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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1500년 전 대륙 호령하던 태왕의 기상을 만나다

  • 윤완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zeitung@donga.com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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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각에 갇힌 광개토태왕비

지안(集安)에서 단둥(丹東)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기

비각(碑閣)에 갇힌 세계 최대의 비석 광개토태왕비. 태왕비의 금석문은 귀중한 고구려 역사 자료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광개토태왕릉과 광개토태왕비로 향했다. 광개토태왕릉은 한 변의 길이가 66m다. 돌을 쌓은 방법이 장수왕릉과 같다. 잘 다듬어진 네모꼴 돌덩어리를 차례로 들여 쌓았다. 장수왕릉보다 훨씬 큰 규모지만 석릉 대부분이 무너져내려 언덕처럼 보였다.

광개토태왕릉은 장수왕릉과 달리 유물이 출토돼 광개토태왕릉임이 확실히 알려졌다. 석릉에서 ‘태왕릉’이라 새긴 벽돌이 발견됐다. 지안시 박물관에 소장된 태왕릉 출토 청동방울에 ‘호태왕’이라 새겨진 사실이 2003년 확인됐다. 관광객들이 무덤 이곳저곳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녀도 제지하지 않았다. 돌이 무너져 내려 무덤 같지 않은 모양이다. 포항제철서초교 6학년 이동호(12)군의 지적이 따갑다.

“할아버지 무덤은 안 밟으면서 조상의 무덤을 함부로 밟게 놔두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널방의 사정은 장수왕릉과 비슷했다. 널받침 2장 위엔 지폐가 어지러이 놓여 있다. 벽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중국인 관리인이 2명이나 입구에 있는데 하는 일이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광개토태왕이 잠들었던 곳은 그렇게 훼손되고 있었다.



광개토태왕릉 아래쪽에 ‘태왕릉 태왕비 사진 전시관’이란 작은 현판이 붙은 단층 건물이 있다. 안은 휑하다. 방 하나에 태왕릉과 태왕비의 과거 사진, 태왕비 탁본 사진 몇 점이 전부다. 건물의 다른 방은 텅텅 비어 있었다. 청소부가 “어서 나가라”고 외친다. 세계문화유산을 안내하는 전시관으론 볼품없기 그지없다. “왜 만들었는지 모를 곳”이라며 고혜령 편사부장이 혀를 끌끌 찬다.

광개토태왕릉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광개토태왕비가 있다. 높이 6m 너비 139cm. 세계 최대의 비석이다.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저서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에서 한 비유가 그럴듯하다.

“아파트 3층에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을 때 갑자기 큰 돌덩이가 앞을 가로막는데, 그 돌덩이 하나가 1층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큰 돌이라면 어떤 느낌이 들까?”

대륙을 경영한 광개토태왕의 업적이 담긴 세계문화유산은 그러나 비각(碑閣)에 갇혀 있다. 명목은 ‘보호’지만 숨 막힐 듯 답답해 보였다. 그 운명이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석탑과 같아 한숨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유리 보호각 안에 갇혀 있다. 탑이 화강암보다 무른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비바람에 많이 닳았다. 탑골공원은 비둘기 집단 서식지여서 배설물에 의한 훼손도 심각했다. 지난 2000년 문화재 당국이 탑 주변에 유리 보호각을 쳤다. 완벽한 보존처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보호각 속에 갇힌 탑에서 조상의 얼이 숨쉬는 문화재의 참맛을 느끼기란 어렵다. 하물며 광개토태왕비야….

2003년부터 개방된 유리 비각 속 비좁은 틈에서 광개토태왕비를 보는 관광객들도 답답해 보였다. 폐쇄된 공간에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면 입김 때문에 비석의 부식이 빨라진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다. 바로 앞에서 비석을 살펴보니 비석이 갈라지는 걸 막기 위해 틈새에 주입한 접착제가 흘러나온 듯 비석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광개토태왕비는 금석학 연구에 중요하다. 금석문은 세월이 흐르며 덧쓰고 지워지는 문헌과 달리 새길 당시 기록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보다 700여 년 앞선 기록이다. 광개토태왕비는 일제의 글자 변조설로 논란이 됐다. 일본 육군대위 사코 가게노부(酒勾景信)가 1883년경 중국 현지에서 입수했다는 묵본이,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된 것이다.

이 묵본의 신묘년 관련 기록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를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 □□, 신라를 깨뜨렸다’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 탁본에는 ‘渡海破’란 글자가 뚜렷하지 않아 조작 의혹을 받았다(□□는 판독하지 못한 부분). 일본은 글자를 변조해 광개토태왕비를 욕보이고, 중국은 비를 보호각으로 옥죄 광개토태왕비를 괴롭히고 있다.

사라지는 국내성 흔적

지안시에서 답사단을 안내한 조선족은 중국 지린성 퉁화(通化)시의 조선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여교사였다. 중국 정부의 고구려 유적 훼손이 안타까워 조선족들은 고구려 역사를 어떻게 배우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이 답사단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학교에서 고구려 역사를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만 스쳐 지나갈 뿐이지요. 대학 입시에도 나오지 않으니 어린 조선족 학생들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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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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