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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남은 ‘노아웃’

“노동당 해외정보·자금 배후 총괄” 김옥·장성택과 ‘反김정철’ 연합?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北 김정남은 ‘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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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의 선례

北 김정남은 ‘노아웃’
북한의 후계구도를 예측하는 일은 뒤엉킨 온갖 첩보와 설을 풀어가는 혼란스러운 작업이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명확한 정보공개와 사실확인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 그러나 2001년 이후 장남인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는 분석이 굳어졌고, 이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과 언론, 각국 정보당국의 공식 브리핑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확인되는 몇 가지 징후들은 이러한 ‘정설’에 의문을 품기에 충분해 보인다. 후계자가 결정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김정남은 탈락했다’는 전제하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 김 위원장의 아내이자 차남 정철, 3남 정운의 생모인 고영희가 살아 있을 때는 김정남의 위치가 극히 불안정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2004년 고영희가 사망한 후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게 대두되는 것. 쉽게 말해 김정남과 동생들 사이 혹은 그들을 등에 업은 세력 간에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는 일련의 징후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5월 김 위원장의 수술 당시 김정남이 평양에 들어갔다는 사실부터 살펴보자. 독일 의료진이 직접 진찰하기 전까지는 어떤 수술이 될지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이때는 권력구도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충분한 매우 민감한 시점이었다. 이 시기에 김정남이 평양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평양에서 배척당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근거를 제공한다. 김정철의 후견세력이 민감한 시기에 장남이 돌아오는 것을 좌시할 리 없는 까닭이다.

김정남이 2003년에도 군부 고위층에게 ‘대장님’으로 불리며 선물을 돌릴 만한 위치였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1980년대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가 공고해지던 무렵, 후계구도에서 탈락한 그의 이복동생 김평일은 ‘곁가지’로 불리며 사실상 연금상태에 처해졌다. 헝가리와 불가리아 등 동구권에 대사로 나가 거의 평양에 들어가지 못했고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차단당했다. 하물며 평양의 인사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일은 상상조차 어렵다는 게 김평일과 함께 근무했던 전직 북한 외교관의 말이고 보면, 2003년에도 김정남이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탈락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루아침의 전락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애정 역시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러시아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이나 김정남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외사촌 이한영의 수기, 탈북 고위관료들의 회고 등을 종합하면, 김정일은 ‘남의 아내를 빼앗아 얻은’ 첫아들을 공개적으로 키울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파 유년시절 내내 애정을 쏟았다는 것이다(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은 1960년대 북한 최고의 여배우로 이미 결혼한 몸이었지만, 김 위원장은 이혼을 시키고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서너 살 먹은 아들이 밤중에 소변을 보려 하면 김정일이 내의 바람으로 직접 우유병을 들고 오줌을 받아냈다거나, 1980년 아홉 살의 김정남이 스위스 유학을 떠나게 되자 술을 마시며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처럼 울었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외와 북한 내부를 막론하고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전부터 컴퓨터를 비롯한 IT산업과 통신사업의 막후 조정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던 그는, 2001년 2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상하이 방문 당시 동행하며 중국 내 IT업계 인사들을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對)중동 미사일 수출에 관여해 자금 수령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첩보도 있었다. 그의 생모 성혜림이 러시아로 떠난 후에는 관련 사실을 접한 모스크바의 북한 유학생들을 일일이 소환해 입단속을 시키는 등 ‘황태자’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노력도 확인됐다.

그러나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 공항에 가족과 함께 도미니카공화국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적발돼 신분이 노출된 일을 계기로 상황은 하루아침에 180도 변했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 봇물을 이룬 것. ‘국제적인 망신’에 대로(大怒)한 김 위원장이 그를 아예 외국에 머물게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후 중국 베이징과 마카오,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확인된 그의 행적은 실제로 외국을 떠돌며 낭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확인해주는 듯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만들어 배포한 ‘학습제강’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을 향한 ‘존경하는 어머님’의 한없는 충성심을 강조하는 학습제강의 배포는 고영희를 우상화함으로써 김 위원장과 고영희 사이의 아들인 정철이나 정운을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직 정보당국 최고위관계자는 “문제의 제강은 실제로 2003~04년에 인민군 전방부대에 대대적으로 배포돼 강연자료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연계고리 있다”

김정남이 장남이기는 하지만, ‘월북자 출신의 이혼녀로 서방에 망명 시도까지 한 생모’라는 배경은, 정철과 정운의 생모가 이 무렵 김 위원장의 공식 부인과 다름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취약했다. 실제로 2001년 이후 그가 해외로 떠돌게 된 것은 사실상 고영희의 작품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001년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도 미국 정보당국에 같은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음은 한 정보당국자의 말이다.

“사실 일본에서의 해프닝은 그리 심각한 문제도 아니고, 김정남이 책임져야 할 사안도 아니었다. 일본 법무성 조사 당시 그는 ‘디즈니랜드 관광을 위해 입국했다’고 진술했지만, 그 말을 믿는 정보당국자는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 명의의 여권을 사용한 것이 ‘불법 입국’의 핵심인데, 그 여권은 위조여권도 아니고 차명(借名) 여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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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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