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신정아 오빠 학원 수강생들, ‘예일대 박사’ 축하하러 미국 연수 갔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7-12-10 15: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아 졸업 축하하고 아이들 견문도 넓혀주자”…3주짜리 연수 프로그램

    2005년 5월 초등·중학생 6명, 신정아 ‘졸업’에 맞춰 예일대 방문

    신정아 오빠, 동생 졸업식 참석한다며 도미(渡美), 일주일 휴강

    2007년 7월 중학생 12명 예일대에서 ‘신정아 닮기’ 현장교육

    신정아, 언론 인터뷰에서 “가운 없어 졸업식 참석 못했다”



    신정아 오빠, 예일대 박사학위 논문 지인들에게 돌리며 학원 홍보

    안동경찰서·안동교육청, 신정아 오빠 ‘명의도용 사건’ 내사 후 시정조치

    신정아 오빠도 학력 부풀리기 의혹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2005년 5월 예일대를 방문한 초등·중학생 6명. 대부분 신정아씨 오빠가 운영하는 학원의 수강생인 이들은 고향 선배인 신정아씨의 예일대 ‘졸업’에 맞춰 미국으로 단기연수를 떠났다. 맨 뒷줄에 있는 사람이 인솔자이자 신정아 오빠와 동업관계인 영어학원 원장 김모씨.

    2005년 봄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하기 위해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예일대를 방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씨의 졸업을 축하하고 미국 명문대학을 둘러보는 3주간의 단기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경북 안동의 모 영어학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신씨는 안동에서 가까운 경북 청송군 진보면 출신이다.

    10월16일 경북 안동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신정아는 학력위조 사건이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안동에서 유명인사였다”면서 “자녀 교육에 신경 쓰는 학부모들 중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식을 신정아처럼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가 많았죠. 어떻게 공부해 예일대에 갔는지 관심 갖는 부모도 적지 않았고. 신씨가 예일대에서 박사학위 받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자녀들에게 ‘산 교육’이라고 생각한 학부모들이 자녀의 미국행에 흔쾌히 OK 했죠.”

    학부모들 반응 좋아

    신씨의 예일대 졸업식 참석과 미국 명문대 방문을 위해 학생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안동의 유명 영어학원을 찾았다. 규모가 꽤 큰 이 학원의 원장 김모(37)씨는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아직도 신정아가 예일대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역시 안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신정아의 둘째 오빠 신기영(39)씨와 개인적으로 절친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먼저 이 사실을 밝혀야 ‘미국행’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 신정아씨의 (가짜) 졸업식에 학원생들을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운 계기는.

    “2005년 연초에 신 원장(신기영씨)이 ‘정아가 5월에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합디다. 정아가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요. ‘정아의 졸업에 맞춰 (학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자’고 제가 신 원장에게 즉석에서 제안했죠. 정아 졸업도 축하하고 아이들 견문도 넓혀주면 좋겠다고.”

    ▼ 신기영씨가 반대하지 않았나요.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학부모에게 신씨 졸업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미리 설명했습니까.

    “당연하죠. 그게 미국 방문의 첫째 목적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학부모에게 ‘신정아의 박사학위 수여 장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동기 부여도 되고, (미국 명문대 방문을 통해) 넓은 세상을 접하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지요. 정아 졸업식 참석을 겸한 미국 단기연수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

    ▼ 미국에 갈 학생을 언제 모집했습니까.

    “2005년 2~3월입니다. 정아 졸업식이 5월 중순이라고 알고 있었으니 미리 준비한 거죠.”

    ▼ 몇 명이 모집됐습니까.

    “초등학교 6학년 1명, 중학교 1학년 2명, 중학교 2학년 3명, 모두 6명이요. 이들 중 초등학교 6학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저희 학원과 신 원장 학원 두 곳 다 다닌 학생들이었어요. 중학생 5명은 신 원장이 직접 가르치는 학생들이었죠.”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검찰에 출두하는 신정아씨.

    신 원장이 운영하는 영어학원은 중학생들에게 문법과 에세이 및 내신 중심으로 가르친다. 반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김 원장의 학원은 회화와 듣기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어 신 원장에게 배우는 중학생들 중에 김 원장의 학원에서 수강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김 원장은 “그동안 우리 학원에 다니던 초등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부모에게 권유해 신 원장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며 “4년째 그쪽(신 원장 학원)으로 학생들을 ‘토스’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 2005년 이전엔 해외 단기 연수를 계획한 적이 없었나요.

    “처음 기획한 겁니다, 정아 때문에.”

    학원이나 여행사 등에서 실시하는 해외 단기 연수는 학기말 고사가 끝난 직후인 7월과 12월 중순 또는 방학 중에 떠나는 게 정석이다. 학기 중에는 수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김씨는 “신정아의 졸업식에 날짜를 맞추다 보니 학기 중인 5월에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정아 오빠는 먼저 출국

    ▼ 예일대 졸업식에는 참석했습니까.

    “원래 신 원장과 함께 출국하려고 계획했어요. 출국 예정일이 (2005년) 5월 초였지요. 그런데 학생들 중간고사가 5월 중순이어서 어쩔 수 없이 출국을 미뤘어요. 신 원장은 예정대로 5월초에 출국했고. 정아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계획된 미국행을 취소할 수 없어 여섯 명의 아이와 함께 5월26일부터 3주간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김씨를 비롯한 안동의 일부 학부모는 “이쪽 애(학생)들 사정으로 신정아가 밝힌 예일대 졸업식 날짜보다 조금 늦게 미국으로 출발했기에 망정이지 졸업식에 딱 맞춰 애들이 꽃다발 들고 예일대를 찾았더라면 어쩔 뻔했냐”면서 혀를 내둘렀다.

    ▼ 신기영씨는 언제 출국했습니까.

    “신 원장은 예정대로 저희 일행보다 3주 전, 그러니까 5월 초에 출발해 일주일 동안 미국에 머물다 왔다고 했어요.”

    2005년 초부터 지금까지 신기영씨한테 자신의 자녀가 배우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신기영씨가) 동생의 예일대 졸업식에 참석한다며 일주일 동안 휴강한 적이 있다”면서 “미국에 갔다 온 후 학생들에게 볼펜을 선물로 돌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정아 사건이 터진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 (신기영씨가) 정말 동생 졸업식에 갔다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꼭 밝혀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부분에 대해 김씨도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정아가 예일대에서 졸업한 적도, 박사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신 원장이 줄곧 ‘동생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신기영씨가 직접 동생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하던가요.

    “물론이죠. 신 원장이 딸(현재 초4)을 데리고 미국에 가 동생 졸업식을 보고 왔다고 하더라니까요. 그동안 신 원장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는데….”

    김씨가 말꼬리를 흐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커피 몇 모금을 마시더니 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그가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아의 예일대 박사 학위가 가짜라는 사실이 보도된 후 신 원장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습니다. ‘정아 졸업식에 참석한 거 맞냐’고요. ‘맞다’고 합디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김석원 회장(쌍용양회 명예회장) 부부와 그 딸도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하던데요. 정말, 지금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나저나 김석원 회장 부부가 당시 예일대에 간 게 사실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신 원장이 동생 졸업식장에서 김 회장 부부를 만났다고 여러 번 말했거든요.”

    “너희도 열심히 해서 정아 선배처럼…”

    김석원 회장 부부의 (가짜) 예일대 졸업식 참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성곡미술관측에 문의하자 “김 회장 딸과 (신정아가) 친하게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가짜) 졸업식에 참석했는지는 모르겠다. 미술관 직원 중에는 김 회장의 사적인 부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쌍용양회측도 똑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신정아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서부지검 구본민 차장검사는 “김석원 회장 부부가 2005년 5월 미국에 간 적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신기영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돌린 신정아씨의 ‘예일대 박사 논문’

    한편 신정아씨는 지난 9월 미국에서 이뤄진 주간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예일대 박사학위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졸업식 때 입을 가운을 제때 맞추거나 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불참 이유였다.

    신기영씨는 미국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밤색 표지로 된 신정아씨의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 논문을 선물했다. 김씨도 신정아씨 논문을 선물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김씨는 지난 7월 중순 안동 시내에 재학 중인 중학교 1학년생 12명을 이끌고 두 번째로 예일대를 방문했다. 예일대 교정에서 김씨는 학생들에게 “여기가 바로 너희 고향선배인 신정아가 박사학위를 받은 학교”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너희도 공부 열심히 해서 신정아 선배의 뒤를 이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조언과 함께 미국 유학의 꿈을 심어줬다.

    “올해 미국을 방문한 것은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줘 꿈과 이상을 키우고 견문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었어요. 예일대는 그중 한 학교였지요. 예일대에서 자연스럽게 정아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학생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성공모델이었기 때문이죠. 저희 일행이 미국을 방문할 때는 신정아의 학력이나 학위가 거짓이라고 판명나기 전이었거든요.”

    김씨는 출국 직전 신정아씨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하자 신기영씨에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신씨는 “사실무근”이라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정아가 예일대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실을 믿었으니까 학생들에게 정아 얘기를 꺼낸 거죠. ‘너희도 공부 열심히 하면 정아처럼 될 수 있다’고. 당시 정아가 동국대 교수인데다 우리가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7월4일)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됐거든요.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이 정아 아닙니까.”

    올해 미국을 방문한 학생 12명도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김씨와 신기영씨가 운영하는 학원에 동시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7월12일부터 3주 동안 예일대를 비롯해 하버드, MIT, 브라운대학 등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씨는 “돌아와 보니 신정아씨의 가짜 학력 파문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어 몹시 당황했다”고 털어놓았다.

    학원가에서 형 이름 도용해 활동

    최근 안동에서는 신정아씨의 ‘희대의 사기극’ 못지않게 신기영씨의 괴이한 행적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동생에 그 오빠”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신정아씨의 둘째오빠인 신기영씨는 안동에서 ‘신기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신기영씨의 명함에는 ‘신기웅’이라는 이름 석 자가 또렷이 적혀 있다. ‘신기웅’은 신정아씨의 큰오빠 이름이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모 대기업 중견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신기웅씨의 이름을 신기영씨가 도용한 것이다.

    신기영씨는 1999년말 안동 S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신씨는 S학원 곽모 원장에게 자신을 ‘신기웅’이라고 소개한 이래 여태껏 그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씨는 3년 전 곽 원장의 학원 맞은편에 위치한 안동시 금곡동 단독주택 2층에서 본격적으로 영어 개인과외를 시작했다. 신씨의 강의를 듣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학원 관계자 등 모든 사람이 그를 ‘신기웅’으로 알았다.

    신기영씨가 학원가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5년 남짓 함께 일한 곽 원장은 취재진에게 “지금까지 그 사람을 ‘신기웅’으로 알고 지냈다”면서 “그럼 도대체 신기웅은 누구냐”고 되물었다. 신씨의 형이 라고 일러주자 “왜 형 이름을 썼는지 의아하다”며 표정이 굳어졌다.

    안동경찰서는 신정아 사건이 터진 후인 9월 중순 학원가에서 신기영씨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내사를 시작했다. 안동경찰서 수사과장 김용태씨는 “신기영씨가 신기웅씨로 활동한 사실은 파악했다. 하지만 위법 행위가 아니라 10월 중순 내사를 종결하고 교육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며 “교육청이 사안을 검토해 적절히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안동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신기영씨는 안동시 금곡동 단독주택에서 개인과외 교습소와 자신의 아내 명의로 된 S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S학원의 실질적인 원장은 신씨”라고 밝혔다.

    안동교육청 담당자는 “10월 중순 경찰에서 신기영씨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교육청 자체 조사를 거쳐 10월31일 S학원에 ‘강사 인적사항 미(未)게시’에 따른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했다. 신기영씨가 (아내 이름으로 된) S학원의 ‘원장 신기웅’이라고 명함에 명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씨 개인에게 행정처분을 내릴 근거가 없어 S학원에 시정조치명령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신정아씨 오빠가 운영하는 S학원 강의실에 걸린 그림. 성곡미술관에서 신정아씨로부터 직접 건네받은 것이다.

    신기영씨는 언론에도 ‘신기웅’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신정아 사건이 불거진 이후 모 시사월간지(2007년 8월호)에 신씨의 어머니와 둘째오빠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기사에는 신기영씨가 ‘신기웅’으로 표기돼 있다.

    ‘진짜’ 신기웅씨는 동생 기영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신기웅씨는 11월7일 전화통화에서 “전혀 몰랐다.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몹시 당황스럽고 황당했다”고 밝혔다.

    ▼ 동생 신기영씨가 ‘신기웅’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나요.

    “언론(앞서 언급한 시사월간지)에 내 이름이 거명되자 동생이 신정아라는 걸 아는 몇몇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회사 다니면서 학원도 경영하느냐’고 물어와 알게 됐습니다.”

    ▼ 1999년부터 ‘신기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데요.

    “전혀 알 길이 없었지요. 개인적인 가족사라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그쪽(신기영, 신정아 등)과 연락 안 하고 산 지 오래됐거든요. 어떻게 남의 이름으로 학원에서 강의할 생각을 했는지….”

    ▼ 신기영씨에게 왜 형의 이름을 빌려 사는지 물어봤습니까.

    “아뇨.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살다가 그 일 때문에 전화하기가 뭣해서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지난 7월, 직장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신기웅씨는 장인에게 안동에 내려가 ‘명의도용 사건’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신씨의 장인은 안동교육청과 세무서 등 공공기관을 방문해 신기영씨가 신기웅씨의 이름으로 학원을 개설한 사실이 있는지 알아봤다.

    “제 이름을 사용하기만 했지 교육청이나 세무서 등에는 신기영과 그의 아내 이름으로 신고돼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신기영씨가 주변사람들에게 형의 이름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안동교육청 관계자는 “신기웅씨의 학력이 신기영씨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기웅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쪽(신기영씨)보다 제 학력이 더 내세울 만하니까 이름을 빌려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신정아 사건이 터진 이후 신기영씨는 이름뿐 아니라 출신학교도 거짓으로 내세웠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신씨는 학부모와 학원 관계자 등에게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했으며(일부 사람에게는 미국 브리지포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밝힘) 창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월16일 안동의 학부모와 택시기사, 학원 관계자 등으로부터 신기영씨의 학력 부풀리기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필자는 반신반의했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의혹을 제기했지만 신정아씨 때문에 그 오빠까지 괜한 오해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신기영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신씨는 필자가 신분을 밝히자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재차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신씨의 휴대전화에 ‘(신정아 사건 여파로) 오빠까지 학력을 위조했다고 안동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나서 학원 운영에 차질이 있지 않으냐. 이것(출신학교)에 대해 명확히 밝히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회신이 없었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경 신기영씨의 학원에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는 “무슨 내용이든 인터뷰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학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동생 때문에 가족 모두 힘들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성균관대 동문회에 나오지 않아”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2007년 7월 ‘신정아 배우기’를 위해 예일대를 찾은 중학생 12명이 백악관 앞에서 기념촬영. 모두 신정아씨 오빠가 원장인 영어학원의 수강생들이다.

    보강취재를 거친 후 11월1일 다시 안동을 찾았다. 그전에 인터넷을 통해 안동시내에 있는 학원을 검색한 후 무작위로 5개 학원에 전화를 걸어 “신기영씨가 어느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4명의 학원 관계자가 똑같이 “직·간접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1명(여)은 “잘 모르겠다”면서 ‘묘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성균관대 법학과 출신인 안동 생덕학원 이영식(43) 원장은 “신 원장(신기영씨)이 성균관대 출신이라고 알려져 안동의 성균관대 동문회에 나오라고 (신 원장) 지인을 통해 몇 차례 권한 적이 있는데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문회에 나오기 싫어 안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신정아 사건이 터진 후인 8월말 발간된 성균관대 동문 주소록 책자에서 신 원장의 이름을 찾아보니 없었다. 그래서 혹시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앞부분에 언급한 신기영씨와 절친한 영어학원 원장 김모씨는 신기영씨로부터 직접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토플 만점을 맞아 국비로 미국 브리지포토대학에 유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지난 7월부터 주변에서 (신 원장이) 성균관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신 원장에게 직접 물어봤다”면서 “지난 9월말 다시 물어봤을 때도 신 원장은 정색한 채 ‘성균관대 나오고 미국에서 유학했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신 원장 부인도 남편이 성균관대 나온 줄 알고 있었다”면서 “부인에게 직접 그 얘길 들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성균관대측은 “1968년생인 신기영씨가 성균관대에 입학한 적이 없으며 졸업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신기영씨는 1990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1994년에 졸업했다. 이듬해 3월 안동대에 입학해 1998년 2월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직후 창원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해 2001년 8월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안동경찰서 수사과장 김용화씨는 “신기영씨 명의도용 사건을 내사할 당시 신씨의 학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면서 “신씨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부모와 지인들에게 출신학교를 부풀려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전단지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출신학교를 허위 게재하지 않아 처벌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신기영씨가 강사로 일했던 S학원 곽 원장은 “1999년 신씨가 학원에 들어올 때 출신학교를 어디라고 말했느냐”는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곽 원장에게 신씨가 실제 졸업한 학교를 일러주자 “그때 나에게 밝힌 학교와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할 말 없다”

    신정아씨의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행을 계획했던 김씨는 “그동안 신 원장을 믿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면서 “신 원장에 대해 내가 변양균 실장 노릇을 했던 것 같다”며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변 실장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면서 “신기영씨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11월2일 오후 3시경, 신기영씨 부인 명의로 된 S학원으로 향했다. 한 여직원이 학원 내부를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직원에게 “원장님 이름이 신기웅이냐, 신기영이냐”고 묻자 “대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학원은 건물 2층 전체(전용면적 230여 m2 남짓)와 3층 절반을 사용하고 있다.

    신씨가 운영하는 이 학원에는 다른 학원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멋진’ 그림 10여 점이 걸려 있다. 학원 입구 신발장 위와 안내 데스크, 로비와 강의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이 그림들은 지난 2월 신기영씨가 성곡미술관에서 신정아씨로부터 직접 건네받은 것이라고 한다.

    학원 내부에 걸린 그림을 살펴보고 1층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을 올라오는 신기영씨와 마주쳤다. 신씨에게 취재 중임을 밝히자 “아무 할 말이 없다”면서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를 따라나서며 질문을 던졌다.

    ‘신정아 사기극’에   멍든 동심(童心)

    신정아씨 작은오빠인 신기영씨의 명함. 자신의 형 이름인 ‘신기웅’으로 행세했음을 알 수 있다.

    ▼ 신기웅씨로 살아오셨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상치 않은 질문이었는지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데다 학생을 가르치는 공인이지 않냐”면서 “타인 명의 도용과 관련해 경찰이 내사한 사안이지 않으냐”는 설명을 덧붙이자 신씨는 “뭐라 언급할 게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 명함에 신기웅 원장이라고 써 있던데요. 형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가 다시 필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나 굳게 다문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리지포토대학에서 공부했다고 주장하셨다는데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가 짧게 대답한 후 자동차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오후 4시25분. 그가 다시 학원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주변 사람들에게) 동생 졸업식에 다녀왔다고 했다면서요. 가서 (졸업식을) 보셨습니까.

    “나중에 동생이 (재판 받고) 나오면 얘기할 것입니다.”

    ▼ 김석원 회장 부부를 예일대 졸업식에서 만났다고도 주장하셨던데요.

    “잘 모르겠습니다.”

    신정아와 외모와 체격이 판박이처럼 비슷한 신씨는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동생의 ‘명성’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신씨의 가짜 박사학위 논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생이 예일대 출신임을 내세우며 동생 관련 언론보도 내용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컬럼비아대 나온 적 없다”

    신씨는 또 “형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출신이고, 정아는 예일대, 엄마는 숙명여대 출신”이라면서 학벌이 대단한 집안임을 내세웠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신 원장 가족의 학벌을 부러워할 정도로.

    한편 신씨의 어머니 이모(63)씨는 공개적으로 큰아들이 컬럼비아대학 출신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시사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정아) 위의 오빠 둘도 다 학위를 받았습니다. 큰애는 컬럼비아에서…”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신기웅씨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지 않았다”며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출신학교를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성균관대 출신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분은 숙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기영씨의 학원 바로 옆 건물에서 수도학원을 운영하는 원장 류종길(43)씨는 각급 학교 졸업장과 상장을 학원에 비치했다. 그는 “신기웅(류 원장은 신기영씨를 ‘신기웅’으로 불렀다)씨가 성균관대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둥 말이 많아 아예 졸업장을 학원에 비치해두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보여준다”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취재 중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오빠의 그 동생인지, 그 동생의 그 오빠인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11월2일 안동에서 저녁까지 머물며 취재하고 있는데, 휴대전화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40대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신동아’에서 신기웅(역시 신기영씨를 ‘신기웅’이라고 표현했다)씨와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신정아 사건이 터진 이후 (신기영씨의) 출신학교 의혹을 몇몇 언론에 제보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확실히 밝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