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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커누스티의 추억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커누스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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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누스티의 추억

7월22일(현지시간), 메이저대회 도전 39번째 만에 정상에 오른 파드리그 해링턴이 브리티시 오픈 우승의 상징인 ‘클라레 저그’를 안은 채 기뻐하고 있다.

442야드의 파4홀인 15번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70야드 남은 거리에서 9번 아이언을 잡고 풀스윙으로 어프로치했지만 홀컵으로부터 30야드는 족히 못 미쳤으니까. 이런 곳에서 골프백 나르는 것 외에 캐디가 무슨 필요란 말인가.

‘處處有種眞趣味 人人有皆大慈悲.’

언제인가부터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귀 가운데 하나다. 애초에 이 글을 지어낸 이는 다른 뜻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땅은 곳곳마다에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고,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커누스티에서 보낸 하루는 정말 이 글귀를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코스는 길고 터프한데다 바람이 휘몰아쳐 나로서는 도저히 파온을 시킬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코스에서 언더파를 치는 프로들을 생각하니 그저 변호사로라도 먹고사는 현재의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커누스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대체적으로 바람을 등지고 돌았던 전반 나인홀을 41타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맞이한 후반 10번홀에서의 일이다. 10번홀은 425야드의 파4홀. 역시 맞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티그라운드에 올라서기도 전, 스코어카드에 표시된 야데이지와 코스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건대 도저히 투온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캐디가 그린 직전에 개울이 있노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드라이버샷을 날려놓고 일행 두 사람이 티샷을 마친 뒤에 볼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예상했던 낙하 지점과는 달리 티그라운드로부터 190야드 지점에 위치한 커다란 벙커의 가장자리에 내 공이 앉아 있다. 볼과 벙커 가장자리 끝 사이의 거리는 발을 대고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좁았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볼을 홀 쪽으로 보내기 위해 스탠스를 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뒤로 빼내거나 옆으로 빼내거나, 4온을 해야 했다.

홀을 등지고 스탠스를 취해 오른쪽으로 볼을 보내려고 하니 러프가 있다. 옆으로 빼내더라도 반드시 왼쪽으로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벙커 둘이 비스듬하게 나란히 연결돼 있다. 퍼터를 잡고 옆에 있는 벙커만 넘기자고 쳐냈으나 그만 벙커로 들어가고 말았다. 더욱이 벙커에 들어가서 샷을 할 수 없을 만큼 공이 턱에 바싹 붙어 떨어졌다.

옆으로 빼내려고 벙커샷을 했지만 턱에 부딪히고 튕겨 나온 볼이 다시 벙커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밖에 레이업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였다. 레이업했지만 이번에는 러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다시 레이업을 했다. 그리고 그린을 향해 볼을 날리자 개울에 들어갔다. 드롭하고 어프로치하자 생크볼이 나왔다. 아홉타 만에 온그린했지만, 볼은 아직 홀에서 열한 발자국은 떨어져 있었다. 결국 11타 만에 홀아웃한 것이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불행의 늪을 빠져나오려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조물주가 허락하지 않는 한 닥쳐오는 불행을 어찌할 수 없는 법, 구약성경의 욥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불평한다. 평등하지 않다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재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조물주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 것이다.

136회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날

그때 악몽 같은 경험을 하고 6년이 흐른 지난 7월22일, 136회 브리티시 오픈의 마지막 날 경기가 바로 그 커누스티에서 예정돼 있었다. 나는 밤중에 일어나 중계방송을 볼 요량으로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바뀐 0시40분쯤 예정대로 일어나서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켜니, 9언더파로 출발이 예정되어 있던 가르시아가 스코어를 두 타 줄여 7언더를 만들어놓고 10번 446야드 파4홀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커누스티 골프장은 세계 최초의 프로골퍼인 앨런 로버트슨이 10개 홀을 설계해 지어졌다. 커누스티 골프클럽이 설립된 것이 그 무렵이다. 그 후 1857년 클럽 이사회로부터 초빙을 받은 톰 모리스는 에든버러에서 마차를 타고 와서는 3개월이나 주위를 돌아다니며 지형에 은밀하게 손을 대 커누스티를 18홀로 확장했다. 다음으로 초빙된 이는 ‘골프 거인 삼인방’ 가운데 하나인 제임스 브레이드. 그는 6개월간 땅을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지구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가혹한 챔피언코스를 완성하고는 커누스티를 떠났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영국의 모든 링크스 코스들과 마찬가지로, 커누스티가 던지는 최고의 난제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그 결정적인 요소는 바람. 또한 물살이 빠른 두 개의 개울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저드다. 우선 ‘저키의 개울(Jockie´s burn)’은 처음 여섯 홀 가운데 네 홀을 지난다. 특히 3번홀 358야드 파4홀에서 개울은 언듈레이션이 많은 퍼팅그린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골퍼들이 어프로치할 때 정확한 클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악명 높은 ‘배리 개울(Barry Burn)’은 후반 9홀 중 첫 홀인 10번홀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다음, 다시 17번홀에서부터 홈홀인 18번홀의 페어웨이까지 꾸불꾸불 맴돌듯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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