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하느님과 연산군의 패륜 논쟁

  •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입력2007-10-04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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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과 연산군의 패륜 논쟁
    1506년 11월, 조선 10대 군왕 연산군이 강화 교동에서 숨을 거둔 후 500년 만에 다시 하느님과 마주했다.

    “그대가 건드린 여자는 몇 명인가?”

    하느님이 채근하듯 물었다

    “그걸 어찌 다 기억할 수 있겠소?”

    비록 축출된 폐왕이지만 아직도 왕기(王氣)가 남아 있는 듯하다.



    “소위 만백성의 어버이라 일컫는 최고위직 공무원이 그 많은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단 말인가. 전속된 유부녀의 오지(奧地)까지 무단 침입하여 일가를 작살내다니….”

    “하느님, 나는 제왕이었소. 절대 권력자의 여성 편력에는 불륜이 없소이다. 더구나 나는 당시 혈기 출중한 20대 사내였고 궁중의 모든 여자는 나를 위한 존재였소. 권력이나 금력으로 여성을 독과점하고 사재기하는 일이 내겐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군(聖君)으로 추앙하는 세종 임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 태조 왕건 선조(先祖)는 마누라를 30명씩이나 거느리지 않았소이까. 중국 수양제는 ‘1회용’까지 합산해서 134명의 공식 비첩을 거느렸고요. 아마 상대한 여성들의 얼굴마저 구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서민들이 생각하기엔 부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제왕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습니다. 매일 밤 수많은 지원 여성의 신체 조건을 살펴 합궁 스케줄을 짜야 하고 체력 안배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연민의 눈빛으로 연산을 내려다보던 하느님이 나직한 소리로 말한다.

    “내가 지적한 것은 그대의 성적 편력보다 인륜을 저버린 성적 방종이다. 수축과 이완이 자유롭다는 장녹수와의 성적 탐닉은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유부녀 이씨를 범접한 대가로 그녀의 남편 윤순(尹珣)에게 자헌(資憲)이라는 정2품 벼슬까지 제수하고, 이복 누이동생 휘숙까지 겁탈한 후 그녀의 남편 임숭재(任崇載)를 죽게 하지 않았는가. 그뿐만 아니라 큰어머니 박씨를 능욕해 자결케 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묻고 있는 것이니라.”

    연산은 튀어오르는 용수철처럼 즉시 응대한다.

    “생육과 번성을 위해 당신께서 친히 내려준 축복의 선물이 바로 섹스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나도 평범한 남자의 수컷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오. 내 육체가 ‘성적 욕구’에 충실했다면 내 몸을 원하는 그녀들은 차라리 처절한 ‘갈망’이었지요. 나와 하룻밤을 보내면 그날부터 신분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었소. 당시 내 몸을 붙잡는 일은 내명부 여인들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요즘 세상 한번 내려다보세요. 돈만 들이대면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달린 여자가 부지기수이지 않소이까.”

    자못 의기양양한 연산이 영 못마땅한 하느님.

    “그대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 암수교접이란 인간성의 바탕 위에서 인간답게 결합하는 가치 기준과 행동 원리가 있는 법이야. 그럼에도 그대는 여동생과 큰어머니까지 갈취하는 패륜을 저질렀단 말이야!”

    일순 움찔한 연산. 쇳조각을 입에 물고 자신을 저주하며 죽어간 매제 임숭재와 자신을 끔찍하게 아껴주던 큰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느님께 붙잡힌 덜미를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고려 왕실에서도 근친상간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는 미망인 형수와 살을 섞어 대를 잇는 제도도 있었고요. 로마 황제 네로의 어미는 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몸으로 아들을 유혹한 사실(史實)도 있소이다. 나의 큰어머니 박씨는 밤마다 이불깃 부여잡고 홀로 뒹굴던 외로운 과부였지요. 그러니 절대 갈취가 아닙니다. 시혜(施惠)였소이다. 고통스러운 고독을 덜어준 나의 적선으로 이해해주시오. 임신만 하지 않았다면 큰어머니는 자살하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엔 더한 일도 많다는 거 하느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의붓딸, 심지어는 친딸에게까지 성폭력을 일삼는 아비들, 사람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놈이 하나 둘이 아니잖아요.”

    올가미를 씌우려는 하느님과 벗어나려는 연산의 말다툼이 계속된다.

    “나는 지금 그대의 욕정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내의 기재(器材) 활용 방식을 질책하는 것이야. 한마디로 그대의 물건이 저지른 패악한 오남용을 지적하는 거란 말이야. 치마만 두르면 누구에게라도 눈독을 들여 닥치는 대로 여자의 속곳을 침투, 오염시킨 죄를 묻고 있단 말이야!”

    연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아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습니까? 사람 병신 만들기는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사로운 치정(癡情) 문제만큼은 치죄의 대상이 아닙니다. 차라리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대임을 유기한 죄라면 몰라도 나에게 성범죄를 추궁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나의 성 행태를 단죄한다면 나는 즉시 하느님의 불공정한 치죄 방식을 고발할 것입니다. 요즘 웬만한 사내들 중에 오입 안 해본 놈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돈푼깨나 만지고 힘깨나 쓰는 사내놈이라면 옛 제왕인 나보다 훨씬 더한 성적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하느님이 속속들이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렇다. 오늘날 인간 사회에 만연한 성적 일탈은 500년 전 제왕의 성적 호사보다 더 심한 것이 사실이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단정한 하느님은 그만 말문을 닫고 만다. 대화를 지속해도 말발이 먹힐 분위기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긴 한숨을 내쉰 후 고심 끝에 하느님이 내뱉은 한마디.

    “구멍을 틀어막고 막대기를 부러뜨려 끝내 교접의식을 접어 인간세상을 결딴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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