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7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유서도 시신도 없는 선상(船上) 행방불명,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존설의 진실은?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2/6
“저는 비보를 듣고 부산까지 갔다가 오늘 낮차로 돌아왔소이다. 형님이 투신한 곳은 시모노세키와 부산 사이 한가운데랍디다. 그런 까닭에 지금껏 시체를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합디다. 형님의 사고에 대해 각 신문에서 단편적인 사실 몇 가지를 부풀려 기사를 실었는데 각 신문에 발표된 내용은 가족의 견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돼 경찰의 손에 들어갔다 함은 낭설이올시다. 저는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세상의 오해가 없도록 발표하려 합니다.” (‘김씨 투신과 가족의설움’, ‘조선일보’ 1926년 8월10일자)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윤심덕(왼쪽)과 동생 윤성덕.

김우진의 가족은 현상금 500원을 걸면서까지 시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두 사람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유서도 없고 시신도 없는 의문의 정사였다.

사고 발생 이틀 후, 윤심덕이 사고 직전 오사카 닛토(日東)레코드에서 27곡을 녹음한 사실이 알려졌다. 원래 계약은 26곡을 녹음하는 것이었지만, 윤심덕은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자신이 가사를 붙인 노래 한 곡을 더 녹음하자고 제안했다. 윤심덕이 노래하고 동생 윤성덕이 피아노로 반주한 그 노래가 바로 ‘사(死)의 찬미’다.

‘사의 찬미’가 포함된 윤심덕의 유고 음반은 사고 발생 일주일 후부터 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과 조선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발매됐다. ‘사의 찬미’는 일본에서 발매된 최초의 조선어 노래였다. 정사 사건에 관한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사의 찬미’는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렸다.

윤심덕이 살아 있다고?



“얼마나 기쁘십니까?”

1930년 12월, 매일신보 김을한 기자가 이화여전 음악과 윤성덕 교수를 찾아가 대뜸 축하인사를 건넸다. 윤성덕은 윤심덕과 오사카에서 함께 지내다 윤심덕이 현해탄에 투신하기 불과 몇 시간 전 요코하마에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미국에 도착한 후에야 언니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노스웨스턴대학 음악과를 졸업한 윤성덕은 1928년 귀국해 모교인 이화여전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김을한의 뜬금없는 질문에 윤성덕이 되물었다.

“무엇이 기뻐요?”

“언니 되시는 윤심덕씨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계시다니 얼마나 기쁘시냐는 말이에요.”

“글쎄요?”

“아니 글쎄라니요? 김우진씨의 아우님 되는 김익진씨가 총독부에 수색원까지 제출했다는데 그것을 모르십니까?”

“모르긴요. 김우진씨의 두 아우 김익진씨와 김철진씨가 찾아오셔서 언니와 김우진씨가 아직도 이태리에 살아있다는 풍문이 있어 총독부에 수색원을 내겠다고 하기에 좌우간 손해는 없을 것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했지요.”

“그러니 좀 기쁜 일입니까. 아직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벌써 5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새파랗게 살아있다는 말이 있어서 당국에 수색원까지 제출했다고 하니, 누가 듣든지 좋은 일 아닙니까?”

“죽었다던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하니 좋기야 하지요. 그렇지만 나는 도무지 좋을 것이 없어요.”

“그것은 또 왜 그렇습니까?”

“왜 그러냐고요? 나는 처음부터 언니의 죽음을 절대로 믿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절대로 죽음을 부인합니다. 처음부터 죽지 않은 사람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이 떠든다고 새삼스럽게 무엇이 그리 기쁘겠습니까?”

“처음부터 죽음을 부인하셨다고요? 혹 거기에 대해서 무슨 유력한 증거라도 있나요?”

“글쎄요…. 내가 미국으로 떠날 적에 언니가 나한테 하는 말이 자기는 즉시 이태리로 갈 터이니 어쩌면 좀 오랫동안 소식을 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결단코 궁금하게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저 언니가 살아있을 줄만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벌써 5년 전에 그들을 죽은 사람으로 치고 있는데 선생만 그것을 부인하신다는 말씀이에요?”

“나와 가족들은 한 번도 언니가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언니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항상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이지요.”

“그러면 윤심덕씨와 김우진씨가 목하 이태리 로마에 살고 있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그들의 죽음만은 절대로 부인합니다.”

“만일 선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살아있을 터인데 이태리에서나 혹 다른 곳에서 그 동안 무슨 소식이나 있지 않았습니까?”

“설사 무슨 소식이 있었다 한들 그것을 지금 말할 것 같습니까? 그저 처음부터 언니의 죽음을 부인하고 있었다는 말 이외에 다른 것은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말 못하는 벙어리이니까요.”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라면 윤심덕씨의 죽음에는 무슨 크나큰 비밀이하나 잠재해 있고 그 비밀을 알고 있을 사람은 세상에서 윤성덕씨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듯한데 어떻습니까?”“비밀이요? 글쎄요. 어쨌든 그렇게만 알아두십시오.”

“그렇게 숨길 것이야 무엇 있습니까? 늦어도 한 40일 후면 이태리에 있는 일본영사관으로부터 상세한 회답이 와서 모든 흑막이 판명될 터인데 혹시 그들의 생존설이 사실이라면 아주 지금 발표해 버리는 것이 어떠합니까?”

“아니 그들이 지금 이태리에 살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꼭 일본영사관 직원에게 발견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더욱이 그들이 이태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불생불사의 악단 여왕 윤심덕’, ‘삼천리’ 1931년 1월호)


2/6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목록 닫기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