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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환단고기의 진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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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에는 誤字가 있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강화도 마니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단단학회의 커발한 개천각. 이유립 선생이 지은 건물이다.

한문은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시중에는 한때 이유립씨에게서 환단고기를 배운 사람이 이씨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주해한 것과 스스로의 실력으로 주해한 것 등 여러 종류의 주해본이 나와 있다. 전형배씨는 이렇게 말한다.

“환단고기에는 분명 오자가 있을 수 있다. 환단고기로 묶인 네 종류의 책은 비밀리에 전수된 것이라 필사로 전해져왔다. 필사를 하다 보면 글자를 잘못 적거나 한두 줄을 통째로 빠뜨리고 옮겨 적을 수 있다. 이러한 책 네 권을 모아 다시 계연수 선생이 편집하고 이기 선생이 감수한 최초의 환단고기 30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남한(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월남할 당시 이유립 선생이 갖고 있던 환단고기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이유립 선생이 1949년 오형기 선생에게 필사시킨 것만 전하고 있다. 이유립 선생은 환단고기 강의를 하며 오형기 선생 필사본의 오자를 바로잡아주셨지만, 환단고기에는 이유립 선생도 알지 못한 오자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오류는 계연수 선생이 필사한 환단고기나 이맥 선생 등이 저술한 태백일사 원본이 발견돼야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러한 책이 북한에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가지마에게 원고를 넘겨준 사건을 계기로 이유립씨는 박창암씨와 멀어지고 새로운 사람과 만난다. 그가 새로 만난 사람 중에는 군인 출신과 5공화국의 실세들이 있었다. 이유립이 ‘자유’지를 통해 잃어버린 고대사를 밝히던 1980년, 서점가에서는 김정빈씨가 권태훈씨 일대기를 토대로 쓴 소설 ‘단(丹)’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박창암을 모델로 삼아 김태영씨가 쓴 소설 ‘다물(고토를 회복하자는 고구려 말)’도 큰 인기를 모았다.



5공 실세, 군부와 연결된 이유립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것을 되찾으려는 민족주의적 경향이 일어나면서 5공 실세와 군인들이 이유립을 찾게 됐다. 이유립을 만난 5공 실세는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키려 했다. 1983년 5공화국은 ‘국풍(國風) 83’이라는 행사를 벌였는데, 이는 이유립씨의 영향을 받아 5공 실세들이 마련한 민족주의 이벤트였다. 군인들은 이씨의 역사 강의를 주로 들었다.

1980년까지 이유립은 의정부 자일동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그의 형편을 안 사람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그를 서울 상계동으로 모셨다. 의정부 시절의 이유립씨에 대해 전형배씨는 “한겨울 끼니가 없어 사모님이 라면을 끓여놓고 일을 나가셨는데, 집이 워낙 추워서 점심때가 되면 삶은 라면이 꽁꽁 얼어 있었다. 이 선생은 이 얼음 라면을 깨서 점심과 저녁으로 드시며 공부를 하고 후학을 가르치셨다. 어렵게 사는 것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외풍이 센 방에서도 끄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4년 개천절 때 이유립은 배달문화상을 받고 제자들 덕분에 김포를 거쳐 서울 화곡동에 살게 되었다. 화곡동 시절 이유립은 군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에게 우리 역사를 자주 강의했는데 그로 인해 군에서는 고토를 회복하자는 ‘다물회’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전형배씨를 비롯한 제자들은 이씨의 문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도움으로 전형배씨가 김낙천(金洛天) 고려가 사장을 만나 부탁을 하자, 김 사장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니 득실을 따지지 말자”며 즉석에서 이유립 문집을 내는 데 동의했다. 그리하여 환단고기는 물론이고 ‘자유’지 등 여러 곳에 쓴 이유립의 글을 모아 5권짜리 ‘대배달민족사’ 출간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 차에 강의를 하던 이유립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며 타계했다(1986년 4월18일). 그의 타계는 ‘독립유공자 이유립옹 별세’라는 제목으로 도하 언론에 보도됐다.

이석영씨 도움으로 강화도에 단단학회 건물 마련

생전의 이유립 선생과 교류하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이유립 선생은 계연수 선생으로부터 경신년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내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기록을 남겨놓았다.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개천민족회’를 이끄는 송호수 박사다. 경신년은 서기로 1980년이다.

일각에서는 조병윤씨도 이 말을 들었기에 1979년 환단고기를 인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형배씨는 “계연수 선생이 경신년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내라고 했다는 말을 외부인에게서는 들은 적이 있어도, 이유립 선생으로부터는 그러한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생전에 이유립은 5·16 군사정변을 예언한 명리학자이자 ‘사주첩경’ 저자로 유명한 같은 고성 이씨의 이석영(李錫暎·1920~1983)씨와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었다. 이유립은 참성단이 있는 강화도 마니산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는 이 산을 ‘마리산’으로 불렀다. 그는 이석영씨의 도움으로 마리산 입구에 건물을 짓고 ‘단단학회’ 간판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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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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