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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원작만화가 박인권의 사채업계 5년 체험

“아버지는 자살, 딸은 윤락가로… 사채는 암보다 무섭다”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쩐의 전쟁’ 원작만화가 박인권의 사채업계 5년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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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원작만화가 박인권의 사채업계 5년 체험

‘쩐의 전쟁’은 시청자에게 사채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때가 만화의 황금기였어요. 지금은 지독한 침체기죠. 당시 저는 무명이었는데도 수입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좋았어요. 가령 지금 제가 받는 신문연재 고료가 월 1000만원이에요. 그런데 1990년대에 제 커리어 정도면 월 3000만원은 받았어요. 그때는 그렇게 많이 줘도 신문만화를 안 하려고 했어요. 그 시간에 대본소용 만화를 그리는 게 수입이 더 좋았거든요. 지금은 월 1000만원 받아도 신문만화 그리는 게 대본소 만화 그리는 것보다 수입이 낫죠. 그 정도로 만화시장이 침체해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드라마로 보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뜻밖의 답이 나왔다.

“제가 ‘쩐의 전쟁’을 그린 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래서 돈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사랑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사랑이 있다면 그건 가족사랑이죠. 그런데 드라마에선 남녀간의 사랑을 큰 기둥으로 세웠더라고요. 시청자의 요구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진지함을 희석하는 것 같아 매우 아쉬워요.”

‘쩐의 전쟁’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빚에 쪼들린 한 가장이 북한강에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소지품을 양복주머니에 넣고 가방까지 손에 꼭 쥔 채 강물로 뛰어들었다. 딱 하나 꺼내둔 게 있었다. 가족사진이었다.

“가족만큼은 차가운 물에 젖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이야기하려는 포인트는 바로 그런 가족사랑이었어요. 지금 여기저기서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돈, 사채 때문이거든요.



금나라의 실제 모델이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금나라 집안처럼 아버지는 카드빚(사채빚)에 허덕이다 자살하고 딸은 유흥업소로 팔려가고, 아들은 평생 신용불량자가 되는 식으로 가정이 파괴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제 주위에도 사채 때문에 가족이 해체된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그 친구들의 사연에다 그동안 취재한 내용을 버무려 금나라란 인물을 만든 거죠.”

그는 사채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 2년 가까이 취재를 했다고 한다. 연재를 시작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채 피해자들은 물론 사채업자들도 만났고, 자신이 직접 전주(錢主)가 돼 사채를 운용해보기도 했다. ‘남자는 상처를 남기고 돈은 이자를 남긴다’ ‘밥보다는 주먹, 주먹보다는 돈’ ‘인류는 망해도 돈은 살아남는다’ 등은 이 과정에서 탄생한 ‘쩐의 전쟁’ 명대사들이다.

사채업 체험이 낳은 명대사들

“사채의 위험성을 체험하기 위해 악덕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위험하더라고요. 악덕 사채업자들이 만화가라고, 취재 때문에 돈을 빌려 봤다고 해서 저를 봐줄 리 없잖아요. 파멸의 끝이 어디인지 뻔히 보이니 그 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건전한 사채업자에게 빌려보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그래서 친구에게 5000만원을 빌려주고 그걸로 사채놀이를 하게 했어요.”

사채놀이를 오래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만화가가 사채를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3개월쯤 하다 그만뒀어요. 급히 정리를 하느라 원금을 20% 정도밖에 회수하지 못했어요. 처음엔 돈을 빌려주면 바로 갚을 줄 알았는데, 빌려간 사람들이 제 맘 같지가 않더라고요. 이러니 채무자가 돈을 안 갚으면 폭언, 폭행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알아서 갚아주길 바랄 수밖에요(웃음). 지금도 가끔 제 통장에 모르는 이름으로 입금이 될 때가 있어요. 고맙죠.”

드라마에 나온 ‘싸구려 사채업자는 서류에 연연하지만, 유능한 사채업자는 오직 인간 심사만 한다’는 명대사는 이때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가져오는 서류라는 게 대부분 전세계약서 같은 거예요. 금융권에선 담보가 안 되는 것인데 사채업자는 받아주거든요. 2000만원짜리 전세계약서를 가져오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 30% 범위 내에서 대출을 해줘요. 그런데 그런 담보는 의미가 없어요. 전세금을 빼내려면 그 가족들을 거리로 내쫓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돈을 갚을지 안 갚을지에 대한 판단은 담보서류보다는 사람을 보는 게 더 확실하다는 게 그가 사채를 운영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예를 들어 타고 온 차 실내가 엉망이거나 너무 깨끗하면 그 사람은 막장인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한 거리낌 없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면서 큰소리로 “여기 돈 빌려주는 데 맞습니까” 하고 묻거나 돈 꾸러 오면서 친구와 함께 오는 사람도 안 갚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빚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채 관련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아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반면 말이 없는 사람, 행동이 적은 사람, 몇 번씩 전화하며 돈을 꿀까 말까 한참을 주저하는 사람, 혼자 조용히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돈을 떼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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