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호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상)

등록금 딜레마 진학 목적, 기대 수준 따라 등록금 차등화하자

  • 정정길 울산대 총장 chungkchung@ulsan.ac.kr

    입력2007-06-07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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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해 기부금 8500억원 스탠퍼드대 등록금이 연 3000만원인 까닭
    • 대졸자 취업난, 기관·언론의 대학평가가 대학 지출 부추겨
    • 2005년 대학 진학률 83%…준비 안 된 학생 대거 입학
    • 대학 대중화로 최저소득계층까지 등록금 부담 확대
    • 기대하는 교육 수준 따라 부담 가능한 교육비용 다르다
    • 국가 지원은 저소득층 엘리트 교육에 우선해야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상)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하다. 대학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묘안 짜기에 매달리고 있다.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9% 올린다고 대학본부에서 발표한다. 총학생회는 학교를 맹렬히 비난하며 총장실을 점거한다. 총장실을 강점당한 총장은 다른 곳에서 직무를 계속한다. 한두 달 후에 학교로부터 학생 복지 향상을 위한 몇 가지 약속을 받은 학생회가 총장실에서 철수한다. 그리고 대학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에 대한 처벌도 없고,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이런 일이 국내 대학 곳곳에서 벌어진다.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왜 이렇게 됐는가. 몇 년째 되풀이되는 대학 등록금 인상 갈등.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가. 대학이 돈벌이하는 곳도 아닌데 왜 급속하게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홍역을 치르는가. 대학 운영을 맡은 교수들은 학부모의 고통을 외면하는 냉혈한인가. 아니면 학생 대표들이 학교 사정을 알고도 모르는 체 억지 쓰는 철부지인가.

    대학 환경의 급격한 변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갈등의 근본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더욱이 대학 내 갈등의 원인이 최근 급격하게 변화한 대학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어 이 변화를 알지 못하면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없다. 불행히도 기성세대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이 대학 다니던 때만 생각할 뿐, 최근 대학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른다. 현직 사립대 총장인 필자는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을 주제로 이번 호부터 상·중·하 3회에 걸쳐 글을 연재, 급변하는 대학 환경을 알리고자 한다. 그 첫 번째가 대학 등록금 인상 논란이다.

    과거에도 소득 수준과 비교할 때 대학등록금은 결코 싸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등록금을 둘러싼 갈등이 이토록 심화된 건 왜일까. 핵심 원인은 고교졸업생의 높은 대학진학률과 대학 졸업생의 낮은 취업률이 맞물린 현실이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으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적절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대졸자가 과거 고교 졸업자의 일자리를 차지하니 고등학교만 졸업해서는 생활비를 보장하는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 대학진학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대학진학률은 학부모에게도 큰 부담이다.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었다는 것은 소득 계층상으로 보아 최저소득계층도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대학등록금에 대한 부담은 중산층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렇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해서는 자녀의 미래가 암담하기에 아무리 등록금이 부담스러워도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려 한다.

    한편 대학은 졸업생이 적절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교육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우수한 교수진과 교육시설, 첨단 교육기자재를 갖추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을 교육해야 취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런 여건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경비가 든다. 등록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세계 유수 대학으로 돌려보자. 미국 스탠퍼드대는 재단의 재정이 튼튼하고 기부금을 많이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단의 지원을 포함, 2005년 한 해 거둔 기부금이 8500억원(약 9억달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과시했다. 그런데도 등록금이 연 3000만원 정도(약 3만4000달러)다. 우리나라의 소위 명문 사립대 등록금의 4~5배 되는 액수다. 기숙사비나 생활비를 제외한 순수 등록금이 그렇다. 기부금을 포함한 그 엄청난 돈을 다 어디에 쓰기에 등록금이 이리 비쌀까.

    美 사립대 등록금, 국내 대학 4~5배

    답은 간단하다. 스탠퍼드대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우선 우수한 학자들을 교수로 초빙해 훌륭한 연구업적을 내도록 하고, 또 우수한 학자들이 모여 있다고 홍보해야 한다. 우수한 학자들을 초빙하려면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추고 연구자재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을 도울 우수한 보조원들도 있어야 한다. 스탠퍼드대 이공계열은 분야별로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이 커다란 연구소를 제공받아 수십 명의 연구원을 데리고 연구하고 있다.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상)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 미국 명문 사립대는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거둬들이면서도 등록금이 우리나라 사립대의 4~5배 수준이다.

    이 모든 것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우수한 학자들은 정부나 연구재단에서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이 모든 경비를 학교에서 부담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교수 인건비(노벨상 수상자는 봉급이 엄청나다), 실험실의 기본시설 등에 대한 비용은 기본적으로 학교가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20년 사이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보니 시설과 기자재가 급속도로 노후화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인문사회계열은 이런 기자재 비용이 들지는 않지만 훌륭한 학자에 대한 보수는 이공계열 못지않은 수준으로 지급된다.

    이렇게 연구 활동에 엄청난 경비를 쏟아 붓는 일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본격화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들어서 겨우 활성화돼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다. 이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아직도 교수들이 10여 년 된 강의안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착각한다. 분필과 노트 한 권 들고 강의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학 풍토가 달라졌다.

    졸업생 입도선매는 옛말

    여기에 더해 졸업생 취업난이 대학 운영비 급증의 또 다른 요인이다. 1970년대 접어들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대졸자 실업 문제로 고통받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경우 1980년대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

    미국 일류대 재학생들은 4학년이 되면 일류 기업들이 찾아와 졸업 때까지의 장학금을 제공하고 입사를 약속받는 일이 흔히 있었다. 속칭 입도선매(立稻先賣)라고 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일류대를 졸업하고도 곳곳에 취업원서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일류대 졸업생도 일류 직장에 취업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졸업생이 일류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면 우수한 학생들이 그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다. 한번 악순환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어, 일류대가 이류대로 전락하는 건 금방이다. 일류대는 이런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 최첨단 교육기기를 설치하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을 쾌적하게 만들며, 교육기자재도 최고의 것들로 갖춰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스포츠센터를 건립해 학업능률을 높이고, 연구업적이 탁월한 교수들을 초빙해 대학의 이름을 높이고, 학생들에게 첨단 이론을 가르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여건을 널리 알려서 재학생과 졸업생의 우수성을 선전한다. 이 모든 것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된다.

    언론 등 각종 기관의 대학 평가가 이러한 경향에 부채질한다. 처음에는 평가 대상이 주로 교수의 연구업적이었으나 이제는 학생 1인당 교수 숫자, 대학 재정, 교육시설, 기자재 등 교육여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등수를 매겨 발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학생의 해외연수, 외국인 교수의 숫자 등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이렇게 매겨진 서열은 대학 입학 예정자가 대학을 선택할 때는 물론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대학으로서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곳곳에 자금을 투입해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기부금을 받는 스탠퍼드대의 등록금이 비싼 이유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그 밖의 미국 명문대 사정도 비슷하다.

    살아남으려면 취업률 높여야

    국내 대학들은 미국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졸업생이 취업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졸업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80%를 상회했다. 미국이 2005년에 65%를 약간 넘고, 일본이 50%에 미달한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그중 70~80%만이 졸업한다. 그래서 미국 고교 졸업생 중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은 50% 미만인데, 우리나라는 고교 졸업생의 75% 정도가 대학을 졸업한다. 대학진학률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상승했다. 1980년에 27%, 1990년에 33%이던 것이 2000년 68%, 2005년 83%로 급상승했다. 불과 15~16년 사이에 50%나 오른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졸자가 갈 만한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비교적 좋은 일자리라고 알려진 곳들은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의 생산비 감축을 통한 경쟁력 강화 노력은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주로 4년제 대학 졸업생이 차지하던 관리직이 대폭 축소되고, 외주(outsourcing)나 계약직이 늘어나면서 평생고용 개념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전문직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사법시험에 매달려 일류 대학이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든지, 2007년 봄 포항공대 수석 졸업생이 이공계를 포기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이젠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6년 4년제 대졸자 평균 취업률은 67%다. 이는 군 입대, 비정규직, 파트타임 일자리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이렇게 진정한 의미의 취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포함하더라도 대학 졸업자의 33%가량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규직 취업률만 보면 상황이 훨씬 나쁘다. 울산대가 2006년 졸업생 2000~3000명 규모 4년제 일반대 중 정규직 취업률 전국 1위를 했는데, 69.6%였다. 전국 평균은 49%에 불과했다.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상)

    지난해 4월, 대학생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등록금 동결, 교육 재정확보 등 교육현안 해결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버티는 소위 ‘캥거루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졸업 예정자 및 대졸자는 취업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졸업 후의 취업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마당에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잘하도록 매달리지 않을 대학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학생의 취업에 무관심한 대학도 더러 있지만 그 오만한 무관심마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올해부터 학부나 학과별 취업률이 공개된다. 취업률은 우수한 신입생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표다. 일류 대학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신입생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 지방대뿐 아니라 수도권 소재 대학, 그리고 소위 명문대들도 학생의 취업에 전력을 쏟기 시작했다.

    대학 이름값 높이기 위한 투자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려면 우선 대학이 우수하다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 브랜드가 좋아야 상품이 잘 팔리듯, 대학의 명성이 높아야 취업도 잘 된다. 우수한 학생이 모인 일류 대학이라고 이름이 나야 한다. 대학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정상적인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올바른 전공교육을 시키려면 교수들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기자재도 최신의 것들로 끊임없이 제공돼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선진국의 일류 대학들이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점이다.

    교수 인원 15% 늘려야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정상적인 교육을 위한 기본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래서 추가적인 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학교시설, 기자재 같은 교육여건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 숫자가 세계 일류 대학들에 비해서 너무나 적다. 선진국 기준을 참고해 결정된 법정 교수 숫자는 학부의 경우 인문계는 학생 25명당, 자연계는 학생 20명당 교수 1명이다. 대학원의 경우는 대학원생 1인을 학부학생 1.5인으로 계산한다. 교육부는 최근 들어 법정 정원의 61~65%의 교수진을 확보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거나 공적 기관이 후원하는 교수연구지원사업이나 장학금을 포함하는 교육지원사업을 따려면 이 같은 기준을 충족시켜야 유리하다.

    선진국 대학들은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학생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채점결과를 알려준다. 시험점수뿐 아니라 우수한 점, 부족한 점 등을 세세히 기록한 답안지를 되돌려준다. 학생들이 시험답안지에 기록된 지적사항을 바탕으로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외에도 수시로 시험을 친다. 그때마다 교수 혼자 학생 개개인의 답안지에 지적사항을 기재하려면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다행히 대학원생 조교가 배정돼 채점을 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수강생이 수백 명이 되지 않는 한 조교가 배정되지 않는다. 또 교수 숫자가 적어서 이러한 채점 방식을 택하기 어렵다. 대규모 강의가 많아서 교수와 학생이 의견을 주고받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일류대도 교육부의 교수 정원 기준에 맞추려면 교수 숫자를 지금보다 15% 이상 늘려야 한다. 교수 숫자가 300명이면 45명 이상의 교수가 더 필요하다. 교수 1인에 1년 동안 투입되는 경비 총액은 대략 1억원으로 계산된다. 교수 봉급과 연구실 설비 비용, 냉·난방비를 포함한 관리비가 포함된 금액이다. 결국 학생 수가 1만여 명인 중간 규모 대학에서는 매년 45억원 정도를 더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2002년부터 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아지면서, 대학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는 수준의 학생이 대학에 대거 입학했다. 인기 없는 일부 지방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학생 부족으로 허덕이면서 입학 원서만 내면 아무나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대학 강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학생마저 대학에 대거 입학한 것이다. 그래서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강좌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

    대학 대중화로 인한 추가 비용

    이러한 사태가 지방대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서울대에서는 이공계 신입생을 위해 미분과 적분을 가르치는 강좌를 별도로 개설했고, 다른 일류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하기야 일본 도쿄대의 이공계 학생들 중에 미적분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고 10여 년 전부터 논란이 있었으니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의 중소대학들 사정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가 얼마나 힘들까. 강릉대 전자공학과에서 조명석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유수 대학 대학원에 졸업생들을 성공적으로 입학시킨 일이 최근 화제가 됐는데, 이 사례는 대학의 그러한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대학이 본연의 대학교육뿐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더라도 학교 차원에서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대학은 이 같은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위한 노력’ 외에 취업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대기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직장에서 영어 실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양과목으로서의 영어에서 문학적인 요소가 탈색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토익이나 토플 등 영어시험 대비 과목들을 신설했다. 전공과목마저 영어로 강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어교육 시설을 마련하고, 외국인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 어학교육에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뿐 아니다. 해외연수와 외국대학 학점 취득을 강력하게 권장한다. 서울 소재 소수 일류 대학에서는 그러지 않지만, 그 밖의 대학 대부분은 해외 현장학습이나 어학연수를 적극 권장하기 위해 학생에게 등록금을 전부 되돌려주거나 경비의 상당부분을 지원한다. 울산대는 한 학기 이상 해외 자매대학에서 학점을 취득해오는 학생이 200여 명에 달한다. 단기간(2~8주)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학생 수도 한 해 800명 정도다. 한 해 졸업생이 3000명 정도이니, 이 중 3분의 1은 해외연수를 하고 졸업하는 셈이다. 몇몇 대학에선 미국이나 중국의 자매대학에 기숙사를 짓고 수백 명의 학생을 한 학기나 1년 동안 공부시키기도 한다. 울산대는 학생들을 1학기나 2학기 동안 서울지역 일류 대학에 보내 공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매해 평균 100여 명의 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하는데, 이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아파트를 전세 내고, 생활비도 일부 보조한다.

    대학의 산학협동 교육에도 교수들의 노력과 상당한 경비가 든다. 산학협동과정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응용연구를 하는 것이지만 사실 기업으로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실현시키려면 기업의 책임 있고 노련한 관리자와 교수가 머리를 맞대고 꽤 오랜 시간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노련하고 책임 있는 관리자는 바쁘다.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인지 분명치 않은 일에 시간을 소비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의 도움을 얻으려면 여러 교수의 대단한 인내와 시간,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대학 경쟁력과 등록금은 별개?

    이상의 것들은 모두 엄청난 경비를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그 문턱에서 맴돌기만 하면서, 대학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국가 사회적 요구도 커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일류대가 세계적인 대학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세계 수준의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경비가 투입돼야 하는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고려대 등록금이 스탠퍼드대 등록금의 4분의 1이 안 되고, 한 해 기부금 총액도 비슷한 비율이다. 학생 1인당 예산을 비교하면 하버드대는 고려대와 서울대의 9~10배, 스탠퍼드대는 12~13배에 가깝다. UCLA는 4~5배다. 이런 상태에서 서울대 이공계 교수들의 연구업적이 SCI(과학논문인용색인) 기준으로 세계 30위권 안에 들어간 것은 기적이라고 봐야 맞다.

    한국의 일류 대학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이 없다고 비판받고 등록금을 올린다고 또 맹렬한 비난을 받는다. 뭔가 잘못됐다. 그렇다고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나쁘다고 할 것인가.

    서두에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대학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었다는 사실에 있다. 생계비를 확보하지 못한 극빈층을 제외한 최저소득계층에서도 대학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6년 4월 기준 통계에 따르면 소득 최하위 10%나 20%는 물론이고 30%대에 속하는 계층도 대학등록금을 감당키엔 버겁다. 최저 30%대의 한 달 가구소득이 165만원, 다음 40%대에 속하는 가구소득이 월 200만원 정도이므로 사립대 인문사회계열 한 해 등록금 500만~600만원은 엄청난 부담이다. 공과계열 등록금은 이보다 훨씬 비싸므로 부담이 더 크다. 그러니 등록금을 5~6%만 인상해도 저소득층은 심한 타격을 입는다. 대학이 대중화하면서 최저생계비 마련이 어려운 학생도 많아졌으므로, 답답한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비교적 경제사정이 좋다고 알려진 울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울산대가 2006년 한 해 전체 학생의 39%에 크고 작은 교내외 장학금을 배정했는데도 전체 학생의 10% 정도는 대여장학금(졸업 후에 갚기로 하고 등록금 전액과 간혹 생활비까지 정부 보증으로 빌리는 것)을 신청했다. 서울대도 2006학년도에 전체 등록금의 36%에 해당하는 돈이 장학금으로 나갔지만, 6%에 가까운 1700여 명의 학생이 대여장학금을 신청했다.

    대학 나와도 희망이 없다

    과거 대학진학률이 20~30%이던 시절에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저소득층 자녀 중에서는 두뇌가 우수한 학생만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상당 기간 대학입학예비고사에 합격한 고교 졸업생에게만 대학 진학을 허용했다. 이 시절에도 대학등록금은 많은 이에게 부담이었다. 시골에서는 논이나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대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형제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대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쉬웠고 보수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극빈층 자녀도 공부만 잘하면 얼마든지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대학 졸업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졸업 때까지만 고생하면 그 후엔 대여장학금을 갚기도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온통 대학생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렵고 보수도 적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겨우 생활비를 벌 수 있을 정도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학교성적이 좋지 않다. 그래서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 얻기가 어려워 대여장학금도 부담스럽다. 대학을 졸업해도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학생들은 고통스럽다.

    美 사립대 간 등록금 격차

    이 모든 문제가 대학진학률이 80%를 초과하면서 심각해졌다. 등록금 부담이 고통스럽고 졸업 후에도 취업 전망이 불확실하면 대학을 가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대졸자가 중·고등학교 졸업자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강해지니 고등학교만 졸업해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학부모의 머리를 짓누른다. 고등학교 졸업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해 학생들도 기를 쓰고 대학에 가려고 한다. 그래서 저소득층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 등록금 부담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등록금을 올려야 하고 많은 학부모는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도대체 해결책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해본다. 대학등록금을 획일적으로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국가적 지원이 대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째, 대학등록금을 획일적으로 취급하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미국에선 2년제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간에 등록금 차이가 크다. 대부분의 2년제 대학은 주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운영비를 부담하므로 등록금이 없거나 아주 적다. 반면에 4년제 대학은 주립대학이라도 등록금이 비싸다. 사립대와 주립대 간 등록금 격차도 심하다. 2006학년도의 경우 해당 지역 주민의 주립대 등록금은 평균 5800달러인 데 비해 사립대 등록금은 2만2200달러였다. 4년제 대학 간에도 등록금이 천차만별이어서 주립대라도 등록금이 9000달러를 넘는 대학이 8%이고, 6000달러 이하인 경우가 58%나 된다.

    두드러지는 차이는 사립대 간에도 나타난다. 명문 사립대는 대부분 비슷한 수준으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엄청나다. 앞에서 보았듯 스탠퍼드대의 2005년 등록금이 3만4000달러인데, 하버드·예일·프린스턴·컬럼비아·펜실베이니아대 등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소 사립대는 등록금이 이보다 싼 편이다. 2006년 사립대 등록금 평균이 2만2200달러인데, 3만달러가 넘는 대학이 22%나 되고, 9000달러 이하도 8%나 된다. 같은 사립대끼리도 등록금이 3~4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대학에 따라 등록금이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각 대학이 재정능력에 맞게 교육하고, 학생은 필요와 부담 능력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세계 수준의 대학들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최고의 교수진을 확보하고 최첨단의 연구시설과 연구기자재를 제공하며, 교육시설과 교육기자재도 최고 수준으로 갖추어 학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시킨다. 그래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따라서 등록금도 엄청나게 비싸다. 우수한 학생들을 입학시키고 이들을 국가의 최고 인재로 키운다. 이들이 국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생활에 적용시킬 전략을 수립한다. 이들의 우수성이 국가 경쟁력의 기본이 된다. 이들은 엘리트로서 갖춰야 할 덕성도 함께 키워야 하므로 전공 외에 교양과목도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한편 대학진학률이 상승하면서 미래에 사회의 엘리트 몫을 담당하지 않을 학생도 대거 대학에 입학했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지도적인 위치에서 관리를 담당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선량한 시민이 될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거 대학에 입학한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20~30%를 넘으면서 이러한 양상이 나타났다. 진학률이 50~60%를 넘으면 학업 면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생도 대거 대학에 입학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학업 준비 면에서 차이가 심한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의 대학교육은 각기 달라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다르다. 전통적으로 고등교육이라고 알려진 대학교육은 주로 학업 준비 면에서 상위 그룹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깊이 있는 전공과목을 공부한 것이다. 이들이 배운 교양과목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문학·철학·자연과학 등이 중심이었다.

    집단별 대학교육 달라야

    그러나 하위 그룹 학생에게는 대학졸업 후에 적당한 직장을 얻어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 준비를 시켜야 한다. 취업준비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하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뒤늦게 대학원에 가서 학문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고등학교에서 터득했어야 할 기초가 부실하다. 그래서 첨단 시설의 연구실과 연구기자재를 갖춘 탁월한 업적의 교수가 최신 이론을 가르치기보다, 보편적이고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기초이론을 가르쳐야 한다. 수백만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보다, 외국어를 익히는 교실이 더 필요하다. 칸트의 도덕론을 읽히고 문학과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교양을 전수하기보다는,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문장을 올바로 쓰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졸업 후 적당한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과 훗날 사회에 진출해 지도적 기능을 담당하고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성장하려는 사람은, 기대하는 대학교육의 내용뿐 아니라 학비를 부담할 의지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엘리트 교육을 받을 준비가 된 학생은 등록금을 많이 부담하더라도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 특히 성적이 우수하면 각종 장학금을 많이 주는 우수한 대학에는 등록금이 비싸도 많은 학생이 몰려든다. 반면 적당한 직장을 얻는 데 필요한 지식을 원하는 학생은 등록금도 저렴하길 바란다. 그 정도 공부에는 엘리트 교육에 따르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대학생의 특성에 따라 기대하는 교육내용과 부담 가능한 교육비용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등록금을 획일적으로 억제하려는 생각은 잘못됐다. 대학별로 등록금이 달라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화할 것인지는 더 논의돼야겠지만, 차등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등록금 논란 해결의 출발점이다.

    또 한 가지 사실도 명백하다.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며, 이것이 어떤 방법으로든 조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국가의 지원도 보잘것없는 상태에서 등록금이 대학의 유일한 재원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지원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려고만 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또한 국민소득과 대비한 평균적인 대학등록금을 기준으로 국내 일류 대학의 등록금이 선진국에 비해 비싸다느니 싸다느니 하는 문제제기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대학등록금 평균이 미국 1인당 국민소득의 몇 %니까 우리나라 일류 대학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한국의 일류 대학은 미국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미국의 일류 대학과 비교하고, 중간 수준의 평균적인 대학들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끼리 비교해야 한다.

    등록금 이외 재원 확충

    그러면 두 가지 결론에 이른다. 첫째, 대학의 경쟁력만 따진다면 우리나라 일류 대학의 등록금은 근본적으로 경쟁 상대가 되는 선진국의 일류 대학 등록금과 절대액수가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렇게 비싼 등록금을 부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두 번째로 국민의 부담능력을 감안한 등록금이어야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 등 미국 일류 사립대의 등록금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의 80~90%에 해당하므로 우리나라의 일류 사립대학의 등록금도 그 정도가 적당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등록금을 부담하자면 우리나라 일류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현재보다 2 ~3배 올라야 한다. 이는 많은 학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은 아직 더 많은 경비를 필요로 한다. 학업 준비가 안 된 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우리나라는 우수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그런데 가난한 부모가 많다. 도대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대학진학률이 대폭 낮아진다면 이 딜레마가 저절로 해소될지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대학진학률 저하는 역사적인 퇴행일 수도 있다. 그래서 등록금 이외의 재원을 확충하면서 저소득층의 부담을 더 이상 증가시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부금을 늘리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기부 문화가 척박하다. 대학의 발전을 위해 기금을 희사하거나 장학금을 제공하는 훌륭한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스탠퍼드대가 2006년 한 해에만 받아들인 기부금이 9억달러였는데, 한국 대학 중 발전기금을 가장 많이 적립한 이화여대의 기금 누계액이 2005년까지 5325억원이다. 500억 원 이상을 확보한 대학이 전국에서 9개뿐이고, 그나마 지방대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대학의 잘못도 크다. 기부를 한 사람이 보람을 느끼도록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러나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부를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 전체의 소득 수준이 크게 상승한 것은 틀림없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진 고도성장의 결과라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계속되면 언제 옛날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겹쳐 정신적으로 여유를 갖지 못하는 풍토다. 기여 입학제도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아 거론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다.

    대학에 기부할 경우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면 더 많은 기부가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대학에 기부를 하면 세금공제를 못 받는 것은 당연하고, 소득공제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더욱 심한 것은 대학에 대한 지원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누누이 지적했듯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었고, 많은 저소득층 학부모가 소득 수준 이상의 등록금을 부담하는 처지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진학률이 80%를 넘는다면 중·고등학교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대학에 대한 지원금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이 국민소득 중 1.1%를 대학에 지원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불과 0.6%만 지원한다. 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은 크게 낮은데도 그렇다. 미국이 67%이고 일본이 50% 미만이지만, 이 두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진학률이 보잘것없다.

    국가의 대폭적 예산 지원

    대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등록금 지원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공립과 사립에 관계없이 저소득층의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우수한 인재에게는 장학금도 줘야 하기에 구체적인 방안은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하게 검토돼야 한다.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상)
    정정길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 행정학과, 동대학원 석사,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박사(정치학)

    행정고시 합격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교수

    現 울산대 총장

    저서: ‘정책결정론’ ‘정책학원론’ ‘50년대의 지방자치’ ‘대통령의 리더십’ 외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중요한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서 대학 졸업생의 취업이 엄청나게 힘들어졌다. 둘째, 대학들은 취업에서 경쟁력을 갖춘 학생을 양성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학의 경비가 급상승하면서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대학진학률이 80%가 넘으므로 최저생계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극빈층을 제외한 저소득층이 모두 자녀들을 대학에 보낸다. 그들에게 등록금은 엄청난 부담이다. 넷째, 그러므로 대학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도록 정부에서는 각종 세제 및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보편화된 대학교육을 위해 대폭적인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 다섯째, 이러한 지원은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등록금 지원을 우선으로 하되, 성적 우수자에 대한 장학금도 함께 감안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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