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12-06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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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김광화씨 집에 ‘자유를 꿈꾸는’ 청소년이 찾아왔다. 학교 밖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승수. 학교 밖으로 나간 학생은 문제아이고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도시인들. 그러나 오히려 학교 바깥에서 더 인간답게, 더 올곧게 크는 아이가 많다. 학교 안 아이들에게 ‘적대적 학벌’이 주어진다면 이들에겐 ‘동지적 학연’이 쌓여간다. 가을걷이를 도우러 온 ‘학교 밖 아이’ 승수. ‘외로움’과 ‘번민’에 싸인 방랑자에서 어느새 의젓한 ‘애어른’이 되어 있다.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우정대’ 아이들끼리 진행하는 캠프. 나이 성별 구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서 있는 아이가 승수.

    공교육이 점점 힘을 잃어간다.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도 늘어만 간다. 그럼에도 학교 밖에서 길을 찾는 아이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곳은 거의 없다. 본인 선택으로 그만둔 것이기에 스스로 길을 찾는 수밖에. 그 과정에서 방황하거나 숱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학교 밖에서 길을 찾는 한 청소년을 만나볼까 한다. 서울 근교 일산에 사는 열여덟 살 이승수(李丞洙) 군이다. 승수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내가 승수를 알게 된 건 우리 큰아이 인연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이맘때, ‘학교너머’라는 단체에서 주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토론의 골자는 개별 단위 홈스쿨링을 넘어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예상외로 참가자가 많아 100명이 넘었다. 승수는 홈스쿨링을 막 시작한 때였고, 우리 식구는 토론 발제자로 나섰다. 참가한 부모와 아이들은 모두 할 말이 많았다. 홈스쿨링은 개별 가정의 특수한 경험이라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도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은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생각 많은 어른과 달리 아이끼리는 금방 친해졌다.

    그런 인연으로 승수는 올 초 우리 집을 혼자서 찾아왔다. 일주일쯤 머물며 함께 생활했다. 그러고는 얼마 전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또 왔다. 승수는 우리 식구와 일도 같이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글쓰기도 함께 하면서 식구처럼 지내다 갔다.

    아이랑 수다 떨기



    학교에 다니면서 입시에 짓눌린 아이는 대부분 입을 닫고 산다. 어른과 소통하기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 돌아오는 나날들. 바쁘고 여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기도 한다. 어쩌다 말을 시켜보아도 몇 마디 않고 입을 닫는다. 차츰 분위기가 무거워지니 그 다음부터는 무관심에 익숙해진다. 그러던 아이도 학교를 벗어나 자기 주도적인 배움을 하면서는 점차 수다스럽게 바뀐다.

    고민이 많기에 할 말도 많은 거다. 나는 이런 아이와 종종 이야기를 나눈다.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무얼 하면서 지내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이렇게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걸 알게 된다. 이야기가 깊이 들어갈수록 아이는 솔직해진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다로 넘어간다. 수다는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나는 아이를 좀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아이는 대화를 통해 자기 정리를 하게 된다.

    승수가 올 초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훌쩍 큰 키에, 여드름투성이 얼굴. 나하고는 사실상 첫 만남이라 궁금한 게 많았다. 승수는 어눌하지만 할 말이 많았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내가 당시 쓴 일기 가운데 일부만 옮겨본다.

    “승수가 우리 집에 온 목적이 뭐니?”

    “두루 체험을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체험?”

    “지난번에는 인제 자원이네 갔었는데. 거기서는 복분자 심는 일이랑 집짓기 일을 조금 했었거든요. 저는 귀농에도 관심이 있어요. 여기서는 겨울이라 농사는 어떨지 모르겠고 도끼질이라든지 톱질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네가 귀농이라니, 왜?”

    “도시는 답답하거든요. 시골은 좀 자유로울 것 같아요.”

    “시골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

    “시골서 며칠 지내보니 공기부터 다르더라고요.”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댄스 시범을 보이는 승수, 잘 추진 못하지만 열심이다.

    승수 이야기에 무작정 맞장구칠 수는 없어 몇 가지 더 물어보았다.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까. 학교를 그만둔 계기부터 궁금하다. 그 계기는 아이마다 조금씩 다른 거 같다.

    “사실 전 중2 때부터 자유에 대한 신념이랄까(웃음),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학교생활에서 너무 억압을 받으니까…. 학교는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잖아요. 고등학교는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서만 있는 거라고 봐요. 그러다 보니 제가 원하지 않는 것도 배워야 하거든요. 선생님들의 교육방식도 마음에 안 들고. 애들 분위기도 좋지 않아요. 학교는 내 주장이나 처지 같은 걸 존중해 주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아이들 사이에 왕따나 폭력, 이런 것도 흔해요. 그 틈에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홈스쿨링의 어려움

    학교 다닐 때 승수가 받은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승수 아버지는 조그맣게 자영업을 하고, 어머니는 아이들 창의력 관련 교육을 해오다가 얼마 전부터 전업주부로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아이는 많다. 그렇지만 막상 그만두는 아이는 적다. 나름대로 계기나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대안학교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뜻대로 잘 안 된 거예요.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다 재수를 해서라도 대안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했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엄마가 ‘학교너머’라는 데서 하는 캠프가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그랬어요. 거기에 갔더니 아예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도 많은 거예요. 저는 거기서 홈스쿨링이란 걸 처음 알았어요. 학교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배울 수 있구나.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밝고 좋더라고요. 캠프 끝나고 저도 엄마에게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했고, 엄마 허락을 받아냈어요.”

    그렇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이맘때, 승수가 쓴 일기를 보자.

    〈 지금 내가 홈스쿨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

    가장 먼저 외롭다.

    참을성이 없다….

    시간 활용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놀고 싶어진다. 그리고 많이 논다….

    놀다 보면 책상에 앉아있기가 힘들다.

    계획을 짜주는 학교에 안 다니는 만큼 스스로 계획을 짜서 그 계획에 맞춰 생활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찾기 힘들다. 등등….

    나는 나의 꿈. 나의 장래를 찾고 싶다!! (2006.12.21)


    어찌 보면 절규에 가깝다. 거울 속 나에 대한 치열한 번민이랄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픔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학교를 벗어나, 집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초기에는 사람 사이 갈등이 부모 자식 사이로 집약되는 경향이 있다. 승수 역시 부모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한동안 어머니와 자주 싸웠다. 승수 딴에는 한다고 하지만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하는 공부는 잘 되지 않았다. 학교를 벗어났지만 공부에 대한 중압감마저 벗어나진 못했다. 사춘기 방황도 겹치곤 했다. 이럴 때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바람을 쐬고 오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황은주·48) 처지에서는 두 자녀 가운데 둘째인 승수하고의 ‘관계 풀기’가 더 어려웠단다. 승수 누나는 학교 모범생. 과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도 너끈히 대학을 들어갔다. 어머니는 승수에게도 무리한 학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공부는 자신이 필요할 때,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랬기에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어려운 점이라면 승수와의 소통.

    “성장 과정에서 딸과는 속마음을 잘 나누었는데, 승수하고는 사춘기 들어서면서부터 이야기가 잘 안 되었어요. 승수는 아들이다 보니 아버지 몫이 있는데 남편이 그 부분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웠어요. 사춘기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울분 같은 거 있잖아요. 남자아이들은 그런 걸 행동으로 표출하는데, 그런 건 제가 어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자기와의 싸움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벼를 베는 데 한껏 욕심을 부리는 승수(왼쪽). 허리가 아픈지 벌떡 섰다.

    가족과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때로는 술을 마셔보기도 했고,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 집을 나간 적도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어디로 가겠는가. 아는 형 집에 머물며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독립을 꿈꾸어보았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승수는 뼈저리게 체험한다. 그 무렵 승수가 고민한 문제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 누구와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도 자신일 수는 없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차츰 자기다운 생각을 정리해간다. 자신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려 하고, 자신을 좀더 사랑하게 된다.

    “그전에는 제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에 자신에게 자꾸 싸움을 걸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제 안 좋은 점을 힘들게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제 장점을 찾으려고 해요. 한동안 노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노는 것도 지겹더라고요. 지금은 놀더라도 특별한 걸 하면서 놀아요. 기타를 친다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한다거나, 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려고 해요. 공부도 기본적인 거는 해야겠지만 제가 원하는 교육은 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배우는 것이거든요. 앞으로도 많은 걸 보고 싶어요. 그리고 예전보다 참을성도 많이 생겼고, 이제 저는 방황하지 않아요.”

    승수는 우리 집에 머물며 뭐든 다 해보고 싶어 했다. 우리 집에서 잠을 자려면 군불을 지펴야 한다. 군불을 지피자면 나무를 자르는 톱질과 자른 나무를 쪼개는 도끼질을 해야 한다. 남이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잠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승수는 호기심을 갖고 톱질과 도끼질을 열심히 했다. 눈치껏 설거지도 잘 했다. 우리 식구 누구하고도 잘 어울렸다. 승수에게는 선배이자 누나인 우리 큰애와 어울리면서도 작은애가 고스톱을 같이 치자면 이것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도 가르칠 때 행복하다

    나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로부터 뭐든 한 가지라도 배우기를 좋아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상관이 없다. 손님 처지에서는 우리 식구가 필요해서 찾아오지만 우리 식구는 어떤 손님이든 그에게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승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우리 식구가 승수에게 배울 수 있는 게 브레이크댄스였다. 물론 승수가 춤을 잘 추진 않는다. 한 5개월 해보았단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우리 식구 역시 춤을 깊이 배울 생각은 없다. 그냥 춤 동작 하나라도 익히면 좋지 않겠나. 승수를 따라 좁은 거실에서 몇 가지 동작을 배워보았다. 한참을 했더니 무릎이 다 시큰거린다. 주제 파악이 필요한 시점. 승수에게 춤을 좀 보여달라고 했다.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은 서툴렀지만 그 속에는 억압된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게 보였다. 춤을 잘 춰야 맛인가.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 자체가 좋을 뿐이다.

    “승수야, 우리 서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것들은 아낌없이 나누자.”

    “하하하, 좋아요.”

    승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꼭 전문가만이 가르치라는 법은 없다. 또한 아이들이라고 배우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 누구든 자신이 잘하는 걸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이런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 공부 이상으로 자기 존재감과 희열을 주는 또 다른 배움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식구가 승수한테 배우는 게 있듯 나 역시 승수한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다. 집짓기에 대한 간단한 기초 이론. 한옥을 지을 때 수직과 수평을 어찌 보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니 승수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 이론을 기초로 이튿날 간단한 목공 실습도 했다. 기회가 되면 집짓기를 더 배우고 싶단다.

    승수가 우리 큰애에게 기대하는 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사회생활 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란다. 이건 한두 마디 말로서 되는 건 아닐 테다. 그리고 틈틈이 우리 큰애한테 태극권도 배웠다. 태극권을 하려고 간단히 몸 풀기를 하는데 승수는 쪼그리고 앉는 걸 잘 못한다. 저런, 관절이 굳었나 보다.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승수말고도 몇몇 청소년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는데 대부분 비슷하게 몸이 굳었다. 어떤 친구는 아예 쪼그리고 앉아 김매는 자세 자체가 되지를 않았다.

    혹사하며 일하기의 대물림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학교너머’에서 주최한 심포지엄. ‘한국에서 홈스쿨링하기, 가족에서 네트워크까지’.

    이번에 벼를 같이 베면서 승수를 좀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승수는 일을 하면 금방 힘들어한다. 벼를 베다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힘에 부쳐한다. 안 해보던 일이어서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도 안쓰러워 내가 몇 가지 도움말을 주었다.

    일을 힘들게 하지 마라. 몸에 맞게 해라. 몸이 갖는 리듬을 느껴라. 팔에만 힘을 주지 말고 허리와 다리까지 온몸으로 하는 게 좋다 등등. 승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이 몸에 배지 않은 탓에 쉽지는 않나 보다. 쉴 참에 승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자꾸 힘들게 하는지.

    “저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끝낼 때 오는 즐거움이 좋아요.”

    그러고 나서 승수를 다시 보니 나름대로 미리 목표를 정한다. 자기가 시작한 곳을 미리 낫으로 베어 경계를 긋는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를 벨지 다시 목표를 정한다. 그러고는 열심히 벤다. 자기가 정한 구역을 끝낼 때까지는 멈출 줄 모른다.

    볏단을 옮기는 일도 그랬다. 수레에 볏단을 서너 묶음만 싣고 옮기면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런데 승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레 가득 넘칠 듯 싣는다. 내가 싣는 양의 거의 배 정도를. 그러고는 힘들게 끙끙대며 수레를 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 이유는 베어놓은 볏단을 얼른 옮기고 싶다는 거다. 일하는 과정을 즐기기보다는 승수 말대로 목표를 지향하니까 그렇다.

    승수의 이런 습성은 우리 식구와 맞지 않아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벼를 베다가 해가 지면서 벨 곳이 논 가장자리에 조금 남았다. 내가 오늘은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자고 했다. 그런데 승수가 안 된단다. 남은 것마저 베고 싶단다. 일을 끝내야 개운하다고. 이럴 때는 누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아이는 조금 남기는 걸 참지 못한다. 나는 그렇지가 않다.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그 일을 내일 하면 오늘 일이 아니라 내일 일이 되니까. 하지만 승수가 하도 서운하게 생각하기에 결국 승수 의견을 따라 마저 벴다. 승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일을 한다. 많이 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말리는 편인데도 그런다.

    이런 승수를 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몸을 혹사하면까지 일을 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염된 게 아닐까 싶다. 곰곰이 따져보면 나 역시 승수처럼 하는 면이 없지 않다. 벼 베기만 해도 그렇다. 콤바인이라는 기계로 해버리면 아주 쉽고 간단하다. 그렇게 하면 두어 시간에 끝날 일을 내 식으로 하니 한 달이나 걸린다. 이렇게 하면 몸은 힘들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따금 일이 지겹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내게 이렇게 하라고 한 게 아니다. 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거지만 결국은 자신이 세운 목표가 자유가 아닌 걸림이 되는 셈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도 제대로 못한다면 이거야말로 ‘팔자’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한꺼번에 쉽게 도약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학교 밖에도 ‘사회’는 있다

    그럼에도 승수는 일년 전과 견주어 많이 달라졌다. 일머리가 부쩍 생겼다고나 할까.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는다. 매끈하게 일하는 건 아니지만 한두 마디만 하면 알아서 한다. 어떤 일은 굳이 나나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게 일이라는 걸 안다. 쉽게 말해 이제는 자기 밥값은 스스로 할 정도가 된 거 같다. 농사일뿐만이 아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 개고 방 치우는 모양부터 제법 어른스럽다. 예전에는 눈치 보듯 일했다면 이번에는 모두 다 자기 일로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면 사회성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홈스쿨링 초기에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 승수. 그러나 지금은 전혀 외롭지 않단다. 그만큼 자신이 사람과 사회에 열려 있다는 말인데, 승수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나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승수가 학교 밖에서 사람을 사귀는 관계를 보자면 크게 세 갈래다. 하나는 ‘학교너머’라는 단체에서 하는 캠프. 둘째는 또래 아이들의 온오프 모임인 사이클럽 ‘우리생각원정대(이하 우정대 club. cyworld.com/F-ship)’. 셋째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개별적인 만남이 있다.

    먼저 ‘학교너머’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겠다. ‘학교너머’(담임교사 한석주)는 간디청소년 학교가 만든 배움의 장으로,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에게 다양한 배움을 주고자 만든 단체다. 승수는 이곳에서 꾸리는 캠프에 자주 참여해 운영진도 맡고 있다. 무인도 체험에서부터 봉사 캠프와 인문학 토론까지 두루 체험했다. 이 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에는 제한이 적다. 그러다 보니 나이 구분 없이 두루 아이들을 사귀게 된다. 또래부터 열 살밖에 안 된 동생들까지. 입시에 매달린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이리라.

    자연성장 촉진제 ‘우정대’

    학교너머 캠프를 통해 승수가 배우는 건 많다고 한다. 사회성과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훈련을 쌓으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기회로 삼는다. 그럼에도 승수는 학교너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아니다. 아이 나름대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운영진 회의가 너무 잦아요. 아이들이 회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하다 보면 샛길로 빠지기 일쑤이고, 선생님은 회의를 너무 자주 소집하고요. 그러다 보면 정작 아이들은 캠프 내용을 충실히 배울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캠프에 참가하는 애들이 너무 다양해요. 좋은 아이도 많지만 별별 아이가 다 있거든요. 그저 착하게만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놀리는 아이도 적지 않아요. 분위기가 썩 좋다고만 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승수가 가장 애정을 기울이는 건 아이들끼리 만든 ‘우정대’ 모임이다. 승수는 이 모임에서 클럽장을 맡고 있다. 아직 회원이 50여 명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일정 역할을 한다. 특히 학교를 막 벗어난 아이들에게는 소통의 장이 된다. 우정대는 학교너머 캠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이다. 그러니까 학교너머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연령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자기 또래 아이들만의 모임이 필요해서 만들었다. 이 곳은 열여섯 살 이상만 참여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다.

    우정대가 생긴 지 일년쯤 되어가는데 그 사이 아이들이 주도해서 캠프를 세 번이나 치렀다. 봉화에서 연 토론 캠프, 포항 바닷가에서 한 놀자 캠프, 남이섬에서 열린 어린이 책 축제 캠프까지. 물론 이 모든 캠프를 아이들 힘만으로 한 건 아니다. 잠자리나 강의 같은 큰 틀은 어른들이 도와줬다. 대신에 아이들은 캠프를 치르는 데 필요한 기획과 현장 답사, 시장 보기와 홍보를 나누어 했다. 미숙한 부분이 드러나면 서로 비판도 하고 반성도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쑥쑥 성장하는 계기를 만든다.

    당시 승수가 쓴 캠프 후기를 보면 글을 아주 길게 썼다. 억지로 쓴 글이라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는 삶의 글이라 하겠다. 캠프를 통해 서로 좀더 깊이 알고, 정을 나누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승수는 캠프를 스스로 운영함으로써 책임감을 배운다고 했다.

    승수와 우정대를 함께 만들고 캠프도 같이 꾸려온 자원(16)에게 물어보았다. 승수가 일년 사이 어찌 달라졌는지를.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는 매우 권위적이었어요. 캠프도 독단적으로 하는 게 많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달라진 거예요. 부드러워지고, 다른 아이들을 잘 배려하고 그러거든요.”

    나는 승수와 자원이말고도 우정대 아이를 여럿 안다. 이 아이들을 가끔 만나 보면 어떤 때는 혈연인가 싶을 정도다. 승수도 학교 밖에서 만난 누나나 동생들에게 친형제 이상으로 애정을 쏟는다. 아무래도 자신을 잘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을 더 가깝게 느끼게 마련일 터이다.

    학교 밖의 학연(學緣)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면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학벌이나 학연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인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학교 밖에서는 어떤 학연이 이루어질까. 학벌이야 어렵겠지만 학연은 배움만큼이나 다채롭다고 믿는다. 나는 이를 ‘학교 밖의 학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이야기하는 학연은 굳이 검정고시를 통한 사회진출을 뜻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학교삼아 배워가는 과정에서 쌓여가는 여러 인연이라고나 할까.

    학교 밖의 길을 가는 아이가 많아지면서 이 아이들은 나름대로 이러저런 학연을 쌓아간다. 일단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다닐 생각을 하면 먼저 찾는 게 그 선배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그만둔 이후에는 어찌 자기 관리를 해가는지를 알아보려는 게다. 이럴 때 선배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경험과 연륜이 먼저다. 먼저 길을 나선 아이들은 뒤에 오는 아이들의 손을 흔쾌히 잡아준다. 우정대에 신규 회원이 가입인사를 하면 여러 친구가 반갑게 댓글을 달며 환영한다. 또 누군가 고민을 올리면 다른 아이들이 성심껏 답변을 하고 용기를 준다. 먼저 겪어 마음고생을 잘 아는데다가 학교 밖에 있다는 또 다른 동질감이 서로를 가깝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아이들끼리 나누는 고민은 아주 다양하다. 하루 일과를 어찌어찌 하는지, 부모와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바람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제법 깊은 철학적인 고민에서 이성 교제에 대한 가슴앓이까지 나눈다. 때로는 소소한 필기도구라든가 다 본 책을 아낌없이 물려주기도 한다. 승수는 자신이 배웠던 피아노 교본을 거의 한 상자가량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아이들만이 갖는 인연을 쌓아간다.

    인연이라고 말을 할 때, 그 근본은 개방성이 아닐까 싶다. 인연을 맺고 이어가자면 서로가 자신을 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승수는 제 발로 사람을 두루 찾아다닌다. 최근에는 전국을 돌다시피 다닌다. 우리집을 떠난 다음에도 우정대 소속 아이들인 대전 지민이네, 대구 현진이네, 포항 장오네를 돌아다녔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자기 부모에게서는 받을 수 없는 또 다른 자양분을 친구와 그 부모들을 통해 섭취하고자 한다. 이럴 때 찾아오는 아이들을 거절하는 어른이 있을까. 기꺼이 맞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심지어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승수는 그동안 여러 번 캠프에 참가하고 또 스스로 기획도 하고 운영을 해보았다. 그 경험이 경력이 되고 있다. 이제는 가끔 보조교사로도 참여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라면 보조교사로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거다.

    ‘걱정도 팔자’의 사회화

    아이와 가까이서 부대끼며 지내온 어머니 생각은 어떨까. 일년 사이 아이는 물론 어머니 자신도 많이 달라졌단다.

    “그 사이 승수 마음이 치유된 거 같아요. 예전에 승수는 성격이 불같아 울분을 행동으로 표출하곤 했거든요. 그게 얼마나 위태위태하던지.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을 찾아가는 거 같아요. 한마디로 180도로 달라졌다고 할까. 상처받고 아파하던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면서 승수와 이야기도 한결 잘되고요. 아이가 선택한 홈스쿨링인데 굉장히 다행이라 생각해요. 저도 아이한테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어요. 아이 사회성도 부쩍 자라는 걸 보니까 오히려 제 사회성이 좁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오랜만에 승수를 다시 보는 나조차 아이가 부쩍 성장한 걸 느낀다. 말투부터 달라졌다. 안정감이 있고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서 말을 한다. 눈치도 적게 보고 남에게 잘 휘둘리지 않게 자기중심을 잡아간다. 동생들에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하고 챙겨준다. 차츰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승수는 진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한다. 남들이 유망하다는 의사나 판사 같은 직업은 생각이 없단다.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단다. 나는 승수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다가오지도 않은 앞날을 미리 불안해하며 산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걱정이 팔자가 아니라 사회화한 게 아닐까 싶다.

    학교 밖 아이들아, 배움은 의무 아닌 권리…몸으로 깨닫고 즐겨라!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정농회 회원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아이들에게 배움은 성장이자 기쁨이어야 하지 않겠나.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나 역시 내년에는 내 삶이 어찌 달라질지 모른다. 하물며 일년 사이 이렇게 부쩍 달라지는 청소년이라면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불안이 아니라 기대와 설렘이 될 수는 없을까.

    승수와 헤어지면서 미처 못 해준 말을 여기서 다시 해본다.

    “승수야, 배움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며,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거야말로 네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지름길이 되리라고 이 아저씨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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