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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골프는 연애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골프는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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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나이에 바다에 남편을 빼앗기고 어린 딸과 남은 여인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자 선장이 됐다. 힘겨운 시절,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젊은 날 익힌 골프의 추억. 바위투성이 하이랜드 바닷가의 바람 부는 골프장에서 만난 여인은 흡사 예술처럼 정확한 아이언샷을 휘둘렀다.
골프는 연애다!
6월9일 오전 8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대한항공 KE1211편을 탔다. 요즘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편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더니만 말 그대로였다. 평상시라면 한 좌석은 쉽게 구할 수 있던 탑승권이 일주일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다가 겨우 이틀 전에야 좌석을 구했다. 그것도 일반석은 없어서 비즈니스석이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어로 된 골프 서적을 20여 권이나 읽고 있다.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를 따라 백화점에 들른 길에 우연히 서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골프 책 다섯 권을 산 게 계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를 잠깐 배우기는 했지만 법률서적이 아닌 일반서적을 읽기에는 일본어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불요불급한 경우가 아니면 일본어 서적을 잘 접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모처럼 돈 주고 산 책을 그냥 둘 수 없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틈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래전에 샀으나 일본어 실력 부족을 핑계로 제대로 안 읽은 책들도 읽게 됐다. 마이클 머피가 쓴 ‘Golf in the Kingdom’을 일본어로 번역한 ‘왕국의 골프(王國のゴルフ)’라는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쓰모아(攝津茂和)가 쓴 ‘골프천야 하룻밤(ゴルフ千夜一夜)’도 다시 읽었고, 같은 작가의 ‘불멸의 골프 명언집(不滅の ゴルフ名言集)’도 읽었다.

갖고 있던 일본어 골프 책을 모두 다 읽었을 무렵인 올해 초의 일이다. 재일교포인 제일CC의 서정일 사장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 나카무라 도라키치(中村虎吉)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자와(大澤啓藏)가 쓴 ‘골프의 거리를 간다(ゴルフの街を行く)’라는 책을 보면 나카무라 도라키치가 1957년 캐나다컵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일본에 골프붐이 일어 골프장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동네 꼬마 아이들조차 공터에서 그의 스윙을 흉내내게 됐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일본 골프사에 끼친 영향은 마치 박세리의 1998년 미국여자오픈 우승이 한국에 끼친 영향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서정일 사장이 내놓은 답변은 뜻밖이었다. 도라키치가 재일동포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왜 그런 사실이 우리나라 골프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며 그에 대한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뒤 나는 엄청난 양의 일본 골프서적을 선물로 받았다. 일본에서 돌아와 다시 만난 서 사장이 도라키치에 관한 책뿐 아니라 골프 설계가인 이노우에 쇼이치(井上誠一) 관련 서적 등 20여 권의 골프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지난 상반기 내내 일본어로 씌어진 골프서적을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가운데는 문고판으로 된 책이 10여 권 있어서 지하철을 탈 때에도 안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읽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에다가 나이 탓인지 사전에서 한번 찾았던 단어도 다시 찾지 않으면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보통은 보름, 길게는 한 달이나 씨름해야 했다.

캐서린 헵번을 닮은 여인

때마침 제주도에 가려고 비행기를 탔을 때도 내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는 나쓰사카켄(夏坂健)이 쓴 ‘골프를 통해 사람을 알아본다(ゴルフを以って人を觀ん)’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스튜어디스가 양복 상의를 걸어주겠다고 말해 그 책을 꺼낸 다음 윗옷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내용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선장 질 워드의 골프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가 스코틀랜드를 드나든 지 벌써 4반세기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특히 ‘하이랜드’라 일컫는 스코틀랜드의 북부에 매료된 지 오래여서 때로는 수개월 방랑하는 일도 있다. 그날도 인버네스로부터 서쪽으로 60마일, 그랜피아 항구 근처에 넓게 펼쳐져 있는 카렌골프클럽에 서서 혼자 바람을 쐬고 있었다. 1879년 설립된 18홀은 전장이 4610야드에 파62. 평일 요금이 8000원이라는 게 의외이기도 하지만 코스는 거칠기 이를 데 없다. 도중에 언덕을 돌아서면 갑자기 해상으로 튀어나온 그린으로 내려쳐야 하는 레이아웃은 스릴과 서스펜스의 연속. 토박이 싱글이라도 결코 파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코스다.

어딘지 왕년의 명여배우 캐서린 헵번을 닮은 여성이 말을 걸어온 것은 분명 3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이르렀을 때였다. 검은 구름이 해면을 덮어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날씨에 혼자 라운드하는 것은 냉혹한 느낌마저 든다. 바로 그때 동반 경기자가 나타나니 흠칫 놀란 것이 사실이었다.

“저는 질 워드라고 해요. 당신은 프로골퍼세요?”

“왜 제가 프로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을 저기까지 날려 보내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눈을 가늘게 하고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파4의 퍼팅그린 바로 앞에 하얀 볼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쉽지만 저건 어디선가 날아들어온 것 같아요. 제 볼이 아니에요. 제가 친 볼은 왼쪽 러프에 들어가 있거든요.”

“아아!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금방 10년지기라도 되는 양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실로 묘한 만남 덕분에 햇볕에 그을린 남의 집 유부녀와 라운드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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