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AI 대학살’, 한국이 막아낼까?

녹십자연구소 “2009년 AI 백신 개발 완료… 너무 늦지 않기만 바랄 뿐”

  • 강양구 프레시안 과학·환경팀 기자 tyio@pressian.com

    입력2007-12-10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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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팬데믹 보름이면 전세계 전파, 1억명 사망
    • 녹십자 목암연구소, 국내 첫 AI 프리-팬데믹 백신 前임상 중
    • “개발 중 백신, 변종 AI 방어 효과도 뛰어나”
    • 2009년 전남 화순에 연 5000만명분 백신 공장 완공
    • 정부지원 턱없이 부족…“시판 이후 백신 공급 중단될 수도”
    ‘AI 대학살’,  한국이 막아낼까?
    2003년 1월, 중국 광둥성에서 괴질로 몇 개월째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도 이 소문은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던 무렵 광둥성 광저우의 한 의사가 2월21일 홍콩을 방문했다. 그는 친척 결혼식에 참석할 참이었다.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던 의사는 한 호텔의 9층에 투숙했다. 닷새 후인 2월2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사업가가 괴질로 쓰러졌다. 그는 광저우 출신 의사가 묵었던 호텔 9층에 투숙했던 사람이다. 3월1일 싱가포르에서는 한 스튜어디스가 쓰러졌다. 그 역시 같은 호텔 9층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에는 그 호텔 9층에 숙박했던 캐나다 토론토의 중년 여성이 사망했다. 그렇게 홍콩의 한 호텔 9층에 묵은 9명이 괴질에 감염됐다.

    사태는 심각했다. 괴질은 베트남, 캐나다, 홍콩의 병원 직원에게도 퍼졌고 곧 유럽에도 상륙했다. 싱가포르에서 발병한 스튜어디스를 치료한 영국 의사와 그 가족이 쓰러져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병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라고 이름 붙였다. 홍콩 보건당국은 사스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를 전면 폐쇄했다. 며칠 만에 아파트 전체에서 321명이 사스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같은 날 홍콩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22명이 사스에 감염됐다.

    ‘SARS’보다 센 놈이 온다!

    이렇게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세가 꺾였다. WHO는 7월5일 사스 진압을 공식 선언했다. 사스는 약 8개월 동안 전세계 26개국에서 약 8500명을 감염시켰다. 그중 916명이 사망했다. 감기 증세와 설사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인 ‘코로나 바이러스’. 그 변종이 일으킨 연쇄 살인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보다 몇백 배 더 ‘센 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스의 원인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밝혀졌을 때 많은 과학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그것이 인플루엔자였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매년 겨울 사람을 괴롭히는 독감이 이 인플루엔자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은 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센 놈이다.

    사스는 전염되고 나서 5일이 지나 열이 나고 기침을 한다. 이렇게 증상이 나타나고서도 며칠이 지난 뒤에야 전염된다. 이 때문에 사스 환자가 자신이 병에 걸렸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에게 감염을 시키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격리하는 ‘구식’ 조치만으로도 폭주하던 ‘살인마’를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다르다. 일단 인플루엔자에 걸린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곳저곳에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고 다닌다. 더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쉽게 전파된다. 만약 괴질이 사스가 아니라 그만한 살상력을 가진 인플루엔자였다면 전세계 전염병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번졌을 것이다.

    비록 사스 확산은 막았지만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를 불안케 하는 것은 ‘조류 인플루엔자(AI·Avain Influenza)’이다. 조류를 대량 살상으로 몰아넣은 이 고병원성 AI는 10년 전인 1997년에 처음 사람에게 감염돼 사망에 이르게 했다.

    AI 바이러스는 평소에는 자연 숙주인 조류에 기거하다 돼지와 같은 제3의 숙주를 통해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맞바꾸거나, 자체적으로 돌연변이를 함으로써 직접 인체에 들어간다. 조류와 인간 사이의 벽을 숙주를 이용해 뛰어넘는 것. 1997년 세 살배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AI 바이러스 ‘H5N1’은 아주 미세한 돌연변이로 이 벽을 넘었다.

    H5N1은 지난 10년간 간헐적으로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현재까지 H5N1에 감염된 사람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조류와 접촉한 이들이다.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H5N1이 가족 간에 감염된 사례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환자 체액과의 지속적 접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최악 상황 1억명 사망

    ‘AI 대학살’,  한국이 막아낼까?

    AI 프리-펜데믹 백신을 개발중인 녹십자 목암생명공학연구소(왼쪽)와 개발 연구 책임자인 박만훈 박사.

    일단 H5N1이 종(種)간 경계를 넘어선 만큼, 이 바이러스는 인체 안에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맞바꾸는 과정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능력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졌다. H5N1이 언제든지 변이를 통해 사스처럼 치명적인 전염병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로 재탄생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더구나 2008~2010년은 많은 과학자가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도래를 예고하는 시기다. 20세기 들어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1918년(4000만~1억명 사망), 1957년(200만명 사망), 1968년(70만명 사망) 등 3번 발생했다. 2008년은 마지막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찾아온 1968년부터 정확히 40년이 되는 해다.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변이가 일어나는 기간이 대략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발생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닥쳐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얼마나 빨리,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아무도 모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오면 얼마나 큰 희생이 발생할까. 20세기 최악의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가 발생한 1918년 사망자 수(4000만~1억명)를 오늘날의 인구에 대입시켜 보면 최대 3억2500만명이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숫자다.

    2004년 12월, WHO의 오미 시게루 박사는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를 상기시키며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찾아온다면) 사망자가 적어도 700만명은 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1억명이 죽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미 박사는 차기 WHO 사무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우주 교수는 “1918년과 2008년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AI를 치료할 수 있는 약, AI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이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라며 “만약 이 두 가지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는 1918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산 백신, 2년 안에 나온다

    현재 한국 정부는 AI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전 국민의 2%가 복용할 수 있는 100만명분을 비축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인구 10~20% 이상이 복용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하라고 권고한 것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미국은 전 국민의 25%가 복용할 수 있는 7500만명분을 비축한 상태다.

    사실 타미플루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법은 예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존재하지 않은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백신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플루엔자 팬데믹 바이러스로 변이할 가능성이 큰 현재의 H5N1을 염두에 두고 백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백신이 가능한 것은 이른바 ‘교차 방어(cross-protection)’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베트남에서 발생한 H5N1을 묽게 희석해 접종받은 쥐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에도 면역이 생기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 변종의 차이가 크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교차 방어를 염두에 두면 일단 2004년에 발생한 H5N1으로 만든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은 웬만한 H5N1의 변종에 면역이 생긴다. H5N1이 극단적인 돌연변이를 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H5N1 백신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만드는 백신을 ‘프리-팬데믹 백신’이라고 한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제약업체와 함께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연구,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사노피-파스퇴르가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개발한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세계에서 최초로 승인했다.

    유럽 최대의 다국적 제약업체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도 AI 백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GSK는 교차 방어 효과를 극대화한 AI 프리-팬데믹 백신 개발을 완료하고 2008년 3월까지 유럽연합(EU),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GSK는 이 백신을 WHO에 무상 공급하는 것과 별도로 미국, 영국, 스위스 등에 판매할 예정이다.

    이런 흐름에 비춰보면 한국은 한발 늦었다. 그나마 녹십자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2004년 발생한 AI 바이러스를 희석시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족제비, 쥐를 대상으로 전(前)임상시험을 진행 중인데, 2009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를 받아 AI 프리-팬데믹 백신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AI 프리-팬더믹 백신 개발을 이끄는 이 연구소 박만훈 박사는 “개발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외국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참고할 수 있었던 만큼 ‘교차 방어’ 효과가 뛰어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박사는 “전임상시험에서 연구소가 개발한 백신은 새롭게 보고되는 각종 H5N1 변종에도 교차 방어 효과가 뛰어났다”고 밝혔다.

    달걀은 ‘백신 공장’

    정부가 아닌 기업 연구소가 독자적으로 백신을 개발하다 보니 어려운 일도 많았다. 백신은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희석시켜 만든다. 이 희석 바이러스를 인체에 접종해 항체가 만들어지면 실제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했을 때 버텨낼 수 있는 면역이 생긴다.

    따라서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 꼭 필요한 일은 AI 바이러스를 확보하는 것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홍콩 등 각 지역에서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모두 WHO로 모여들었다. WHO는 이 AI 바이러스로 균주(strain)를 만들어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만들려는 각 정부, 기업에 분양한다.

    특히 AI 바이러스 균주를 만들 때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유전공학을 이용해 저병원성 AI 바이러스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고병원성 H5N1은 백신을 만들 때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달걀을 파괴할 만큼 치명적이므로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면역 반응과 관련된 부분은 그대로 두되, 병원성은 낮추는 방법이 이용된다.

    이 과정은 주로 영국의 국립생물제제표준화연구소(NIBSC·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Standards and Control)에서 수행된다. 목암생명공학연구소도 이곳에서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 균주를 받았다. 이 균주는 전염성은 있지만 인체에 위험이 없기 때문에 항공 택배 등을 통해 이동한다.

    박만훈 박사는 “통상 바이러스 균주를 신청해서 목암생명공학연구소로 도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달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박 박사는 “특히 목암생명공학연구소는 WHO의 ‘협력기관(collaborating center)’으로 등록돼 있어서 이 균주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AI 프리-팬데믹 백신의 생산 과정은 다른 백신 생산 과정과 대동소이하다. 바이러스 균주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달걀 속에 집어넣는다. 이때 쓰이는 달걀은 낳은 지 10일 정도 지난 유정란으로 태아가 막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바이러스 균주를 집어넣은 달걀을 37℃에 48시간 정도 두면 바이러스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렇게 바이러스가 배양된 달걀을 낮은 온도(4℃)에서 12시간 정도 두면 달걀 속 태아는 죽고 바이러스만 살아남는다. 이 바이러스를 화학처리를 거쳐 죽인 다음 농축·정제해서 만든 것이 바로 AI 프리-팬데믹 백신이다. 박만훈 박사는 “녹십자는 달걀 1개당 1.4도스(1도스는 1명분)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기업 파트너십 시험대

    목암생명공학연구소가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국내에는 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한 곳도 없다. 녹십자가 부랴부랴 전라남도 화순에 백신 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이 때문. 2009년 완공되는 이 공장에서는 연간 최대 5000만명분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녹십자 이병건 개발본부장은 “평상시에는 일반 백신을 생산하다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도래하는 상황에서는 바로 AI 팬데믹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 단계부터 고려됐다”고 소개했다. 이 공장은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서 AI 프리-팬데믹 백신 개발을 완료하면 국내에서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생산해 정부에 공급하는 일도 맡을 예정이다.

    화순 공장은 정부 예산 130억원, 전라남도 예산 65억원을 지원받고 녹십자가 620억원을 투자해 짓는다. 지난 7월 WHO 관계자가 방문해 “화순 공장이 완공되면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백신 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흡족해했을 정도로 시설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과연 성공할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녹십자의 백신 사업이 성공하려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 텐데, 각각 공익과 사익이라는 다른 목적을 가진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런 장기적 파트너십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기업이 백신 공장을 계속 유지하려면 계속 백신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은 수요가 들쭉날쭉하다. 특히 겨울이 지나면 수요가 없어 백신은 폐기된다. 매년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하기 때문에 겨울이 지나면 기존 백신은 쓸모가 없어지는 탓이다. 이윤을 따져야 하는 기업은 다음해에는 백신 생산량을 줄인다. 이렇게 매년 백신 생산량이 변하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데 필요한 달걀(유정란) 공급량도 수시로 바뀐다. 양계업자 처지에서는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유정란을 굳이 생산할 이유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요리에 쓰이는 달걀은 대부분 무정란이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유정란 공급이 불안정하면 백신 생산 공장이 있어도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닥쳤을 때 팬데믹 백신 생산을 늘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연간 일정량 이상의 백신을 구매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십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백신 생산업체는 안정적 수요를 보장받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일부 다국적 제약업체는 세계 여러 나라와 평소 연간 일정량 이상의 백신을 구매하면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적정량 이상의 팬데믹 백신 공급을 약속하는 계약을 추진 중이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파트너십을 맺고 국내에서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시도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며 “일단 기업이 공익성이 큰 백신 사업에 투자한 만큼 정부가 그런 투자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정부, 기업이 힘을 합쳐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당장의 방어책은 ‘격리’뿐

    그러나 준비를 채 마치기 전인 2008~09년에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온다면 이런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 따르면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때 국내 인구 759만명의 약 38%인 288만4000명이 감염돼 14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통계의 부정확성을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당시 사망자 수를 지금의 인구로 환산하면 약 50만명이다.

    지금 당장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찾아들면 뾰족한 수가 없다. AI 프리-팬데믹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뿐이다. 그 환자들이 지하철, 영화관, 백화점 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덜 이용했으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1918년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야 고작 장터였을 것이다).

    1997년 AI 첫 희생자가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많은 과학자, 의학자는 이미 10년 전부터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개발하고 타미플루와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할 것을 권고해왔다. 지금도 동아시아의 어느 습지에서 똬리를 튼 온갖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면서 호시탐탐 수십억에 이르는 새로운 숙주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재앙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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