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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7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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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문을 다는 일에 대해 의견 차이가 나자, 바스락의 자세와 표정이 무겁다. “여자들은 정서적인 공감을 중요시한단 말이에요!”

우리 마을에 사는 동안 벙글은 텃밭 농사를 조금 짓고 컴퓨터 교육이라든지 번역, 그리고 글쓰기를 주로 했고, 바스락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마을에서 가까운 ‘푸른꿈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천연염색을 가르쳤다. 그러니 우리 식구와는 자주 만날 일이 없었다. 2년 동안 한마을에 살면서 내가 이들 부부를 만난 기억이라고는 두세 번 정도. 퇴비 만드는 법을 알고 싶다며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과 우리 식구가 이 부부에게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만난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박장 부부는 ‘인간극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부부가 일류대를 나온 데다 젊고, 인상도 맑고,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니 방송에서 탐을 낼 만도 했다. 주제도 ‘느리게 사는 행복’으로 도시를 갓 떠난 사람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었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웰빙이니 로하스니 하는 건 이제는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흐름을 형성할 정도가 아닌가.

아무튼 이 방송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그 여세를 몰아 그동안 산골 생활을 하면서 써둔 글을 모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책을 냈다. 방송과 책을 보고 사람들이 마을로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한동안은 마을 전체가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로 복잡할 정도였다. 박장 부부와는 제법 떨어져 사는 우리마저 이 집을 찾는 손님들로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박장 부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을 드린 걸 사과하는 뜻으로 이웃집을 돌며 다시 인사를 해야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정작 본인들은 찾아오는 손님들로 말 못할 고생을 했다. 찾아오겠다고 연락이라도 하고 오는 사람은 아주 점잖고 예의바른 경우. 이른 아침에도 불쑥 마당으로 들어서고, 늦은 밤에도 문을 두드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안방까지 들어와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고도 한단다.

예기치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오해도 많았고 비난도 적지 않게 받았다. 방송과 다르다든가 멀리서 찾아간 손님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든가. 선물을 일방적으로 보내놓고 나중에는 돌려받겠다고 해프닝을 벌인 사람도 있었다.



고등어와 보리밥

방송을 타기로 한 건 자신들의 선택이지만 방송에 나오는 장면은 그들의 손을 벗어났으니. 방송을 타면서 연예인에 버금가게 유명세를 탔지만 사생활을 보호할 만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집은 울도 담도 없는 집이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가지고 사람을 만난다. 상대방을 자신이 잘 안다고 여겨 거리감이 없다고 느낀다.

박장 부부는 더는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다. 사람에 치이고 지쳐, 집을 떠나 친지네 집을 전전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봄, 이사를 간다고 우리 식구한테 불쑥 인사를 하고는 바람처럼 떠났다. 남쪽 광양 어딘가로 간다는 거다.

그러더니 올봄에 다시 제주도로 옮겼단다. 이곳에서 하는 일도 예전과 달랐다. ‘바람도서관’이란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열고, 손님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바람 스테이’도 준비했단다. 정말 바람 같은 친구들이고, 자유로운 젊은이다. 우리 마을에 살다가 떠나간 이웃이 여럿이지만 새삼 박장 부부가 보고 싶다.

군산공항을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제주공항은 엄청 크고 복잡하다. 수시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시골에는 어쩌다 다니는 버스조차 텅텅 비기 일쑤인데 마치 이곳에 사람이 다 모인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왔을까. 내가 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은 여행이 흔한 세상이다. 볼거리 중심의 관광여행도 많지만 각종 테마 여행도 활발하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외국 여행은 물론 자신의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많다. 내가 떠나는 여행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 여행’이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을 이해하고, 삶의 영감을 나누고자 하는 여행. 이번에는 그 여행기를 적어 볼까 한다.

제주공항에 도착, 어리둥절 둘러보면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누군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공동육아 학부모이며 교육이사인 이영숙씨다. 내가 공항에서 마중을 다 받아보다니 기분이 황홀했다. 그리고는 우리 식구에게 점심을 대접한다고 한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그곳에서 공동육아 학부모이며 이사장님 한 분과 역시 학부모이자 선생님이신 또 한 분이랑 자리를 함께했다. 메뉴는 고등어와 보리밥. 제주도는 논이 거의 없어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단다. 농사 이야기가 나오니 내 입맛도 더 살아나는 듯 맛있다.

점심을 먹고 아내랑 헤어져 박장 부부가 사는 바람도서관을 찾았다. 그곳은 제주공항에서 택시로 20여 분 거리. 북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남쪽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중산간 ‘전원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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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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