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초대석

“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게 듣는다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입력2017-09-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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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9월 8일 한국을 찾아 13일까지 머물렀다. 독일에서 2006년 발간된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문명국가로의 귀환’(메디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춘 방한이었다. 올해 73세의 노정객은 이미 예닐곱 차례 한국을 찾은 적이 있지만 이번 방한은 좀 더 의미심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슈뢰더 정부(1998~2005) 간 비상한 싱크로율 때문이다.

    슈뢰더는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변호사가 된 뒤 진보 성향 정치인이 됐다. 역시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학으로 인권변호사를 거친 진보 성향의 문재인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또 슈뢰더 정부는 1998년 연방총선에서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으로 탄생했다. 독일 연방정부 최초의 적록(赤綠)연정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화두인 협치(協治)와 공명한다. 그 적록연정의 주요 공약이 탈(脫)원전이었고 슈뢰더 정부는 203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국가적 합의를 2000년에 이끌어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역시 탈원전이다.

    무엇보다 슈뢰더 정부는 2003년 주요 지지층이던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복지 비용을 절감하는 국가개혁안 ‘어젠다 2010’(일명 하르츠 개혁)을 도입했다. 1990년 통독의 후유증으로 실업자가 500만을 넘어서면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자 일종의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 국민은 슈뢰더 정부에 등을 돌렸다. 당연히 누려야 할 기득권을 빼앗겼다는 배신감의 표출이었다. 결국 슈뢰더는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해 1년이나 앞당겨 실시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을 내놔야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자살’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결실은 후임인 앙겔라 메르켈 정부 들어서며 보게 됐고 그에 대한 조롱은 21세기 독일 번영의 초석이 됐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한국에선 과거 노무현 정부에 대해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실제로 우회전한 정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서서히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슈뢰더의 ‘어젠다 2010’을 놓고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다’는 비아냥은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자서전을 쓴 이유

    그의 자서전에는 7년의 총리 재임 기간 자신이 겪은 고뇌와 결단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그 책이 무려 11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된 것은 역시 슈뢰더 식 개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절실함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서가 아닐까. 이를 반영하듯 9월 11일엔 정세균 국회의장, 12일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대담을 나눴고 신문·방송과 인터뷰 및 특강이 줄을 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터전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1000만 원의 성금을 기탁하고 1980년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며 폭넓은 행보를 펼쳤다. 공식 스케줄을 시작하기 전인 10일 오후 서울 남산에 있는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정치인의 자서전이라는 게 딱딱하기 마련인데 이번 책에선 구체적 사안마다 본인이 느낀 심정을 매우 솔직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고 읽는 재미를 줬다.
    “재밌게 읽어줬다니 기쁘다. 이번 책이 통상적인 자서전과 다른 점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도 원서 제목이 ‘결정(Entscheidungen)’이란 점에서 드러나듯 내가 내린 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저에 대한 평전도 발표되긴 했는데 역사학자가 쓴 것이라 너무 두껍고 학술적이라서 번역되기에 힘들 거란 생각이 든다.(웃음) 그 평전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이 자서전을 쓴 이유는 내가 재임하면서 내린 중요한 정책과 원칙 등의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저널리스트가 쓴 것만 보고 이해했는데, 이번엔 내 자신이 직접 설명해보자는 취지였다.”

    기자들이 쓴 게 성에 차지 않은 듯하다(웃음).
    “(눈을 찡긋하며) 더 잘 아시지 않나? 기자와 정치인 사이에는 항상 긴장감이 존재한다. 기자들은 가능한 한 많이 알고 싶어 하고, 정치인은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를 다 못 할 때가 많다. 기자가 가능하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기자 정신에 충실한 것이라 탓할 바가 못 된다. 그렇지만 정치인 또한 그걸 다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가가 기자와 이야기할 때 중요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색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치가는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혀끝에 다 옮길 수는 없다는 것만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는 자서전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토로하며 한국인들이 유의해볼 만한 3가지 포인트를 꼽았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독일 통합의 경험을 통해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데 참조하라, ‘어젠다 2010’의 사례를 국가적 개혁과제 처리의 벤치마킹 사례로 삼으라, 탈원전 문제와 같은 갈등 현안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끌어내는 과정에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와 슈뢰더 정부의 유사점 때문에 이번 방한이 더 주목받고 있지 않나 싶다. 당신이 문재인 정부의 멘토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좌우를 망라하고 은연중에 잠재돼 있다는 걸 느끼는지.
    “나는 외부인에 불과하다.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곤 해도 가끔씩 방문하는 것인데 이 정도를 가지고 내가 한국을 좀 아니까 조언하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 기조에 대해선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 특히나 노조가 한편에 있고, 사용자가 한편에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노조와 사용자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간에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총리 재임 시절 한때 500만 명대에 이르렀던 독일 실업자가 ‘어젠다 2010’ 채택 이후 현재는 200만 명대로 내려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이 산업경쟁력을 제고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이 중소·중견기업의 육성을 더 강화함으로써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는 방향은 분명 옳다고 본다. 특히 4차 산업혁명(독일에선 이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한다)에서 중요한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신속성과 민첩성이다. 미래에는 큰 기업이 아니라 급속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날씬한 기업이 유리하다.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기업가적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인드, 혁신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더 빛을 발할 것이란 소리다. 그렇다고 한국 대기업이 경쟁력이 없으니 망하게 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에 좋은 대기업이 많고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경쟁력은 그 결대로 키워주면 된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대화밖에 없다”

    이번 방한 기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 중소기업 육성을 모토로 삼은 ‘월드 클래스 300’ 협회 초청 조찬강연도 펼친다고 들었다.
    “독일 경제가 탄탄한 것은 ‘히든 챔피언스’라 하는 중소기업(Mittelstand)이 많아서다. 가족 경영으로 굴러갈 정도로 작은 기업이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 많다. ‘월드 클래스 30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이런 중소기업이 더욱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정부가 세제 지원뿐 아니라 투자 유치와 기술혁신을 적극 도와줘야 한다. 이런 기업이 가업 승계가 이뤄져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도 필요하다.”

    슈뢰더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에서 미국과 동맹을 중시하지만 전쟁에는 반대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탄력적이면서도 능동적 대처로 독일의 위상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동맹인 미국 편에 서서 반테러 공동전선에 참여했다. 그래서 테러를 사주한 오사마 빈 라덴의 근거지를 제공한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해방전쟁에 독일군 파병을 감행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을 겨냥한 이라크전에 대해선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이라크전 반대 전선을 구축했다. 훗날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이라크에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역풍을 맞은 반면 슈뢰더의 혜안은 빛을 발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서 독일과 유럽연합(EU)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상찬까지 받고 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정계 은퇴 후인 2006년부터 독일과 러시아 합작회사인 에너지 기업 노르트스트림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의 핵 진공상태가 26년 만에 깨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런 도발에 대해 전쟁 불사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다.
    “(단호한 표정으로) 대화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화 정책이었다. 1970년대 초 광범위한 긴장 완화 정책을 채택한 이후 독일은 이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체제 간 경계를 넘어선 대화라는 게 힘들고 벅찬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시도한 것이 결국 독일의 평화통일을 가져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상황이 현재 심각하고 평화적으로 풀어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대화 상대가 돼야 할 북한이 책임감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런 북한을 대화의 장에 끌어내도록 압박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과 공조가 긴요한데 미국은 중국에 대해선 경제적 압박을, 러시아에 대해선 고립 정책을 펴고 있어 사태 해결이 난망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정책 기조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군사적인 해결책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탈원전은 업계와 합의가 필수”

    북쪽에선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데 남에선 탈핵으로 시끄럽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적 의견이 만만치 않다.
    “산업국가가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추구한다는 건 너무도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개별 가계뿐 아니라 전체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변화를 모색해야한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당시 내 원칙은 해당 에너지업체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 것, 그래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신재생에너지산업)을 개발한다는 거였다. 또 그렇게 해서 제공되는 대체에너지 가격이 첫째 안정적일 것, 둘째 공정할 것이란 원칙하에 그에 부합한 모델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에너지 기업들과 함께 언제 원전 폐쇄가 가능한지 실현 가능한 목표를 2032년으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로 재앙이 터지자 후임 메르켈 정부에서 이 시점을 2022년으로 앞당겼다. 유감스럽게도 그 결과로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전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따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대해선 과속이니 졸속이니 하는 비판이 많다. 현재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맡겨 그것도 3개월 만에 결정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내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당시 독일은 경제적 이유에서 이미 추가적 원전 건립을 허가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 상황은 건설 중인 원전을 중단하는 문제라고 들었다. 건설 단계에 있는 원전을 폐쇄한다면 손해배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직접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칙적으로 탈원전을 지지한다. 다만 탈원전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관련 기업과의 합의가 중요하며 탈원전 시점을 언제로 설정할 것이냐 역시 에너지업계와 논의를 통해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엔 반드시 대안이 필요하다. 가스가 될 수 있고, 태양열과 풍력, 조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도 있다. 가스는 러시아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에선 이에 대한 노력을 이미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기후변화협약 준수를 위해선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선 두 가지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생산된 전력의 공급망 구축과 공정한 가격이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사민당의 원로 정치인이자 슈뢰더의 멘토이던 에르하르트 에플러는 슈뢰더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불렀다. “정치는 생물”임을 강조한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슈뢰더 역시 민심을 읽고 대처하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 실제로 만나본 슈뢰더는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하면서도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에둘러 말하는 데 귀재였다. 문재인 정부가 반색할 내용에 대해선 ‘선명한 정물화’를 내놓지만 문재인 정부가 불편해할 내용에 대해선 ‘흐릿한 풍경화’를 내놓는 식이었다.



    ‘어젠다 2010’이란 독배

    슈뢰더는 이런 동물적 감각을 토대로 2002년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정점에서 그는 정치적 동물답지 않은 선택을 한다. 자신의 정치적 무덤을 팠다는 ‘어젠다 2010’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기 것이다.

    ‘정치적 동물’로까지 불린 당신이 ‘정치적 자살’까지 감행한 이유를 들려달라.
    “책임감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국익을 위해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결단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이를 관철해야 한다. 독일 사민당은 150년 이상의 역사에서 항상 국가의 이익이 정당의 이익에 앞선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물론 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진 당원도 있지만 나는 국익이 정당의 이익에 앞선다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보통 그런 의사결정은 시기적으로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내려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용기가 필요하다. 내 직책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리겠느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항상 ‘그렇다’다.”

    당시 처음엔 노사정 합의를 끌어낸 네덜란드 모델을 염두에 둔 ‘노동을 위한 동맹’이란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해 해법 모색에 나섰다. 그렇지만 9차례의 회동에도 불구하고 합의 도출에 실패하자 기업가인 페터 하르츠를 좌장으로 삼은 하르츠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2003년 3월 14일 10개 항으로 이뤄진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서 던지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노사정 합의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곧바로 ‘어젠다 2010’을 발표하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행로를 밟을 것이다. 개혁에서 합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어젠다 2010’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경험에 비춰보면 노사 양측이 항상 요구만 할 뿐 타협에 대한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한국은 노사정이 더 잘 타협할 수도 있다고 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당신이 웃는 걸 보니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웃음). 국가가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특히 한국과 독일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산업국일수록 그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당시 우리는 500만 명이 넘는 실업자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역동적 경제 발전 역사를 지닌 한국의 경우 그 시간은 아마 더 짧지 않을까?”


    한국 개헌에서 독일모델

    슈뢰더 정부는 적록연정의 산물이었다. 유럽 국가에서 발견되는 연정은 대화와 타협으로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소선거구제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결합한 제로섬의 정치 시스템을 채택해 대화와 타협을 굴복과 변절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런 정치 시스템을 고칠 개헌을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집권하고 난 뒤 개헌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독일과 같은 총리 중심의 이원집정제와 중선거구제를 통한 다당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체제 경쟁에서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증명했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대륙 전체의 모범 사례가 될만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국가의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 조언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는 다만 독일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독일식 연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비결은 뭔가?
    “독일은 연방제 국가여서 14개의 연방주로 구성되며 연방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 많은 연방법, 대략 40%는 연방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방정부를 이끌려면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하원에서 다수가 됐다고 자동적으로 상원에서도 다수가 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연방정부는 야당과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상당수의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또 독일 선거법은 단일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차단하는 조항이 있다. 독일의 경험을 살펴보면 연립정부가 있어왔고 연립정부 형태로 집권하는 것이 안정적이란 게 어느 정도 증명됐다. 연방 상원과 하원의 협력이라는 것이 독일의 전통이자 장점으로 굳어졌다.”



    독일 리더십의 원천

    슈뢰더는 재임 기간이던 2001년 6월 15일 100억 마르크의 기금으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나치 정권 아래서 자행된 노동착취에 희생된 160만 명에 대한 손해배상 지급을 위해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계가 각각 50억 마르크를 마련해 설립한 재단이었다. 그는 이 재단을 설립한 이유를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물론 죄를 지은 것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우리 독일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우리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든 세대에게 끊임없이 새롭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는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마주하고,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자서전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이었다. 독일이 현재 유럽과 세계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은 이처럼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하고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도덕적 다짐에서 오는 게 아닐까. 슈뢰더 정부가 정파적 이익을 뛰어넘어 국익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역사 앞에 부끄럽지 말자’는 독일적 에토스(ethos)의 산물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독일의 진취적 행보를 보면서 이를 은폐 축소하려는 일본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됩니다. 독일이 누리는 리더십의 원천이 역사에 대한 성찰에서 온다는 것을 일본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단호한 표정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긴 침묵)”

    딱 부러지는 답변이긴 한데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독일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해서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미래를 열 수 없다.’ 자신의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구성할 수 있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 ‘위안부’란 표현부터 잘못됐다. ‘위안부(Trostfrauen)’의 ‘위안(Trost)’은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준다는 내용인데, 실제 일어난 일은 강압이었고 폭력이었다. 현재 세대도 역사 문제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그와 관련해 이웃 국가이자 피해국이었던 프랑스와 공조를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독일은 과거 역사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늘 단독으로 힘을 과시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유럽에서 이를 견제해주는 중요한 균형점 역할을 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독일은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늘 프랑스와 공동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독일과 프랑스가 28개 EU회원국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서 나온다. 또한 두 나라의 리더십은 다른 회원국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개별 국가의 이익을 초월해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는 기나긴 타협 과정을 이끌어가는 데서 나온다. 세계화 시대의 리더십은 다자주의에 입각해 타협을 끌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그 외의 대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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