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원조 로비스트’ 린다 김 격정 토로

“대한민국 남자 중 누가 신정아에게 돌 던질 자격 있나”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7-10-09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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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 거론 심히 불쾌하지만, 신정아 처지 안타까워”
    • “연애가 무슨 잘못… 다만 변양균 실장의 직책이 문제”
    • “국가적 사업과 개인적 스캔들 구분해달라”
    • “이양호 장관과 가깝지 않았다면 백두·금강 끝내지 못했을 것”
    • “한국군 공군무기 도입 관여”
    ‘원조 로비스트’ 린다 김 격정 토로
    최종 마감일인 9월15일 오후. 전화를 걸어온 린다 김(55)은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언론이 너무 하는 것 아니에요? ‘제2의 린다 김’이라니, 왜 내 이름을 거론하냐고요? 신정아 사건과 내 사건이 어떻게 같아요? 잘 아시잖아요?”

    린다 김에게 ‘신동아’를 통해 심정을 밝히라고 제안했다. 그는 얼마간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서울 잠원동 기린한방병원에서 만난 린다 김은 맨얼굴이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유난히 돋보였다. 옷차림은 검은 색 일색이었다. 검은 색 티셔츠에 검은 색의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체육복처럼 편안해 보이는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트레이드마크 같던 화려한 목걸이 대신 은빛의 가느다란 목걸이가 이제 명백히 중년의 티가 나는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도입을 둘러싸고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 등 고위층 인사들과의 스캔들로 유명해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신정아 사건은 날벼락 같은 것이었다. 2000년 백두사업(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 추진 과정에 백두사업팀장에게 10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이후 그는 한동안 사업에서 손을 떼고 숨죽여 지냈다. 몇 년 전 사업을 재개한 그는 최근엔 한국군의 무기사업에 다시 손대며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정아 사건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예전의 스캔들을 새삼 세간의 화젯거리로 만든 것이다.

    “신정아도 참 답답할 것”



    “좀 심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 사건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당했어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까. 그 사건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이제 막 좋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사업차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는 린다 김은 지난 8월25일 국내에 들어왔다. 신정아 사건에 이름이 거론돼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얼마 전 여동생이 암수술까지 받아 정신이 없다고 했다.

    ▼ 신정아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도 억울한 점이 있을 거예요. 그냥 매장당하고 있는데, 뭔가 할 말이 있을 거예요. 내가 그 세계를 겪어봤잖아요. 그 사건으로 3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요. 기린한방병원 원장님 도움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기린한방병원은 다이어트 전문 한방병원으로 린다 김은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약 40일 간 체중감량 치료를 받았다. 당시 감량에 성공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는 데 큰 효과를 본 린다 김은 그후 체중이 다시 늘거나 머리가 아플 때마다 이곳을 애용해왔다. 최근 신정아 사건이 터진 후 다시 입원한 상태다.

    ▼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이름이 거론될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기가 막혔지요. 어떻게 신정아 사건이 ‘제2의 린다 김 사건’이에요. 나는 장사꾼이에요. 사업하는 사람이라고요. 대학에서 뭐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나도 여자로서 겪어봤기 때문에 알지만, 그 여자도 참 답답할 거예요. 나도 할 말 다 못하고 지나갔으니.”

    린다 김은 열을 풀풀 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게 ‘제2의 린다 김’입니다. 돌겠더라고요. 당시 내가 들여온 정보수집 장비, 지금 잘 쓰고 있잖아요. 오히려 두 대 더 구입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린다 김이 미국 회사의 로비스트로 나서 한국 정부에 판매한 백두정찰기는 2000년에 터진 린다 김 스캔들의 여파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막상 도입된 후에는 운용부대 관계자들로부터 성능도 괜찮고 한국군의 정보자주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양호 장관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해”

    ‘원조 로비스트’ 린다 김 격정 토로

    2000년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폭로돼 곤욕을 치를 때의 린다 김.

    ▼ 백두정찰기는 장비는 좋은데 숙련공이 없어 문제라는 평도 있었지요.

    “그건 한국군의 사정이지요. 장비가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장비 들여와 한국군의 정보자주화를 40% 달성했다고 하잖아요. 그 전엔 미군에만 의존하고 있다가. 나는 정말 그 사업에 대해선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30년 동안 그 많은 국가와 군수회사를 거치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부해요. 백두, 금강 다.”

    금강사업은 영상정보 수집 정찰기를 도입하는 사업으로, 역시 린다 김이 로비스트로 나서서 한국정부에 납품했다. 백두사업과 똑같이 기종(機種)이 호커 800인데, 아무런 잡음이 나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 린다 김 스캔들의 핵심은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과의 관계였지요.

    “그 양반이 내게 편지한 건 사실이에요. 이 장관은 훌륭한 분이었어요. 내가 이 장관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실은 이 장관이 나를 이용한 면이 있어요. 가격 면이나 기술이전 면에서.”

    ▼ 이양호 장관과의 스캔들을 이 시점에서 다시 정리한다면요.

    “조 기자한테는 거짓말 안 해요. 이 장관과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어요.”

    ▼ 예전 인터뷰에선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건 감정이지. 아버지 같이 푸근한 느낌과 존경심. 내가 참 잘 따랐어요. 그 양반이 하라는 대로 움직였어요. 지금도 좋아하고 존경해요.”

    ▼ 당시 이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실토했잖습니까. 두 번 관계를 가졌다고.

    “이 장관이 뇌물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고 나왔잖아요. 주변에서 그 양반에게 법적 제재를 피하려면 차라리 스캔들이 낫다고 충고했다고 해요. 스캔들은 사생활이니. 당시 이 장관은 다시 구치소에 들어갈까 봐 무척 예민해 있었어요.”

    ▼ 어쨌든 이 장관의 고백으로 두 사람은 평생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됐잖아요. 가족도 고통을 받고.

    “감방 가는 게 나아요, 스캔들이 나아요? 1년 8개월 옥살이한 게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이 장관이 순진하거든요. 순간적인 판단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거죠.”

    ▼ 사건 이후 만난 적은 없나요.

    “없어요. 교회 봉사활동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 분 생각하면 늘 맘이 짠하지.”

    ▼ 항간에선 ‘신정아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린다 김’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정·관계 고위인사들과의 친분과 연서(戀書) 등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는 거죠?

    “제가 친분을 맺었던 분들은 모두 순수한 분들이에요. 저는 좋은 인연이라 생각하면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는 편입니다. 쉽게 끊지 않아요. 꾸준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하죠. 해외에서 오래 살다보니 ‘아이 라이크 유’니 ‘아이 러브 유’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써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걸 두고 손가락질하더라고요. 왓 어바우트 뎀(What about them)?”

    “언론의 거대한 힘에 떠밀려”

    ▼ 신정아씨는 “혼자 사는 여자라서 더 비난을 받는다”고 항변했는데요.

    “아주 공감해요. 모르긴 몰라도 신정아도 나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점이 있을 겁니다. 내가 그 세계를 아니까. 아주 한 여자의 인생을 죽이고 있어요.”

    ▼ 지금까지 드러난 신씨의 행적을 보면, 성공을 위해 많은 남자와 친분을 맺고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같은 싱글 라이프 여자로서 이해되는 면이 있어요. 우리라고 왜 로맨스가 없겠어요.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왜 없겠어요. 상대 남성이 고위층이니 자제하는 거죠.”

    ▼ 이양호 장관과는 서로 이용했다면서요?

    “그건 이 장관이 언론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니, 나도 감정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이제 와 사건을 돌이켜 보면 이 장관이 왜 뜬금없이 신문사에 찾아가 두 번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지요. 편지엔 참 플라토닉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묻어나 있거든요. 그런데 왜 굳이 지저분하게 호텔방 어쩌고 했는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장관이 감옥에 가느니 가족에게 미안한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그때 저한테도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거짓말했는데 너는 진실을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났죠. 저 양반이 멍청인가, 바보인가. 왜 지저분한 스토리를 만들 구실을 줬는지….”

    ▼ 신정아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관계는 보통이 아닌 것 같죠?

    “그런 것 같아요. 야망을 품고 달리던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 연애한 건데… 저는 변 실장의 직책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일반인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거든요. 그 일로 두 사람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게 안타까워요. 저도 사건의 진실이 뭔지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얘기하지도 못한 채 언론이 떠미는 대로 밀려다녔잖아요. 언론의 거대한 힘에 감히 상대를 못했지요. 그래서 몇 년 간 우울증 치료도 받고. 홧병이에요.”

    ▼ 여성이 일을 하면서 필요에 의해 남성을 만난다면 조심해야 할 점이 있지 않나요.

    “조심해야죠, 그런 직책을 가진 남자라면. 변 실장 같은 사람이 여자를 만나는 데는 제약이 크지요. 그런데 신정아씨와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등 취향이 같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죠.”

    린다 김은 또 다시 “가장 불쾌한 게 ‘제2의 린다 김’”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언론은 내가 조국에 도움이 되도록 힘들게 사업한 데 대해선 한 마디도 안 하고, 늘 여자 스캔들의 대명사인 것처럼 보도해요. 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모 방송에선 신정아와 저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까지 하더라고요. 너무 심하지 않아요? 몇 년간 묶여 있다 풀려나 다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한 번 죽이면 됐지 두 번 죽일 이유가 뭡니까. 백두·금강은 웬만한 사람은 해결하지 못할 사업이에요, 체계가 워낙 복잡해서. 미국과 한국의 정치상황, 한미 연합작전체제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다고요.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설명하느냐고요.”

    “도와주고 싶었겠죠”

    ▼ 그런 사업적인 면을 부인하자는 건 아니고요. 사람들은 신정아 사건에서 여성이―관계를 맺든 안 맺든―남성들과의 남다른 친분을 바탕으로 뜻한 바를 쉽게 달성하는 데 주목하면서 린다 김 사건을 떠올린 거지요.

    “제 사업을 객관적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오해의 소지가 있었지요. 언론의 보도는 난센스예요. 백두사업의 시스템에 대해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고 그 흐름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날 몰아세우지 않았을 거예요. 신정아씨의 경우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몰아붙이니 일단 도망갈 수밖에요. 두 사람 다 죽는 거지요. 사형시켜야 죽이는 거예요? 그것만큼 잔인한 죽음이 없더라고, 여자로서.”

    ▼ 두 사람이 나이 차이를 떠나 순수하게 연애했을 수도 있지요. 그건 타인이 문제 삼을 게 아니고요. 그런데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런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교수 채용에 압력을 넣었다든지 기업에 후원금을 요구했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는 언론이 떠들면 수사가 따라가게 돼 있어요. 그게 안타깝다는 거지.”

    ▼ 실제로 의혹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잖아요.

    “실제로 로맨스가 있었겠죠.”

    ▼ 로맨스는 좋은데 그것 때문에 직권남용, 청탁, 압력 등이 있었으니….

    “도와주고 싶었겠죠. 기왕이면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사주고 싶지 않았겠어요.”

    린다 김은 자신의 스캔들이 신정아 스캔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정아씨의 경우 변 실장 한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게 가능했지만, 제가 한 일은 달랐어요. (이양호 장관) 한 사람의 도움으로 될 일이 아니었죠. 양국 정부, 조달본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어요. 장관이라고 맘대로 못했어요.”

    그러면서도 린다 김은 신정아씨를 감싸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남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아요. 미술 전시하는 데 무슨 피해가 있겠어요. 우리처럼 죽자 살자 싸운 것도 아니고, 입찰하는 것도 아니고.”

    ▼ 광주비엔날레 건을 보면 신씨를 앉히느라 다른 유능한 사람들을 탈락시켰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좀 문제죠.”

    ▼ 학위가 가짜인데도 동국대 교수로 채용되고.

    “저도 미국에서 학교 다녔는데, 언론에선 다 거짓말이라고 하잖아요. 졸업하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장사하는 데 정신 팔려서. 공부가 내 사업에 별 도움도 안 됐고. 하지만 학교를 전혀 안 다닌 건 아니었어요. 신정아도 그 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보지 않아요. 남들한테 얘기하다 보면 자기 입지를 굳히려고 졸업을 안 했는데도 했다고…. 그런데 주변에 보면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조사하면 많이 나올 거예요.”

    “장관 한 명이 도와서 될 일 아니었다”

    ▼ 며칠 전엔 모 일간지가 누드사진을 실었는데요.

    “그게 말이 됩니까.”

    ▼ 그 바람에 갑자기 신정아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지요.

    “여성으로서, 정말 언론이 너무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진짜 사건과 관계없는 프라이버시인데. 누드를 찍었다면, 소우 왓(So What?), 그걸 왜 공개해야 하냐고.”

    ▼ 신문사측은 그게 몸로비의 결정적 증거라고….

    “그럼, 신정아가 누드사진을 돌리면서 ‘날 잡아 잡수’ 했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관계가 가까워지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요.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에요. 저도 사업하다 보면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한테는 도움을 많이 받게 돼요. 비즈니스를 떠나 인간적인 관계가 작용하는 거죠. 어쨌든 한 나라의 정책을 맡았던 사람이 애정 문제로 삶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 가정 있는 남자라서 더 그렇죠?

    “대한민국에서 가정 있는 남자들 중 밖에 나가 바람 안 피운 사람 있나요? 그런 사람이라면 손가락질하라고 해요.”

    ▼ 사람들에게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면이 있죠.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라고 봐요. 비슷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말은 더 많아. 우리나라 남자들의 90% 이상이라고 봐요. 그들이 손가락질할 수 있나요?”

    ▼ 관계를 맺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공적인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니 그렇죠.

    “여자야 힘 있는 남자가 자기한테 잘해주니 마다하지 않을 테고. 그걸 이용이라고 해야 할지….”

    ▼ 그 상태에선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애정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용하는 면이 있으니.

    “딱 잘라 얘기 못하죠. 이용이라면 이용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협조가 잘 되고 대화가 잘 되는 거죠. 무기중개업도 신뢰가 없으면 못해요.”

    린다 김은 사진기자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은 찍지 말라고 요구했다. 상스럽게 보인다며. 곧 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다소 굳은 표정이었는데, 점차 여유를 보이고 있다.

    ▼ 남자들 세계에는 묘한 인식이 있어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이고 어떤 남자든 쉽게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는 재주를 가진 여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빠르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고.

    “신정아씨와 변 실장을 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용보다는 정이나 애정, 아낌, 존경심에 가깝다고 봐야죠. 또 파워라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죠. 파워가 있는 남자는 보통 남자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죠.”

    ▼ 이양호 장관과도 그랬나요?

    “상당히 존경하고 따랐어요. 김현철이나 권영해, 임재문이 나를 조여 오는 걸 알면서도 그 양반에 대한 동지의식을 떨치지 못했으니. 정보기관에서 뒷조사를 하는 걸 알았지만 끝까지 이 장관 편에 섰지요.”

    린다 김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시절 권영해 안기부장과 임재문 기무사령관은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 등 무기도입 사업에 개입해 이양호 국방부 장관과 대립했다고 한다. 린다 김은 이 장관을 낙마시킨 뇌물사건을 두 사람이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 이양호 장관이 쓴 편지를 보면, 명백히 남녀관계더군요.

    “좁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너무 안타까워요. 흔히 백두·금강을 쉽게 얘기하는데, 그거, 장난이 아니었어요. 비행기 선정하고 시스템 선정하고 플라이 테스트 체크해야 하고. 내가 중간에서 미국 회사와 싸워 조금이라도 한국에 도움이 되도록 했던 겁니다.”

    ▼ 신정아씨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내용으로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또 비난할 사람이 있겠지요.

    “실제로 지금 제 심정이 그래요. 참 딱하게 걸렸구나. 신정아씨를 짓누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2의 린다 김 사건’이라는 표현은 우리 둘을 묶어 비난하는 건데… 그건 아니라는 거지. 어떻게 내가 한 사업과 신정아 사건이 같냐고. 나와 이 장관의 관계는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협조관계였어요.”

    린다 김은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뜨리며 신정아씨에 대한 동병상련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 좀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죽이는 건 진짜 죽임보다 더한 거죠. 그리고 어떻게 무기중개업을 몸로비로 표현합니까. 수십 명의 실무자를 상대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를 상대한 것인데. 그걸 어떻게 장관 한 명이 결정합니까. 신정아씨의 경우 모르겠어요, 변 실장이 그림 좀 팔아줬는지. 여자들에 대한 독특한 한국적 사고방식이 문제예요.

    편견이죠. 여자가 뭘 따냈다, 성공했다 하면 실력으로 한 게 아닐 거라는. 여자가 성공적으로 정상의 위치에 오르면 꼴을 못 보는 건지, 인정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지. 제 경우만 해도 사건의 본질을 다룬 언론이 별로 없잖아요. 다들 선글라스가 어떻고 옷이 어떻고 하면서. 우리 일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면 못해요. 다시는 이런 폐단이 없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진 정보를 원해”

    ▼ 이번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사람들에게 린다 김이 이양호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네요.

    “그게 아니라, 비즈니스도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신이 아니라. 남자가 연결되면 뇌물 쪽으로, 여자가 연결되면 섹스 쪽으로 생각해요. 그런 편견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거예요. 돌이켜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니까.”

    ▼ 이 장관과 조금 더 거리를 뒀어야 하지 않을까요. 후회하지 않습니까.

    “더 거리를 뒀다면 백두·금강 끝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 그 얘기는 이 장관과의 밀착 관계가 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네요. 국익이든 뭐든.

    “국익에도 도움이 됐고 나한테도 도움이 됐고. 그건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었어요. 그 사업이 1970년대에 시작된 거예요. ROC(군 요구도)가 그때 발주됐어요. 10년 이상 끝을 못 내던 사업이에요. 비행기를 먼저 하냐, 시스템을 먼저 하냐면서. 그걸 우리가 끝낸 겁니다.”

    린다 김은 요즘 미국 회사의 로비스트로서 중동 쪽에 전투기를 파는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관련된 일을 묻자 “한 건 있다”면서도 내용을 묻자 “비밀”이라고 입을 닫았다.

    ▼ 이번 일로 지장 있겠네요.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해요.”

    ▼ 공군 무기겠네요. 원래 공군 쪽에 강했잖아요.

    “맞아요.”

    ▼ 여전히 인맥이 살아 있는 모양이군요.

    “인맥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아는 정보를 원하기 때문이죠. 우리처럼 수십 년 이 일을 해온 사람은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가 많지요. 누가 얼마에 어떤 무기를 팔았고, 회사가 얼마나 이익을 남겼고…. 가격이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런 정보에 훤하잖아요.”

    린다 김은 인터뷰에서 문민정부 시절 권력자들의 ‘파워게임’에 대해 얘기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부와의 친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와의 ‘악연’도 소개했다. 이에 대해선 인터뷰 주제가 아닌데다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있어 기사화를 유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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