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2007 강남 VS 강북 럭셔리 서베이

  • 김민경 동아일보 ‘The Weekend’ 팀장 ‘holden@donga.com’

    입력2007-12-06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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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강남 VS 강북 럭셔리 서베이
    최근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크리스찬디올과 프라다, 펜디 등 다섯 개 럭셔리 브랜드를 대상으로 올해 강북과 강남에서 가장 잘 팔린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무엇인지 조사해봤다. 브랜드 숍마스터들로부터 강북 고객은 보수적이고 강남 고객은 트렌디하다는 말을 전부터 많이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강남과 강북 럭셔리 소비자의 취향은 큰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면 강북 크리스찬디올에선 고(故) 다이애나 비 덕분에 유명해진 얌전한 레이디디올백이 여전히 1위의 베스트셀러인데, 강남 크리스찬디올에선 2006~07년 ‘머스트해브’인 페이턴트 가우초백이 1위였다. 프라다도 강북에선 유행과 무관한 지퍼스백이 1위인데, 강남에선 올가을 선보인 페이턴트 그러데이션 빅백이 1위를 차지했다. 강북에선 브랜드와 아이템을 막론하고 ‘블랙’ 컬러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블랙’이 올해의 트렌드여서가 아니라 튀지 않는 컬러라 선호된다는 게 브랜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이런 경우엔 ‘블랙’보다는 ‘깜장’이란 말이 어울리겠죠).

    루이비통의 경우 강남북을 막론하고 전통의 ‘스피디백’이 1위를 차지했고, 5위까지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지난해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아 ‘올해의 머스트해브’가 무색했다. 마크 제이콥스라는, 미국이 미는 천재 디자이너가 영입돼 이 브랜드를 회춘시켰음에도 한국의 소비자는 여전히 알파벳 L자와 V자가 선명한 그 클래식한 토트백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나 보다.

    에르메스는 대통령후보 부인이 들었다거나 재벌 사모님의 주문 등으로 유명해진 고가의 ‘버킨백’이 아니라 한 큐레이터의 단골 선물이던 스카프, 타월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흥미로웠다. 에르메스 수건을 누가 사나 싶은데, 이게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다는 거다. 백이든 수건이든 어쨌든 ‘에르메스’니까 말이다.

    조사 결과는 한국의 소비자가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스타마케팅에선 매우 효과적인 집단임을 보여준다. 강남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아이템들은 예외 없이 스타마케팅의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강남 소비자가 ‘튀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연예인들이 가졌냐 아니냐가 허용의 기준선이 된다.



    “이거 내 나이엔 좀 튀는 디자인 아닌가요?”(손님)

    “손님, 이거 탤런트 김희애가 입었어요.”(숍마스터)

    “아, 그래요? 그럼 괜찮겠네.”(손님)

    “그거 애들 디자인 아냐?”(손님 남편)

    “김희애가 입었다잖아요. 요즘 유행이라잖아요.”(손님)

    대략 이런 식이다. 그 결과 중·노년층이 턱없이 젊은 디자인을 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이상한 건 루이비통 스피디백이나 레이디디올백이 늘 베스트셀링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다. 이 가방을 3년마다 한 번씩 재활용품함에 넣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젊은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이 백을 산다는 얘긴데, 어째서 20대의 취향이 그 엄마와 똑같은 걸까. 아니, 20대에게 개성이나 기성세대의 취향에 대한 반항과 증오 같은 것이 있는지 가끔 의심스럽다.

    부모 잘 만난 20대는 진품 루이비통을 사고, ‘88만원 세대’인 20대는 짝퉁 루이비통을 사는 게 ‘다양성’의 전부가 아닐까. 반항적인 젊은층 룩인 펑크를 무지하게 비싼 소재로 바꾼 ‘럭셔리 터프’가 올 가을/겨울의 트렌드가 되어 명품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무한 경쟁에 허덕이는 20대에게 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단지, 20대는 20대의 문화가 있고, 40대는 40대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뿐이다.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에서도 엽기적이고, 창조적인 스트리트 룩을 만나기 어렵다. 재미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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