식을 학습하는 직접적 효과를 봄은 물론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덤으로 생긴다. 논리적인 글을 많이 읽으면 글도 논리적으로 쓰게 된다. 과학 논술에서의 글쓰기는 미사여구가 동원된 화려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고2, 고3이 되어 논술 학원에서 공식 암기하듯 단기간에 논술 구성 방안을 전수받는 것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과학 통합논술에서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 같다. 탄탄하고 해박한 과학 지식은 오랜 기간에 걸친 독서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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