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씁쓸한 축제’ 된 경주 방폐장 착공식

천재일우 기회 놓친 부안, 이제 반핵단체는 북핵을 보라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7-12-10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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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방폐장은 폭발하려야 폭발할 수 없게 지어진다. 방폐장은 신라 문무왕의 해중 왕릉인 대왕암과 어우러져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19년에 걸친 곡절 끝에 착공된 방폐장, 그 과정에 희생된 전북 부안을 격려할 방안은?
    ‘씁쓸한 축제’ 된 경주 방폐장 착공식

    11월9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왼쪽에서 3, 4번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주 방폐장 기공식.

    씁쓸한 축제. 11월9일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서 열린 중저준위 방폐장(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착공식 분위기는 그러했다. 안면도 사태, 굴업도 사태, 부안 사태 등을 겪으면서 19년을 떠돈 국가 숙원사업을 시작하는 자리인데 즐거워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환한 미소를 지은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는 연설 첫머리에서 “경주시민 여러분 기쁘시지요?… 걱정도 좀 있지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객석의 반응은 썰렁했다.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법은 이해찬 전 총리가 제시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한 중저준위 방폐장부터 짓자는 것이 첫째 해법이고, 주민투표를 통해 후보지를 선정하자는 것이 둘째 해법이었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한 곳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이전시키고 양성자 가속기를 지어주자는 것이 셋째 해법이었다.

    그러자 상황이 180도로 변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그 가운데 주민투표에서 89.5%의 찬성률을 보인 경북 경주가 우승자가 됐다. 경주는 월성원전 본부가 있는 월성군과 합쳐진 지자체다. 월성은 과거에도 방폐장 후보지로 검토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강력한 반핵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총리의 해법이 제시되자 주민 대다수가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핵보다는 ‘당근’의 위력이 강했기 때문일까.

    방폐장은, 쉽게 설명하면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하는 특별한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다. 1993년 문 닫은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쓰레기 더미 위에 흙을 덮는 복토(覆土)를 하고 나무를 심어 ‘하늘 공원’으로 변신했다. 경주 방폐장도 처분장 공사가 완료되면 녹지공원으로 변신한다. 차이점은 ‘무작정 투기’가 없고, 녹지공원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중저준위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60cm 두께의 사일로, 100m 두께의 흙

    경주 방폐장에서는 지표 밑 80~130m쯤에 시멘트로 사일로(silo)를 만들어 방폐물을 보관한다. 사일로가 완공되면 더 이상의 토목공사는 없기에 이곳은 녹지공원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방폐물은 차량으로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된다.

    원전단지에 가면 거대한 원통형 시멘트 건물을 볼 수 있다. 원자로를 담는 ‘격납용기’로 60~120㎝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로 돼 있어 날아가던 비행기가 떨어져도 깨지기 어렵다고 한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2호기는 냉각수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과열돼 녹아내렸다. 이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튀어 나갔으나 99.99% 이상이 격납용기에 갇혔다.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역시 과열돼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소련식 원전에는 격납용기가 없었다. 일반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마감재로 된 건물이 원자로를 덮고 있었다. 이 구조물은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러자 원자로에서 나온 불꽃이 밖으로 나오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 때문에 화재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원전 직원과 소방대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돼 59명(방사선 피폭 후유증을 앓다가 2005년에 사망한 사람까지 더한 수치)이 숨졌다.

    똑같은 사고인데도 스리마일 원전 폭발 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법적으로 허용된 것 이상의 방사선을 쬔 사람도 없었다. 이 두 사고를 통해 격납용기는 원전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포인트로 자리매김했다. 경주 방폐장의 사일로 두께는 격납용기에 버금가는 60㎝이다.

    난지도 매립장에서는 부패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올라온다. 그러나 난지도 매립장은 워낙 광범위해 가스가 올라와도 폭발하지 않는다. 경주 방폐장에 보관될 방사성 폐기물에서는 ‘아예’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이 폐기물에서는 10여m 거리만 두면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 자연 방사선보다 약간 센 방사선만 나올 뿐이다.

    ‘씁쓸한 축제’ 된 경주 방폐장 착공식
    설사 사일로가 파괴돼도 80~130m 두께의 흙과 암반이 덮고 있어 일반인은 방사선을 쬘 일이 없다. 경주 방폐장 착공식에 온 사람들은 대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지난 19년간의 소동이 더욱 허무하게 느꼈다. 그중에는 2003년 전북 부안 주민들이 벌인 반핵시위를 회고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인사는 “김종규 당시 부안 군수가 방폐장 후보지로 제시한 위도는 반핵시위로 인해 1000년 만에 한 번 찾아온 발전의 기회를 잃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위도는 항구가 들어설 조건도, 리조트가 들어설 입지도 갖추지 못했다. SOC(사회간접자본)가 빈약해 공단은 아예 들어서기 힘들다. 아무 위험이 없는 방폐장을 유치하는 것이 위도를 발전시킬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경주 방폐장 바로 옆에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의 해중(海中) 왕릉인 대왕암이 있다. 방폐장이 들어섰다고 해서 대왕암이 훼손되겠나. 방폐장이 건설되면서 도로망이 확충되면 오히려 대왕암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위도는 원불교의 성지다. 원불교의 성지와 방폐장은 호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부안 주민은 그 기회를 놓쳤다.”

    ‘부안사태’에 깊이 관여했던 한 인사는 “경주 방폐장 착공식을 보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경주 방폐장이 착공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주민들에게 뭇매를 맞아가며 지역발전을 위해 방폐장을 유치하려 한 김종규 당시 군수와, 반핵단체의 선동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은 부안 주민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며 “정부가 이에 대해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처만 남은 부안과 전북

    ‘씁쓸한 축제’ 된 경주 방폐장 착공식
    부안사태로 부안과 전북이 잃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자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부안에 지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 시설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두터운 암반층을 500~600m 뚫고 건설해야 한다. 부안 주변 서해안에는 이렇게 두꺼운 암반층이 없어 고준위 방폐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양성자 가속기는 방폐장보다 더 큰 성장동력이다. 방폐장 유치는 3000억원을 일시에 지원받는 효과를 유발하나, 양성자 가속기는 이 시설을 이용하려는 기업 덕분에 계속해서 지역 경제를 이끌어준다. 노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 양성자 가속기를 호남에 짓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노 정부는 양성자 가속기를 유치하려는 지자체는 800억원으로 추산되는 건설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전북 익산시는 시유지를 팔아 800억원을 마련했으나 부안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양성자 가속기와 방폐장을 묶기로 해 익산은 양성자 가속기 유치 기회를 상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산이 주민투표에 도전했으나 경주에 패배했다.

    이에 대해 ‘전라일보’ 11월10일자 사설은 “방폐장 건설은 파란과 곡절이 많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전북 부안과의 악연은 각별했다. (중략) 전북은 상처만 남았고 과실은 경주가 누리게 된 것이다. 지역발전은 정부나 남이 이뤄주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과 지도층의 몫이고 책임이라는 교훈이다”라고 지적했다.

    경주 방폐장이 착공된 지금 반핵단체의 선동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부안 주민을 배려하는 것은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지름길이자 소련식으로 건설된 북핵 시설의 위험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우리 핵에 대해서만 과장된 위험을 전파하는 반핵단체를 정상화하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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