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북핵 폐기비용 ‘청구서’, 한국에 날아든다?

‘임시 불능화’ 넘어 ’영구 처분’ 가려면 수십년, 수조원 필요한데…

  • 황주호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 joohowhang@khu.ac.kr

    입력2007-12-10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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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3일 6자회담의 성공 이래 북한과 미국은 2단계 불능화 조치를 위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불능화 실무팀이 영변을 방문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하는 한편 그에 대한 미 행정부의 상응조치도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과연 불능화란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또 임시조치를 넘어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을 완전히 폐기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까.
    • 이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한반도의 골칫거리로 남으리라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북핵 폐기비용 ‘청구서’, 한국에 날아든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 지역의 핵시설.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폐연료봉 저장시설 등으로 구분된다. 미국의 상업위성 ‘아이코노스(IKONOS)’가 지난 4월 촬영한 사진이다.

    1990년대 초에 불거진 북한 핵 문제는 1994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과 협상으로 마무리된 듯했다. 당시 북한은 장기적으로는 경수로 건설을, 단기적으로는 중유 제공 등의 약속을 받아내며 핵 프로그램진행을 동결하기로 했고 최종적으로는 흑연감속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해체키로 합의했다. 사용후핵연료는 북한 내에서 재처리하지 않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처분키로 했다. 합의에 따르면 원자로와 관련 시설은 10년 내에 해체할 예정이었으나, 불행히도 해체의 기술적 경제적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상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 협상대표는 북한 정권이 10년 내에 무너질 것으로 판단하고 우선 원자로와 재처리시설만 동결하고 사용후핵연료를 봉인하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훗날 회고한 바 있다.

    원자로 동결 이후 미국의 기술자들이 북한에 머물며 사용후핵연료를 통에 담아 봉인 작업을 했으며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받도록 만들었다. 이 작업은 5년 가까이 걸려 2000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마감했으며 약 3000만달러의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작업에 참가한 미국 기술자들의 말을 빌리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건물은 유리창이 깨져 날씨가 추우면 물이 얼었고, 주변에 날아다니던 새들이 들어와 물을 먹고 갈 정도로 형편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수조 바닥은 이끼와 연료봉 찌꺼기로 덮여 있어 막대기로 한번 물을 저으면 물속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원자로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건물에 유리창을 만들지 않고 수조 속의 물은 항상 정수기를 통과시켜 먼지 터럭 하나 들어가지 않게 관리하는 것에 견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상황은 모두들 알고 있는 바와 같다. 2002년 우라늄 농축 의혹을 시작으로 제네바 합의는 깨졌으며, 북한은 원자로를 재가동했고, 사용후핵연료 봉인을 뜯고 재처리한 데다, 2006년에는 끝내 핵실험을 했다. 그러는 동안 2002년부터 수 차의 6자회담이 열린 끝에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불능화에 합의했고 미국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불능화 작업을 끝내기 위해 북한에 들어가 있다.

    ‘불능화’와 ‘검증’과 ‘폐기’

    북한 핵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본 독자라면 핵 문제 해결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미국과 북한의 합의에서는 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궁극적으로 해체(eventually dismantle)키로”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에는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CVID)”를 주장했지만, 최근에는 “불능화(disablement)”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렇듯 여러 가지 용어가 나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는 하나인데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각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차이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 사용되는 ‘불능화’라는 말은 결국 핵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추가로 핵물질을 생산할 수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재처리를 통해 이미 확보한 플루토늄의 양을 신고한 양과 비교하는 것을 ‘검증’이라고 하고, 이미 만들어진 핵탄두가 있다면 플루토늄과 함께 ‘폐기’의 대상이 된다. 현재 추진되는 단계별 불능화는 한 단계씩 확인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상호 신뢰를 점차적으로 굳힌다는 장점이 있으나, 성질 급한 사람들이 보기엔 플루토늄과 핵탄두 폐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먼 길이다.

    특히 플루토늄의 양을 검증하는 것은 신고하는 측과 검증하는 측 상호간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한 끝없는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50~60㎏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그 판단의 불확실도를 10%로만 잡아도 5~6㎏의 오차가 생기는데 이는 한 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특히 1990년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한 수준으로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의 운전이력을 신고한다면 검증 논란은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북핵 폐기비용 ‘청구서’, 한국에 날아든다?

    북핵 불능화 실무팀장을 맡고 있는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11월1일 베이징의 한 호텔 로비에서 불능화 작업 일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이 검증되면 이것을 폐기하는 방법은 미국과 북한 간의 합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남북한은 1990년대 초 핵 문제와 관련해 상호 공동사찰을 합의한 적이 있지만, 앞으로 진행될 핵 물질의 검증과 폐기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변 핵 단지의 주요 시설에 대한 처리방식을 최근 진행되는 불능화와 조만간 거론될 폐기·해체 단계로 나누어 설명해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불능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못 쓰게 한다는 뜻일까. 북한은 우라늄 광산부터 재처리시설까지 여러 가지 핵시설을 가지고 있으나, 이번에 불능화하고자 하는 시설은 영변에 있는 5MW 흑연감속원자로(이하 영변 원자로), 재처리시설, 핵연료 제조시설이 주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건설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50MW 원자로와 200MW 원자로는 핵 물질을 생산할 수 없는 상태이고 북한도 추가 건설을 추진할 여지가 없다고 보이므로 불능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원자로 불능화, 유효기간은 수개월

    우선 원자로를 불능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영변 원자로는 6년 동안 건설한 끝에 1986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1950년대 영국의 콜더홀(Calder Hall) 원자력발전소를 기준으로 자력으로 설계했다고 알려졌으며, 운전 초기에는 운전기술과 핵연료 기술이 부족해 잦은 방사능 누출 사고를 겪었다고 한다. 핵연료를 감싸는 물질을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마그녹스형 원자로라고도 부른다. 한국의 원자로들이 물을 감속재와 냉각재로 쓰는 데 반해 영변 원자로는 흑연을 감속재로, 이산화탄소가스를 냉각재로 쓴다.

    한국 원자력발전소는 100만KW를 생산하면서도 핵연료를 담고 있는 강철 원자로 용기의 직경이 4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영변 원자로는 5000KW로 용량이 200분의 1에 불과한데도 원자로 용기의 직경은 6m가 넘는다. 우리는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데 비해 북한은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쓰고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년에 한 번 정도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원자로를 세우고 원자로 뚜껑을 열어야 한다. 반면 영변 원자로는 운전을 하면서 핵연료를 교체할 수 있어 플루토늄 생산용으로 적합하다.

    그렇다면 원자로를 불능화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을 벌인다는 뜻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간단하게 원자로의 운전원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변 원자로는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나온 열을 이산화탄소 가스로 식히기 위해 펌프로 가스를 공급한다. 가스가 가지고 나온 열을 보일러처럼 사용해서 증기로 만들 수 있고, 열을 잃은 가스는 다시 원자로 속으로 들어간다.

    원자로가 발생시키는 열을 제어하는 것은 핵분열을 제어함으로써 가능한데, 이는 핵분열을 일으키는 중성자를 흡수해서 핵분열을 억제하거나 중성자 숫자를 늘려 핵분열을 증가시키는 제어계통이 담당한다. 제어계통은 중성자 흡수력이 좋은 제어봉을 원자로 속으로 깊이 밀어넣어 원자로 출력을 줄인다. 출력을 높일 땐 반대로 제어봉을 빼내면 된다.

    앞서 영변 원자로는 운전 중에도 핵연료를 교체할 수 있다고 했다. 핵연료 교체장치는 원자로 용기 위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에 뚫린 구멍과 연결된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 채널로, 이 채널을 통해 새 연료봉을 넣거나 타고난 연료봉을 꺼낼 수 있다.

    영변 원자로를 불능화하려면, 다시 말해 영변 원자로에서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핵물질을 얻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려면, 위에서 설명한 설비들을 못 쓰게 만들면 된다. 그러나 아예 원자로 자체를 없애지 않는 이상, 못 쓰게 한 설비는 일정 기간 복구한다면 다시 사용할 수도 있다. 손목이 부러지면 당분간 일을 못하지만 몇 달 치료받고 나면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불능화를 끝낸 제어봉 장치나 연료교체 장치를 복구하는 데는 2~3개월이 걸릴 것이고 냉각계통을 불능화하면 더 긴 복구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영변 원자로 주요 부분에 아예 콘크리트를 부어버리면 영구히 불능화되지 않겠느냐고도 한다. 그러나 언뜻 간단해 보이는 이 방법은 향후 원자로를 해체하거나 철거하는 작업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으므로 좋은 대안이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녹인 질산과 황산

    다음으로 살펴볼 불능화의 대상은 재처리시설이다. 영변의 재처리시설은 유럽의 13개 회원국이 건설해 운영하던 유로케믹(Eurochemic) 재처리 공장을 원형으로 삼아 1984년부터 건설됐다. 길이 192m, 폭 27m, 6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로, 마그네슘 합금인 핵연료봉의 껍질을 황산에 녹여 제거한 후 핵연료봉을 질산에 녹이고 질산에 녹아 있는 플루토늄을 분리해 금속으로 만드는 공정을 포함하고 있다. 시설 용량은 다소 의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대 25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재처리시설은 사용후핵연료를 녹여 남은 우라늄을 제거하고 고순도의 플루토늄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다량의 질산을 사용한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제거한 질산은 고(高)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으므로 질산만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변의 재처리시설은 질산 회수장치를 갖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까지 재처리하면서 나온 고방사성 질산의 양은 무려 50만ℓ를 넘을 것으로 판단된다. 핵연료봉 피막을 녹인 방사성 황산의 양도 30만ℓ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시무시한 액체들은 폐기 과정에서 사뭇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이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재처리시설을 불능화하려면 주요 공정 몇 가지를 제거하면 되지만, 이 역시 복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일정 기간 이후에는 재사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핵연료를 녹이는 용해조를 제거했다면 복구하는 데 1~2개월 걸릴 것이고, 플루토늄 추출장치를 제거했다면 복구에 2~3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재처리시설은 고방사능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정장치가 두꺼운 콘크리트 차폐 방에 설치된다. 이러한 차폐 방들은 연결된 공정을 수행하므로 중간에 있는 몇 개 방을 콘크리트로 메워버리면 확실한 불능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궁극적인 해체철거 작업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핵연료 제조 공장은 고방사능 작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불능화가 상대적으로 쉽다. 거꾸로 이 말은 복구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설비들은 쉽게 제거할 수 있지만 한두 달 이내에 쉽게 복구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생산해서 보관하고 있는 핵연료를 제거해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면 적어도 1년 동안은 원자로를 가동할 수 없게 되므로 효과적일 것이다.

    일본 원자로 폐기 비용 9000억원

    현재 미국이 추진하는 11개의 불능화 조치는 불능화의 초기단계로서 앞에 설명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단계가 잘 진전된다면 불능화는 점점 더 시설의 해체와 폐기 쪽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을 완벽하고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해체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지금 영변 원자로 내에 장전되어 있는 50t에 달하는 핵연료를 꺼내 북한에서 재처리하지 않는 방법으로 처분하고자 한다면, 이를 외국으로 내보내야 한다. 가까운 중국이나 러시아로 보내려면 적합한 도로나 철도 등이 있어야 한다. 수송용기는 방사선을 막기 위해 철과 납 등으로 무겁게 만들어져 있어 최소한 수십t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수송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변 주변의 도로나 철도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송로를 확보했다 해도 북한의 사용후핵연료를 받아줄 나라를 찾아야 한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 등도 자국에서 만들어서 특별한 계약으로 공급한 핵연료가 아니면 반입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1994년 협상 이후 미국은 사용후핵연료 반출에 대한 대책을 찾지 못해 영변 원자로의 수조 속에 봉인한 상태로 저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2002년 이후 북한은 이 봉인을 풀고 재처리해서 더 많은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시도하는 불능화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최소한 사용후핵연료 반출에 대한 관련국들의 사전 협의가 필수적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북한으로부터 반출하고 나면 이제는 원자로를 해체해야 한다. 해체 방법은 즉시 해체와 지연 해체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로를 지연 해체하는 이유는 원자로의 방사능 준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영변 원자로와 유사한 형태의 원자로인 도카이1호기를 해체하고 있는 일본은 최종 해체까지 약 20년을 계획하고 있다. 원자로를 해체해서 나오는 흑연 폐기물을 처분할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흑연 폐기물의 처분장을 2015년 이후에나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도 비슷한 이유로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80년가량을 기다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영변 원자로를 해체하면 약 600t의 흑연 덩어리가 나온다. 연료봉 주위를 두르고 있던 흑연은 원자로 운전 중에 여러 가지 방사성물질을 포함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흑연 덩어리에 포함된 미량의 불순물들이 중성자를 받아 생긴 염소-36, 니켈-63 등은 스스로 붕괴해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럼 취급해야 한다. 1997년에는 이러한 흑연을 처리처분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적이 있을 만큼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사안이다.

    원자로 해체를 지연하는 동안 가동을 중단한 원자로는 오염이 적은 터빈이나 증기 발생기 쪽을 제외하고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아예 밀폐건물로 둘러싼 후 필요한 기간 방사능 누출을 감시한다. 흑연은 원자로를 건물째 밀폐하기 전에 미리 제거해서 따로 저장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방사능 누출을 감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흑연 저장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일본 도카이1호기는 해체 비용으로 약 9000억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영국은 20기의 흑연감속로 해체 비용으로 350억 파운드(약 640억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산폐액과 질산폐액이 섞여 있다면

    이러한 원자로 해체와 달리 일반적으로 재처리시설은 해체 결정을 내리면 지연하지 않고 즉시 해체한다. 그러나 즉시 해체라 하더라도 시설의 오염 정도와 특성을 파악하는 데만 보통 2년 정도가 소요된다. 원자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방사능 준위가 낮아지므로 해체를 지연하는 것이 작업자 보호와 경제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재처리시설의 경우에는 오염 물질인 우라늄, 플루토늄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초기에는 방사선을 차폐하기 쉬운 알파선을 방출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차폐가 어려운 감마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생산하기 때문에 해체를 지연시킴으로써 얻는 이득이 없다. 영변 재처리시설도 불능화 단계별 협상에서 초기 단계에 해체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해체 시작 전의 조사 단계에서 재처리시설의 이력을 검증하기 위한 각종 시료 채취와 분석은 별도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벨기에의 유로케믹 재처리시설을 해체할 당시의 자료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영변 재처리시설을 해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원자로의 오염물질과 재처리시설의 오염물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재처리시설의 오염물질은 알파선을 방출하는 무거운 원소들이므로 밀폐된 상태에서 작업하도록 안전 기준이 훨씬 엄격하다. 따라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유로케믹 재처리시설은 1990년 본격적 해체를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설 내 설비 해체와 각종 폐기물을 분류하고 처리하는 공정을 새롭게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변 재처리시설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액체 폐기물을 다량 저장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질산에 녹인 고준위 액체폐기물이 약 50만ℓ, 핵연료봉의 껍질 부분을 황산에 녹인 중준위 액체 폐기물이 약 30만ℓ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오랜 기간 재처리를 해온 미국이나 러시아도 액체 폐기물 저장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액체 방사성 폐기물은 강한 산성용액 상태로 보통 스테인리스 강철 탱크에 보관하며, 찌꺼기가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고 방사성물질이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장치와 교반장치가 붙어 있다. 물론 이는 임시적인 보관에 불과하다.

    한때 러시아는 액체 폐기물 양이 너무 많아 저장하기가 어려워지자 호수나 강에 내다버린 적이 있는데, 현재도 그 주위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저장 탱크에 구멍이 나서 폐기물이 누출된 적이 있으며 지금도 미국 북서부의 핸포드 지역, 남동부의 사바나 지역에서는 액체 폐기물 처리작업에 매년 수십억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액체 상태의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처리하려면 유리 물질과 섞어 고체로 만드는 것이 정석이다. 유리 속에 방사성물질이 들어가면 오랫동안 바깥으로 못 나오므로 유리 고화체를 땅속에 처분했을 때도 비교적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변의 고준위 액체 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처럼 다른 나라로 이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도 고준위 액체 폐기물을 해외로 수송한 적이 없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물질을 액체 상태로 수송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변의 고준위 액체 폐기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유리화를 서두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처분장을 찾는 데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 확실하므로 그동안 저장하면서 방사능 누출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유리화를 해야 한다. 문제는 이 유리화 설비가 매우 비싸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만약 북한이 고준위 액체폐기물과 중준위 액체 폐기물을 분리해서 저장하지 않고 한꺼번에 섞어서 저장했다면 상황이 훨씬 심각해진다. 황산폐액과 질산폐액이 섞인 상태에서는 유리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처리에 드는 비용은 추산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 위험도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두고두고 한반도 골칫거리

    이상에서 설명한 문제들이 제대로 처리된다 해도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해체를 지원하는 각종 시설과 활동에 대해서도 조치가 필요하다. 고 방사능 강철과 콘크리트 수백t, 흑연 600t, 고준위 유리화 폐기물 수백 덩어리를 처리하고 저장할 각종 시설을 건설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처분장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분장을 구하는 데는 다시 부지 조사부터 건설까지 수십년이 걸린다.

    불능화 조치와 관련해 미국측 대표단이 영변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나온 이래, 일각에서는 영변 핵시설 불능화의 초기 단계에 한국이 배제된 것을 두고 의아해 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미국과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므로 현재로서 한국의 역할은 지켜보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켜보는 동안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만큼, 해체를 본격화하는 협상에서는 미국이든 북한이든 조만간 한국이 참여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러한 협상에 대비해 필요한 기술과 비용에 대한 상세한 분석자료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6자 이외의 나라들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생각해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흑연감속원자로의 핵연료 수송과 재처리는 영국이 가장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고준위 액체 폐기물 유리화는 1990년대 미국 켄터키 웨스트밸리에서 대규모로 수행한 적이 있으며, 스위스는 안 쓰는 유리화 설비를 잘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상세한 판단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면 향후 벌어질 추가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히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한국이 떠안을 생각이 아니라면, 수십년 걸릴 해체사업을 위해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사업과 유사한 국제기구를 조직할 필요도 검토해야 한다. 이 기구의 조직과 운영을 위한 비용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미리 많은 공부를 해둬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불능화 조치는 영변 핵시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목표는 북한이 추가적인 핵물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영변 핵시설 해체에 대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일부에서는 부분적으로만 해체해서 되돌릴 수만 없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완벽한 해체가 아니라도 비가역적인 해체가 수년 정도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방사능 오염 방지와 폐기물 처리 문제를 미리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두고두고 한반도의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때 가서 과연 한국을 제외한 다섯 나라가 이를 신경 쓸까. 우리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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