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1500년 전 대륙 호령하던 태왕의 기상을 만나다

  • 윤완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zeitung@donga.com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2/5
아름답고 정교한 고분벽화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다섯투구무덤의 5호 묘 고분벽화 ‘해신 달신’. 묘실 내부에 습기가 차 벽화의 색깔이 흐릿해지고 있다.

장수왕릉 바로 앞 정원으로 빠져나왔다. 잘 정돈된 꽃밭, 풀밭이지만 왠지 장수왕릉의 위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제 정교하고 아름다운 고분벽화로 유명한 다섯투구무덤(오회분) 5호 묘에 갈 시간이다. 버스로 10~20분 거리다. 광개토태왕비와 광개토태왕릉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이곳이 어딘가. 지안시다. 지안시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고구려는 서기 3년(유리왕 22년)에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다. 427년(장수왕 15년)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무려 400여 년 동안 고구려의 중심지였다. 졸본은 현재 중국 랴오닝성 환런(桓仁)에 있다.

지안시에 고구려 무덤이 몇 기 있을까. 100기? 1000기? 틀렸다. 무려 1만2000여 기가 있다. 고구려인은 땅의 절반을 주거지로, 나머지 절반을 무덤으로 사용했다더니 실감이 난다. 1500년 넘은 고분이 이곳저곳에 가득하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많은 고분이 떼로 모여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거의 모든 곳이 ‘고분떼’다.

이 중 통구무덤떼가 1만1300여 기다. 이곳에 장수왕릉, 광개토태왕릉, 다섯투구무덤을 비롯해 그 유명한 씨름무덤(각저총), 춤무덤(무용총)이 모여 있다. 안타깝지만 지안에 있는 벽화무덤 20여 기 중 공개된 곳은 다섯투구무덤 5호 묘뿐이다.



널방 입구 앞에 서니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널방이 그리 넓지 않아 한번에 많아야 15명 정도만 벽화를 볼 수 있다. 널방은 16.53m2(5평) 정도다. 20여 분을 기다려 마침내 널방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하다.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도가 어디에 그려져 있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널방 안에 널받침이 3장 놓여 있다. 관은 없다. 가운데 널받침은 고분의 주인, 양옆의 널받침은 두 부인의 것이리라.

조선족 안내자가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답사자들의 눈동자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와!” 청룡의 얼굴이 보였다. 널방 입구를 향해 역동적으로 뛰어오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청룡의 화려한 몸이 드러났다. 빛은 바랬지만 노랑, 초록, 갈색을 비롯 형형색색의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목과 배는 분홍색이다. 발톱이 날카롭다.

맞은편 벽에 백호가 있다. 역시 널방 입구를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들 태세다. 청룡 백호 뒷다리에 우모(羽毛)가 눈에 띈다. 신비한 영물에 나는 깃털이다.

널방 입구 쪽 벽엔 주작이, 반대편 벽엔 현무가 그려져 있다. 위에는 해신, 달신이 보인다. 수레바퀴신도 보이고, 농사신인 소머리신도 보인다. 해신은 세 발 달린 검은 봉황이 있는 해를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달신이 이고 있는 달엔 두꺼비가 있었으나 사라지고 없다. 면류관을 쓰고 용을 타고 나는 신선도 보인다. 창을 들고 뒤를 따르는 신장(神將)도 보인다.

그리스 신화가 무색하다. 고구려인은 1500년 전 이미 문명을 상징하는 신을 예술작품의 소재로 형상화했다. 신의 이야기를 회화로 남긴 것은 둔황이나 중원 지역에선 볼 수 없다. 상상력이 놀랍다. 미술적 성취도 놀랍다. 고대의 신과 사신도는 화려하다. 정교하다. 직접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간 눈길이 마지막으로 널방 천장에 멈춘다. 숨이 멎는다. 용과 호랑이가 얽혀 싸우고 있다. 네 벽과 천장 가득 여백이 없다. 온통 벽화다. 예술이다. 역사다. 고구려인의 세계다.

답사단은 30여 명이었다. 팀을 둘로 나눴다. 기자는 모두 두 번 들어갔다. 두 번째 감탄. 손전등 불빛이 현무에 닿았다. 형체는 남았지만 무엇이 거북이고 무엇이 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벽화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군데군데 지워졌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탓일까.

천장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이 거슬렸다. 자세히 보니 사방에 물이 줄줄 흐른다. 무덤 안팎의 온도 차이 탓에 생긴 습기다. 습기 정도가 아니라 목욕탕처럼 물방울이 줄줄 흐른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가 알려진 지 족히 10년은 넘었다. 중국 관리인에게 물었다. “관광객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 관광객의 널방 출입을 막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답사에 함께한 김정옥 장학사(경기 이천시 교육청)는 “명(明) 황제 13명의 능묘군인 베이징 명십삼릉도 지하에 널방이 있지만 제습장치가 잘 돼 물방울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벽화를 손으로 문질렀더니 검은 안료가 묻어나왔다며 국사편찬위원회 직원이 혀를 끌끌 찬다. 안료인지 먼지인지 알 수 없지만, 중국 정부의 관리 소홀로 벽화가 훼손되고 있음은 분명했다.

2/5
윤완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zeitung@donga.com
목록 닫기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