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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판사 정갑생이 들려주는 법정 新풍속도

“말 많아진 피고인, 말 못하는 변호사… 공부 안 하는 판사는 힘들어요”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여판사 정갑생이 들려주는 법정 新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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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판사 정갑생이 들려주는 법정 新풍속도

서류더미에 파묻혀 사는 판사들. 정갑생 부장판사는 종종 식탁에서 편결문을 쓴다.

정 판사가 속한 제2형사부는 지방법원 형사단독재판부에서 1심 재판을 거치고 항소된 사건을 다루는 2심 합의재판부다. 형사재판은 사안의 경중(輕重)과 피해액수에 따라 단독재판부와 합의재판부에서 나눠 담당하는데, 단독재판부는 사기, 절도, 교통사고, 횡령 등 비교적 법정형량이 가벼운 사건을 담당한다. 사기의 경우 취득한 이익의 가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지방법원 합의재판부에서 1심을 맡게 된다.

“경제단위가 작을수록 (사건이) 더 많아요. 큰 액수는 오히려 양보나 포기하기가 쉽거든요. 작은 액수는 감정싸움입니다. 더 절박한 돈이기도 하고. 법정까지 온 건 합의를 못했기 때문인데, 피고인의 처신 문제죠. 돈보다 더 무서운 게 법이라지만, 법을 이기는 건 감동이고 정성입니다. 교통사고를 내고 합의를 못해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몇 번이나 찾아가봤느냐’고 물으면 ‘돈이 없어 합의를 못했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합의는 꼭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여기 오기까지 피해자가 감정이 무척 상했을 거다. 피해자를 감동시켜보라’고 권합니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말해야 하는데,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니 문제죠.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고 하잖아요. 돈밖에 모르니 인심이 각박해지고 ‘배 째라’는 식이 되죠. 1500만원을 못 갚아 사기죄로 법정에 온 사람이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그 벌금을 내든지 노역을 해야 합니다.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일부라도 빚을 갚으면서 ‘미안하다’고 사정하고 법정까지 오지 않는 게 낫지 않나요. 또 요즘엔 생계형 절도가 부쩍 많아졌어요. 절도 품목도 기상천외합니다. 문짝, 된장, 관공서나 공장의 철대문, 교량 준공표시 동판, 자판기 동전, 폐지, 전깃줄, 교통표지판까지. 정말 마음이 아파요.”

법정에서 드러나는 지역색

정 판사에 따르면 법정에서도 지역색이 드러난다고 한다. 출신 지역에 따라 피고인들의 법정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경상도 출신은 비교적 합의가 잘 된다고 해요. 목소리가 커서 조정이 잘 안 될 것 같은데도 막상 합의에 들어가면 잘 된다고 합니다. 많은 판사가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없으면서도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조정이나 화해가 잘 안 되는 편입니다. 열사의 고장다워요. 전라도 사람들은 관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고 들었어요. 반면에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은 권리의식이 강해요. ‘내가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대단하다죠. 법정에서 소란 피우는 일이 빈번하고요. 또 공정한 재판인지를 엄청나게 따지고 판결에 대한 항의가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이유 중에는 들쑥날쑥한 양형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같은 범죄라도 재판부에 따라 형량이 다르더군요.

“편차가 있죠. 6개월은 물론이고 1년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어요.”

법원은 양형정보 시스템, 판결문관리 시스템 등을 만들어 유사한 사안의 양형을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대법원 산하에 양형위원회를 두어 양형 편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범죄의 경중에 따라 43단계로 나누고, 피고인의 재범 여부에 따라 6단계로 나눠 총 258개의 형량표를 작성해 운용한다. 한국엔 아직 양형기준에 대한 특별한 지침이 없다.

▼ 형량이 판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건가요.

“판사의 시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판사는 법률, 헌법,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만, 각자의 경험이라는 게 작용하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 법적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겁니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그 주변사람들에게까지 오랫동안 그 고통이 미치기 때문에 사기가 가장 나쁜 범죄라고 보는 분이 있는 반면, 절도를 가장 나쁜 범죄라고 여기는 분도 있어요. 절도는 곧장 강도로 돌변할 소지가 있는 범죄라는 거죠. 훔치다 들키면 칼을 들잖아요. 또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점을 감형요인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고, 반대로 불리한 요인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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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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