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7-10-09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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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신정아 사건’으로 촉발된 학력 위조 파문이 몇 달째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예인, 예술인, 학원가, 종교계 인사들까지 학력을 위조한 사례들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아노미 현상마저 생겨날 정도다. 인터넷에선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의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과거에 국회의원들이 학력을 과장하거나 위조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역 국회의원이 학력을 위조했다는 보도는 접하기 어렵다.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적어도 17대 국회의원들은 학력 위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7대 총선부터는 후보가 선관위에 신고한 학력이 공개돼 상대후보 또는 유권자의 검증이 가능해졌고, 허위로 신고한 게 밝혀질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돼 있다. 그래서 16대 때 내세운 학력과 17대 때 신고한 학력이 다른 의원도 많다.

    17대 국회에서 학력 위조로 의원직을 상실한 사례는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이상락 의원 한 사람뿐이다. 사실 그에겐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빈민운동가였던 그는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지 빈민운동을 할 때부터 누가 ‘어디 나왔냐’고 물으면 ‘고향의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얼버무렸다. 그때는 그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1991년 성남시의원에 출마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이후 경기도의원 3선을 하는 동안 유권자에게 배포되는 홍보물에 한 번도 학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허위 학력으로 유권자를 속이거나 공표한 적은 없다. 그러던 것이 17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선거참모가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면서 자기가 평소 알고 있던 대로 ‘○○고 졸업’이라고 기재했고 선관위는 이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런데 정작 후보자 등록 때는 ‘무학’으로 등록했다가 선관위의 조언에 따라 ‘독학’으로 고쳤다.

    이런 와중에 그의 측근이 ○○고로 달려가 다른 사람의 졸업증명서를 떼고는 이를 위조해 가짜 졸업증명서를 만들어 왔다. 이게 문제가 돼 이 의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위사실 공표 및 위조 공문서 행사 혐의로 고소됐고,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교수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런데 학력을 위·변조한 17대 국회의원이 정말 이상락 전 의원 하나뿐일까.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오른팔’로 알려진 이재오 의원의 학력과 이력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주요 이력을 정리하면 이렇다.

    1963년 중앙대 농경제학과 수석 입학

    1964년 6·3학생운동 주도

    1965년 8월30일 중앙대 제적

    1966~1969년 군 현역 복무

    1967년 이동중 교사

    1972년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

    1995년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정리하면, 중앙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당해 군에 끌려갔고, 대학 졸업도 안 했는데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다. 학사학위 없이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고려대에 석사학위 여부를 확인했다. 이 의원은 1972년 석사학위를 받은 게 분명했다. 고려대 도서관엔 지금도 그의 석사논문이 남아 있다. 고려대 측에 이 의원의 대학원 입학 자격에 대해 물었지만 “대학원 졸업 여부만 확인해줄 수 있을 뿐 그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까지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이재오 의원과 그의 홈페이지. 1963년 중앙대 농경제학과 입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64년 농촌사회 개발학과 입학이다.

    이동중 교사를 했다는 이력도 의문스럽다. 1967년이면 그는 군 복무 중이었다. 더구나 그는 사범대를 졸업한 것도, 임시교원양성소를 수료한 것도 아니다. 1953년 4월20일 대통령령에 의해 초·중등 임시교사 교육기관을 설치했다가 1961년 1월 폐지한 바 있다. 초·중등 임시교원양성소 과정이 다시 법으로 시행된 것은 1966년 3월부터인데, 중등교사 지원자격은 대졸 학력 이상이었다. 이 의원은 임시교사 자격을 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1967년에 이동중학교 교사생활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이 의원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이 의원 측은 “국민산업대(現 국민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고 설명했다. 1965년 중앙대에서 제적당한 이듬해인 1966년 국민산업대에 입학해 1970년 2월에 졸업했다는 것. 중앙농민학교에서 출발한 국민산업대는 1971년 국민대로 통합된 학교다. 국민대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가 국민산업대를 졸업했다는 것은 처음 나온 이야기다. 1991년경 출간된 옥중 서간문집 ‘긴 하늘 푸른 터널’이나 그의 홈페이지 어디에도 중앙대에서 제적당한 이야기만 나오지 국민산업대 이야기는 없다.

    또다른 의문이 생겼다. 병무청이 공개한 국회의원들의 병역사항을 보면 이 의원은 1966년 4월23일부터 1969년 4월5일까지 군 복무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국민산업대를 다닌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포천 이동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 의원 측은 “군 복무를 하고 있는데, 군대에서 학력이 높은 사병들을 골라 시험을 쳐서 교사로 차출해 인근 학교에 투입했다. 그래서 2년 정도 포천 이동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식 교사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의 교사 이력은 그가 보내온 당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의원 측은 또 “중앙대에서 제적당한 후 그를 아끼던 교수들이 도와주어 국민산업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바로 징집영장이 나와 휴학처리를 못 했다. 마침 교사로 차출돼 영내 생활을 하지 않고 학교 소속으로 이동중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방과후 등을 이용해 대학 수업도 조금은 들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 대학 교수들이 도와주어 수업을 다 듣지 않고도 리포트 등으로 대체해 학점을 따고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1968년 1·21 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등이 잇따라 일어나 남북관계가 매우 긴장된 시기였다. 그런 마당에 현역 군인이 학교 수업을 받기 위해 영내를 벗어나, 그것도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예비역 장성은 “과거에 장성들 중에는 똑똑한 사병을 자기 관사에서 숙식 하게 하면서 자식의 과외 교사로 삼는 경우가 있었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사병이 야간대학에 다니기도 했다. 그게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했다.

    육군본부 측에 1960년대 후반에 영내 생활을 하는 현역 사병이 대학에 등록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지 물었지만 “40년이 지난 상황에서 이에 관한 법적 근거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왔다. 육군본부 법무관리관실 관계자는 “사단이나 연대에서 영내생활을 하는 현역사병은 현실적으로 대학 수업 수강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교의 경우도 위탁교육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니려면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사병도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 대학에 다닐 수야 있겠지만 어느 지휘관이 허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4년 동안 국민산업대를 다녀 졸업했다. 복무기간인 최소 6학기 동안은 등록금만 내고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학점을 취득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이 의원 측은 “수업을 정상적으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교수님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해명했다.

    당시에도 육사는 4년제 대학

    이명박 후보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력에도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 부의장의 홈페이지를 보면 1955년에 포항 동지상고 졸업, 1957년 서울대 상대 입학, 1961년에 서울대 상대 졸업과 함께 코오롱에 입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의문은 그가 서울대에 들어가기 전에 육사(14기)를 다녔다는 데서 비롯된다. 육사 2학년 재학 중 골절상을 입어 퇴교한 후 서울대에 다시 들어갔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육사 14기는 현 육사 교정인 화랑대에 입소한 첫 생도들이다. 이때가 1954년 6월이다. 민병돈 전 육사교장은 육사 14기와 15기 모두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어 당시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육사는 11기부터 4년제가 되어 학사자격을 준 데다 학비도 거의 없어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도 육사는 입학전형을 연말에 치렀다고 했다.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그의 홈페이지. 1955년 동지상고 졸업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57년 졸업이다.

    정리하면 이 부의장은 1953년 말, 즉 고교 2학년 때 육사 시험을 치러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육사는 4년제여서 고졸(예정자)이나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자만 응시할 수 있었다. 지금의 고교 2년생이 수능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부의장은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그리고 고3이던 1954년 6월 육사에 입교해 고교 학적부에선 제적 처리됐다.

    이 부의장 측은 “야간 2학년 때 주간 고3 선배들과 시험을 봤다. 당시 이 부의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찍 지원했다가 합격했다. 당시만 해도 전쟁 직후라 고1이나 고2 재학 중에 육사에 입학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육사 지원 자격은 분명 ‘고졸 학력자 이상’이었다. 육사에서 학력미달인 그의 응시원서를 왜 받아주었는지 의문스럽다. 몇몇 사람이 고1, 고2 때 육사에 입학했다고 해서 그것이 합법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63년 제정된 법으로 62년 군 문제 해결?

    이 부의장은 육사 2학년 때 운동을 하다 팔을 다쳐 골절상으로 퇴교했다. 원래는 육사를 퇴교하면 곧바로 군대에 가야 하지만 병중이라 입대가 연기됐고, 1956년 12월에 동지상고 3학년에 복학한 것으로 되어 있다. 12월이면 대학입시철이다. 그는 복학하자마자 곧바로 서울대에 응시해 합격한다. 서울대 응시 자격에 맞추기 위해 동지상고에 복학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그가 동지상고를 실제로 졸업한 연도는 1957년이다. 그런데 왜 홈페이지에는 1955년 졸업으로 표기했는지도 의문이다.

    의문은 또 있다. 병무청에서 발표한 그의 병역기록을 보면 1962년 12월26일 입영과 동시에 계급과 군번을 부여받고 당일 전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전역 사유는 ‘명예전역’. 국회 병역기록에는 ‘부대종군자처리’라고 되어 있다.

    이 부의장 측은 “1961년 5·16이 나고 나서 육사 중퇴생과 6·25전쟁 종군자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입대와 함께 이병 제대 시키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 부의장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라고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관련법을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조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비슷한 법조항을 찾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법조항엔 육사 중퇴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962년 10월1일, 전면 개정된 병역법 부칙 제14조에 ‘본법 시행 당시 사관생도 또는 간부후보생으로서 교육 중 퇴교된 자의 병역에 관한 사항은 국방부령으로 정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국방부령 75호에서 ‘장교후보생으로서 2개월 이상 교육을 받다 퇴교한 자 중에서 1927년 이후에 출생한 자는 제1보충역에 편입하고 계급은 이등병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국방부령 75호가 제정 시행된 날은 1963년 3월20일이다. 따라서 이 부의장의 이병 전역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이때 이런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전까지 이런 규정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군 관계자들에게 당시 관련 규정이 있었는지 알아봤지만 이병 전역 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정식으로 육군본부에 공문을 보내 문의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부의장이 이병 전역을 한 1962년 12월26일이면 그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코오롱에 입사한 지 1년이 넘었을 때다.

    ‘학위 남발 공장’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염동연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그의 학력은 ‘한국외대 중퇴’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인물정보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러나 2005년 국회수첩에 기재된 그의 학력은 ‘퍼시픽웨스턴대 석사’다. 2004년 총선 때 선관위에 신고한 학력도 ‘미국 퍼시픽웨스턴대 정치학사·석사’로 되어 있다.

    ‘퍼시픽웨스턴대’라는 말에 눈치 빠른 독자는 금세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를 떠올릴 것이다. 김옥랑 대표가 졸업했다는 비인가 대학이 바로 퍼시픽웨스턴대다. 이 대학은 학위를 마구잡이로 남발해 미국 연방정부 회계감사국에서도 ‘학위 남발 공장(Diploma Mill)’으로 규정했을 정도다.

    김옥랑 대표를 조사한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퍼시픽웨스턴대는 하와이, 베트남, 타이완 등에 분교를 내고 학위 장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하와이 퍼시픽웨스턴대는 주정부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해 폐교한 상태이고, LA 지역에 있던 대학도 샌디에이고로 주소지를 옮기고 ‘캘리포니아 미라마대’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염 의원 측 관계자는 “퍼시픽웨스턴대가 통신학교 과정이어서 지난 총선 때 정규학력으로 인정되는지 조회했다. 법적인 검토를 하고 사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인가받은 교육기관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염동연 의원과 퍼시픽웨스턴대 학력이 소개된 네이버 인물정보.

    그는 또 “염 의원은 통신과정으로 퍼시픽웨스턴대에서 1985년부터 1988년까지 학사 과정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석사과정을 밟았다. 당시 정상적인 학교로 알고 들어갔고, 거기서 요구하는 가이드라인 과정을 다 밟고 졸업한 것으로 안다. 1997년에 하와이주가 그 대학을 고소하고, 2004년 9월에 연방정부가 학위 남발 공장으로 지목했다는 보도를 접하고서야 문제가 있는 학교임을 알게 됐다. 어떤 의미에선 염 의원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염 의원이 선량한 피해자라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김옥랑 대표 사건을 조사한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 대학이 설립된 것은 1988년이다. 염 의원은 대학이 설립되기도 전(1985년)부터 학사과정을 밟다가 대학이 설립되던 해에 졸업장을 받은 셈이다.

    또한 퍼시픽웨스턴대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온라인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과정에 한해서만 학위를 줄 수 있게 돼 있다. 염 의원이 받았다는 정치학 학위는 줄 수 없는 학교다.

    공직선거법 64조는 후보자 명부의 학력란에는 정규학력 또는 정규학력에 준하는 학력만 기재토록 되어 있고, 외국 교육과정도 이에 준하는 이수 경력만을 기재토록 되어 있다. 정규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국의 비인가 대학을 학력으로 기재할 경우 ‘허위학력’에 해당한다. 이 경우 이상락 전 의원처럼 ‘허위사실 공표’로 당선무효가 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상의 공소시효는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다. 17대 총선의 공소시효는 2004년 10월로 만료됐다.

    떨치기 힘든 유혹

    학력 위조는 아니어도 학력을 조금이라도 부풀리고 싶은 마음을 정치인들은 떨치기 힘든 모양이다. 비록 선관위에 신고할 때는 제대로 했더라도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는 정규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대학원 최고위과정 등 비인가 교육과정을 마치 정규 대학원을 수료한 것처럼 올려놓곤 한다. 물론 위법은 아니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전북대를 중퇴했다. 선관위에도 그렇게 신고되어 있고, 대부분의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홈페이지 학력란에는 ‘고려대 언론대학원’ ‘연세대 법무대학원’이란 학력이 더 붙어 있다. 선병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충남대 졸업이지만 2005년 국회수첩과 홈페이지엔 ‘고대 정책과학대학원 수료’라고 되어 있었다(최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윤원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도 진주교대 졸업이지만 홈페이지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수료’라고 되어 있다. 이들 대학원은 모두 석·박사 과정이 있는 곳이어서 언뜻 봐선 정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세 의원이 수료한 과정은 모두 단기 코스다.

    박순자 한나라당 의원은 정규 학교를 너무 많이 다녀 구설에 올랐다. 그의 홈페이지와 국회수첩 등에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및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가 2002년에 펴낸 ‘지방자치와 여성정책’에 나온 이력을 보면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취득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3년간 수학’이라고 되어 있다. 경기도의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이력(그는 제4대 경기도의원이다)엔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하와이대 수료’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의 보좌관은 “명지대 정외과, 고려대 경제학과, 경희대 대학원 석사를 모두 졸업했다”고 해명했다.

    취재 결과 모두 사실이었다. 박 의원은 2000년 명지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 경영학과 편입과 동시에 경희대 대학원에도 입학해 2002년에 모두 졸업했다. 또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옥스퍼드대의 한 캠퍼스에서 청강생으로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얘기였다.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 폭로는 주로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 기재된 학력이 빌미가 된다. 국회의원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여럿 있다. 이원복 한나라당 의원은 여러 포털사이트에 ‘한양대 박사’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한양대에 확인한 결과 그는 2003년 3월31일자로 한양대 대학원 도시공학 박사과정 3기 휴학 만료 제적된 상태였다.

    박세환 한나라당 의원도 여러 인물정보에 ‘강원대 법학 석사’라고 나와 있지만 선관위 학력란과 그의 홈페이지엔 모두 ‘고려대 법대 졸업’으로 기재되어 있다. 강원대에 확인한 결과 그는 강원대 법학대학원을 다니다 등록금을 안 내 제적된 상태였다. 그의 지역구는 강원도(철원·화천·양구·인제)이다.

    인터넷 인물정보에 사실과 다른 학력이 기재된 것이 본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덕적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경우 모 중앙일간지의 인물정보를 그대로 제공받는다. 해당 일간지 인물정보 담당자는 “1년에 한 차례씩 해당 인물에게 인적사항의 변동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이들 의원은 잘못된 정보를 알면서 의도적으로 묵인했거나 신문사의 확인 요구를 방기했다는 얘기다. 물론 언론사의 인적사항 확인 요구에 꼭 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진수희 “억울해요”

    한편 억울하게 학력 위조 의혹을 받은 의원들도 있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이 그런 경우.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 출신인 진수희 의원은 한 네티즌에 의해 ‘일리노이대 도서관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안 나온다’며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더욱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똑같은 일리노이대가 되는 무인가대학도 있어 의혹이 증폭됐다. 하지만 진 의원 측에서 보내온 자료엔 그가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돼 있었다.

    신동아 10월호 ‘국회의원 학력 검증해 보니…’ 기사와 관련, 이원복 의원실은 “이원복 의원실에서 작성/배포한 모든 공식적인 자료에는 정확한 학력을 기재해왔으며, 소수의 포털사이트에 ‘한양대 박사’로 잘못 기재된 것은 이원복 의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이를 근거로 이원복 의원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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