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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4

성을 쌓아도 정치가 무너지고 인화가 바스러지면…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성을 쌓아도 정치가 무너지고 인화가 바스러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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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아도 정치가  무너지고 인화가 바스러지면…

영원성(홍성) 안의 조씨 패루

연암은 다시 남하해 영원에 당도했다. 명나라 선덕 3년(1428)에 축성된 영원위성(寧遠衛城)에서 명나라 장수 조대수가 창건한 절 영녕사(永寧寺)를 비롯 청 태종 홍타이치가 영원을 공략하려다 원숭환에게 전패하고 피를 토했다는 구혈대(嘔血臺) 성안에 세워진 조대락(祖大樂)과 조대수의 패루를 둘러보았다. 그중에도 서슬이 퍼렇던 청 태종이 피를 토했다는 길가의 높은 봉우리, 중국 북부와 요동지방에서 장수 집안으로 명성이 높던 조(祖)씨 일가의 기념적인 패루를 눈여겨보았다.

연암은 조씨 일가가 그 공적을 천추에 누리려고 흰 돌이나 오색 돌로만 정교하고 웅장하게 패루를 세웠건만 결국엔 하나같이 청군에 생포되거나 투항함으로써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했노라고 통탄했다. 조씨 일가의 금석(今昔)을 서술한 7월19일자 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날 밤 천둥과 소낙비가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다’고. 얼마나 속이 뒤틀렸을까. 구겨진 영웅에게 침을 뱉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다음 다음 역참이 산해관이었다. 만리장성의 기점인 산해관에서 연암은 온갖 회포를 풀었다. 단숨에 ‘강녀사당기(姜女廟記)’ ‘장수대기(將臺記)’ ‘산해관기(山海關記)’ 세 편의 산문을 남겼다. 앞에서 심심찮게 들먹였던 역사나 전쟁의 화두가 이 세 편 글에 골고루 등장한다.

뒤질세라 오르면 외롭고 위태로울 뿐

‘강녀사당기’는 열녀의 화석담(化石譚)이다. 만리장성을 쌓으러 갔던 남편이 죽자 손수 옷을 짓고, 천리를 걸어 그 유체를 찾다가 울며불며 돌이 됐다는 애절한 이야기다. ‘장수대기’는 산해관 밖 장수대의 험준하고 돌올한 외관을 그림으로써 장수의 위엄을 상징했지만 그 까마득한 층층대에 올라 벌벌 떠는 사람을 보고, 올라갈 때는 남에게 뒤질세라 올라가지만 높은 자리에 서면 외롭고 위태로울 뿐 아니라 물러설 한 치의 자리가 없는 낭떠러지에서 끝내 절망한다며 벼슬아치의 최후를 아프게 경고한다. ‘산해관기’는 점입가경이다. 산해관의 지리적 환경과 구조, 그리고 산해관 마을의 현황을 서술하지만 결론은 이제까지의 화두를 총결하는 섬뜩한 것이다.



‘오호라! 진(秦)나라 몽염이 만리장성을 쌓아 오랑캐를 막으려 했지만 진나라는 그 집안에 진나라를 망친 오랑캐를 길렀고, 서중산(徐中山) 또한 산해관을 쌓아서 오랑캐를 막으려 했지만 오삼계라는 명나라 장수가 관문을 열어 청군을 맞기에 틈이 없었다. 천하가 지금처럼 평온할 적에 한갓 장사치나 나그네들의 힐난거리가 될 줄이야! 난들 산해관을 두고 무얼 말하랴!’

연암은 이처럼 만리의 성곽과 4층의 망루, 그리고 삼첨(三?)누각의 관문이 제아무리 웅장하고 강인해 오랑캐를 막고 오랑캐와 중국의 경계를 삼기에 넉넉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미필적인 방어용이란 담론을 펼친다.

연암은 요서회랑, 그 명·청 격전지를 조선의 필마로 달리면서 고뇌에 잠겼다. 전쟁을 처참하게 묘사하면서 명나라의 패망을 슬퍼했고, 조씨 일가 장수의 지략과 용맹을 물거품 또는 웃음거리로 보았다. 충렬을 추어올리면서 고독한 영웅과 벼슬아치를 희화화했고 심지어 만리장성 같은 성곽의 미필적 방어론도 슬며시 내밀었다. 여기서 실학자이면서도 성리학의 여운을 뿌리치지 못한 연암의 인격, 그리고 청나라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명나라를 섬기는 조선적 정서를 숨기지 못했다.

연암이 탁월한 시인임을 입증하는 것은 그가 청석령 고개에서 요동 벌판을 굽어보며 ‘아, 울 만한 자리로구나! 한바탕 울어보자’ 했던 멍울진 그 한마디로 족하다. 그게 지평선에서의 감격이었다면 수평선에서의 감격은 어땠을까. 그의 미적 체험을 들어보기로 하자.

연암이 7월20일 새벽에 영원을 출발, 지금의 조장(棗莊)으로 가는 중에 그 중간지점인 청돈대(靑墩臺)에서 일출을 보게 됐다. 그는 그날따라 늑장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왕 조선의 동해안 총석정, 옥천, 석문 등지서 일출을 본답시고 안달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가보아도 해는 필경 운무에 가리곤 했다.

연암은 이색적인 일출론을 갈파했다. 보통 사람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두둥실 뜨는 해를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거야말로 가장 무미(無味)한 일출이라 했다. 구리쇠 쟁반만한 붉은 해가 저 밋밋한 바다에서 뛰어나오는 것이 무슨 장관이냐고 반문했다. 해를 비록 임금의 상으로 받들지만 해가 돋기 전이나 돋아서도 많은 구름과 안개가 수천수만의 수레와 말을 탄 군사가 옹위하거나 오색 깃발들이 용틀임하듯 그 태양을 에워싸거나 모여드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날이 샐 무렵 구름을 뿜고 안개를 토하면서 해가 그 속에 가리는 장면을 차라리 그것들이 서로 원망하거나 수심하는 표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구름 한 점 없이 구리 쟁반만한 일출은 몰풍정하다는 심미론인데 민중이나 군사, 수레, 말, 깃발 같은 옹대(擁戴) 없는 군주의 정치론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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